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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1)

국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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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秦侵晉止惠公於秦
이라
帥師侵晉하야 至於하다
公謂慶鄭曰 秦寇深矣 奈何 慶鄭曰 君深其怨하니 能淺其寇乎잇가
非鄭之所知也
君其訊하소서하니 公曰
所病也니라하다
한대 慶鄭吉이어늘 公曰 鄭也不이라하고 以家僕徒爲右하고 步揚御戎하며
하고 虢射爲右하야하다
公禦秦師할새 令韓簡視師러니
師少於我호대 鬭士衆이러이다
公曰 何故 簡曰
以君之出也 하고 入也 煩己하고 饑食 其糴하야 三施而無報 故來어늘 今又擊之하니 秦莫不慍이요 晉莫不怠
鬭士是故衆이니이다
公曰 然이나 今我不擊이면 歸必하리니
一夫 不可狃 况國乎아하고 公令韓簡挑戰하야
昔君之 寡人未之敢忘이나
寡人有衆하야 能合之언정 로이다
君若이면 寡人之願也어니와 君若不이면 寡人將無所避니이다
穆公衡雕戈하고 出見使者하야
曰昔君之未入 寡人之憂也 君入而 寡人未敢忘호라
今君旣定而列成하니 君其整列이면 寡人하리라
客還 公孫枝進諫曰
君之不納公子重耳하고 而納晉君하니 是君之不置德하고 而置服也니이다
置而不遂하고 擊而不勝이면 其若爲諸侯笑何
잇가 穆公曰
하다
吾之不納公子重耳하고 而納晉君不置德하고 而置服也니라
然公子重耳實不肯하니 吾又奚言哉
殺其하고 背其外賂하며
彼塞我施하야 하니
若有天이면 吾必勝之리라하고
大夫就車하고 君皷而進之하다
晉師潰하야 戎馬
公號慶鄭曰 載我하라 慶鄭曰
忘善而背德하며 이러니
何我之載잇가
鄭之車 不足以辱君避也니이다
梁由靡御韓簡하고
秦公하야 將止之러니 慶鄭曰 釋來救君하라하야늘
亦不克하야 遂止於秦하다
穆公歸하야 至於하야 合大夫而謀曰
殺晉君與逐出之 與以歸 與復之 孰利
公子縶曰
殺之利니이다
逐之 恐構諸侯 以歸이요 復之 則君臣合作하야 恐爲君憂 不若殺之니이다
公孫枝曰
不可하다
恥大國之士於中原하고 又殺其君以重之 子思報父之仇하고 臣思報君之讎
雖微秦國이라도 天下孰不患이리잇가
公子縶曰
吾豈將徒殺之리잇가
吾將以公子重耳 代之
晉君之無道 莫不聞이오 公子重耳之仁 莫不知니이다
戰勝大國 武也 殺無道而立有道 仁也 勝無後害 知也니이다
公孫枝曰
恥一國之士하고 又曰余納有道以臨汝라하면 無乃不可乎잇가
若不可 必爲諸侯笑니이다
戰而笑諸侯 不可謂武
殺其弟而立其兄하야 兄德我而忘其親이면 不可謂仁이요
이면 是再施而不遂也 不可謂知니이다
君曰 然則若何 公孫枝曰
不若以歸하야 以要晉國之成이며
復其君而質其適子하야 使子父代處秦이면 國可以無害리이다
是故歸惠公하고 而質하니라 秦始하다


102. 나라가 나라를 침범하여 나라가 진혜공晉惠公을 포로로 잡았다
【大義】전쟁에서의 名分을 가진 군대와 명분을 잃은 군대의 勝負 속에 나타나는 事必歸正.
6년에 나라에 풍년이 들어 백성들이 안정되었다.
이에 군사를 거느리고 나라를 침략하여 한원韓原 땅에 이르렀다.
