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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1)

국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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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里克弑奚齊而秦立惠公
獻公卒하다
里克將奚齊할새 先告하니
子將如何 荀息曰
死吾君而殺其孤 吾有死而已 吾蔑從之矣니라
里克曰 子死 孺子立이면 不亦可乎
子死라도 孺子廢 焉用死 荀息曰
君問臣事君於我어늘 我對以忠貞한대 君曰 何謂也오하야늘
我對曰 可以利公室인댄 力有所能無不爲 忠也
葬死者하고 養生者 하고 生人不愧 貞也니이다호라
吾言旣往矣 豈能欲行吾言而又愛吾身乎 雖死리오
里克告丕鄭曰 三公子之徒將殺孺子호니
子將何如 丕鄭曰 荀息謂何 對曰 荀息曰死之라하더이다
丕鄭曰 子勉之어다
我爲子行之하리니
子帥以待我하라
하며 援秦以搖之하고
이면 誰之國也 里克曰 不可하다
克聞之컨대 夫義者 利之足也 貪者 怨之本也라하니
廢義則利不立이요 厚貪則怨生이니라
夫孺子豈獲罪於民
將以驪姬之惑蠱君而誣國人하고
讒羣公子而奪之利하고
使君迷亂하야 信而亡之케하고
殺無罪以爲諸侯笑하야 使百姓莫不有藏惡於其心中하니
恐其如壅大川하야 潰而不可救禦也니라
是故將殺奚齊하고 而立公子之在外者하야 以定民弭憂
於諸侯且爲援이면 庶幾曰諸侯義而撫之 百姓欣而奉之 國可以固니라
今殺君而賴其富인댄 貪且反義
貪則民怨이요 反義則富不爲賴
賴富而民怨하고 亂國而身殆 懼爲諸侯載 不可常也니라 丕鄭許諾하다
於是殺奚齊‧卓子及驪姬하고 而請君於秦하다
旣殺奚齊 荀息將死之어늘
人曰 不如立其弟而輔之니라하니
荀息立卓子러니 里克又殺卓子 荀息死之하니
君子曰 不食其言矣라하다
旣殺奚齊‧卓子하고 里克及丕鄭 使告公子重耳於翟하야
曰國亂民擾하니
得國在亂이요 治民在擾니라
子盍入乎
吾請爲子하리라
重耳告曰 里克欲納我니라 舅犯曰
不可니이다
夫堅樹在始
始不固本이면 終必槁落이니라
夫長國者 唯知哀樂喜怒之節이라
是以導民이니
不哀喪而求國이면이요 因亂以入이면
以喪得國이면 則必樂喪이요 樂喪이면 必哀生하며
因亂以入이면 則必喜亂이요 喜亂이면 必怠德이니
是哀樂喜怒之節易也
何以導民이며 民不我導 誰長이리오
重耳曰 非喪이면 誰代 非亂이면 誰納我 舅犯曰
聞之컨대 喪亂有小大하니 大喪大亂之剡也 不可犯也
父母死爲大喪이요 讒在兄弟爲大亂이니
今適當之
是故難이니이다
公子重耳出見使者하고
曰子惠顧亡人重耳 父生 不得供備하고 死又不敢莅喪하야 以重其罪어늘
且辱大夫하니
敢辭하노라
夫固國者 在親衆而善鄰이요 在因民而順之
苟衆所利 鄰國所立이요 大夫其從之 重耳不敢違리라
告公子夷吾於梁하야
曰子厚賂秦人以求入하소서
吾主子하리이다
夷吾告冀芮曰 呂甥欲納我니라 冀芮曰
子勉之어다
國亂民擾하고 大夫無常하니
不可失也니이다
非亂何入이며 非危何安이리오
幸苟君之子 唯其索之니이다
方亂以擾하니 孰適禦我 大夫無常하니 苟衆所置 孰能勿從이리잇가
子盍盡國以賂外內하야 無愛虛以求入이니잇가
旣入而後 圖聚하소서
公子夷吾出見使者하야 再拜稽首하고 許諾하다
呂甥出告大夫曰 君死自立則不敢이요 이니
盍請君於秦乎 大夫許諾이어늘
乃使梁由靡告於秦穆公하야
曰天降禍於晉國하야 讒言繁興하야 延及寡君하야 之紹續昆裔 隱悼播越하야 託在草莽하야 未有所依하고
