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使郤至
로 告慶於周
한대 未將事
에 王叔簡公
이 飮之酒
할새 交酬好貨皆厚
하고 飮酒宴語相說也
하다
王叔子譽溫季하야 以爲必相晉國이요 相晉國이면 必大得諸侯하리이다
勸二三君子하노니 必先導焉하야 可以樹하라하더니 今夫子見我하야 以晉國之克也로 爲己實謀之라하야 曰 微我면 晉不戰矣로다
建立卿士而
이 四也
오 從之
하야 而不整
이 五也
니라
辠不由晉
하니 晉得其民
하며 는 旅力方剛
하고 卒伍治整
하야 諸侯與之
하니
是有五勝也니라 有辭一也오 得民二也오 軍帥彊禦三也 行列治整四也오 諸侯輯睦五也라
有一勝이라도 猶足用也니 有五勝以伐五敗어늘 而避之者는 非人也니 不可以不戰이니라
欒范不欲이어늘 我則强之하니 戰而勝은 是吾力也니라
且夫戰也
에 微謀
어늘 吾有
하니 勇而有禮
하며 이라
吾三逐楚
之卒
은 勇也
오 見其君
이면 必下而趍
는 禮也
오 는 仁也
니
吾曰 子則賢矣나 抑晉國之擧也는 不失其次하리니 吾懼政之未及子也하노라 謂我曰 夫何次之有리오
昔先大夫荀伯
은 自
하고 而以政
하고 今欒伯
은 自下軍往
하니
在禮에 敵必三讓하니 是則聖人이 知民之不可加也니라
故王天下者는 必先諸民하고 然後庇焉이면 則能長利니라
今郤至在七人之下어늘 而欲上之하니 是求蓋七人也라 其亦有七怨이니
晉之克也
는 天有惡於楚也
라 故儆之以晉
이어늘 而郤至佻天
하야 以爲己力
하니 不亦難乎
아
佻天
이면 不祥
이오 乘人
이면 不義
니 不祥則天棄之
하고 不義則民
之
니라 且郤至何三伐之有
리오
以義死用을 謂之勇이요 奉義順則을 謂之禮오 畜義豐功을 謂之仁이며
有三姦以求替其上하니 遠於得政矣니라 以吾觀之컨대 兵在其頸하니 不可久也라 雖吾王叔이라도 未能違難하리라
在大誓하니 曰 民之所欲을 天必從之라하니 王叔欲郤至하니 能勿從乎아
24. 단양공單襄公이 극지郤至가 하늘의 공功을 훔친 것을 논論하다
【大義】신하된 道理는 예절과 겸양을 지켜야지, 功을 믿고 오만해서는 안 되며 또 하늘의 공을 탐내어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다.
진晉나라가 초楚나라를 언릉鄢陵의 전투에서 이기고는 극지郤至(진晉나라 경사卿士)를 시켜 주周나라에 승리한 사실을 고告하도록 하였다. 아직 경사慶事를 고告하는 예식을 거행하기 전에, 왕숙王叔간공簡公(주周나라 대부大夫)이 극지郤至에게 술자리를 열어 대접할 적에, 좋은 예물禮物을 후하게 주고받으며 술을 마시고 잔치하는 한편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튿날 왕숙王叔간공簡公이 조정朝廷에서 그를 칭찬하였다.
극지郤至가 소환공召桓公(주周나라 경사卿士)을 만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소환공召桓公이 단양공單襄公에게 말하였다.
“왕숙王叔간공簡公이 온계溫季(극지郤至의 자字)를 칭찬하여 말하기를 ‘그는 반드시 진晉나라의 재상이 될 것이고, 진晉나라에서 재상 노릇을 하면 반드시 제후諸侯들의 마음을 크게 얻을 것입니다.
