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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1)

국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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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3. 內史過論晉惠公必無後
襄王使及內史過 한대
晉侯不敬하고 晉侯하며 拜不하다
內史過歸하야 以告王曰
晉不亡이면 其君必無後 且呂郤 將不免하리이다
王曰 何故 對曰
有之하니 曰 衆非 何戴 后非衆이면 無與守邦이라하고
하니 無以萬夫 萬夫有辠 在余一人이라하고
하니 曰 國之臧 則維女衆이오 國之不臧 則維余一人이니 是有이라하니
如是則長衆使民 不可不愼也니이다
民之所急하니 先王知大事之必以
祓除其心하야 以和惠民하니이다
考中衷以하며 昭明物則以訓之하고 制義庶孚以行之하니 祓除其心 精也 考中度衷 忠也 昭明物則 禮也 制義庶孚 信也
然則長衆使民之道 非精不和 非忠不立이오 非禮不順이오 非信不行이니이다
今晉侯卽位하야하고 棄其信也 不敬王命 棄其禮也
施其所 棄其忠也 以惡實心 棄其精也
四者 皆棄 則遠不至하고 而近不和矣 將何以守國이릿고
古者 先王旣有天下하고 又崇而敬事之하니 於是乎有하야 以敎民事君이라
諸侯春秋 受職於王하야 以臨其民하며 大夫士日恪하야 以儆其官하고
庶人工商 各守其業하야 호대有墜失也
故爲以旌之하고
幣瑞節以鎭之하며 爲班爵貴賤以列之하고 爲令聞嘉譽以聲之호대
猶有散遷일새 而著在刑辟하고 流在裔土하니
於是乎有之國하고之民이어든 而况可以淫縱其身乎잇가
夫晉侯 也而得其位하니 亹亹怵惕하야 保任戒懼라도 猶曰未也어든 若將하고 陵其民而卑其上이면 將何以固守리오
夫執玉卑 替其摯也 拜不稽首 誣其王也
替摯 無鎭이오 誣王이면 無民이니이다 夫天하나니 任重享大者 必速及이라
故晉侯誣王하니 人亦將誣之 欲替其하니 人亦將替之
大臣享其祿하고 弗諫而阿之하니 亦必及焉하리이다
襄王三年而立晉侯하고 八年而하며 十六年而하니 無冑하고


13. 내사內史진혜공晉惠公은 반드시 후사後嗣가 없을 것이라고 하다
【大義】天子가 諸侯에게 爵名을 내릴 때 諸侯가 不敬스럽게 禮를 행할 경우, 나라가 멸망하지 않으면 後嗣가 없을 것이라고 論하다.
주양왕周襄王소공召公내사內史를 통해 진혜공晉惠公에게 명복命服을 하사하였다.
여생呂甥극예郤芮진후晉侯빈상擯相이 되어 불경不敬스러웠으며, 진후晉侯옥규玉圭를 아주 낮게 잡았고, 또 절을 하면서 계수稽首를 하지 않았다.
내사內史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이런 정황을 에게 하였다.
나라가 멸망하지 않으면 그 임금은 반드시 후사後嗣가 없을 것입니다. 또 빈상擯相이었던 여생呂甥극예郤芮는 장차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왕이 말하기를 “무슨 까닭인가?” 하니, 내사內史가 대답하였다.
“〈하서夏書〉에 ‘민중은 군주君主가 있지 않으면 누구를 받들며, 군주君主는 민중이 있지 않으면 함께 나라를 지킬 사람이 없다.’라는 말이 있고,
탕서湯誓〉에 ‘나 한 사람(君主)에게 죄가 있는 것은 만백성 때문이 아니고, 만백성에게 죄가 있는 것은 나 한 사람의 과오過誤에 있다.’라는 말이 있으며,
반경盤庚〉에는 ‘나라의 풍속이 좋은 것은 많은 너희들의 공로이고, 나라의 풍속이 좋지 못한 것은 나 한 사람의 과실過失로 인한 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으니 민중의 군장君長 노릇을 하며 민중을 부리는 일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중이 가장 시급히 여기는 것은 제사祭祀와 전쟁 등의 큰일에 있으니, 선왕先王이 이런 큰일은 반드시 민중과 함께 하여야 성공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때문에 〈큰일을 행하기 전에〉 마음속의 사념邪念을 제거하여 민중과 화합和合하고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나의 마음을 살펴 남의 마음을 헤아림으로써 군림君臨하고, 사물事物의 준칙을 명확히 밝혀서 민중을 훈도訓導하며, 민중에게 적합하여 민중이 신뢰하는 정령政令을 만들어 시행하였습니다.
