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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2)

국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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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 제19권
225. 越王句踐命諸稽郢行成於吳
[大義]戰力의 劣勢를 극복하기 위하여 屈從을 감내하며 外交의 수단을 이용하여 상대의 마음을 교만하도록 조장하여 승리를 쟁취하려는 외교술 전개.
吳王起師伐하니 越王 起師逆之하다
乃獻謀하야
夫吳之與越 唯天所授 王其無庸戰하소서
吳國之士於甲兵하야 而未嘗有所挫也니이다
夫一人善射 百夫하나니 勝未可成니이다
夫謀必素見成事焉하고 而後履之 不可以授命이니이다
王不如設戎하고 約辭行成하야 以喜其民하고 以廣侈吳王之心이니이다
吾以卜之於天이니 天若棄吳 必許吾成而不吾足也하야 將必寬然이오 有伯諸侯之心焉하리이다
旣罷弊其民하고 而天奪之食이면 安受其燼이니 乃無有命矣리이다
越王許諾하고 乃命
稽郢하야 行成於吳하야
寡君句踐 使下臣郢으로 不敢顯然布幣行禮하고 敢私告於
昔者 越國見禍하야하니 天王親趨玉趾 以心孤句踐이어늘 而又宥赦之하니 君王之於越也 繄起死人而肉白骨也니이다
不敢忘天災어니 其敢忘君王之大賜乎리잇가
今句踐申禍無良이나 草鄙之人 敢忘天王之大德하고 而思之小怨하야 以重得罪於下執事리잇가
句踐用帥二三之하고 親委重罪하야 頓顙於邊이로소이다
今君王不察하시고 盛怒屬兵하야하시니
越國 固貢獻之邑也어늘 君王不以鞭箠使之하시고 而辱軍士使하시니이다
句踐請하야嫡女 執箕箒以於王宮하고 一个嫡男으로 奉槃匜以隨諸御하며 春秋貢獻하야 不解於王府하노니
大[天]王豈辱裁之니잇가
亦征諸侯之禮也니이다
夫諺曰 是以無成功이라하니
今天王旣封越國하야 以明聞於天下어늘 而又刈 是天王之無成勞也니이다
雖四方之諸侯라도 則何實以事吳리오
敢使下臣盡辭하니 唯天王秉利度義焉하소서


국어國語 제19권
오어吳語
나라는 희성姬姓으로 나라의 선조先祖고공단보古公亶父태왕太王의 맏아들이고 주문왕周文王백부伯父태백泰伯후손後孫의 나라이다. 태왕太王의 셋째 아들 계력季歷이 어질고 그의 아들 문왕文王에게 성덕聖德이 있자 태왕太王계력季歷을 후계자로 삼아 문왕文王에게 전위傳位되기를 희망하였다. 이런 아버지 태왕太王의 의중을 알아차린 태백泰伯태왕太王의 맏아들이었음에도 후계자의 자리를 계력季歷에게 양보하고 형만荊蠻 지역으로 달아났다. 당시 형만荊蠻 지역의 풍속은 몸에 문신文身을 하고 머리를 짧게 깎았는데, 태백泰伯도 몸에 문신文身을 하고 머리를 짧게 깎아 다시는 쓰일 수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 바로 구오句吳로서 구오句吳국호國號라 하기도 하고 태백泰伯이 살던 땅이라 하기도 하는데, 형만荊蠻 사람들이 의롭게 여겨 1천여의 집이 귀부하였다 한다.
태백泰伯이 죽은 뒤 함께 왔던 아우 중옹仲雍이 뒤를 이었고, 중옹仲雍의 아들 계간季簡숙달叔達에게 전하여 이후 주장周章웅수熊遂 등 15대를 거쳐 수몽壽夢에 이르러 이라 일컬었다. 다시 6대를 지나 부차夫差월왕越王구천句踐에게 멸망당하였다.
나라의 영토는 현재 상해시上海市를 비롯하여 강소성江蘇省 전체와 절강성浙江省안휘성安徽省 일부에 걸쳐 있었으며, 도성都城(현재의 소주시蘇州市)에 있었다.
225. 월왕越王구천句踐제계영諸稽郢에게 명하여 나라와 강화를 체결하다
오왕吳王부차夫差가 군대를 출동하여 나라를 치자, 월왕越王구천句踐이 군대를 일으켜 장강長江 지역에서 맞아 싸우게 되었다.
대부大夫이 이에 계책을 올려 말하였다.
“저 나라와 나라의 운명은 하늘이 정해 주는 대로 될 것이니, 께서는 전쟁을 하지 마십시오.
신서申胥화등華登나라 용사勇士를 일반 갑병甲兵 중에서 선발하여 잘 훈련시킴으로써 종래에 한 번도 패전敗戰한 적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활을 잘 쏘면 백 사람이 활깍지와 활팔찌를 끼고 나서서 그를 본받는 것이니, 우리가 전쟁을 해도 승리를 기필할 수가 없습니다.