조정朝廷의 두세 분 공경公卿들께 권유하오니 기필코 극지郤至가 상경上卿이 되도록 먼저 진후晉侯를 인도하여, 우리를 돕는 당黨을 진晉나라에 심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극지郤至가 나를 만나서 진晉나라가 승리한 것은 사실 자기가 낸 계책 때문이라고 하면서 ‘내가 없었으면 진晉나라는 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초楚나라에는 다섯 가지 패망敗亡할 결점이 있었으나, 진晉나라는 이를 이용할 줄을 알지 못하기에 내가 싸우자고 강요하였습니다.
〈다섯 가지 결점은〉 초楚나라가 송宋나라와의 맹약盟約을 저버린 것이 그 첫 번째이고, 초楚나라 임금은 은덕恩德을 베푼 일이 적어 토지를 제후諸侯에게 뇌물로 준 것이 두 번째이고, 장년壯年의 우수한 대부大夫를 버리고 유약幼弱한 장수를 등용한 것이 세 번째이고,
경사卿士를 임명해 놓고 그의 간諫하는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네 번째이고, 동이東夷와 정鄭나라가 초楚나라를 따라 세 나라가 진陣을 쳤으나 엄정嚴整하지 못한 것이 다섯 번째 결점이었습니다.
맹약盟約을 위배하고 전쟁을 일으킨 죄는 진晉나라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라서 진晉나라는 민심民心을 얻었고, 진晉나라 사군四軍의 장수와 군사의 힘은 한창 강성하였고, 병사들의 군기軍紀는 엄정하며 제후諸侯들이 지지를 보냈습니다.
이것이 진晉나라가 승리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요인이었으니, 전쟁에 대하여 설명할 명분名分이 있는 것이 첫째요, 민심民心을 얻은 것이 둘째요, 장수가 강하고 힘 있는 것이 셋째요, 대오隊伍가 엄정嚴整한 것이 넷째요, 제후諸侯가 서로 화목하여 도운 것이 다섯째입니다.
승리할 요인이 한 가지만 있어도 오히려 이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 승리할 요인을 가지고 다섯 가지 패배할 요인을 가진 나라를 정벌할 기회인데도 회피하여 싸우지 않는 자는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니, 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난서欒書와 범섭范燮이 싸우려 하지 않기에 내가 싸우기를 강력히 주장하였으니, 전쟁하여 승리한 것은 바로 나의 공로입니다.
또 전투할 때 작전계획이 없었는데, 나에게 세 가지 공功이 있으니, 용맹스러우면서도 예절이 있고, 게다가 인애仁愛로 적군을 대하였습니다.
내가 세 번이나 초楚나라 임금의 군사를 추격한 것은 용맹勇猛스러움이고, 초楚나라 임금을 만나면 반드시 수레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급히 간 것은 예禮이고, 능히 정백鄭伯을 사로잡을 수 있었으나 놓아 준 것은 인애仁愛입니다.
이와 같이 용맹勇猛‧예절禮節‧인애仁愛를 갖춘 내가 진晉나라의 정치를 맡게 되면 초楚나라와 월越나라는 반드시 조회 올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내(召桓公)가 말하기를 ‘그대의 능력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진晉나라가 재상을 천거하는 일은 승진할 순서를 위배하지 않을 것이니, 나는 진晉나라의 정무政務가 그대에게 미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라고 하니, 극지郤至가 나에게 말하기를 ‘어찌 차서次序가 있겠습니까?
옛날 선대부先大夫순백荀伯은 하군下軍의 좌佐로서 국정國政을 관장하였고, 조선자趙宣子는 군직軍職을 역임한 적이 없는데 국정國政을 담당하였고, 지금 난백欒伯(欒書)은 제오경第五卿인 하군장下軍將에서 정경正卿이 되어 갔습니다.
이 세 사람에 나까지 네 명인데 내가 그들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신군新軍의 좌佐로서 승진하여 집정執政하는 일도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반드시 정경正卿이 되기를 추구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가 한 말인데, 그대는 이 말을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에 ‘칼이 그 목에 있다.’라고 하는데, 극지郤至를 이르는 말일 것입니다.