마음속의 사념邪念을 제거함은 정결한 것이요, 나의 마음을 살펴 남의 마음을 헤아림은 충서忠恕요, 사물事物의 준칙을 명확히 밝힘은 에 부합함이요, 민중에게 적합하여 신뢰하는 정령政令을 만드는 것은 성신誠信입니다.
그렇다면 민중에게 군장 노릇을 하고 민중을 부리는 방법은 마음이 정결하지 않으면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충서忠恕의 도리를 행하지 않으면 정치가 확립되지 못하고, 에 부합하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고, 신의信義를 강구하지 않으면 일이 시행되지 않습니다.
지금 진후晉侯는 즉위하자 안팎에 주기로 약속한 말을 저버려, 재물을 주지 않고 나라 안에서 도운 사람을 학살하였으니 이는 신의를 버린 것이요, 을 받으면서 불경不敬한 행동을 한 것은 를 버린 것이요,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행한 것은 충서忠恕를 버린 것이요, 마음속에 사악邪惡한 생각을 가득 채운 것은 정결한 것을 버린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모두 버리면 먼 지방 사람들은 오지 않고, 가까운 지방 사람들은 화합하지 못할 것이니,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지키겠습니까?
옛날에 선왕先王이 이미 천하天下를 소유하고, 또 상제上帝명신明神존숭尊崇하여 제사하는 전례典禮를 세워 공경히 섬겼습니다. 이에 춘분春分날 아침에 태양을 향하여 절하고, 추분秋分날 밤에 달을 맞이하는 를 두어 백성에게 임금 섬기는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제후諸侯는 봄과 가을에 에게 자기의 직무職務를 받아 백성에게 임하며, 대부大夫는 날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조정朝廷에서 그가 맡은 관직官職을 수행하고,
서민庶民공장工匠상인商人은 각자 자기의 본업本業을 지켜 군주君主를 받들면서도 실추失墜함이 있을까 걱정합니다.
그러므로 수레와 장복章服정기旌旗휘장徽章으로써 신분을 드러내고, 지폐摯幣서절瑞節로써 권위權威를 무겁게 하며, 반열班列작위爵位을 만들어 서열序列을 정하고, 훌륭한 명성名聲과 아름다운 명예名譽가 있는 사람을 표창하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일에 산만하고, 근무를 이탈하며, 게으르고 소홀히 함이 있기 때문에 형법刑法명문화明文化하고, 죄가 무거운 자는 변방 밖의 아주 먼 지역에 유배하여 살게 하였습니다.
이에 만이蠻夷의 나라가 있고, 사형死刑자자형刺字刑을 받은 죄인이 있게 되었는데, 더구나 자기의 몸을 지나치게 방종放縱할 수 있겠습니까?
진후晉侯적장자嫡長子가 아니면서 그 제후諸侯를 얻었으니, 힘써 노력하며 두려워하고 경계警戒하여 삼가고 조심함으로 직위職位를 지키더라도 부족하다고 할 것입니다. 만일 마음을 마구 방종放縱하게 두고 이웃을 멀리하며, 백성을 능멸하고 왕명王命을 멸시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굳게 지키겠습니까?
서옥瑞玉을 낮게 잡은 것은 집지執摯를 폐기한 것이요, 절하면서 머리가 땅에 닿지 않은 것은 기망欺罔한 것입니다.
집지執摯를 폐기하면 권위權威에 무게가 없고, 기망欺罔하면 백성을 잃게 됩니다. 하늘은 항상 행한 일을 따라 길흉吉凶의 징조를 미리 보이는 것이니, 책임이 무겁고 향유享有작위爵位가 큰 사람은 반드시 가 빨리 미치는 것입니다.
진후晉侯기망欺罔하였으니 백성도 장차 진후晉侯기망欺罔하고, 엄중嚴重를 폐기하였으니 백성도 장차 자신의 도리를 폐기할 것입니다.
대신大臣녹봉祿俸만을 받아먹고 진후晉侯의 잘못을 하지 않으면서 아부阿附하였으니, 그들에게도 반드시 가 미칠 것입니다.”
