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之將興에 其君齊明衷正하고 精潔惠和하야 其德足以昭其馨香하고 其惠足以同其民人이면
故明神降之하야 觀其政德하야 而均布福焉하나니이다
周之興也
에 하고 其衰也
에 하니 是皆明神之志者也
니이다
王曰 然則何爲오 對曰 臣聞之호니 道而得神이면 是謂逢福이요 淫而得神이면 是謂貪禍라호이다
王曰 吾其若之何
오 對曰 使
로 以
하야 하고 奉犧牲‧粢盛‧玉帛
하야 往獻焉
호대 無有祈也
하소서
王曰 虢其幾何
오 對曰 昔堯
러시니 今其
見
하니 神之見也
면 不過其
이라 若由是觀之
컨대 不過五年
이니이다
王使大宰
로 帥
及祝史
하고 奉犧牲‧
하야 往獻焉
하다
不禋於神而求福焉
이면 神必禍之
하고 不親於民而求用焉
이면 必違之
하나니
今虢公動匱百姓하야 以逞其違하고 離民怒神而求利焉하니 不亦難乎잇까
【大義】나라가 興할 적엔 밝은 神이 내려와 德에 임하고, 나라가 亡할 적엔 惡을 보여 준다. 어진 德을 지닌 자에게는 福을 주고 邪惡한 자에게는 禍를 준다는 의논이다.
15년(혜왕惠王 15년. 기원전 662년)에 신神이 신莘 땅에 내려왔다.
왕王이 내사內史인 과過에게 묻기를 “이는 무슨 까닭인가?
본래 이런 일이 있는 것인가?” 하니, 과過가 대답하였다.
나라가 장차 흥성할 적엔 그 임금의 지혜가 민첩하고 총명하며, 중도中道를 행하고 바르며, 정성스럽고 결백潔白하며, 은혜롭고 인화仁和하여 그의 밝은 덕德이 신령에게 향기를 맡게 하고, 그의 은혜가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합치게 합니다.
그러면 신명神明이 제사를 흠향歆饗하고 백성이 왕명王命을 따르게 되어 백성과 신神이 원한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밝은 신명神明이 내려와서 그 임금의 정교政敎와 덕행德行을 관찰하여 고루 복福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나라가 장차 망할 적엔 그 임금이 재리財利에 탐욕을 부리고, 편벽하여 바르지 못하며,
거리낌없이 즐기고 방종하며, 정치는 황폐하고 태만하며, 거칠고 추악하며, 사납고 모질며,
그 정치가 부패하여 악취가 나 제사 지내는 향기가 신명神明에게 오르지 않으며,
행하는 형벌이 법을 속이고 죄罪를 만들어 무고한 사람에게 함부로 가하여 백성의 마음이 떠나고 두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밝은 신명神明은 불결하게 여겨 제사를 받지 않고 백성은 멀리 떠나려는 마음을 두게 될 터이니,
백성과 신명神明이 원망하고 몹시 미워하여 의지할 곳이 없게 됩니다.
때문에 신명神明이 또 내려가서 그가 혹독하고 사악한 정치를 하는지 관찰하여 재앙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떤 때는 신神이 나타남으로써 흥성하기도 하고, 또는 망하기도 합니다.
옛날 하夏나라가 흥성할 적에는 축융祝融이 숭산崇山에 내려왔고, 망할 적에는 회록回祿이 금수耹隧에 내려와 이틀 밤을 묵었습니다.
상商나라가 흥할 적에는 도올檮杌이 비산丕山에서 여러 밤을 머물렀고, 망할 적에는 이양夷羊이 목야牧野에 있었습니다.
주周나라가 흥할 적에는 악작鸑鷟이 기산岐山에서 울었고, 쇠미衰微할 적에는 두백杜伯의 신神이 호경鄗京에서 선왕宣王을 쏘아 죽였습니다. 이는 모두 신명神明이 인간 세상에 내려왔던 일을 역사로 기록한 것입니다.”
왕王이 말하기를 “지금 이 신莘에 내려온 신神은 어떤 신神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옛날 소왕昭王이 방房나라에 장가를 드니 이를 방후房后라고 합니다.
실로 방후房后의 덕德에 결함이 있어서 옛날 단주丹朱의 덕德과 부합하니, 단주丹朱의 신神이 방후房后의 몸에 붙어 짝이 되어 목왕穆王을 낳았습니다.
이 신神이 주周나라의 자손子孫에게 내려와서 화禍를 주거나 복福을 줍니다.
신神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에게 붙어서 멀리 옮겨 가지 않습니다.
만일 이것을 따라 본다면 단주丹朱의 신神일 것입니다.” 하니,
왕王이 말하기를 “그 누가 화禍와 복福을 받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괵虢 땅에서 받을 것입니다.” 하니,
왕王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무엇 때문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은 들으니 ‘정도正道를 행하여 신神이 내려옴을 얻게 되면 이를 복福을 맞이했다라 이르고, 음란함을 행하여 신神이 내려옴을 얻게 되면 이를 탐욕으로 화禍를 불렀다라고 이른다.’ 하였습니다.
지금 괵虢임금이 조금 황음荒淫하니 아마 망할 것입니다.” 하니,
왕王이 말하기를 “나는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태재太宰를 시켜 태축太祝과 태사太史를 데리고 이狸자 성姓을 가진 사람을 인솔하고 희생犧牲과 자성粢盛과 옥백玉帛을 받들고 가서 바치되 구하는 것이 없이 빌게 하십시오.” 하였다.
왕王이 말하기를 “괵虢나라는 얼마나 더 가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옛날 요堯임금은 5년에 한 번 백성에게 나아갔었는데 지금 그 후예後裔가 나타났으니, 신神이 나타나게 되면 그 일의 수數를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이것으로 본다면, 5년을 지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왕王이 태재太宰인 기보忌父를 시켜 부씨傅氏와 태축太祝과 태사太史를 인솔하고 희생犧牲과 옥창玉鬯을 받들어 신莘 땅에 가서 제사드리게 하였다.
내사內史과過가 태재太宰 일행을 따라 괵虢나라에 갔는데, 괵공虢公이 태축太祝과 태사太史를 시켜 토지土地를 더 달라고 요청하게 하였다.
내사內史과過가 돌아와서 왕에게 고告하기를 “괵虢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신神에게 깨끗한 정성으로 제사를 올리지 않고 복福을 구하면, 신神은 반드시 화禍를 주고, 백성에게 친애親愛하지 않으면서 부려먹기를 구하면, 백성은 반드시 그 명命을 어길 것입니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신神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인禋이라 하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백성을 보호하는 것을 친親이라 이르는 것입니다.
지금 괵공虢公은 걸핏하면 곤궁한 백성을 부려서 자신의 정당하지 못한 욕심을 만족시키고, 백성이 배반하여 떠나고 신神을 노하게 하면서 이익을 구하고 있으니, 나라를 보존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혜왕惠王 19년에 진晉나라가 괵虢나라를 빼앗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