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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1)

국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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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國語 제4권
노어魯語
나라는 희성姬姓의 나라이다. 무왕武王나라 건국에 공이 큰 주공周公 (기원전 ?~기원전 1104)을 곡부曲阜(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 곡부曲阜)에 봉하여 노공魯公으로 삼았다. 그러나 주공은 봉지封地로 가지 않고 남아서 무왕을 보좌하였다. 무왕이 죽자 아들 성왕成王강보襁褓에 쌓여 있었다. 주공이 섭정攝政을 하여 성왕을 돕게 되었고,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곡부曲阜에 봉하여 노공魯公으로 삼고 노나라로 가게 하였다. 이때 주공이 백금에게 훈계하기를 “나는 한 번 목욕하는 데에 머리털을 세 번 움켜쥐었고 한 번 식사하는 데에 세 번 뱉어내면서 나아가 선비를 맞이하면서도 천하의 현인을 잃을까 걱정하였다. 너는 노나라로 가거든 나라를 가졌다고 남에게 교만하지 말라.” 하였다. 백금이 즉위한 후 관숙管叔채숙蔡叔 등이 반란을 일으켰고, 회이淮夷서융徐戎도 반란을 일으켰다. 백금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서융을 평정하여 노나라를 안정시켰다. 노나라의 계급은 후작侯爵이었다.
백금은 재위 46년 만에 죽고, 아들 고공考公 가 계승하였고, 이후 아우와 아들로 계승되다가 혜공惠公 46년에 혜공이 죽자 그의 장서자長庶子 이 섭정하면서 군주의 직권을 행사하였는데, 이 사람이 은공隱公이고, 은공 원년으로부터 춘추시대春秋時代에 편입되었다.
특히 노나라는 공자孔子의 출신 지역이고, 편년사 춘추春秋가 저술됨으로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국어國語》는 춘추외전春秋外傳으로, 춘추시대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은공은 공자公子 에게 살해당하고, 이복異腹 아우 이 즉위하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환공桓公이다. 환공이 부인夫人나라에 갔는데, 제나라 양공襄公이 환공의 부인과 간통하였고, 환공은 제나라에서 죽었다. 태자 이 즉위하니, 이 사람이 장공莊公이다. 장공 이후 혼공湣公, 이공釐公, 문공文公, 선공宣公, 성공成公, 양공襄公, 소공昭公, 정공定公, 애공哀公으로 계승되었다. 공자孔子는 양공 22년에 태어나서 애공 16년에 죽었다.
애공의 뒤에 도공悼公이 즉위하였으나 삼환三桓이 강대해져 노나라 군주는 작은 제후와 같았고, 삼환의 가세보다 나약해졌다. 이후 아들로 계승되었는데 경공頃公 19년에 나라가 노나라를 정벌하여 서주徐州를 빼앗았고, 24년(기원전 249년)에 초나라 고열왕考烈王이 노나라를 정벌하여 멸망시켰다. 경공은 도망하여 변읍卞邑으로 가서 평민이 되었고, 이로써 노나라는 종묘사직이 단절되었다.
노나라는 주공에서 경공까지 모두 34였다.
34. 曹劌問戰
34. 조귀曹劌가 전쟁에 대해 묻다
【大義】백성을 아낌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다.
長勺之役 曹劌問所以戰於하니
장작長勺의 전쟁에서 조귀曹劌노장공魯莊公에게 어떻게 싸울 것인지를 여쭈었다.
公曰 余不愛衣食於民하고 하리라 對曰
장공莊公이 말하기를 “나는 의복과 식량을 백성에게 아끼지 아니하고 희생犧牲에게 아끼지 않겠다.” 하니, 조귀曹劌가 대답하였다.
而後 民歸之志하고 民和而後 神降之福하니이다
“근본을 은혜로이 베푼 뒤에 백성이 마음을 임금에게 돌리고, 백성이 화합한 뒤에 신이 복을 내려줍니다.
若布德於民하고 而平均其政事하며 君子務治하고 而小人務力하며 動不違時하며 不過用하면 財用不匱하야 莫不共祀하리니
만일 덕을 백성에게 베풀고 그 정사를 고르게 하며, 군자가 잘 다스리기에 힘쓰고 소인이 작업에 힘쓰며, 동원하는 데 때를 어기지 않고 기물을 지나치게 쓰지 아니하면, 재용財用이 고갈되지 아니하여 제사에 이바지하게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是以 用民無不聽하고 求福無不豐하리이다
그러므로 백성을 쓰면 듣지 않음이 없고, 을 구하면 풍성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今將惠以하고 祀以하니 小賜 不咸하고 獨恭 不優
지금 작게 하사함으로 은혜를 베풀고, 홀로 공손함으로 제사 드리려 하니, 작게 하사함은 넓지 못하고, 홀로 공손함은 넉넉하지 못합니다.
不咸이면 民弗歸也하고 不優 神弗福也 將何以戰하리잇고
널리 하지 않으면 백성이 의귀依歸하지 않고, 넉넉하지 않으면 신이 복을 내리지 않으니, 무엇으로 싸우겠습니까?
夫民 求不匱於財하고 而神 求優裕於享者也 不可以不이니이다
백성은 재물이 고갈되지 않음을 요구하고, 신은 제향祭享이 넉넉함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근본을 힘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公曰 余聽獄 雖不能察이나 必以情斷之하리라 對曰
공이 말하기를 “내가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것을 비록 잘 살피지 못할지라도 반드시 실정實情으로 판결하리라.” 하니, 대답하였다.
是則可矣니이다 苟中心圖民하시면 知雖不及이라도 하리이다
“그것은 옳습니다. 진실로 마음이 백성을 생각하시면 지혜가 비록 미치지 못할지라도 반드시 장차 에 이를 것입니다.”
역주
역주1 : 四部備要本에는 ‘莊’으로 되어 있다. ‘莊’은 後漢 明帝의 이름이므로 의미가 비슷한 ‘嚴’으로 바꾼 것이다. 아래도 같다.
역주2 不愛牲玉於神 : 牲은 犧牲이고 玉은 圭璧이니, 祭祀 지내는 것이다.
역주3 惠本 : 德을 확립하고 이익을 베품을 말한다.
역주4 : 四部備要本에는 ‘財’로 되어 있는데 ‘器’가 옳다. 汪遠孫의 《國語明道本攷異》에는 ‘財’는 아래 글귀에 간섭되어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다.
역주5 〈能使〉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6 小賜 : 전쟁에 임할 때의 下賜함이다.
역주7 獨恭 : 한 사람의 공손함이다.
역주8 : 우선 백성을 이롭게 하고 제사를 이바지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역주9 : 四部備要本에는 ‘夫’자 앞에 ‘知’자가 더 있는데, 汪遠孫의 《國語明道本攷異》에 衍文이라고 하였다.
역주10 必將至焉 : 반드시 장차 道에 이를 것이다.

국어(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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