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齊나라는 황제黃帝의 후손이다. 백니伯尼는 요堯의 사악四岳(제후)이 되어 우禹를 도와 물을 다스리자 심복으로 맡겼고 그것으로 하여 성姓을 받았다. 혹은 말하기를 신申에 봉해졌다고 하고 혹은 말하기를 여呂에 봉해졌다고 한다. 여상呂尙은 그 후손인데, 주周나라를 도와서 은왕殷王주紂를 멸망시키고 제齊에 봉해졌다. 여상呂尙은 본성本姓이 강姜이지만 그 봉지封地를 성姓으로 하여 여상이라고 하였는데, 자字는 자아子牙이며, 태공망太公望‧사상보師尙父라고도 한다.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 북쪽에서 여상을 만나서 수레에 함께 타고 돌아와 사師로 삼았다. 문왕이 죽자 그 아들 무왕武王을 보좌하여 은왕조殷王朝를 무너뜨리고 주왕조周王朝를 세우게 하였고, 그 공으로 제齊의 영구營丘에 봉해졌던 것이다. 여상은 봉국封國에서 상공업을 장려하고 어업을 편리하게 하여, 큰 나라를 만들었다. 제나라의 계급은 후작侯爵이었다.
이후로 아들과 아우로 대를 이어 제후가 되고, 이공釐公 9년에 노魯나라 은공隱公이 즉위하여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접어들었다. 환공桓公은 관중管仲을 등용하여 오패五霸의 으뜸으로 강대국이 되어 제후諸侯들을 다스렸다. 환공이 죽은 뒤 다섯 아들들이 서로 공격하여 싸웠고, 그 때문에 강력함을 상실하였다. 환공 이후 효공孝公, 소공昭公, 의공懿公, 혜공惠公이 즉위하였고, 이어 경공頃公,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안유자晏孺子, 도공悼公, 간공簡公, 평공平公, 선공宣公, 강공康公이 즉위하였으나, 시해弑害 및 외침外侵 사건이 일어나는 등 변란이 계속되었다.
강공康公 2년(기원전 403년)에 진晉나라가 갈라져 한韓‧위魏‧조趙 세 나라로 되면서 그들이 제후諸侯의 대열에 들었고 이로부터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들어갔다. 19년(기원전 386년)에 전화田和가 제나라를 찬탈하여 제후齊侯가 되고 강공을 해변으로 보냈다. 26년 강공이 죽자 여씨의 제사가 끊어졌다.
전씨田氏가 제나라를 차지한 이후에도 국호는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제齊라고 하였다. 이를 전제田齊라고 부르는데, 칠웅七雄의 하나로서 강대국을 유지하였다. 말기에는 진秦나라가 강성해졌으나 진나라에서 가장 먼 동쪽에 있다고 하여 국방을 소홀히 하다가 기원전 221년에 진秦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