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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1)

국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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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 제2권
周語 中
15. 富辰諫襄王而翟伐鄭國而翟女爲后
襄王十三年 이어늘 王使游孫伯으로 한대
鄭人執之하니 王怒하야 將以
伐鄭하다 富辰諫曰
不可하니이다
人有言曰 兄弟讒鬩이라도 侮人百里라하고
曰 兄弟鬩於牆이나 外禦其侮라하니
若是則鬩乃內侮 而雖鬩이라도 不敗親也니이다
鄭在天子 하니이다
我周之東遷 晉鄭是依하고 又鄭之이어늘
今以小忿棄之 是以小怨置大德也 無乃不可乎잇까
且夫兄弟之怨 不徵於 徵於它 利乃外矣니이다 章怨外利 不義 棄親卽翟 不祥이며 以怨報德 不仁이니이다
夫義 所以生利也 所以事神也 所以保民也
不義則利不阜하고 不祥則福不降하고 不仁則民不至하나니이다
古之明王 不失此
故能光有天下하고寧百姓하야 令聞不忘하니 王其不可以棄之니이다
王不聽하고 十七年 王降翟師以伐鄭하다
王德翟人하야 將以其女爲后한대 富辰諫曰
不可하니이다 夫婚姻 禍福之階也 利內則福하고 利外則取禍어늘 今王外利矣시니 其無乃階禍乎잇까
是皆能內利親親者也
是皆外利離親者也니이다
王曰 利何如而內 何如而外 對曰
尊貴明賢庸勳長老愛親禮新親舊 然則民莫不審固其心力以役上令하리이다
官不易方하야 而財不匱竭하며 求無不至하며 動無不濟하야 兆民 夫人奉利而歸諸上 是利之內也
이면 民乃攜貳하야 各以利退하야 上求不曁 是其外利也니이다
夫翟 無列於王室이요 어늘 王而卑之하시니 是不尊貴也
狼之德也로대 未失周典이어늘 王而蔑之하시니 是不明賢也
平桓莊惠 皆受鄭勞어늘 王而棄之하시니 是不庸勳也
之齒長矣어늘 王而弱之하시니 是不長老也
隗姓也 이어늘 王而虐之하시니 是不愛親也니이다
夫禮 新不어늘 王以翟女 하시면 非禮 且棄舊也
王一擧而棄七德이라 臣故曰利外矣라하노이다
하니 曰必有忍也라야 若能有濟也라하니
王不忍小忿而棄鄭하시고 하시니
封豕豺狼也 不可니이다
王弗聽하다
十八年 한대 翟人來誅하고 殺譚伯하다
富辰曰 昔 吾驟諫王호대 王弗從하야 以及此難하니 若我不出이면 王其以我爲懟乎인저하고 乃以其屬死之하다


국어國語 제2권
주어周語
15. 부신富辰이, 양왕襄王의 군사를 빌려서 나라를 치고 적군翟君의 딸을 로 삼으려는 일을 하다
【大義】작은 분노 때문에 큰 공이 있는 사람을 버리면 안 되며, 婚姻은內國人을 두고 먼 外人과 하면 禍를 초래한다고 비판하다.
주양왕周襄王 13년에 나라 군대가 나라를 치자, 왕이 대부大夫유손백游孫伯을 시켜 나라의 사정을 봐주라고 부탁하였다.
정군鄭君유손백游孫伯을 체포하니, 양왕襄王이 노하여 의 군대를 빌어서 나라를 치려고 하자, 대부大夫부신富辰하였다.
“옳지 않습니다.
옛사람이 한 말이 있으니, ‘형제兄弟간에 서로 헐뜯고 싸우더라도, 백리百里 밖의 사람이 능멸해 오면 함께 단결하여 막는다.’라 하였고,
주문공周文公에 이르기를, ‘형제兄弟가 한 집 안에서 서로 싸우더라도 남이 밖에서 능멸해 오면 공동으로 방어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다면 형제가 싸우는 것은 곧 집 안에서 서로 충돌하는 것일 뿐 집 안에서 싸우더라도 친족親族의 정을 파괴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나라는 천자天子에 있어 형제兄弟의 관계이고, 또 나라의 무공武公장공莊公주왕실周王室평왕平王환왕桓王에게 큰 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동쪽으로 천도遷都할 적에 나라와 나라의 힘을 입었고, 자퇴子穨 때에는 또 나라의 도움으로 평정되었습니다.