又重之以寡君之하야 喪亂並臻이러니
以君之靈 鬼神降衷으로 克伏其辜 羣臣莫敢寧處일새 將待君命하노이다
君若惠顧社稷하고 不忘先君之好하야 辱收其逋遷裔冑而建立之하야 以主其祭祀하고撫其國家及其民人이면
雖四鄰諸侯之聞之也라도 其誰不儆懼於君之威하고 而欣喜於君之德이리잇가
受君之重况이오
而羣臣受其大德이니 晉國其誰非君之羣隷臣也리잇가
秦穆公許諾하다
反使者하고 乃告大夫하야 曰夫晉國之亂 吾誰使先하야 夫二公子而立之하야 以爲 大夫子明曰
君使縶也하소서
縶敏且知禮하고 敬以知微하니
敏能 知禮可使 敬不
이요 微知可否
君其使之하소서
乃使公子縶하야 吊公子重耳於翟하야
曰寡君使縶하야 吊公子之憂 又重之以喪이니이다
寡人聞之컨대 이라하니
時不可失이오 喪不可久 公子其圖之하라
重耳告舅犯한대 舅犯曰
不可니이다
是故置之者不殆니이다
父死在堂而求利 人孰仁我 어늘 我以徼이면 人孰信我리오
不仁不信이면 將何以長利리잇가
公子重耳出見使者하고 曰君惠吊亡臣하고 又重하시나 重耳身亡하야 父死不得與於哭泣之位하니
又何敢有하야 以辱君義리오하고 再拜不하고 하고 退而하다
公子縶退하야 吊公子夷吾於梁호대 如吊公子重耳之命한대
夷吾告冀芮하야 曰秦人勤我矣니라 冀芮曰
公子勉之어다
亡人無狷潔이니
狷潔不行이오
重賂配德이니라 公子盡之하야 無愛財어다
人實有之 我以徼幸 不亦可乎잇가
公子夷吾出見使者하고 再拜稽首하고 起而不哭하고 退而私於公子縶하야
中大夫里克與我矣 吾命之以하고 嬖大夫丕鄭與我矣 吾命之以負之田七十萬호라
君苟輔我하면 蔑天命矣 리라
亡人苟入이면 掃除宗廟하고 定社稷이니 亡人何國之與有리오
君實有郡縣이나 且入
豈謂君無有리오
亦爲君之東游津梁之上 無有難急也 으로 以望君之
黃金四十鎰 六雙 不敢當公子 請納之左右하노라
公子縶反하야 致命穆公한대 穆公曰 吾與公子重耳하노라
重耳仁하야
再拜不稽首하니 爲後也 起而哭하니 愛其 退而不私하니於利也니라 公子縶曰
君之言過矣로이다
君若求置晉君而인댄 置仁不亦可乎잇가
君若求置晉君以成名於天下인댄 則不如置不仁하야 以滑其中하야 且可以니이다
臣聞之호니 〈曰〉仁有置 武有置라하니
仁置德이요 武置服이니이다
是故先置公子夷吾하니 寔爲惠公이니라


95. 이극里克해제奚齊시해弑害하자 나라가 혜공惠公나라의 군주로 세우다
【大義】晉獻公이 죽은 뒤 승계 문제를 둘러싼 晉나라 안의 세력, 망명 중인 公子들의 쟁탈, 주도권을 쥐고 있는 秦나라의 속셈이 相衝하는 속에 利權에 눈이 먼 추악한 현실 정치.
: 사부비요본四部備要本에는 ‘’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 : 사부비요본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26년에 헌공獻公이 죽었다.
이극里克해제奚齊시해弑害하려면서 먼저 순식荀息에게 고하기를 “세 공자公子를 따르는 무리가 유자孺子(奚齊)를 시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앞으로 어떻게 하겠소?” 하니, 순식이 대답하였다.
“우리 군주가 이제 죽었는데 그 어린 자식을 시해한다면 나에게 죽음이 있을 뿐 나로서는 결코 따를 수 없소.”
이극이 말하기를 “그대가 죽어 유자孺子가 왕위에 설 수 있다면 죽는 것도 또한 옳지 않은가?
그러나 그대가 죽더라도 유자가 폐출된다면 어찌 죽을 일이겠소?” 하니, 순식이 말하였다.
