左傳昭七年에 魯大夫孟僖子將死할새 屬其大夫曰 吾聞將有達者하니 曰孔丘라 聖人之後也나 而滅於宋이라하니라
○齊太史子與가 謂南宮敬叔曰 孔子는 先聖之嗣니 自弗父何以來로 世有德讓이라 天所祚也라하니라
○家語曰 孔子之先은 宋之後라 殷微子啓는 帝乙之元子요 紂之庶兄이니 以圻內諸侯로 入爲王卿士라
微는 國名이요 子는 爵이라 武王伐殷하고 封紂子武庚於朝歌하여 使奉湯祀러니
後에 武庚이 與管蔡霍叔亂周어늘 周公東征하여 罪人斯得하고 乃改命微子하고 後殷國於宋하다
啓卒에 弟仲思衍이 嗣微之後故로 號微仲이라 二微는 俱以微之號自終이라 至于稽하여 乃稱公하다
迨弗父何하여 以國讓弟厲公하니 何之後가 遂世爲宋卿이라
至孔父嘉하여 五世親盡하니 別爲公族하여 始以孔爲氏라하니라
四十七代孫傅가 推譜牒曰 鄭有孔張하니 出於子孔이요 衛有孔達하고 魏有孔悝하니 出於姬姓이라
皆非子氏後하니 蓋姓同而族異일새라 孔氏子姓이 爲先聖後者니 世爲魯人하여 同居祖廟라하니라
孔子世系之圖
≪
春秋左氏傳≫
昭公 7년 조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魯나라 대부
가 죽으려 할 때에 대부들을 불러놓고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앞으로 통달할 이가 있는데 이름이 ‘
孔丘’라 한다.
聖人(
湯王)의 후예이나
宋나라 때 멸문하였다.”
○≪공자가어≫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공자의 선조는
宋나라의 후손이다.
殷나라
는
의
元子이자
의
庶兄이다.
의 제후의 신분으로 들어와 왕의
卿士가 되었다.
微子
微는 나라 이름이고,
子는 작위이다.
武王이 은나라를 정벌하고
紂의 아들
을
에 봉하고
湯王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후에
주공이 동쪽으로 정벌하여, 죄인을 다스렸다. 그리고 봉작을 바꾸어 미자에게 주고, 은나라의 뒤를 송나라로 잇도록 하였다.
미자 계가 죽자 아우 仲思衍이 微나라를 승계하였다. 그러므로 微仲이라고 부른다. 미자와 미중은 모두 ‘微’라는 국호를 가지고 죽었고, 稽에 이르러 ‘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弗父 何에 이르러, 나라를 아우 厲公에게 양보하였고, 弗父 何의 후손은 마침내 대대로 송나라의 卿을 지냈다.
47대 후손
孔傅가
譜牒을 따져서 말하였다. “
鄭나라에
이 있으니,
에서 나왔다.
衛나라에
이 있고
魏나라에
가 있으니
姬姓에서 나왔다.
모두 子氏의 후손이 아니니, 성은 같으나 종족은 다르기 때문이다. 孔氏 가운데 성이 子인 이들이 선성의 후손이다. 대대로 노나라 사람으로, 함께 祖廟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