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晉은 희성姬姓의 나라이다. 처음에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동복同腹 아우 숙우叔虞에게 당唐나라를 봉해 준 것을 시작으로 지역은 본래 대악大岳에 소속된 평야지대였고 하夏나라 우禹임금의 도읍지였다.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대부분과 하북성河北省의 남부 섬서성陝西省의 중부 및 하남성河南省 북서 지역을 차지하여 나라가 황하黃河의 양안에 걸쳐 있었다. 나라 이름이 진晉이 된 것은 나라의 남쪽에 진수晉水가 흘러서였다. 뒤에 그의 아들 섭보燮父를 다시 진후晉侯에 봉하면서 진晉나라는 시작되었다. 10대손 소후昭侯에 이르러 나라의 형세가 약화되어 그의 숙부 성사成師에게 곡옥曲沃 지역을 떼어서 곡옥백曲沃伯에 봉해 주니 이 사람은 바로 환숙桓叔이다. 환숙桓叔이 차츰 세력을 키워 강성해지자 진晉나라 반보潘父가 소후昭侯를 시해하고 환숙桓叔을 맞아들이려 시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에 진晉나라 백성들은 소후昭侯의 아들 효후孝侯를 익翼에서 즉위시켜 받들었는데, 환숙桓叔의 아들 장백莊伯이 익翼을 쳐서 효후孝侯를 시해弑害하였다. 이에 익翼 땅 백성들은 또다시 효후孝侯의 아우 악후卾侯를 세웠고, 악후卾侯의 아들 애후哀侯 때에 이르러 장백莊伯의 아들 무공武公이 애후를 멸망시키고서 진晉나라 땅을 모두 차지하였다. 그리고서는 진나라에 내려오던 보물을 주周나라 왕王에게 뇌물로 바치고 주나라의 왕王으로부터 진晉나라의 후侯로 봉해져 비로소 제후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문공文公이 등극하여 제齊나라 환공桓公에 이어 패제후霸諸侯의 공업을 이룩하고 춘추春秋시대 말기까지 계속 번영을 누렸다. 34대 만에 대부大夫들의 반란을 만나 나라가 한韓‧위魏‧조趙 세 나라로 나뉘면서 진晉나라는 역사에서 막을 내린다. 우리가 전국시대戰國時代로 일컫는 시대는 바로 이 진晉나라가 세 나라로 갈라진 것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국어國語》는 기실 이 진晉나라의 역사가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21권 중 진어晉語가 9권이다. 진晉나라가 패망하기까지의 역사를 거의 망라하고 있음이 다른 나라들의 서술에 비해 다른 점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