“전날에 임금께서 나에게 신하의 임금 섬기는 도리를 물으시기에, 내가 이라고 대답하였더니, 임금께서 ‘무엇을 이르는 말이냐?’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국가의 왕실王室에 이로울 수 있다면 내 힘으로 능히 할 수 있는 바를 다하는 것은 이고,
죽은 자를 장사 지내고 산 사람을 봉양한 일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와도 〈부탁하고 죽었던 것을〉 후회하지 않고, 산 사람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은 입니다.’ 하였소.
내가 이미 이런 말을 공표했는데 어찌 내가 한 말을 실천하고자 하면서 또한 이 몸을 아끼겠으며,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어찌 그것을 회피하겠소.”
이극里克비정丕鄭에게 고하기를 “세 공자公子를 따르는 무리가 유자孺子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앞으로 어떻게 하겠소?” 하니, 비정이 말하기를 “순식荀息은 뭐라 말하였소?” 하자, 대답하기를 “순식은 죽을 것이라고 하였소.” 하였다.
비정이 말하기를 “그대는 노력하도록 하십시오.
국사國士가 도모하는 일은 시행되지 않은 적이 없소.
나는 그대를 위해서 행동하겠소.
칠여대부七輿大夫를 거느리고 나의 호응을 기다리도록 하십시오.
내가 에 가서 군대를 동원시키고 나라의 원조를 받아 해제奚齊의 무리를 흔들어 놓겠소.
그리고서 왕위 계승권에서 소원한 자를 세운다면 많은 뇌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왕위 계승권과 가까운 자들을 입국入國할 수 없게 만든다면, 나라는 누구의 국가가 되겠소?”라고 하니, 이극이 말하기를 “옳지 않소.
나는 들으니, 무릇 의로움은 이익을 발생시키는 발[足]이고, 탐욕은 원망의 근본이라 하였소.
의로움을 팽개쳐 버린다면 이익은 성립되지 않고, 너무 큰 탐욕을 부리면 원망이 생겨납니다.
무릇 유자孺子(공자公子들)가 백성에게 무슨 죄를 지은 것이 있습니까?
다만 여희驪姬가 임금의 마음을 고혹蠱惑시키고, 나라 사람들을 속였으며,
공자公子들을 참소하여 그들의 권익을 빼앗았으며,
임금으로 하여금 제정신을 잃고 혼란에 빠져 그의 말을 믿고 공자들을 망명시키도록 하였고,
죄 없는 〈신생申生〉을 죽이도록 하여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되게 하고 백성들 마음속에 악한 마음을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 없게 만들었소.
마치 큰 내를 막아놓은 것과 같아서 둑이 무너져 내려 막아낼 길이 없게 될까 두렵소.
이런 연유에서 장차 해제奚齊를 죽이고 공자들 중 외국에 나가 있는 자를 세워서 백성을 안정시키고 우환을 잠재우려는 것이오.
제후 국가 중에서 또한 원조를 해 준다면 제후들이 의롭게 여기고서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백성들이 흔쾌히 우리의 계획을 떠받들어 주어야 국가가 공고해질 것이오.
지금 임금을 시해하고 그로 인한 부귀를 이롭게 여긴다면 이는 탐욕스럽고 또한 의로움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탐욕스러우면 백성들이 원망하고, 의로움에 반하면 부귀富貴는 내게 이로움이 되지 않소.
부귀를 이롭게 여기고 백성들의 원망을 사서, 국가가 혼란에 빠지며 몸이 위태로워지는 일은 제후들의 역사책에 실릴까 두려운 일이니, 상도常道라 할 수 없소.”라고 하니, 비정丕鄭이 허락하였다.
이에 해제奚齊탁자卓子여희驪姬를 죽이고, 나라에 임금 세우는 일을 도와 달라고 청하였다.
해제奚齊가 시해당하고 난 뒤, 순식荀息이 죽으려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태자의 아우를 세워서 보좌하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순식이 〈아우〉 탁자卓子를 군주로 세웠더니, 이극里克이 또 탁자를 시해하여, 순식도 죽었다.
군자들이 “그는 식언食言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해제와 탁자를 시해하고서 이극里克비정丕鄭도안이屠岸夷를 시켜서 에 있는 공자 중이重耳에게 고하게 하였다.
“국가는 혼란하고 백성들은 동요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얻을 수 있는 기회도 혼란한 시기에 달려 있고,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기회도 동요動搖되고 있을 때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왜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까?