주양왕周襄王 3년에 진후晉侯가 즉위하였고, 8년에 한원韓原에서 패배하여 사로잡혔으며, 16년에 나라 사람이 회공懷公을 살해하였는데, 회공懷公후사後嗣가 없었다.
나라 사람이 자금子金자공子公을 살해하였다.


역주
역주1 召公 過 : 周나라의 卿士. 召穆公의 후손으로, 이름은 過. 시호는 武로, 召武公이라 한다.
역주2 賜晉惠公命 : 諸侯가 즉위할 때 天子가 命服과 命圭를 주는 일. 晉惠公은 晉獻公의 庶子로 이름은 夷吾. 命은 諸侯가 됨이 合法的‧公式的임을 천명하는 제도이다.
역주3 呂甥‧郤芮 : 둘 다 晉나라 大夫. 呂甥은 字를 子金이라고 하며, 呂省‧瑕甥‧瑕呂鮐甥 등으로도 쓴다. 郤芮는 字를 子公이라고 하며, 冀芮‧郤成子라고도 한다.
역주4 : 擯相. 손님을 인도하고 접대하는 의식과 예의 등을 맡아보는 직책.
역주5 執玉卑 : 玉은 玉으로 만든 信圭. 天子가 諸侯에게 身分의 信標로 주는 符信인데, 禮를 행할 때 잡는다. 卑는 腰帶보다 낮게 내려 잡는 것을 이른다. 일반적으로 가슴 위치의 높이로 올려 잡아야 禮에 부합한다고 한다.
역주6 稽首 : 큰절을 할 때 머리를 땅에 닿게 하는 일. 옛사람이 최고의 존경을 표시하는 예절이었다.
역주7 夏書 : 《書經》 〈虞書大禹謨〉에 보인다. 韋昭는 ‘夏書는 逸書’라 하였다. 이를 董增齡은 “지금 傳하는 〈大禹謨〉篇은 東晉 때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으니, 韋昭는 삼국시대에 태어나 이 책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逸書라고 했다.” 하였다.
역주8 元后 : 天子, 또는 君主를 이른다. 元은 ‘크다‧으뜸이다.’라는 뜻이다. 韋昭는 “元은 善의 뜻이다.[元 善也]”라 하였으나 따르지 않는다.
역주9 湯誓 : 《書經》 〈商書湯誓〉를 말한다. 그러나 今本 〈湯誓〉에는 아래 내용이 없고, 〈湯誥〉에 “其爾萬方有罪在予一人予一人有罪無以爾萬放”으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역주10 余一人 : 天子가 자신을 스스로 일컫는 말.
역주11 : 四部備要本에는 ‘罪’로 되어 있는데, ‘辠’는 古字이다. 아래도 같다.
역주12 盤庚 : 《書經》 〈商書盤庚上〉을 이른다. 商王盤庚이 商邑으로 도읍을 옮길 때 官民에게 선포한 訓辭로 상‧중‧하 세 편으로 나뉘어 있다.
역주13 般[盤]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고쳤다.
역주14 逸罰 : 과실로 인한 罪. 韋昭는 “逸은 과실이고, 罰은 罪와 같다.[逸 過也 罰 猶罪也]”라고 하였다. 《書經》 〈湯誥〉의 蔡沈集傳에는 “당연히 처벌해야 될 사람을 처벌하지 않은 것이다.[失罰其所當罰也]”라고 하였다.
역주15 : 四部備要本에는 ‘於’자가 없다.
역주16 大事 : 전쟁과 제사를 말한다. 《左傳》 成公13년에 “나라의 큰 일은 제사와 전쟁에 있다.[國之大事 在祀與戎]” 하였다.
역주17 衆濟 : 四部備要本에는 ‘濟衆’으로 되어 있는데, ‘衆濟’가 옳다.
역주18 : 四部備要本에는 ‘故’자 앞에 ‘是’자가 더 있다.
역주19 : 탁
역주20 : 四部備要本에는 ‘莅’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아래도 같다.