계책을 세운 일은 반드시 그 일이 성공할 수 있음을 예견하고 난 뒤에 실행해야 하니, 모험을 하여 목숨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께서는 군대를 설치하여 지키고, 사람을 나라에 파견하여 겸손한 말로 화친하기를 요청하여 나라 국민의 마음을 기뻐 들뜨게 하고, 오왕吳王의 야심을 크게 하도록 하는 것만 못합니다.
우리는 이번 일을 하늘에 을 쳐서 물어볼 수 있으니, 하늘이 만일 나라를 버린다면 반드시 우리와 화친하는 일을 허락할 것이고, 우리 나라는 두려워할 만한 상대가 못 된다고 생각하여 장차 반드시 경계심을 늦추며 제후諸侯패자霸者가 되려는 마음을 두게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그 나라 국민이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하늘이 재앙을 내려 그들의 식량을 탈취해 가면 우리나라는 나라의 불탄 잿더미를 수습할 수 있으니, 오나라는 천명天命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월왕越王이 그가 말한 계책을 시행하기로 허락하고 곧 제계영諸稽郢에게 나라와 화친하기를 요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였다.
“우리 임금 구천句踐하신下臣제계영諸稽郢을 시켜 감히 공개적으로 폐백幣帛을 진열하는 등의 예절禮節을 행하지 못하고 감히 사적으로 하집사下執事에게 하여 대신 말씀을 전달하여 올리게 하였습니다.
옛날 나라가 하늘이 내리는 재앙을 받아 천왕天王에게 죄를 얻으니, 천왕天王의 귀한 발걸음이 여기까지 나와 친정親征하신 것은 구천句踐을 죽여 없애려고 마음을 먹은 것인데, 또 너그럽게 용서하여 사면해 주셨으니, 군왕君王께서 우리 나라에 베푸신 은덕은 바로 죽은 사람을 살려 주고 백골白骨에 살을 붙여 준 것과 같습니다.
가 하늘이 내린 재앙도 잊지 않은 터인데, 감히 군왕君王께서 주신 큰 은혜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구천句踐이 거듭 화란禍亂을 당한 것은 선량한 덕행德行이 없어서 당하는 것이지만 멀리 초야草野에 사는 사람이 감히 천왕天王의 큰 은덕을 입고는 〈나라가 우리 변경에 들어와 벌인〉 전쟁의 작은 원한을 생각하여 거듭 천왕天王하집사下執事에게 죄를 얻겠습니까?
구천句踐은 두세 명의 가신家臣을 거느리고 직접 저에게 무거운 죄를 돌려서 변경에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청하고 있습니다.
지금 군왕君王께서 저희들의 이런 정황을 살피지 않으시고 크게 하여 군사를 모아 장차 나라를 잔인하게 쳐 없애려고 하십니다.
나라는 본디 나라에 공물貢物을 바치는 고을인데, 군왕君王께서 채찍으로 쳐서 꾸짖으며 부리지 않으시고 귀국貴國의 군사를 굴욕스럽게 하여 침입하는 적군을 막으라고 호령하시는 듯합니다.
구천句踐맹약盟約의 체결을 요청하면서 본처本妻가 낳은 한 명의 딸을 보내어 키와 비를 잡고 왕궁王宮에서 시중드는 여러 가운데 채우고, 본처本妻가 낳은 한 명의 아들로 쟁반과 대야를 받들어 여러 근시近侍의 뒤를 따르게 하겠으며, 또 봄가을에 공물貢物을 바쳐서 천왕天王의 창고에 도착하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천왕天王께서는 어찌 존귀尊貴하신 체면이 굴욕스럽게도 군사를 거느리고 우리를 제재하려 하십니까?
우리가 바치는 공물貢物천자天子제후諸侯에게 세금을 부과賦課하는 에 해당합니다.
저 속담에 ‘여우가 물건을 묻어 두었다가 여우가 다시 파내니, 이 때문에 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천왕天王께서 이미 나라를 북돋아 길러 준 일은 천하 사람들에게 밝게 알려졌는데, 다시 그것을 베어 죽여 없앤다면 천왕天王께서는 나라를 북돋아 길러 준 공로는 이룸이 없게 될 것입니다.
설령 사방의 제후諸侯일지라도 무엇을 진실로 믿고 나라를 섬기겠습니까?
감히 하신下臣을 시켜 제가 할 말씀을 다 드리게 하였으니, 천왕天王께서는 에 근거하여 이익을 잡고 를 헤아려 행하십시오.”


역주
역주1 夫差 : 吳나라 國君의 이름. 闔廬의 아들. 魯哀公 22년(기원전 473년)에 越王 句踐에게 패하여 나라와 함께 멸망하였다.