저희가 청컨대 그대를 위하여 인도하겠습니다.”
중이가 외삼촌 범[舅犯]에게 고하기를 “이극이 나를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하니, 구범舅犯이 말하였다.
“안 됩니다.
나무를 굳건히 하는 것은 뿌리에 있습니다.
처음에 근본이 굳건하지 않으면 끝내는 반드시 말라 넘어집니다.
저 나라의 군장君長이 된 자들은 오직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준칙準則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백성을 가르쳐 인도합니다.
초상初喪을 슬퍼하지 않고 국가를 얻으려 하는 것은 재난에 빠지는 일이며, 혼란을 이용해서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위태로움에 빠지는 일입니다.
초상初喪을 이용해 나라를 얻으면 반드시 초상을 즐거워하게 되고, 초상을 즐거워하게 되면 반드시 슬픈 일이 생깁니다.
혼란한 틈을 이용해서 나라에 들어가면 반드시 혼란을 기뻐하게 되고, 혼란을 기뻐하게 되면 반드시 덕을 닦는 데 게을러집니다.
이는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준칙을 바꾸는 일입니다.
무엇으로 백성을 가르쳐 인도할 것이며 백성들이 내가 가르쳐 인도하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임금 노릇을 하겠습니까?”
중이重耳가 말하기를 “초상이 아니면 뉘라서 자리를 대신할 수 있으며, 혼란이 아니면 누가 나를 들이려 하겠습니까?” 하니, 구범이 말하였다.
은 듣건대, 초상初喪혼란混亂에는 크고 작은 것이 있어, 큰 초상이나 큰 혼란의 예봉銳鋒은 범할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신 것은 큰 초상에 해당하고, 참소가 형제 사이에 있는 것은 큰 혼란에 해당합니다.
지금이 마침 그것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것입니다.”
공자 중이重耳가 나가서 사자를 만나 말하였다.
“그대가 망명객 중이重耳를 은혜롭게 염려해 주고 있으나,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쇄소응대灑掃應對 등의 일로 시중드는 신하 노릇을 하지 못하였고, 돌아가셔서는 또 감히 초상 마당에도 나가지 못하여 그 죄가 더욱 무겁습니다.
또 대부들에게까지 굴욕스럽게 나를 찾는 걸음을 하게 하였습니다.
감히 거절하겠습니다.
국가를 공고하게 하는 길은, 백성을 가까이 사랑하고 이웃 나라와 잘 지내는 데 달렸으며, 백성들 마음에 의지해서 그들 마음에 순응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진실로 백성이 이롭게 여기는 바이고, 이웃 나라가 세워주는 바이고 대부들까지도 따른다면 중이는 감히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여생呂甥극칭郤稱도 역시 포성오蒲城午를 시켜서 나라에 있는 공자 이오夷吾에게 고하게 하였다.
“당신은 나라에 후한 뇌물을 주어서 입국入國의 길을 찾으십시오.
우리가 당신을 군주로 받드는 일을 주동하겠습니다.”
이오가 기예冀芮에게 말하기를 “여생呂甥이 나를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하니, 기예冀芮가 말하였다.
“당신은 힘쓰도록 하십시오.
국가는 혼란하고 백성은 동요하고 있으며, 대부들은 항심恒心이 없습니다.
이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혼란이 아니면 어떻게 입국할 수 있으며, 위태하지 않다면 어떻게 귀국하여 편안히 안착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스럽게 임금의 아들이라서 그들이 우리를 찾아온 것입니다.
현재 혼란이 일어나 동요하고 있으니 누가 우리를 막겠으며, 대부들이 항심恒心이 없으니, 진실로 백성들이 세운 바이면 누가 능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유자孺子는 왜 국가의 모든 재물을 나라 안팎에 뇌물로 주어 국고國庫가 텅 빌지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국入國의 길을 구해보려 하지 않으십니까?
입국한 뒤에 재물 모으는 일은 도모하도록 하십시오.”
공자 이오夷吾가 나가서 사자를 만나 두 번 절하고서 머리를 조아려 허락하였다.
여생呂甥이 나가서 대부들에게 고하기를 “임금께서 돌아가셨는데 우리가 스스로 임금을 감히 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빈자리로 오래 놔두면 제후들이 음모를 꾸며 마음대로 밖에서 군주를 불러들여 백성들 각자가 지지하는 사람이 생겨나 혼란이 가중될까 두렵습니다.
