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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1)

국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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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桓公率諸侯朝天子
桓公曰 吾欲南伐하노니 管子對曰
以魯爲主니이다
反其侵地
‧潛하야 하고 하며 環山於有니이다
桓公曰 吾欲西伐하노니 何主 管子對曰
以衛爲主니이다
反其侵地臺‧原‧姑與漆里하야 使海於有蔽하고 渠弭於有渚하며有牢니이다
桓公曰 吾欲北伐하노니 何主 管子對曰
以燕爲主니이다
反其侵地柴夫‧吠狗하야 使海於有蔽하며 渠弭於有渚하며 環山於有牢니이다하다
四鄰大親하야
旣反侵地하고封疆하니 地南至於饀陰이요 西至於濟 北至於河 東至於하니
이었다 擇天下之甚淫亂者而先征之하다
卽位數年 東南多有淫亂者하니
萊‧莒‧‧吳‧越이라
一戰 服三十一國하다
遂南征하야 濟汝踰하고 汶山하고 使貢絲於周而反하니 荊州諸侯 不來服하다
遂北伐하야 하고 而南歸하니 海濱諸侯 莫〈敢〉不來服하다
與諸侯하야 以約誓於上下庶神하고 與諸侯勠力同心하다
西征攘之地하야 至於하고 하고濟河하야 至於石하고
하고 踰大與辟耳之谿拘夏하야 西服하고 南城하고 하니 莫〈敢〉不來服이어늘
而大朝諸侯於하다
諸侯甲不解하며 兵不解하며 弢無弓하며 服無矢하야 隱武事하고 行文道


76. 환공桓公제후諸侯를 인솔하고 천자天子께 조회하다
【大義】桓公이 침략했던 땅을 되돌려 주고 不義한 제후 국가를 정벌하여 전쟁을 종식하고 文治를 확립한 뒤 제후를 거느리고 周나라 천자에게 朝會하는 패권을 이룩하다.
환공桓公이 말하기를 “내가 남쪽을 정벌하고자 하는데, 어느 나라를 군수품을 조달할 주인 나라로 삼으면 좋겠소?” 하니, 관자管子가 대답하였다.
나라를 주인 나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환공桓公이 말하기를 “내가 서쪽을 정벌하고자 하는데, 어느 나라를 군수품을 조달할 주인 나라로 삼으면 좋겠소?” 하니, 관자管子가 대답하였다.
나라를 주인 나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로부터 빼앗은 칠리漆里 땅을 되돌려 주어, 연해沿海에는 은폐할 만한 곳이 있고, 작은 바다의 에는 머물 만한 곳이 있고, 빙 둘러 산에는 가축을 기르는 곳들이 있게 해야 합니다.”
환공桓公이 말하기를 “내가 북쪽을 정벌하고자 하는데, 어느 나라를 군수품을 조달할 주인 나라로 삼으면 좋겠소?” 하니, 관자가 대답하였다.
나라를 주인 나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연나라로부터 빼앗은 시부柴夫폐구吠狗 땅을 되돌려 주어, 연해沿海에는 은폐할 만한 곳이 있고, 작은 바다의 에는 머물 만한 곳이 있고, 빙 둘러 산에는 가축을 기르는 곳들이 있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자 사방 이웃 나라들이 매우 친하여졌다.
빼앗은 땅을 되돌려 주고 나서, 국경을 바로잡으니, 제나라의 땅이 남쪽으로는 도음饀陰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제수濟水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황하黃河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기휴紀酅에 이르렀다.
병거兵車 8백 을 보유하자 천하에서 가장 음란한 국가를 가려 우선 정벌하였다.
환공桓公이 임금 자리에 나아간 지 수년에 동남쪽에 음란한 나라들이 많이 나타났다.
서이徐夷나라들이었다.
단 한 번의 전쟁으로 31개 국가를 휩쓸어 굴복시켰다.
마침내 남쪽 정벌 길에 나서 나라를 토벌하여, 여수汝水를 건너고 방성方城을 넘어서 멀리 문산汶山을 바라보고 망제望祭를 지내고, 〈초나라로 하여금〉 나라에 생사生絲를 조공으로 바치게 하고 〈제나라로〉 돌아오니, 형주荊州의 제후들이 감히, 와서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드디어 북쪽으로 산융山戎을 토벌하여 영지令支를 격퇴하고, 고죽孤竹을 치고서 남쪽 〈본국으로〉 돌아오니 연해沿海의 제후들이 감히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제후들과 희생犧牲을 산 채로 세워두고 맹약盟約 문서를 그 희생 위에 올려놓고서, 하늘과 땅의 여러 신들에게 서약하여, 제후들과 힘을 함께하고 마음을 함께하기로 하였다.
서쪽을 정벌하여 백적白翟의 땅을 빼앗고 서하西河에 이르러, 배 두 척을 나란하게 연결시키거나 큰 뗏목을 만들거나 작은 뗏목을 만들어서 타고는 서하를 건너 석침石枕에 이르렀다.