지금 작은 분노 때문에 나라를 버린다면 이는 작은 원한 때문에 큰 은덕恩德을 폐기하는 것이니, 옳지 못한 일 아닙니까?
형제兄弟간의 분규에 남을 불러들여 해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니, 남을 불러들여 해결하면 바로 외부 사람이 이익을 얻게 됩니다. 내부의 원한을 밖으로 드러내고 외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은 롭지 못하고, 친족親族을 버리고 을 가까이하는 것은 상서祥瑞롭지 못한 일이며, 원한으로 은덕恩德을 갚는 것은 어질지 못한 행위입니다.
도의道義재리財利를 생산하고, 상서祥瑞신명神明을 섬기고, 인애仁愛는 백성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도의道義를 행하지 않으면 재리財利가 풍부해지지 않고, 상서祥瑞롭지 않으면 이 내리지 않고, 인애仁愛하지 않으면 백성이 귀부歸附하지 않습니다.
예전의 명철明哲제왕帝王은 이 세 가지 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능히 광대한 천하를 소유하고, 백성을 화목하고 편안하게 하여 훌륭한 명예를 후인後人들이 잊지 않았으니, 께서는 이런 덕행德行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간언諫言을 듣지 않고, 17년에 의 군대를 동원하여 나라를 정벌하였다.
왕이 적인翟人은덕恩德을 감사하게 여겨 그의 딸을 왕후王后로 삼으려 하자, 부신富辰하였다.
“옳지 않습니다. 혼인은 불행과 행복이 들어오는 계단입니다. 혼인할 적에 자기의 내부를 이롭게 하는 쪽을 따르면 행복해지고, 외인外人을 이롭게 하는 쪽을 따르면 불행을 초래하게 됩니다. 지금 께서는 외인外人을 이롭게 하는 쪽으로 행하시니, 그것은 어쩌면 불행을 초래하는 계단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옛날 나라와 나라는 태임太任 때문에 복을 얻었고, 나라와 나라는 태사太姒 때문에 복을 얻었고, 나라‧나라‧나라‧나라는 태강太姜 때문에 복을 얻었고, 나라는 태희太姬 때문에 복을 얻었습니다.
이는 모두 혼인에서 내부를 이롭게 하고 해야 할 사람을 친근親近히 했기 때문입니다.
옛날 나라가 망한 것은 중임仲任 때문이고, 밀수密須가 망한 것은 백길伯姞 때문이고, 나라가 망한 것은 숙운叔妘 때문이고, 나라가 망한 것은 정희鄭姬 때문이고, 나라가 망한 것은 진규陳嬀 때문이고, 나라가 망한 것은 초만楚曼 때문이며, 나라가 망한 것은 계희季姬 때문이고, 나라가 망한 것은 형규荊嬀 때문이니,
이는 모두 혼인에서 외인外人을 이롭게 하고 친족親族들을 돌보지 않은 사례입니다.”
이 말하기를 “어떻게 하는 것을 내부가 이롭다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을 외인外人이 이롭다 하는 것인가?” 하니, 대답하였다.
“귀인을 존중하고, 어진 이를 현창顯彰하며, 이 있는 사람을 등용하고, 노인을 어른으로 공경하며, 친족親族을 사랑하고, 새로 온 손님을 예우禮遇하며, 옛친구를 친근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 백성이 그들의 마음과 힘을 다하고 굳게 단결하여 군상君上의 명령을 집행하지 않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관리는 행정하는 방법을 바꾸지 않아서 재용財用이 고갈되어 부족해지는 일이 없을 것이며, 위에서 구하는 것은 들어오지 않는 것이 없으며, 하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어서 백관百官과 뭇 백성이 사람마다 이익을 받들어 군상君上에게 바치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니, 이것은 이로움이 내부에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일곱 가지의 에서 분리되면 백성들이 바로 배반하는 두 마음을 가져 각기 자신의 이익을 구하느라 물러가서 군상君上의 요구에 호응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이로움이 외인外人에 있다는 것입니다.