어찌하여 나라에 임금 세우는 일을 요청해 보지 않을 일이겠습니까?” 하니, 대부들이 허락하였다.
이에 양유미梁由靡를 시켜 진목공秦穆公에게 고하게 하였다.
“하늘이 나라에 를 내려서 참소의 말이 분분하게 일어나더니, 급기야 우리 과군寡君에게 그 화가 번져 우리 과군寡君을 이을 태자며 공자公子들이 두려움과 근심으로 멀리 달아나도록 하여 저 초야草野에 머물면서 의지할 곳조차 없게 하였습니다.
또 거기에다 과군寡君마저 세상을 떠나 초상과 혼란이 겹쳐 있습니다.
임금님의 신령스러움과 이 내려 준 복록의 힘으로 죄인(驪姬)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따라 복주伏誅되었으나, 여러 신하들은 감히 편안하게 지낼 수가 없어 지금 임금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임금님께 청하오니, 사직社稷을 은혜로 돌보아 주시고 선군先君과 지내셨던 우호를 잊지 마시어 망명길에 떠도는 공자를 굴욕스러우시겠지만 거두어 군주로 세워서, 선왕先王의 제사를 주재하게 하고, 또 국가와 백성을 진무鎭撫하도록 해 주십시오.
사방 이웃의 제후들이라도 그 소문을 듣게 된다면, 뉘라서 임금님의 위엄에 경계와 두려움을 느끼지 않겠으며, 임금님의 덕행을 흔쾌히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임금님께서 그동안 나라에 쏟은 중한 사랑을 마무리하시는 일이 될 것이고, 저희는 임금님의 큰 은혜를 받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뭇 신하들이 임금님의 큰 덕을 받는 일일 것이니, 나라의 그 누가 임금님이 부리는 수많은 신하가 아니겠습니까?”
진목공秦穆公이 이를 허락하였다.
사자使者를 되돌려 보내고, 이내 대부 자명子明공손公孫를 불러 말하기를 “나라의 난리에 누구를 먼저 보내서, 저들 두 공자公子 중에서 한 공자를 세워 조석朝夕의 위급함을 꾸릴까?” 하니, 대부 자명子明이 말하였다.
“임금님께서는 을 보내도록 하십시오.
은 민첩하면서도 한편으로 를 알고, 공경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기미를 짐작할 줄 압니다.
민첩하면 은밀한 계책에 능하고, 예를 알면 사신으로 부릴 수 있고, 공경스러우면 수행시킨 명령을 실추시키지 않고, 기미를 짐작할 줄 알면 일의 가부可否를 판단하게 됩니다.
임금님께서는 그를 보내도록 하십시오.”
이에 공자公子사자使者로 보내어 으로 가서 공자公子중이重耳를 위로하게 하였다.
과군寡君께서 저를 시켜 공자가 망명의 근심 속에 또다시 거듭 어버이 초상을 만난 것을 위로하도록 하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과인은 들으니, 국가를 얻는 것도 항상 국상國喪 때이고, 나라를 잃는 것도 항상 국상國喪 때라 하였소.
기회의 시기를 잃어서도 안 되고, 국상 기간이 길 수도 없으니, 공자는 고려해 보도록 하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중이가 구범舅犯에게 고하자, 구범이 말하였다.
“옳지 않습니다.
망명객에게는 친근하게 상대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신의信義인덕仁德이 있은 다음이라야 친근하게 상대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군주 자리에 세워진 자라야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 빈소殯所가 아직 에 차려져 있는 상태에서 이익을 구하려 하면, 백성들 중 누가 우리를 인덕仁德이 있다 하겠으며, 공자公子들마다 실상 똑같은 기회를 가졌는데 우리가 요행을 바라고자 들면, 백성들 중 누가 우리를 신의 있다고 하겠습니까?
인덕仁德도 없고 신의信義도 없다면, 장차 무엇을 가지고 길이길이 이익을 누리겠습니까?”
공자 중이重耳가 나가서 사자使者를 만나 말하기를 “임금님께서 은혜롭게 망명객을 위로해 주시고 또 거듭 명령의 말씀이 있으셨으나, 중이가 도망쳐 나온 신세여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곡읍哭泣의 자리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무슨 감히 다른 뜻을 두어 임금님의 은의恩義를 욕되게 하겠습니까?” 하고, 두 번 절하고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지 않았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한 차례 하고, 자리에서 물러가서는 개인적으로 〈사신을〉 만나지 않았다.