역주2 : 나라 이름. 姓은 姒. 시조는 夏나라 少康의 庶子 無余로 會稽에 봉하여졌다. 전성기의 영토는 현재의 浙江省 대부분과 江蘇‧安徽‧江西省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都城은 會稽(현재의 浙江省 紹興)에 있었다. 韋昭의 注에 “魯定公 14년(기원전 496년)에 吳나라가 越나라를 쳤는데, 越나라가 檇李에서 吳나라 군대를 격파하니 吳王 闔廬가 상처를 입고 죽었다. 3년 뒤에 夫差가 越나라를 치니, 檇李의 패전에 대한 보복이다. 越나라는 長江에서 맞아 싸워 五湖에 이르렀는데, 吳나라 군대가 夫椒에서 越나라 군대를 크게 이기고 越나라의 都城에 들어갔다. 越子(句踐)가 무장한 군사 5천 명을 데리고 會稽山에서 유지하였다.” 하였다.
역주3 句踐 : 越나라 國君의 이름. 祝融의 후손으로 允常의 아들.
역주4 : 四部備要本에는 ‘江’자가 없는데 汪遠孫의 《國語明道本攷異》에는 “注의 ‘江’자가 本文으로 끼어들어 온 듯하다.”라 하였다. 그러나 《冊府元龜七三六》의 이 부분을 인용한 데에 ‘江’자가 있으므로 그대로 따랐다.
역주5 大夫種 : 越나라의 大夫로 성명은 文種. 字는 子禽. 少禽으로도 쓴다. 句踐의 중요한 謀臣 중의 한 사람이었다.
역주6 申胥 : 楚나라 太子 太傅 伍奢의 아들 伍員을, 封邑인 申에 字인 子胥를 붙여 부르는 칭호. 아버지 伍奢와 兄 伍尙이 楚平王에게 살해되자, 伍子胥는 吳나라로 망명하니, 吳王이 申邑을 그에게 봉해 주었다.
역주7 華登 : 宋나라의 司馬 華費遂의 아들. 宋元公이 반란을 일으킨 華氏와 向氏를 처형하자, 華登이 吳나라로 망명하여 大夫가 되었다.
역주8 : 四部備要本에는 ‘報’로 되어 있는데 ‘服’이 옳다.
역주9 決拾 : 決은 활깍지. 활을 쏠 때 시위를 잡아당기기 위하여 엄지손가락 아래 마디에 끼는, 뿔로 만든 기구이다. 拾은 활팔찌. 활을 쏠 때 왼팔 소매를 걷어서 묶는 띠이다.
역주10 〈也〉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1 諸稽郢 : 당시 越나라의 大夫.
역주12 : 《史記》 〈越世家〉에는 ‘柘’로 되어 있다.
역주13 下執事 : 手下에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상대방을 높여서 간접적으로 일컫는 말.
역주14 得罪於天王 : 吳王 闔廬가 越나라를 치다가 패배하여 越나라 군대에게 상처를 입고 사망한 것을 이른 말. 天王은 吳王 夫差를 높여 이른 尊稱. 夫差를 天子처럼 높이 받드는 척 아첨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교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역주15 : 諸侯의 자칭. 임금의 자칭. 《左傳》 莊公 11년에 “열국에 큰물이 져서 흉년이 들면 고라고 일컫는 것이 예이다[列國有凶 稱孤 禮也].”라 하였는데, 孔穎達의 疏에 “흉년이 들지 않으면 보통 寡人이라 일컫고, 흉년이 들면 孤라고 한다.” 하였다.
역주16 邊垂 : 변방. 垂는 陲와 같게 쓰인다.
역주17 : 家臣.
역주18 殘伐越國 : 越나라의 會稽山을 무너뜨리는 일. 이때 越王 句踐은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會稽山을 保障으로 삼고 있었다.
역주19 寇令 : 침입한 敵軍을 방어하라고 호령함.
역주20 監[盟]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고쳤다.
역주21 : 四部備要本에는 ‘介’로 되어 있는데 同字이다.
역주22 晐姓 : 여러 姓을 가진 여자 중에서 뽑아 채움. 天子에게 딸을 바치는 일을 이르는 말. 《禮記》 〈曲禮〉에 “천자에게 딸을 바치는 것을 ‘많은 성 중에서 채우게 한다.’라고 말한다.[納女於天子曰備百姓]”라 하였다.
역주23 狐埋之而狐搰之 : 《三國志》 〈吳志 吳主傳〉의 注에는 이 부분을 인용하면서 ‘狸埋之狸堀之’로 되어 있다.
역주24 : 四部備要本에는 ‘植’으로 되어 있다.
역주25 : 《太平御覽》 九七의 이 부분 인용문에는 ‘亡’자가 없다.

국어(2) 책은 2022.07.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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