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申叔時論傅太子之道
[大義]교육의 여러 방법. (교과서와 환경 조성의 구체적인 영향력) 대의>
大子欲善이면 善人將至요 若不欲善이면 善則不用이니이다
若民煩이면 可敎訓이나 蠻夷戎翟은 其不賓也久矣니 中國所不能用也니이다
敎之
하야 而爲之昭明德而廢幽昏焉
하야 以休懼其動
하고
若是而不從하야 動而不悛이어든 則文詠物以行之하며 求賢良以翼之하고 悛而不攝이어든 則身勤之하야 多訓典刑以納之하며 務愼惇篤以固之하고 攝而不徹이어든 則明施舍以道之忠하고 明久長以道之信하고 明度量以道之義하고 明等級以道之禮하고 明恭儉以道之孝하고 明敬戒以道之事하고 明慈愛以道之仁하고 明昭利以道之文하고 明除害以道之武하고 明精意以道之罰하고 明正德以道之賞하고 明齊肅以耀之臨이니
且夫誦詩以輔相之하고 威儀以先後之하고 體貌以左右之하고 明行以宣翼之하고 制節義以動行之하고 恭敬以臨監之하고 勤勉以勸之하고 孝順以納之하고 忠信以發之하고 德音以揚之니
국어國語 제17권
초어楚語 상上
초楚나라는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의 후예이다. 제곡帝嚳 시절 중려重黎가 화정火正이 되어 천하를 밝힌 공으로 축융祝融의 칭호를 얻었다. 그 뒤 오회吳回를 거쳐 육종陸終 시대에 이르러 여섯 아들을 두니 모두 성姓과 땅을 나누어 차지하는 성대함을 누렸다. 초나라는 그중 막내 계련季連의 후예이니 성은 미羋이다. 그 이후 침체되었다가 육웅陸熊에 이르러 주문왕周文王의 사師가 되었고 성왕成王 시대에 이르러 웅역熊繹이 초楚나라에 봉해져 도읍을 단양丹陽에 정하였다. 이후 웅거熊渠가 잠시 아들들에게 왕의 칭호를 쓰게 하면서 남쪽 오랑캐 지역에서 세력을 넓히기 시작하였고, 무왕武王(웅통熊通)이 중국으로 확장하기 시작하여 아들 문왕文王(웅자熊貲) 때에 이르러 단양丹陽에서 영郢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러나 천자국의 인정을 받는 제후국이 되지 못하였다가 성왕成王(운惲) 때에 이르러 당당히 중국의 패권국과 세력을 겨루는 사방 1천여 리의 국토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중국에서 늘 야만국으로 취급되었고 초나라 자신도 중국과 다른 직제職制를 두는 등 사실상 독자적인 남방 국가를 형성하였다. 장왕莊王 시대에 이르러 춘추시대 오패五霸의 한 사람으로 한껏 위세를 떨쳤다. 본래 형산荊山 일대에서 나라를 일으켰다 하여 나라 이름을 형荊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편에서 논란된 초재진용楚材晉用이란 말은 지금도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될 정도로 유명한 성어成語가 되었다. 기원전 223년에 진秦나라에 멸망당하였다. 그러나 진秦나라를 쓰러뜨리려 봉기한 항우項羽는 바로 이곳 초楚나라 사람이다.
207. 신숙시申叔時가 태자의 교육 방법에 대해 논하다
초장왕楚莊王이 사미士亹를 태자 짐葴의 스승[부傅]으로 삼아 가르치게 하자, 거절하며 말하였다.
“신은 재주가 없어 태자에게 보탬이 될 것이 없습니다.”
왕이 말하기를, “그대의 훌륭함을 힘입어 태자를 훌륭하게 만들고자 함이오.” 하자, 대답하였다.
태자가 훌륭하고자 하면 훌륭한 사람이 이르러 오고, 만약 훌륭하게 되고자 하지 않으면 훌륭한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堯임금에게는 단주丹朱가 있었고, 순舜임금에게는 상균商均이 있었으며, 계啓임금에게는 오관五觀이 있었고, 탕湯임금에게는 태갑太甲이 있었고, 문왕文王에게는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있었습니다.
이 다섯 분의 왕은 모두 큰 덕을 가졌었으나 간악한 자식들을 두었습니다.
