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文公救宋 敗楚於城濮
[大義]先軫과 子犯이 전쟁의 정세를 잘 파악하고 정당하게 대처하도록 권하여 城濮 전투에서 楚나라에게 승리함. 대의>
文公
이 立四年
에하니 公
이 率齊秦
하야 伐曹衛以救宋
하다
宋人
이 使
으로 告急於晉
하니 公
이 告大夫 曰 宋人
이 告急
하니
이요요 我欲擊楚
면 齊秦
이 不欲
하리니 其若之何
오
齊秦
이 不得其請
이면 必
怨焉
하리니 然後
之
면 蔑不欲矣
리이다 公
이 說
하다
令尹子玉
이 使
으로 來告 曰 請復衛侯而封曹
면 臣亦釋宋之圍
하리이다 舅犯
이 慍曰 子玉
이 無禮哉
인저
怨已多矣
면 難以擊人
이니 不若私許復曹衛以
之
하고 執宛春以
하야 旣戰而後
之
니이다 公
이 說
이라
偃也聞之
컨대 戰鬭
는 直爲壯
이오 曲爲老
라하니 未報楚惠而
宋
이면 我曲楚直
이라
若我以君避臣이어늘 而不去하면 彼亦曲矣니라 退三舍避楚하다
122. 진문공晉文公이 송宋나라를 구원하고 성복城濮에서 초楚나라를 패배시키다
진문공晉文公이 즉위한 지 4년에 초성왕楚成王이 송宋나라를 정벌하니, 문공이 제齊나라와 진秦나라를 거느리고 조曹나라와 위衛나라를 치고 송宋나라를 구원하였다.
송나라 사람이 문윤반門尹班을 사신으로 보내어 진晉나라에 급히 고하게 하니, 문공이 대부에게 고하기를, “송나라 사람이 위급함을 고하였소.
버려두면 송나라와 단절될 것이고 초나라에게 〈송나라를 치지 말라고〉 고하면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초나라를 치고자 한다면 제나라와 진秦나라에서 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하였다.
선진先軫이 말하기를, “제나라와 진秦나라로 하여금 초나라를 원망하는 주장자가 되게 하는 것만 같은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문공이 말하기를, “가능하겠소?” 하니, 선진이 말하기를 “송나라로 하여금 우리는 놔두고 제나라와 진秦나라에게 뇌물을 주어서 그것을 의뢰하여 〈제나라와 진秦나라에게 송나라를 치지 말라고〉 초나라에 고하게 하고, 우리가 조나라와 위나라의 땅을 나누어서 송나라 사람에게 주면, 초나라는 조나라와 위나라를 아껴서 반드시 제나라와 진秦나라에서 요청한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나라와 진秦나라가 요청을 얻지 못하면 반드시 원망을 맺을 것이니, 그런 뒤에 이용하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문공文公은 기뻐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조나라 전지田地와 위나라 전지田地를 송나라 사람에게 주었다.
〈초나라〉 영윤令尹자옥子玉이 완춘宛春을 사신으로 보내니 와서 고하기를, “청컨대 위후衛侯를 회복시켜 주고 조曹나라를 책봉해 준다면, 저도 송宋나라의 포위를 풀겠습니다.” 하니, 구범舅犯이 성내며 말하기를, “자옥은 무례하오!
자옥은 두 가지를 갖게 되고 문공은 한 가지를 갖게 되니, 반드시 칠 것이오.”라고 하자, 선진이 말하기를, “귀하는 허락하십시오.
우리가 조曹ㆍ위衛를 회복시켜 주라는 요청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는 송나라를 풀어 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 되니, 송나라 무리들이 강해지지 않겠습니까!
이는 초나라는 한 마디 말에 세 가지를 베풀게 되는 것이고, 귀하는 한 마디 말에 세 가지 원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원망이 많으면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어려운 것이니, 사적으로 조나라와 위나라를 회복시켜 주는 것을 허락해서 이간시키고 완춘을 잡아 가두어 초나라를 노하여 전쟁하게 하고서 전쟁이 끝난 후에 도모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공이 좋아하였다.
이 때문에 완춘을 구류하여 위나라에 가두었다.
자옥子玉이 송나라 포위를 풀고 진晉나라 군대와 싸우려 하여 따랐다.
초나라에서 진陣을 치기를 마치자, 진晉나라 군사들이 30리를 후퇴하니, 군리軍吏가 청하여 말하기를, “임금으로서 신하를 피하는 것은 욕입니다.
또 초나라 군사가 지쳐 있으니,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자범이 말하기를, “그대들이여! 초나라에 있을 때의 일을 잊었는가!
내가 듣건대, ‘전투란 곧은 쪽은 장대하게 되는 것이고, 굽은 쪽은 피곤하게 된다.’고 하니, 아직 초나라의 은혜를 갚지 아니하고 송나라를 구원해 준다면, 우리는 굽은 것이고 초나라는 곧은 것이다.
초나라 군사들이 기세가 등등해지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니, 피로하다고 말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임금으로서 〈초나라〉 신하를 피했는데 〈초나라가〉 떠나가지 않는다면 초나라가 굽은 것이다.”라고 하니, 90리를 후퇴하여 초나라를 피하였다.
초나라 군대가 멈추려 하였는데, 자옥이 좋아하지 않았다.
성복城濮에 가서 과연 전투하여 초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군자가 말하기를, “덕으로써 권하기를 잘하였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