군자君子가 자신을 추켜세우지 않는 것은 겸양해서가 아니라, 그런 행위로 남의 장점을 덮어 가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본성本性은, 남의 위에 있을 만한 사람을 능가하려 하지만 그 사람의 장점은 덮어 가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의 장점을 덮어 가리기를 구하면, 그를 억제하여 깎아 내리려는 일이 더욱 심하게 일어납니다.
그 때문에 성인聖人은 겸양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또 속담에 이르기를 ‘짐승은 그물을 싫어하고, 백성은 윗사람을 싫어한다.’고 했고,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백성은 가까이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위에 군림君臨할 수는 없다.’고 했으며,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화락和樂한 군자君子여, 나쁜 수단으로 복福을 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법禮法에 지위가 대등한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세 번 사양하게 되어 있으니, 이는 성인聖人께서 사람은 남의 위에 능가할 수 없음을 안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하天下에 왕 노릇 하는 사람은 백성의 마음을 먼저 구한 뒤에 자신의 재능을 비호받게 되니, 그렇게 하면 복록福祿을 오래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 극지郤至는 일곱 사람의 아래에 있으면서 그들 위에 능가하려고 하니, 이는 일곱 사람의 장점을 덮어 가리기를 추구하는 것이고, 역시 일곱 사람의 원망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하찮은 인물에 있어서도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데, 더구나 지위가 높은 경卿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극지郤至가 앞으로 무슨 수로 그들을 대하겠습니까?
진晉나라가 승리한 것은, 하늘이 초楚나라를 미워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晉나라의 손을 빌려 초楚나라를 경계시킨 것인데, 극지郤至가 하늘의 공을 훔쳐서 자기의 공로로 삼으니, 역시 재난災難을 면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늘의 공을 훔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고, 남을 능가하는 것은 의義롭지 못하니, 상서롭지 못하면 하늘이 버리게 되고, 의義롭지 못하면 백성들이 배반하는 것입니다. 또 극지郤至에게 무슨 세 가지 공功이 있겠습니까?
인仁과 예禮와 용勇은 모두 도의道義로 하는 것입니다.
정의正義를 위해 몸을 써서 죽는 것을 용勇이라 이르고, 도의道義를 받들어 원칙原則을 따르는 것을 예禮라 이르고, 도의道義를 쌓아 큰 공功을 세우는 것을 인仁이라고 합니다.
간사한 마음으로 행하는 인仁은 〈인仁을〉 훔치는 것이고, 간사한 행동으로 행하는 예禮는 수치이고, 간사한 수단으로 부리는 용勇은 나라를 해치는 일이 됩니다.
전쟁은 적군을 섬멸하는 것을 최상의 목적으로 삼으나, 무력武力을 쓰지 않고 함께 평화를 지키고 정의正義를 따르는 것이 최상입니다.
그러므로 군대는 과감하고 굳셈으로 통제하고, 조정은 차서次序에 따라 이루는 도리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전쟁하는 목적을 위배하고 제멋대로 정鄭나라 임금을 놓아 준 것은 나라를 해치는 일이고, 과감하고 굳센 자세를 버리고 예용禮容을 행한 것은 수치이고, 나라의 이익을 저버리고 원수에게 친근히 한 것은 공功을 훔친 것입니다.
극지郤至는 이런 세 가지 간사한 행위를 지니고 있으면서 자기 위의 정경正卿을 교체하려고 하니, 정권을 잡기에는 거리가 아주 먼 것입니다. 나의 관점에서는 칼이 그의 목에 있으니,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우리 왕숙王叔간공簡公도 재난災難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서경書經》 〈태서泰誓〉에 이르기를 ‘백성들이 원하는 일을 하늘은 반드시 따른다.’고 했는데, 왕숙王叔간공簡公은 극지郤至와 결교結交하기를 바라고 있으니, 재난災難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극지郤至는 진晉나라에 돌아가서 이듬해 난리에 죽었고, 백여伯輿와의 옥사獄事에서 왕숙王叔진생陳生(왕숙王叔간공簡公)은 진晉나라로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