어찌 아들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겠습니까?
백성들의 소란스러움 같은 것들은 교훈으로 다스릴 수 있으면서도, 만이蠻夷융적戎翟이 중국에 심복해 오지 않은 것이 오래된 것은 중국이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못하여서입니다.”
〈사미士亹가〉 신숙시申叔時에게 〈태자를 가르칠 방도를〉 묻자, 신숙시申叔時가 대답하였다.
“《춘추春秋》를 가르쳐 양선良善을 북돋우고 사악邪惡을 억제하여 그에게 마음을 경계시키거나 권면하도록 하고,
선왕先王 대대의 행적을 가르쳐 그에게 명덕明德을 밝히고 어두움을 걷어내 자신의 행동에 두려움을 느끼도록 하고
시詩를 가르쳐 훌륭한 덕을 가졌던 분들을 넓게 알려 자신의 뜻이 환하여지도록 하고,
예禮를 가르쳐서 군상君上과 신하의 법칙을 알게 하고,
음악을 가르쳐서 자신의 더러운 마음을 씻어 내고 경솔한 마음이 진중해지도록 하고,
법령을 가르쳐서 각 직책을 맡은 관원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 보게 하고,
훌륭한 말을 가르쳐서 자신의 덕을 밝히고 선왕先王이 백성들에게 덕을 밝히기 위해 힘쓴 것을 알도록 하고,
옛 역사책을 가르쳐서 나라를 망하게 하고 흥하게 한 자들을 알아 경계하고 두려움을 느끼도록 하고,
훈전訓典을 가르쳐서 친족의 멀고 가까움을 알게 하고 행동이 의리를 따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육했는데도 따르지 않고서 그대로 행동하며 고치려 하지 않으면, 문학의 사물 풍자로써 행동을 유발시키면서 현량賢良한 사람을 구하여 보좌輔佐시키고, 고치기는 하였으나 〈결심이〉 굳지 못하거든, 스승들이 더욱 애써서 많은 전형들을 가르쳐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면서 돈독함에 힘쓰고 삼가도록 하여 그 마음을 굳혀 주고, 굳혀졌으나 사리에 분명하지 못하거든 베풀어야 할 일들과 용서해 주어야 할 일들을 밝혀서 충서忠恕의 도리를 일러 주고, 오래 멀리 가는 도리를 밝혀서 신실의 필요성을 일러 주고, 헤아려야 하는 도리를 밝혀서 의로워야 함을 일러 주고, 귀천의 등급을 밝혀서 예의 등급을 일러 주고, 공손하고 겸손한 도리를 밝혀서 그것이 효도孝道의 길임을 일러 주고, 공경하고 경계하는 도리를 밝혀서 일 처리의 길을 일러 주고, 자애의 도리를 밝혀서 어진 도리의 길을 일러 주고, 무엇이 이익 되는 일인지를 밝혀서 문덕文德의 길을 일러 주고, 해악이 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도리를 밝혀서 무공武功의 길을 일러 주고, 정밀하게 생각하는 도리를 밝혀서 형벌을 판결하는 일을 일러 주고, 자신의 덕을 바르게 가져야 하는 도리를 밝혀서 상賞을 내리는 길을 일러 주고, 한결같고 엄숙해야 하는 도리를 밝혀서 일에 임하는 길을 밝혀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같이 하였는데도 효험이 없으면 그런 사람에게는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또 한편으로 시詩를 외워 주어 교육의 보조수단으로 삼고, 위엄과 태도가 바른 사람에게 태자를 앞뒤에서 보좌하게 하고, 바른 태도나 격식으로 태자를 좌우에서 거들어 주고, 분명한 행동으로 태자를 두루 보좌해 주고, 예절과 의리를 제정하여 그것을 태자에게 행동하게 하고, 공손하고 공경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임하여 살피게 하고, 부지런하고 근면함으로써 권면하고, 효도와 순리를 받아들이게 하고, 충서忠恕와 신실한 도리를 깨우치도록 하고, 덕스러운 말로써 고양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이 갖추어졌는데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태자太子가 군주의 자리에 나아가거든 물러나야 할 것입니다.
물러나시면 공경恭敬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걱정 속에 지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