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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1)

국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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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呂甥逆惠公於秦
聞秦將成하고
呂甥敎之言하야 令國人於朝曰 君使乞告二三子하시니 曰秦將歸寡人이나 寡人不足以辱社稷호니
二三子其하라하고 且賞以說衆하니 衆皆哭이어늘
呂甥致衆而告之曰 吾君慙焉하야하고하시니 不亦惠乎
君猶在外하니 若何 衆曰
何爲而可
呂甥曰 以韓之病으로 兵甲盡矣
以輔孺子하야 以爲君援이면 雖四鄰之聞之也라도 喪君有君하고 羣臣輯睦하고 兵甲益多
好我者勸하고 惡我者懼하야 庶有益乎인저 衆皆說이어늘
呂甥逆君於秦할새 穆公訊之曰 晉國和乎 對曰
不和니이다
公曰 何故 對曰
其小人 不念其君之罪하고 而悼其父兄子弟之死喪者하야 不憚征繕以立孺子하야 曰必報
寧事齊‧楚하야 齊‧楚又交輔之리라하고 其君子 思其君호대 且知其罪
事秦하야
有死無它니라
故不和일새
比其和之而來 故久니이다
公曰 無來라도 吾固將歸君이니라
國謂君何 對曰
小人曰不免이라하고 君子則不라하니이다
公曰 何故 對曰
小人하야 願從而與報秦이라
是故云이오 其君子則不하야 曰吾君之入也 君之惠也니라
能納之하고 하니
能執之하야 則能釋之 德莫厚焉이요 惠莫大焉이로대
納而不遂하고 廢而不起 以德爲怨이니
君其不然이라하니이다
秦君曰 然하다하고晉君하고하다


103. 여생呂甥나라에서 혜공惠公을 맞아들이다
【大義】呂甥이 포로로 잡혀간 惠公을 맞아들이기 위해 국내와 秦나라에서 펼치는 輿論形成과 여론을 전달하는 교묘한 말솜씨.
혜공惠公나라에 머문 지 3개월 되는 즈음에 나라가 강화講和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에 극걸郤乞을 시켜 여생呂甥에게 그 사실을 알리도록 하였다.
여생이 극걸에게 할 말을 가르쳐 주어 조정에서 나라 사람들에게 명령하게 하기를 “임금이 나를 시켜서 여러분들에게 고하게 하기를 ‘나라가 장차 과인寡人을 돌려보내려고 하나, 과인은 사직社稷의 군주 자리를 욕되게 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다.
여러분들은 군주를 바꾸어 세워서 를 대체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고서 또다시 〈임금의 이름으로〉 을 내려 백성들을 기쁘게 하니, 백성들이 모두 소리 내어 울었다.
이에 원전轅田제도를 만들었다.
여생呂甥이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서 고하기를 “우리 임금님이 부끄러움에서, 포로로 외국에 붙잡혀 계신 자신을 걱정하지 아니하고, 여러 신료들을 걱정하고 계시니 또한 은혜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임금님이 아직 나라 밖에 계시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여러 사람들이 말하였다.
“무엇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여생이 말하기를 “한원韓原의 전쟁에서 참패함으로써 병갑兵甲을 모두 상실하였습니다.
만약 세금을 더 거두어 병기兵器를 수선하고, 자어子圉를 보좌하여 임금님의 후원이 되게 한다면 사방 이웃 나라에서 소문을 듣더라도, 임금을 잃었으나 임금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되고, 여러 신료도 화목하고 병갑兵甲도 더욱 많아지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하여 우리를 좋아하는 나라는 격려할 것이고, 우리를 싫어하는 나라는 두려워할 것이니 아마도 도움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하니, 모든 백성이 다 기뻐하였다.
이에 주병州兵을 만들었다.
여생呂甥이 임금을 나라에서 맞이하려 할 적에, 목공穆公이 묻기를 “나라는 화목한가?” 하니, 여생이 대답하였다.
“화목하지 못합니다.”
목공穆公이 “어인 까닭에서인가?” 하니, 여생呂甥이 대답하였다.
소인小人들은 자국自國 군주의 죄는 생각하지도 않고 그 부형父兄이나 자제子弟들 죽은 것만 슬프게 여겨, 세금을 내 병장기 수선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태자太子를 옹립하여 말하기를 ‘반드시 우리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우리가 차라리 나라와 나라를 섬겨서라도 제나라와 초나라가 다시 서로 곁에서 거들어주고 돕도록 하겠다.’ 하고 있고, 군자君子들은 자국自國의 군주를 생각하면서도 또 그 군주의 죄과罪過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반드시 나라를 섬겨야 한다.
죽음이 있을지라도 다른 마음을 가져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로 불화를 빚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견들이 조화되기를 기다렸다 오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목공穆公이 “그대가 오지 않았더라도 내가 본시 그대들의 군주를 돌려보내려 하고 있었다.
그대 나라에서는 그대 군주를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 하자, 여생이 말하였다.
“소인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고, 군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공穆公이 “어인 까닭에서이냐?” 하자, 대답하였다.
“소인들은 원망만 하고 대의大義를 생각지 못하여 그 군주(子圉)를 따라 함께 나라에 보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저들 군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니 ‘우리 군주가 들어와 군주 자리를 이은 것은 저 군주의 은혜였다.
능히 들여보내기도 하고 능히 잡아들이기도 하였다.
능히 잡아들였으니 능히 풀어준다면, 덕이 그보다 두터울 수가 없고 은혜가 그보다 더 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들여보내 군주 자리를 잇게 하고서 군주의 자리를 안정시켜 주지 않고, 폐출시켰다가 다시 세워주지 않는다면, 보인 것을 원한으로 만드는 일이다.
나라 군주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라 군주가 “그렇다.” 하고서, 이에 혜공惠公이 묵는 관사館舍를 바꾸어 묵게 하고, 7의 음식을 대접하였다.