수레를 메고 말을 단단히 조여 묶고서, 태항산太行山벽이산辟耳山의 협곡 구하拘夏를 넘어가 서쪽의 사막지역과 서오西吳를 항복시키고, 남쪽으로 향하여 나라에서 왕궁王宮을 쌓아 주고, 땅에서 〈나라의〉 군주의 자리를 회복시켜 주자 항산恒山 주위의 제후들이 찾아와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양곡陽穀에서 많은 제후를 회합시켰다.
병거兵車를 타고 모인 회합이 여섯 차례고, 병거가 아닌 수레를 타고 모인 회합이 세 차례에 걸쳐 열렸다.
제후들의 갑옷은 갑옷집에서 풀려나오지 않았고, 무기들은 무기집에서 풀려나지 않았으며, 활집의 활은 쓰일 날이 없었고, 전대箭袋의 화살도 쓰일 날이 없는 채, 전쟁의 일은 사라지고, 문치文治의 교화가 행하여졌다.
이에 〈환공桓公이〉 제후를 이끌고서 천자께 조회하였다.


역주
역주1 : 군수품을 調達받을 수 있는 지원국을 이른다.
역주2 棠潛 : 魯나라가 齊나라에 빼앗긴 두 지역의 땅 이름이다. 棠은 지금의 山東省魚臺縣에 있고 潛은 지금의 濟寧市 서남쪽에 있었다.
역주3 堂[棠]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고쳤다.
역주4 使海於有蔽 : 海는 沿海의 바다이다. 有蔽는 의지하여 은폐하는 것이다.
역주5 渠弭於有渚 : 渠弭는 작은 바다이니 일종의 灣과 같은 것을 이른다. 渚는 水中의, 사람이 머무를 만한 작은 섬 같은 곳이다.
역주6 : 牛‧羊‧豕 등을 이른다. 험한 산과 들에 이런 가축 기르는 곳들이 있어 필요한 물자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일설에는 방비가 굳건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역주7 山於[於山] : 汪遠孫의 《國語明道本攷異》에 의거하여 고쳤다. 아래도 같다.
역주8 〈其〉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9 紀酅 : 紀나라의 酅 고을이다. 곧 예전 紀나라 땅이었던 데에서 이렇게 부른 것이다.
역주10 革車八百乘 : 賈逵는 “한 나라의 전체 군사가 800乘이다. 1乘의 군사 수는 75명이니 전체 甲士 수는 6만 명이다.”라고 하였는데, 韋昭는 “이 말은 周나라 제도에 의거한 계산이다. 齊나라의 법은 50명으로 小戎을 삼았으니 車八百乘은 군사 4만이다. 또 윗글에서 管仲이 제나라의 군사를 3軍으로 편제하니 1군은 1만 명이라고 하였으며, 아래 글에서도 군주가 군사 3만을 거느리고서 천하를 횡행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군사의 수가 이렇게 많은 것은 여벌로 따르는 兵車까지를 모두 이른 말인 듯하다. 혹자는 그래서 八百乘의 八자는 六자의 誤字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였다.
역주11 徐夷 : 徐州에 분포한 소수 민족이 세운 나라의 하나로, 나라 이름은 徐이다.
역주12 : 솔
역주13 伐楚 : 이 일은 기원전 656년에 齊桓公이 魯僖公‧宋桓公‧陳宣公‧衛文公‧鄭文公‧許穆公‧曹昭公 등과 연합군을 편성하여 벌인 전쟁이다. 이때 齊桓公이, 주나라의 제사에서 술 거르는 일에 쓰이는 包茅를 초나라가 貢物로 바치지 않은 것을 초나라의 죄이자 전쟁의 명분으로 천명한 것이 유명하다.
역주14 方城 : 초나라의 북쪽 국경을 이루는 큰 산이다. 서쪽으로 桐柏에서 동쪽으로 興黃에 이르는 산맥으로, 초나라와 북쪽의 諸侯國들이 오가는 큰길이 있는 일종의 요새지이다.
역주15 : 望祭를 이르는 말로 먼 곳에 있는 山川을 직접 가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고 지내는 제사이다. 汶山은 지금의 岷山의 별칭이다. 따라서 汶山도 당연히 민산으로 읽어야 한다. 민산은 四川省 북쪽과 甘肅省 경계에 있는 주위가 2천여 리에 이르는 거대한 산이다. 桓公이 그 산까지 직접 갈 수가 없어 멀리서 제사를 지낸 것이다.
역주16 : 이 글자는 四部備要本에 따라 보충하였다. 굳이 이 글자가 없어도 뜻은 그대로 이해된다. 단지 이 글자가 있으므로 해서 桓公의 위엄을 나타내는 데 더 도움을 준다. 아래에 있는 敢자도 모두 이와 같다.
역주17 〈敢〉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8 山戎 : 鮮卑族으로 불리는 중국 북방의 騎馬民族이다. 北戎 또는 無終으로도 불린다. 당시 齊나라 趙나라 燕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서로 잦은 전쟁을 벌였다. 서기전 663년에 山戎이 燕나라를 침략하여 연나라가 구원을 청하자 이때 桓公이 구원하러 나섰다가 산융을 평정하였다.
역주19 : 불
역주20 令支‧孤竹 : 모두 山戎과 연합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나라들이다.
