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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2)

국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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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夫差退于黃池使王孫苟告于周
[大義]夫差가 黃池의 회맹에서 盟主의 지위를 얻고 돌아와 天子에게 闔廬와 자기의 공적를 말하고 천자의 승인을 받아 제후의 우두머리가 되려 함.
吳王夫差旣退於黃池하야 乃使 告勞於周하야
曰 昔者 楚人爲不道하야 不承共王事하고 以遠我一二兄弟之國하니이다
吾先君闔廬不貰不忍하야 被甲帶劒하고 挺鈹搢鐸하야 以與楚昭王으로러니
天舍其衷하야 楚師敗績하야 王去其國이어늘 遂至於郢하니이다
王總其百執事하야 以奉其社稷之祭러니
其父子昆弟不相能하야이라 是以復歸於吳하니이다
不鑒於楚하고 又不承共王命하며 以遠我一二兄弟之國하니이다
夫差不貰不忍하야 被甲帶劒하고 挺鈹搢鐸하야 遵汶伐하야이러니 天舍其衷하야 齊師還하니이다
夫差豈敢自多리잇가
文武舍其衷이니이다
歸不稔於歲하야 余氵公 江泝淮하야 闕溝深水하고 出於商魯之閒하야 以徹於兄弟之國하야 夫差克有일새 敢使苟告於下執事하노이다
答曰 苟
伯父女來하야 明紹享余一人하니 若余嘉之하노라
昔周室 逢天之降禍하고하니 余心豈忘憂卹이리오
不唯下土之不康靖이어늘
今伯父曰 力同德이라하니 伯父若能然이면 余一人 兼受而介福이요 伯父多歷年以沒元身이니 伯父秉德已侈大哉인저


232. 부차夫差황지黃池에서 돌아와 왕손王孫를 보내 나라에 고하게 하다
오왕吳王부차夫差가 이미 황지黃池로부터 퇴병退兵해 돌아와서 왕손王孫를 시켜 나라에 자기의 공적을 보고하게 하였다.
“옛날에 초나라 사람들이 무도한 행위를 하여 나라 천자天子에게 직공職貢을 받들지 아니하고 우리 희성姬姓의 한두 형제국과 소원하게 지내 왔습니다.
우리 선군先君합려闔廬께서 너그럽게 사면하거나 용인하지 않아서 갑옷을 입고 칼을 차며 긴 창을 빼들고 방울을 흔들면서 초소왕楚昭王백거柏擧의 언덕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하늘이 우리 편을 들어주어 나라 군대가 크게 패배하여 초소왕楚昭王이 나라를 떠나 버리자 나라 군대가 마침내 나라 국도國都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오왕吳王합려闔廬나라의 백관百官들을 모아 거느리고 나라 사직社稷의 제사를 받들게 했습니다.
그런데 나라의 부자父子형제兄弟가 서로 화목하지 못하여 부개왕夫槪王이 난을 일으켰기 때문에 다시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제후齊侯나라의 일을 거울로 삼지 못하고 또 천자天子의 명을 받들어 직공職貢을 바치지 않으며, 나라 등 우리의 한두 형제국兄弟國을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부차夫差는 너그럽게 용서하거나 용인하지 못하여 갑옷을 입고 칼을 차며 긴 창을 빼 들고 방울을 울리면서, 문수汶水 가를 따라 공벌攻伐하여 비를 맞으며 등립簦笠을 쓴 군사가 애릉艾陵에 이어져 싸웠는데, 하늘이 우리 편을 들어주어 나라 군사가 패배하여 돌아갔습니다.
부차夫差가 어찌 감히 스스로 공로를 과시하려는 것이겠습니까.
문왕文王무왕武王이 실상 우리를 보우保佑해 주신 것입니다.
귀국歸國하여 그해의 곡식이 채 익지 않았을 적에 장강長江 연안을 따라 회수淮水를 거슬러 올라가 운하運河를 깊이 파고 나라와 나라 사이로 나가 희성姬姓의 형제 제후국諸侯國들과 통하여, 부차夫差제후諸侯회맹會盟하는 일을 성공시켰기에 감히 왕손王孫를 시켜 천자天子 밑에서 일하는 집사執事에게 고합니다.”
주경왕周敬王이 대답하였다 “야.
오백부吳伯父가 너에게 명하여 이곳에 와 나 한 사람을 선대先代의 예에 따라 받들겠다고 표명하니, 나는 이처럼 가상히 여긴다.
옛날 나라 왕실王室이 하늘이 내리는 재앙을 만나 왕자王子성주成周의 백성을 선동하여 난을 일으킨 일을 당하였으니, 내 마음에 어찌 국가의 우환을 잊겠는가!
단지 하토下土인 사방 제후諸侯들의 안녕하지 못한 것만 우려할 뿐이 아니다.
지금 백부伯父가 말하기를, ‘우리와 힘을 합하여 마음을 같이하자’고 하니, 백부伯父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나 한 사람은 큰 복을 배로 받는 것이고, 백부伯父장수長壽를 누리며 좋은 을 잘 간직한 몸으로 을 마칠 것이니, 백부伯父께서 지닌 이 위대할 것이다.”


역주
역주1 王孫苟 : 吳나라의 大夫.
역주2 毒逐於中原柏擧 : 柏擧의 언덕에서 격렬하게 전투함. 毒逐은 격렬하게 각축함이고, 柏擧는 湖北省 麻城縣에 있던 楚나라의 地名. 魯定公 4년(기원전 506년)에 吳나라 군대가 柏擧에서 楚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고 楚나라의 國都 郢에까지 들어갔던 일을 이른다.
역주3 夫槪王作亂 : 夫槪王은 吳王 闔廬의 아우. 柏擧에서 전투한 뒤에 夫槪가 군대를 거느리고 먼저 귀국하여 스스로 王이 되자, 闔廬가 回軍하여 夫槪와 큰 전투를 벌였는데 夫槪가 패배하여 楚나라로 달아나 棠溪氏가 되었다. 이 夫槪의 반란으로 闔廬는 楚나라를 평정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左傳 定公 4년‧5년》
역주4 齊侯任 : 齊侯는 齊悼公의 아들 簡公으로 이름은 任.
역주5 : 四部備要本에는 ‘壬’으로 되어 있다.
역주6 : 지금의 山東省 泰安市 동남쪽에 있던 齊나라의 邑 이름.
역주7 䔲[簦]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고쳤다.
역주8 簦笠相望於艾陵 : 簦笠은 긴 자루가 달린 일종의 삿갓. 지금의 우산 비슷한 雨具. 艾陵은 앞의 주 39)참고.
역주9 : 四部備要本에는 ‘寔’으로 되어 있다. 아래도 같다.
역주10 成事 : 吳王 夫差가 黃池의 會盟에서 晉나라와 다툼 끝에 盟主가 된 일을 이른 말.
역주11 周王 : 周景王의 아들 敬王. 이름은 丐.
역주12 : 四部備要本에는 ‘令’으로 되어 있다.
역주13 遭民之不祥 : 成周의 백성들이 일으킨 난리를 만남. 王子 朝가 王位를 찬탈하기 위하여 成周의 백성을 선동하여 난을 일으키자 周敬王이 出奔했던 일을 이른다. 《左傳 昭公 22년‧23년》
역주14 戮[勠] : 汪遠孫의 《國語明道本攷異》에 “注를 따르면 의당 ‘勠’으로 써야 한다.” 하여 고쳤다.

국어(2) 책은 2022.07.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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