왕실王室에서 책봉한 벼슬이 없고, 정백鄭伯남복男服에 해당하는데도 께서 비천卑賤하게 대우하시니, 이는 귀인貴人을 존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 승냥이와 이리 같은 품성을 가졌지만 나라는 나라의 전장典章을 잃지 않고 준수하였는데 께서 멸시하시니, 이는 현인賢人현창顯彰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왕平王환왕桓王장왕莊王혜왕惠王은 모두 나라가 세운 공로를 받았는데, 지금 왕께서 나라를 버리시니, 이는 이 있는 이를 등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백鄭伯은 나이가 많은데, 께서 어린 사람으로 대우하시니, 이는 노인을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외씨隗氏이고 나라는 선왕宣王에서 나온 후예인데 께서 학대하시니, 이는 친족親族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에 의하면 새사람으로 옛사람을 교체하지 않는 것인데, 께서 적군翟君의 딸로 씨와 씨의 자리를 바꾸려 하시니 가 아니요, 또 옛사람을 버리는 것입니다.
께서 한 번에 일곱 가지 을 버리셨기 때문에 외인外人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서경書經》에 ‘반드시 인내함이 있어야 비로소 성공함이 있게 된다.’라 하였습니다.
께서 작은 분노를 참지 못하여 나라를 버리시고, 또 숙외叔隗왕후王后로 올려 으로 인한 를 부르는 계단을 열려고 하십니다.
은 멧돼지나 승냥이와 이리 같아서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양왕襄王은 그의 하는 말을 따르지 않았다.
18년에 왕이 적후翟后폐출廢黜하자, 적인翟人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를 묻고 담백譚伯(나라 대부大夫)을 죽였다.
부신富辰이 말하기를 “전에 내가 여러 차례 에게 하였으나 께서 내 말을 따르지 않아 오늘의 이 환난患難에 이르렀다. 만일 내가 나가 싸우지 않으면 께서는 내가 을 원망한다고 여길 것이다.”라 하고는 곧 그의 무리를 데리고 싸우다가 죽었다.


역주
역주1 鄭人伐滑 : 鄭人은 鄭나라 君主文公. 伐滑은 서기전 639년에 鄭나라가 滑나라를 征伐한 일. 滑은 周나라의 同姓諸侯로, 지금의 河南省偃師縣緱氏城에 도읍했었다. 韋昭는 “이 앞서 鄭나라가 滑을 征伐하자 滑人이 鄭나라에 복종하였다가 鄭나라 군대가 물러간 다음에 鄭나라를 배반하고 衛나라에 붙었다. 이에 鄭文公이 公子士와 泄堵兪彌(곧 泄堵寇)에게 군대를 이끌고 가서 치게 한 것이다.” 하였다.
역주2 請滑 : 滑나라의 사정을 봐 달라고 요청함.
역주3 : 당시에 陝西 동북부 지방에서 활동하던 隗氏姓의 나라.
역주4 : 四部備要本에는 ‘狄’으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아래도 같다.
역주5 〈古〉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6 周文公之詩 : 周文公은 곧 周公旦. 詩는 《詩經》 〈小雅常棣〉로, 周公이 지었다고 전한다.
역주7 兄弟 : 襄王과 鄭나라는 兄弟의 親分이 있음. 鄭나라에 처음 封해진 桓公姬友는 周厲王의 아들이고 宣王의 아우이므로 兄弟國이 된다.
역주8 鄭武莊有大勳力於平桓 : 鄭나라 武公과 莊公이 周平王과 桓王에게 큰 공로가 있음을 이른 말. 鄭武公은 平王을 보필하여 동쪽의 洛邑으로 遷都하는 데 功을 세웠고, 莊公은 桓王의 卿士가 되어 王命을 받들어 宋나라를 征伐하여 큰 공로를 세웠다.