역주21 飾牲爲載 : 飾牲은 희생을 죽이지 않고 그냥 산 채로 몸을 청결히 하여 세워두는 것이고, 爲載는 盟約文을 그 희생 위에 올려놓기만 하고 歃血하지 않는 것이다. 곧 보통의 맹약에서 희생을 죽여 그 피를 맹약의 의식에 쓰는 그런 전통적인 방법을 따르지 않았음을 이른다. 《周禮》 〈地官封人〉에 “凡祭祀飾其牛牲.”이라고 했고, 三民書局 간행 《新譯管子讀本》 〈小匡〉 注釋에서는 “희생의 입을 씻기고 거기에다 장식하는 것.”이라고 했다.
역주22 白翟 : 소수민족의 하나인 赤翟의 별종이다.
역주23 西河 : 黃河의 상류 중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구간을 이르는 말이다. 황하는 서쪽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데 이곳 西河라 지칭되는 구간에서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른다.
역주24 方舟設泭 : 方舟는 배 두 척을 나란히 묶는 것이고, 泭는 나무 뗏목이다.
역주25 : 작은 뗏목이다.
역주26 抗[枕]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고쳤다.
역주27 縣車束馬 : 縣車는 兵車를 메고 가는 것을 이르고, 束馬는 말의 뱃대끈 따위를 단단히 조여 묶는 것이다. 이 지역의 산과 협곡들의 길이 험하여 兵車를 타지 못하고 군사들이 들거나 메고서 길을 가고 말도 타지 못하고 끌고서 산을 넘어가는 상황을 형용한 말이다.
역주28 : 항
역주29 㳅沙西吳 : 㳅沙는 사막을 이르는 옛말이다. 모래가 늘 바람 따라 흘러다닌 데에서 붙여진 말이다. 西吳는 나라 이름이다. 《管子小匡》
역주30 〈於〉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1 反胙於絳 : 일설에는 “胙는 天子가 하사하는 것이고 絳은 晉나라의 수도이다. 천자가 제사 지낸 고기를 내렸는데 桓公이 사양하여 천자가 다시 宰孔을 시켜 제사 고기를 내린 것이다.”고 하고, 賈逵는 “反은 회복의 뜻이고, 胙는 지위이고, 絳은 晉나라의 수도이다. 晉獻公이 죽은 뒤 奚齊와 卓子가 연이어 弑害당하여 晉나라의 왕위가 단절되는 어려움에 처하자, 桓公이 제후의 신분이었으면서도 晉나라를 공격하여 高梁까지 쳐들어가서 隰朋을 시켜 군대를 거느리고 公子인 夷吾를 세워서 絳에 돌아가게 하니 이가 惠公이고 이때가 魯僖公 9년이다.”라고 하였다. 이 주장에 대하여 韋昭는 “임금이 즉위함을 踐胙라고 한다. 곧 桓公이 周나라의 성을 쌓아주어 天子를 높이 받들고, 또 晉나라의 난리를 토벌하여 제후의 자리를 회복하게 하였으니, 桓公이 훌륭한 일을 한 것이다. 《左傳》을 살펴보면 宰孔이 葵丘의 會盟에, 제사 고기와 命服을 내리고 있는데 桓公이 사양하여 다시 내렸다는 말이 없다. 따라서 賈逵의 말이 옳다.”고 하였다.
역주32 嶽濱諸侯 : 嶽은 北嶽의 恒山이니 항산 주위의 제후들을 이른다.
역주33 陽糓 : 會合은 魯僖公 3년(기원전 657년)에 있었다. 糓은 穀이 正字이다. 陽穀은 제나라의 고을 이름이다.
역주34 兵車之屬六 : 屬은 회합을 이른다. 곧 兵車를 대동하고 제후들끼리 모여 맹약한 것이 6회였음을 이른다. 6회는 魯莊公 13년에 齊나라의 北杏, 14년에 衛나라의 鄄, 15년에 다시 鄄에서, 魯僖公 원년에 宋나라의 檉, 13년에 衛나라의 鹹, 16년에 晉나라의 淮에서 모인 것을 말한다.
역주35 乘車之會三 : 兵車를 대동하지 않고 천자가 내린 命服만 입고서 모인 모임을 이른다. 3회는 僖公 3년에 陽穀, 5년에 衛나라의 首止, 9년에 宋나라의 葵丘에서 모인 것을 말한다.
역주36 : 갑옷집이다.
역주37 : 병기를 감춰두는 일종의 가리개이다. 근래 白話語 번역본들에는 일종의 武器庫라는 주장도 있다.
역주38 帥諸侯而朝天子 : 齊桓公이 魯僖公 5년(기원전 655년)에 衛나라의 首止에서 제후들과 회맹하며 周나라 왕실의 태자 鄭(후일 즉위하여 襄王이라 하였다)을 참석시켜 왕실의 왕권 다툼을 종식시킨 일을 이른다.
역주39 沿海에는……해야 합니다 : 韋昭는 이러한 여건들이 형성되어 있어야 군수품을 조달받을 수 있는 나라로 기능할 수 있고 군대는 반드시 이러한 험한 형세를 의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국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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