역주21 背外內之賂 : 안팎의 도움을 모두 배신한 일. 惠公이 庶子로서 들어와 諸侯가 되고자 하여, 밖으로는 秦穆公에게 군대를 출동시켜 도와주면 성공한 뒤에 河西의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는데 즉위하고 나서는 땅을 주지 않았고, 안으로는 里克과 丕鄭에게 內應하여 奚齊와 卓子를 죽이면 里克에게는 汾陽의 농지 100만을 주고 丕鄭에게는 負蔡의 농지 70만을 주기로 약속하였는데 성공한 뒤에 里克과 丕鄭을 모두 죽인 일을 이른다.
역주22 虐其處者 : 惠公을 따라 망명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內應했던 里克과 丕鄭을 살해한 일.
역주23 : 오
역주24 : 四部備要本에는 ‘立’자 다음에 ‘於’자가 있는데 없는 것이 옳다.
역주25 上帝明神 : 上帝는 하늘이고, 明神은 日月이다.
역주26 朝日夕月 : 朝日은 天子가 春分에 東門 밖에 나가 태양을 향해 절하는 일이고, 夕月은 天子가 秋分에 西門 밖에 나가 달을 맞이하는 일이다.
역주27 位著 : 朝廷의 官員이 되어 職務를 담당함을 이른 말. 韋昭는 “中廷의 좌우를 位라 하고, 門屛 사이를 著라 한다.” 하였다.
역주28 箸[著]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고쳤다.
역주29 以共其上 : 윗사람을 모시어 받듦. 또는 奉養하거나 공급함. ‘共’은 ‘供’과 통용한다.
역주30 : 四部備要本에는 ‘恐’자 다음에 ‘其’자가 더 있다.
역주31 車服旗章 : 車服은 수레와 章服. 旗章은 旌旗와 徽章.
역주32 摯幣瑞節以鎭之 : 摯禮와 幣帛과 瑞玉과 符節을 가지고 威嚴을 무겁게 함. 摯幣는 옛사람들이 서로 만날 때 증여하는 禮物. 瑞節은 瑞玉과 符節. 韋昭는 六摯‧六幣‧六瑞‧六節이 있다 하였다.
역주33 : 四部備要本에는 ‘贄’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아래도 같다.
역주34 : 四部備要本에는 ‘懈’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역주35 夷蠻 : 四部備要本에는 ‘蠻夷’로 되어 있다.
역주36 斧鉞刀墨 : 斧鉞은 死刑을 집행하는 도구로 死刑을, 刀墨은 刺字刑을 집행하는 도구로 刺字刑을 이른다.
역주37 非嗣 : 惠公은 獻公의 嫡長子가 아닌 庶子여서 합법적인 後繼者가 아님을 이른다.
역주38 廣其心而遠其鄰 : 자기의 마음을 넓게 풀어놓고 秦穆公에게 주기로 한 河西의 땅을 주지 않아 友好關係가 疏遠해졌음을 이른다.
역주39 恆象 : 사람이 행하는 善惡에 따라 항상 吉凶의 징조를 미리 나타내 보이는 일.
역주40 : 鎭圭라고 하는 이도 있으나 ‘엄중한 禮’로 풀이하였다.
역주41 隕於韓 : 晉惠公 8년(서기전 644년)에 秦나라는 惠公이 약속을 어긴 데 원한을 품고 征伐하여 韓原에서 싸웠는데, 晉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惠公을 사로잡은 일. 마침 秦穆公의 부인이 晉獻公의 딸이라 3개월 동안만 억류하였다가 석방하여 귀국시켰다.
역주42 晉人殺懷公 : 懷公은 晉惠公의 아들 子圉. 惠公이 죽자 秦나라에 볼모로 가 있던 子圉가 秦나라에서 도망쳐 돌아와 卽位하였다. 周襄王 16년(서기전 636년)에 秦穆公이 군대를 내어 망명해 있던 公子重耳를 들여보내니, 晉나라 사람들이 懷公을 죽이고 重耳를 迎立하였는데 이 사람이 晉文公이다.
역주43 〈懷公〉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44 秦人殺子金子公 : 秦人은 秦穆公. 子金은 呂甥의 字. 子公은 郤芮의 字. 呂甥과 郤芮가 重耳를 받아들인 일을 후회하여 公宮에 불을 질러 文公을 시해하려 하였는데, 이를 알고 文公이 몰래 秦穆公과 王城에서 회합하였다. 두 사람이 公宮에 불을 지르고 文公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도리어 秦穆公의 유인에 빠져 살해되었다.

국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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