역주9 {凡}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10 子穨之亂 : 子穨는 周莊王의 아들로 惠王의 叔父인 王子穨. 惠王 2년(서기전 675년)에 亂을 일으켜 惠王을 축출하고 王이 되었으나, 鄭나라로 망명했던 惠王이 鄭厲公의 도움으로 子穨를 죽이고 復位되었던 사건을 이른다.
역주11 : 四部備要本에는 ‘繇’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역주12 : 四部備要本에는 ‘他’로 되어 있는데, ‘它’는 ‘他’의 古字이다.
역주13 三德 : 바로 앞에서 말한 仁‧義‧祥을 말한다.
역주14 : 四部備要本에는 ‘和’로 되어 있는데, ‘龢’는 ‘和’의 古字이다. 아래도 같다.
역주15 [由之] : ‘福’자 아래에 있는 것을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위로 올렸다.
역주16 {由之}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利’자 위로 올리고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17 摯疇之國也 由大任 : 摯疇는 任氏姓의 두 諸侯國. 奚仲과 仲虺의 후예로, 周文王의 어머니 太任의 친정집이다. 摯는 현재의 河南省汝南에 도읍하였고, 疇는 河南省平頂山 서남쪽에 도읍하였다. 太任은 摯나라 임금의 둘째딸로 周나라 王季의 妃가 되어 文王을 낳았고, 周나라가 융성하자 外家인 摯疇도 福을 얻게 되었다.
역주18 杞繒由大姒 : 杞繒은 姒氏姓의 두 諸侯國. 夏禹의 후예로, 周文王의 妃이고, 武王의 어머니인 太姒의 친정집. 杞는 현재의 河南省杞縣에 도읍하였고, 繒은 하남성 方城에 도읍하였다.
역주19 齊許申呂由大姜 : 齊許申呂는 姜氏姓의 네 諸侯國. 齊는 현재의 山東省淄博市에 도읍하였고, 許는 河南省許昌의 동쪽에 도읍하였고, 申은 하남성 南陽의 북쪽에 도읍하였고, 呂는 하남성 남양의 서쪽에 도읍하였다. 太姜은 周나라 太王의 妃이고 王季의 어머니이다.
역주20 陳由大姬 : 陳은 嬀氏姓의 諸侯國. 虞舜의 후예로, 현재의 河南省淮陽에 도읍하였다. 太姬는 周武王의 딸이고, 成王의 누님이다.
역주21 鄢之亡也 由仲任 : 鄢은 妘氏姓의 諸侯國. 현재의 河南省鄢陵의 서북쪽에 도읍했었는데, 東周 초에 鄭武公에게 멸망당하였다. 仲任은 仲任氏의 딸로, 당시 鄢君의 부인. 鄢이 멸망한 것에 대하여 唐固는 “鄢은 鄭武公에게 멸망당하였지, 任氏에게 장가들어 망한 것은 아니다.” 하였고, 韋昭는 “幽王이 西戎에게 살해되었는데도 《詩經》에서 褒姒가 죽였다고 하였으니, 재앙이 온 원인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하였다.
역주22 密須由伯姞 : 密須는 密로 통칭하며, 姞氏姓의 諸侯國. 伯姞은 密須國諸侯의 딸이다.
역주23 鄶由叔妘 : 鄶는 妘氏姓의 諸侯國. 현재의 河南省新鄭의 서북쪽에 도읍하였다. 叔妘은 鄶君의 부인인데 同姓의 딸이다. 唐固는 “鄭武公에게 멸망당하였지, 여자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다.” 하였고, 韋昭는 “《公羊傳》에 ‘이 앞서 鄭伯이 鄶公과 사이좋은 자가 있어서 부인과 간통하고 그 나라를 빼앗았다.’라고 했는데 이것을 이른 말이다.” 하였다.