공자公子이 물러나와 나라로 가서 공자公子이오夷吾를 위로하기를 공자公子중이重耳에게 위로한 말과 똑같이 하였다.
이오가 기예冀芮에게 고하기를 “나라 사람이 나를 돕겠답니다.” 하니, 기예가 말하였다.
“공자께서는 노력하십시오!
망명 중인 사람은 소신所信을 고집하거나 몸을 깨끗이 가질 수 없습니다.
소신을 고집하거나 몸을 깨끗이 갖다보면 큰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많은 뇌물을 공자의 지위地位에 걸맞게 써야 할 것이니, 공자께서는 힘을 다하고 재물을 아끼지 마십시오.
공자들 모두가 실상 똑같은 기회를 가졌는데 우리가 요행으로 구할 수 있다면 또한 뇌물이라도 쓰는 것이 옳은 일 아니겠습니까?”
공자公子이오夷吾가 나와서 사자를 만나서는, 두 번 절하고서 머리를 땅에 대고 한참을 조아렸고,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하지 않았고, 자리에서 물러나왔다가는 공자公子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말하였다.
중대부中大夫이극里克이 나를 돕고 있어서, 내가 분수汾水의 북쪽 전답 1백만 를 주겠다 하였고, 선군先君에게 사랑받았던 비정丕鄭이 나를 돕고 있어서, 내가 부채負蔡의 전답 70만 를 주겠다 하였소.
임금님께서 진실로 나를 도와주신다면, 천명天命을 기다릴 것도 없이 내가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망명객이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나라에 들어가게만 된다면 종묘宗廟를 소제하고 사직社稷을 안정시킬 뿐이지 망명객이 어찌 국토까지 소유하려 들겠습니까?
임금님께서도 실로 자국自國군현郡縣을 소유하고 계시지만 우선 황하黃河 너머에 늘어서 있는 다섯 을 들여놓겠습니다.
임금님께 어찌 이러한 땅이 없어서 이겠습니까?
단지 임금님께서 동쪽으로 나루나 다리로 유람길 나오셨다가 어려움이나 군색한 일을 당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이니, 망명객이 가진 말굴레며 말뱃대끈 같은 하찮은 것들로 임금님이 달리시며 일으키는 먼지를 바라보려 하옵니다.
황금 40백옥白玉 6쌍은 공자에게 감히 드린다 할 수 없으니, 좌우의 시종하는 사람들에게 들이기를 청하옵니다.”
공자公子이 나라로 돌아와서 목공穆公에게 복명復命하자, 목공穆公이 말하기를 “나는 공자公子중이重耳를 도와주고 싶다.
중이가 사람됨이 어질도다.
재배再拜하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지 않았음은 후계자가 되는 것을 탐하지 않음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 차례 을 한 것은 그 아비를 사랑함에서이고, 물러간 뒤에 사사로이 공자 을 만나지 않은 것은 국가를 얻는 이익을 탐하지 않은 것이다.” 하니, 공자 이 말하였다.
“임금님의 말씀이 잘못됐습니다.
임금님께서 만약 나라의 군주를 세워 성공시키고자 하시는 일이라면, 어진 공자公子를 세우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임금님께서 만약 진나라 군주를 세우는 것으로 천하에 위명威名을 떨치시기를 구하는 것이라면, 어질지 않은 공자를 세워서 진나라의 나라 안에 혼란을 야기하여, 다시 군주를 바꿀 수 있는 길을 열어 두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신은 듣건대 ‘인의仁義롭다는 소문을 위해서 세우는 군주가 있고, 위무威武를 드날리고자 세우는 군주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의롭다는 소문을 구할 적에는 덕 있는 사람을 세우고, 위무威武를 드날리고자 할 적에는 복종하는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 먼저 공자 이오夷吾를 세우게 되니 이 사람이 바로 혜공惠公이다.


역주
역주1 二十六年 : 獻公의 26년이니 魯僖公 9년(기원전 651년)이다.
역주2 : 시
역주3 荀息 : 驪姬의 아들인 奚齊의 스승이다.
역주4 三公子之徒 : 申生‧重耳‧夷吾 세 公子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역주5 : 살
역주6 孺子 : 천자나 제후의 후계자를 이르는 말.
