呂甥敎之言하야 令國人於朝曰 君使乞告二三子하시니 曰秦將歸寡人이나 寡人不足以辱社稷호니
呂甥致衆而告之曰 吾君慙焉
하야 其
하고 而
하시니 不亦惠乎
아
若
以輔孺子
하야 以爲君援
이면 雖四鄰之聞之也
라도 喪君有君
하고 羣臣輯睦
하고 兵甲益多
니
好我者勸하고 惡我者懼하야 庶有益乎인저 衆皆說이어늘
其小人
은 不念其君之罪
하고 而悼其父兄子弟之死喪者
하야 不憚征繕以立孺子
하야 曰必報
니
寧事齊‧楚하야 齊‧楚又交輔之리라하고 其君子는 思其君호대 且知其罪라
是故云이오 其君子則不하야 曰吾君之入也는 君之惠也니라
能執之하야 則能釋之면 德莫厚焉이요 惠莫大焉이로대
103. 여생呂甥이 진秦나라에서 혜공惠公을 맞아들이다
【大義】呂甥이 포로로 잡혀간 惠公을 맞아들이기 위해 국내와 秦나라에서 펼치는 輿論形成과 여론을 전달하는 교묘한 말솜씨.
혜공惠公이 진秦나라에 머문 지 3개월 되는 즈음에 진秦나라가 강화講和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에 극걸郤乞을 시켜 여생呂甥에게 그 사실을 알리도록 하였다.
여생이 극걸에게 할 말을 가르쳐 주어 조정에서 나라 사람들에게 명령하게 하기를 “임금이 나를 시켜서 여러분들에게 고하게 하기를 ‘진秦나라가 장차 과인寡人을 돌려보내려고 하나, 과인은 사직社稷의 군주 자리를 욕되게 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다.
여러분들은 군주를 바꾸어 세워서 어圉를 대체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고서 또다시 〈임금의 이름으로〉 상賞을 내려 백성들을 기쁘게 하니, 백성들이 모두 소리 내어 울었다.
여생呂甥이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서 고하기를 “우리 임금님이 부끄러움에서, 포로로 외국에 붙잡혀 계신 자신을 걱정하지 아니하고, 여러 신료들을 걱정하고 계시니 또한 은혜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임금님이 아직 나라 밖에 계시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여러 사람들이 말하였다.
여생이 말하기를 “한원韓原의 전쟁에서 참패함으로써 병갑兵甲을 모두 상실하였습니다.
만약 세금을 더 거두어 병기兵器를 수선하고, 자어子圉를 보좌하여 임금님의 후원이 되게 한다면 사방 이웃 나라에서 소문을 듣더라도, 임금을 잃었으나 임금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되고, 여러 신료도 화목하고 병갑兵甲도 더욱 많아지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하여 우리를 좋아하는 나라는 격려할 것이고, 우리를 싫어하는 나라는 두려워할 것이니 아마도 도움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하니, 모든 백성이 다 기뻐하였다.
여생呂甥이 임금을 진秦나라에서 맞이하려 할 적에, 목공穆公이 묻기를 “진晉나라는 화목한가?” 하니, 여생이 대답하였다.
목공穆公이 “어인 까닭에서인가?” 하니, 여생呂甥이 대답하였다.
“소인小人들은 자국自國 군주의 죄는 생각하지도 않고 그 부형父兄이나 자제子弟들 죽은 것만 슬프게 여겨, 세금을 내 병장기 수선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태자太子를 옹립하여 말하기를 ‘반드시 우리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우리가 차라리 제齊나라와 초楚나라를 섬겨서라도 제나라와 초나라가 다시 서로 곁에서 거들어주고 돕도록 하겠다.’ 하고 있고, 군자君子들은 자국自國의 군주를 생각하면서도 또 그 군주의 죄과罪過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반드시 진秦나라를 섬겨야 한다.
죽음이 있을지라도 다른 마음을 가져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견들이 조화되기를 기다렸다 오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목공穆公이 “그대가 오지 않았더라도 내가 본시 그대들의 군주를 돌려보내려 하고 있었다.
그대 나라에서는 그대 군주를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 하자, 여생이 말하였다.
“소인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고, 군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공穆公이 “어인 까닭에서이냐?” 하자, 대답하였다.
“소인들은 원망만 하고 대의大義를 생각지 못하여 그 군주(子圉)를 따라 함께 진秦나라에 보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저들 군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니 ‘우리 군주가 들어와 군주 자리를 이은 것은 저 군주의 은혜였다.
능히 들여보내기도 하고 능히 잡아들이기도 하였다.
능히 잡아들였으니 능히 풀어준다면, 덕이 그보다 두터울 수가 없고 은혜가 그보다 더 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들여보내 군주 자리를 잇게 하고서 군주의 자리를 안정시켜 주지 않고, 폐출시켰다가 다시 세워주지 않는다면, 덕德 보인 것을 원한으로 만드는 일이다.
진秦나라 군주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秦나라 군주가 “그렇다.” 하고서, 이에 혜공惠公이 묵는 관사館舍를 바꾸어 묵게 하고, 7뇌牢의 음식을 대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