역주24 耼由鄭姬 : 耼은 姬氏姓의 諸侯國. 文王의 아들 姬季의 나라로, 현재의 하남성 平輿의 북쪽에 도읍하였다가 춘추시대 楚나라에 멸망당하였다. 鄭姬는 鄭나라의 딸인데 同姓인 耼君의 부인이 되었다.
역주25 息由陳嬀 : 息은 姬氏姓의 諸侯國. 현재의 河南省息縣 서쪽에 도읍하였는데, 춘추시대 楚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 陳嬀는 陳君의 딸로 息君의 부인이다. 韋昭는 “蔡哀侯도 陳君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息嬀가 시집에 갈 때 蔡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다. 蔡哀侯가 머물게 하여 만나면서 손님으로 예우하지 않으니 息嬀가 息侯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息侯는 楚나라를 유도하여 蔡나라를 정벌하였다. 원한을 품은 蔡侯는 楚子에게 息嬀의 미모를 칭찬하니 楚子는 마침내 息나라를 멸망시킨 뒤 息嬀를 데리고 돌아갔다.” 하였다.
역주26 鄧由楚曼 : 鄧은 曼氏姓의 諸侯國. 현재의 湖北省襄樊市 부근에 도읍하였는데, 춘추시대에 楚나라에 멸망당하였다. 楚曼은 鄧君의 딸. 韋昭는 “楚曼은 鄧君의 딸로 楚武王의 부인이 되어 文王을 낳았다. 文王이 鄧나라를 방문했다가 탐내어 鄧나라를 滅하고 겸병하였다.”라고 하였다.
역주27 羅由季姬 : 羅는 熊氏姓의 諸侯國. 현재의 湖北省宜城 부근에 도읍하였는데, 楚나라에 멸망당하였다. 季姬는 姬氏의 딸로 羅君의 부인이 된 여자이다.
역주28 廬由荊嬀 : 廬는 嬀氏姓의 諸侯國. 현재의 湖北省襄樊市 서남쪽에 도읍하였는데, 楚나라에 멸망당하였다. 荊嬀는 廬君의 딸로 荊君(楚君)의 부인이 된 여자이다.
역주29 : 四部備要本에는 ‘盧’로 되어 있으나 汪遠孫의 《國語明道本攷異》에 의거하여 ‘廬’를 취하였다.
역주30 百姓 : 百姓은 百官이니, 벼슬하여 여러 대에 걸쳐 쌓은 공적이 있어서 氏姓을 받기 때문에 이른다.
역주31 七德離判 : 앞에서 열거한 일곱 가지 행위에서 떠남. 일곱 가지 德은, 尊貴‧明賢‧庸勳‧長老‧愛親‧禮新‧親舊를 이른다.
역주32 鄭伯南也 : 鄭伯은 鄭文公. 南은 男과 통용. 곧 鄭伯이 男服의 諸侯임을 이른다. 男服은 九服의 하나로 王畿 밖 1천 리에서 1천 5백 리 사이의 지역이다. 원래 이 말은 《左傳》 昭公13년의 平丘에서 會盟할 때 鄭나라 子産이 한 말이다.
역주33 : 四部備要本에는 ‘犲’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역주34 鄭伯捷 : 鄭伯은 鄭文公姬捷. 捷은 文公의 이름이다.
역주35 鄭出自宣王 : 鄭나라의 始封君인 桓公姬友는 周厲王의 작은아들이고 宣王의 아우이다. 宣王시대에 鄭나라에 封해졌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역주36 : 간
역주37 閒姜任 : 姜氏와 任氏의 딸을 바꿈. 姜氏와 任氏의 딸은 대대로 王의 妃嬪이 되었는데, 지금 翟의 딸을 王后를 삼으려 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역주38 書有之 : 《書經》 〈周書君陳〉에 보인다.
역주39 又登叔隗以階翟 : 翟의 딸인 叔隗를 王后로 올림으로써 翟의 患難을 불러들이는 계단이 됨. 叔隗는 翟君의 딸이다.
역주40 : 四部備要本에는 ‘猒’으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역주41 王黜翟后 : 王后가 된 翟后가 王子帶와 私通하자 襄王이 廢黜하였다.

국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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