역주7 : 四部備要本에는 ‘死’자가 없다.
역주8 : 四部備要本에는 ‘哉’자가 없다.
역주9 死人復生不悔 : 죽은 獻公이 다시 살아나더라도 荀息에게 아들 해제를 부탁했던 마음에 후회가 없다는 말이다.
역주10 : 四部備要本에는 ‘避’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역주11 二國士之所圖 無不遂也 : 二國士는 里克과 荀息이다. 두 사람의 계획이 이제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말은 이번 거사에서 이극은 죽이려 하고 순식은 죽겠다는 서로의 죽음을 건 방어와 공격도 그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일종의 예언이다.
역주12 七輿大夫 : 申生이 거느린 下軍의 7명의 大夫이다. 그 이름은 左行의 共華, 右行의 賈華‧叔堅‧騅歂‧纍虎‧特宮‧山祁 등이다. 다음 권 ‘惠公殺丕鄭’章에 낱낱이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 《左傳》 〈僖公10年〉의 이 기사의 林堯叟注에는 ‘侯伯七命副車七乘故有七輿大夫之官’이라고 하여 七輿大夫가 생긴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역주13 使翟以動之 : 翟은 公子重耳가 망명가 있는 나라여서 그곳에 원조를 청하려 한 것이다.
역주14 立其薄者 可以得重賂 厚者 可使無入 : 薄과 厚를 韋昭는 과거 자신들과 지낸 정리의 후함과 소원함으로 풀었다. 그러나 1993년 曁南大學 간행 《國語譯注辨析》 371면에서는 兪樾의 설을 인용하여 薄은 왕족 혈친 관계상 왕위 계승권과 관계가 먼 사람, 厚는 왕위 계승권에서 가까운 사람으로 해석하며 계승권에서 가까운 사람들을 重耳와 夷吾라 하였다. 뒤의 해석이 조금 더 타당한 듯하여 그 설을 따른다.
역주15 屠岸夷 : 진나라의 대부이다. 屠岸은 複姓이고 夷는 이름이다
역주16 : 引導를 뜻하는 말이다.
역주17 舅犯 : 重耳의 외삼촌 犯을 이르는 말이다. 이름은 狐偃이고 字는 子犯이다.
역주18 偃也 : 舅犯이 자신을 자신의 이름으로 이르는 말이다. 위 주석을 참고하라.
역주19 洒埽之臣 : 물 뿌리고 쓰는 일을 하는 신하란 뜻으로, 곁에서 시중드는 일을 이른다. 아들이니까 당연히 아들 노릇을 못했다고 해야 하나 아버지가 군주여서 신하란 말을 쓴 것이다.
역주20 : 四部備要本에는 ‘之’자가 없다.
역주21 呂甥及郤稱 亦使蒲城午 : 呂甥과 郤稱‧蒲城午는 모두 진나라의 대부들이다. 여생은 獻公의 생질이어서 여생이라 칭한 것이며, 呂는 그의 采地이다. 蒲城午는 蒲城은 복성이고 午는 이름이다.
역주22 〈也〉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3 久則恐諸侯之謀 徑召君於外也 則民各有心 恐厚亂 : 韋昭는 徑召君於外也를 뇌물을 받은 제후들이 멋대로 다른 공자를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글을 두 말로 나누어 久則恐諸侯之謀를 빈 자리로 오래 두면 제후들이 음모를 꾸밀 것이고, 徑召君於外也則民各有心을 멋대로 군주를 밖에서 불러들이면 백성들이 자신들의 마음속에 두고 있는 지지자가 각기 다르게 되어 결과적으로 혼란만 더하여질까 두렵다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久면 則恐諸侯之謀로 徑召君於外也면 則民各有心’으로 보자는 것이다.
역주24 使寡君 : 四部備要本에는 이 세 글자가 없다.
역주25 不祿 : 士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니 다시 祿俸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에서 쓴 말이다. 다만 獻公은 군주인데 이 말을 쓴 것은 다른 나라 군주 앞이라 겸손하게 표현한 것이다.
역주26 罪人 : 驪姬를 이른다.
역주27 塡[鎭]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고쳤다.
역주28 終君之重愛 : 終君을 韋昭는 죽은 獻公을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죽은 제후를 終君이라고 일컬은 기록이 없다. 따라서 終君之重愛를 임금님의 그동안 晉나라에 쏟은 중한 사랑을 마무리하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역주29 子明及公孫枝 : 子明과 公孫枝는 모두 秦나라의 대부이다.