역주
역주1 在秦三月 : 《左傳》에는 惠公이 9월에 포로로 잡혔다가 11월에 귀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역주2 乃使郤乞告呂甥 : 郤乞은 晉나라의 대부로 惠公을 따라 秦나라에 가 있었고, 呂甥은 또한 晉나라의 대부로 당시 진나라에 남아 정사를 보살피고 있었다.
역주3 改置 以代圉也 : 다른 公子를 세워서 태자 子圉를 대체하라는 말이다. 이는 惠公 부자가 군주의 자리를 다른 公子에게 讓與하는 듯한 인상을 백성들에게 심어서 그들을 감동시키려는 생각에서 나온 꾀이다.
역주4 焉作轅田 : 焉은 於是의 뜻으로 곧 ‘이에’란 말이다. 轅田은 賈逵가 말하기를 “轅은 바꾼다는 뜻이다. 전답에 관한 법령을 바꾸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전답을 상으로 내린 것이니 그동안 井田 제도로 規劃되어 있던 전답의 경계들을 바꾸어버린 것이다.”고 하였다. 혹자가 轅은 수레이니 전답에 따라 兵車를 세금으로 낸 것이라고 하는 주장에 대하여, 韋昭는 “賞을 내려 민중을 기쁘게 하고자 하면서 전답에 따라 병거를 내게 한다는 것은 옳은 해석이 아니다.”고 하였다. 《左傳》 〈僖公15年〉에 이 기사에서 楊伯峻은 轅田은 爰田이라면서 역대 轅田에 대한 분분한 여러 異說들을 나열하였다. 여기서는 일단 賈逵의 설을 따르기로 한다.
역주5 亡之不恤 : 亡은 포로로 붙잡혀 외국에 있는 것이다.
역주6 羣臣是憂 : 憂를 韋昭는 군주를 다른 公子로 바꾸어 세우라 한 것, 여러 신료들에게 賞을 내린 것, 轅田을 만든 일 등이라 하였다. 그러나 轅田을 만든 것은 惠公이 직접 지시해서 이루어진 일인지 불분명하다.
역주7 征繕 : 征은 세금 징수이며 繕은 兵仗器 수선이다. 세금을 더 징수하여 병장기를 손질하는 것을 이른다.
역주8 焉作州兵 : 2천 5백 戶가 한 州이다. 州兵은 州 단위의 군사들을 州의 수령이 거느리고 병장기도 州 단위로 준비하는 것이다. 州兵은 국가 단위 군대에서 지방 단위 군대로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점이다.
역주9 吾讎 : 四部備要本에는 ‘讎吾’로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하면 句讀도 必報讎吾寧事齊楚라야 맞다.
역주10 : 四部備要本에는 ‘必’자가 없다.
역주11 : 상대를 지칭하는 名詞이다.
역주12 忌而不思 : 忌는 원망이다. 不思는 大義를 생각지 못함이다.
역주13 其君 : 惠公의 아들 子圉를 이른다.
역주14 則能執之 : 四部備要本에는 이 네 글자가 없다.
역주15 改館 : 처음에 秦穆公이 晉惠公을 靈臺에 구금시켰다가 돌려보내려고 생각한 까닭에 다시 客館에 머물도록 한 것이다.
역주16 七牢 : 牛‧羊‧豕 각기 한 마리씩을 갖춘 음식을 1牢라 한다. 7牢는 이의 7배이니 公‧侯‧伯‧子‧男의 제후 班列에서 侯伯班列의 제후에게 행하는 禮이다.

국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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