역주30 : 지시대명사인 之자의 뜻이다.
역주31 朝夕之急 : 아침 저녁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란 말은 당시 晉나라에 군주가 없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역주32 : 隱微한 일을 이른다.
역주33 : 추
역주34 : 四部備要本에는 ‘墜’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역주35 得國常於喪 失國常於喪 : 韋昭는 得國을 齊桓公이 襄公의 뒤를 이어 군주 자리에 오른 것, 失國을 齊桓公과 똑같이 망명길에 올랐다 군주 자리 획득에 실패하고 죽음을 당한 子糾의 일에 비겼다.
역주36 亡人無親 : 亡人은 공자 중이를 이르는 말이고 無親은 그가 不孝子의 누명을 쓰고서 어버이를 버리고 외국으로 도망 나왔기 때문에 세상에서 친근하게 대해 줄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역주37 亡人無親 信仁以爲親 : 이 말은 《大學》에 ‘舅犯曰亡人無以爲寶仁親以爲寶’로 되어 있다.
역주38 人實有之 : 사람마다 실상 기회를 똑같이 맞이하고 있다는 뜻으로, 당시 晉나라의 여러 공자들 모두가 君主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가졌다는 말이다.
역주39 : 四部備要本에는 ‘倖’으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아래도 같다.
역주40 有命 : 진나라로 돌아가 군주가 될 길을 고려하라고 한 말을 이른다.
역주41 它志 : 군주가 되는 것을 이른다.
역주42 稽首 : 머리를 한참 동안 땅에 대고 있는 절. 아홉 가지의 절 중에서 가장 공경스러운 절로 신하가 군주에게 행하는 절이다. 《周禮春官大祝》
역주43 起而哭 :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자리가 바뀌었으므로 다시 哭을 하는 것을 이른다.
역주44 不私 : 다시 서로 사적으로 만나지 않았음을 이른다.
역주45 汾陽之田百萬 : 汾陽은 분수의 북쪽이라는 뜻의 지명이다. 陽은 산과 어울리면 산의 남쪽을 지칭하는 말이 되고 물과 어울리면 물의 북쪽을 지칭하는 말이 된다. 百萬 아래에는 單位語가 빠져 있다. 韋昭는 1백만 畝라고 하였다. 아래 七十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漢語大詞典》에서는 백만은 수의 최대치를 이르는 말이니 많은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해석하였다.
역주46 葵[蔡] : 四部備要本에 ‘蔡’로 되어 있으며 汪遠孫의 《國語明道本攷異》에 의거하여 ‘蔡’로 고쳤다.
역주47 吾必遂矣 : 四部備要本에는 이 네 글자가 없다.
역주48 河外列城五 : 晉나라의 서쪽 황하 너머에 있는 다섯 城이다. 黃河를 경계로 본다면 황하의 동쪽에 晉나라가 있고 황하의 서쪽에 秦나라가 있다. 다섯 성은 동쪽의 虢略, 남쪽의 華山, 안으로 解梁城까지의 땅들이다.
역주49 亡人之所懷挾纓纕 : 纓은 말의 굴레에 해당하는 끈이고 纕은 말의 뱃대끈이다. 앞에서 말한 다섯 성을 이렇게 형용한 것인데 매우 하찮은 물건이란 말이다.
역주50 嬰瓖[纓纕]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고쳤다.
역주51 塵垢 : 車馬가 달릴 때 일으키는 먼지이다. 곧 앞에서 말한 다섯 성이라는 하찮은 예물을 진나라 군주가 거두어달라는 뜻이다.
역주52 白玉之珩 : 珩은 佩玉의 맨 위에 가로로 놓이는 玉이다.
역주53 不沒 : 沒은 탐하는 것이다. 四部備要本에는 役으로 되어 있다. 아래 不沒於利의 沒도 四部備要本에는 役으로 되어 있다.
역주54 : 四部備要本에는 ‘役’으로 되어 있으나 따르지 않는다.
역주55 父也 : 四部備要本에는 ‘父孝也’로 되어 있으나 따르지 않는다.
역주56 : 四部備要本에는 ‘役’으로 되어 있으나 따르지 않는다.
역주57 載之 : 성공시키는 것을 이른다.
역주58 進退 : 임금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것을 이른다.

국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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