혜공惠公경정慶鄭에게 일러 말하기를 “나라가 깊숙이 침입했으니 어떻게 해야겠느냐?” 하니, 경정이 말하기를 “임금님께서 그들의 원망을 깊게 하였으니 그 침입을 가볍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경정으로서는 알 만한 바가 아닙니다.
임금님께서는 괵석虢射에게 물어보십시오.” 하자, 혜공惠公이 말하였다.
“저것이 저 대부의 단점이다.”
병거兵車의 오른쪽에 탈 사람을 점쳤는데 경정이 한 것으로 점쳐지자 혜공惠公이 말하기를 “그 사람은 공손하지 못하다.” 하고는, 가복도家僕徒를 병거의 오른쪽에 타는 사람으로 삼고 보양步揚에게 병거兵車를 몰게 하였다.
양유미梁由靡한간韓簡의 병거를 몰고 괵석虢射이 〈한간韓簡〉 병거의 오른쪽에 타는 사람이 되어 혜공惠公이 탄 병거의 뒤에 섰다.
혜공惠公나라 군사를 방어하면서 한간韓簡에게 명령하여 〈나라〉 군사를 둘러보게 하였다.
한간韓簡이 말하였다.
“군사의 수효는 우리보다 적었으나 싸우고자 하는 병사의 수효는 우리보다 많았습니다.”
혜공惠公이 말하기를 “무엇 때문인가?” 하니, 한간韓簡이 대답하였다.
“임금님께서 〈나라에서〉 쫓겨났을 때 자신들의 나라에 의지하여 정착하였고, 입국入國할 적에 자신들 나라를 번거롭게 하였고, 〈나라에〉 흉년이 들었을 때 자신들 나라가 쌀을 사들일 수 있게 하여, 세 번씩이나 은혜를 베풀었는데도 보답이 없는 까닭에 치러 왔는데 지금 또 자신들을 공격하고자 나서고 있어, 나라 군사는 누구도 노여움을 품지 않는 사람이 없고 나라 군사는 은혜를 입었으므로 게으른 생각을 내지 않은 군사가 없습니다.
싸우고자 하는 군사가 이 때문에 많습니다.”
혜공惠公이 말하기를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 내가 공격하지 않고 돌아가면 반드시 만만히 알고서 가볍게 여기려 들 것이다.
한 사람의 필부도 만만히 보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하물며 나라이겠느냐!” 하고, 혜공惠公한간韓簡에게 도전하게 하면서 말하였다.
“옛날에 나라 임금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는 과인이 감히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과인에게는 많은 군사가 있어 능히 모을 수는 있지만 능히 해산시킬 수는 없습니다.
나라 군주께서 만약 바로 발길을 돌리신다면 과인寡人이 원하는 일이지만 진군秦君께서 만약 발길을 바로 돌리시지 않는다면 과인으로서도 피할 길이 없을 듯하옵니다.”
목공穆公이 무늬가 조각된 창을 비껴 들고 나와서 사자使者를 보고 말하였다.
“옛날 나라 군주가 입국하지 못하였을 적에도 과인이 그것을 걱정하였고, 나라의 군주가 입국하여 군주 자리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였을 적에도 과인이 그 일을 감히 잊지 못하였다.
지금 나라의 군주가 이미 안정되어 군주 자리가 확고하여졌으니 군주께서 군진軍陣을 정돈한다면 과인이 장차 직접 만나 볼 것이다.”
사자使者가 돌아가자 공손公孫간언諫言을 올렸다.
“옛날에 임금님께서 공자公子중이重耳를 들여보내지 않고 지금의 나라 군주를 들여보내셨는데 그것은 임금님께서 있는 공자公子를 세우지 않고 복종하는 공자를 세우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세우고서 자리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공격하였다가 이기지 못한다면 앞으로 제후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왜 난리가 일어나서 그가 스스로 쓰러지는 날을 기다리지 않으십니까?” 하니, 목공穆公이 말하였다.
“그렇다.
옛날 내가 공자 중이重耳를 들여보내지 않고 지금의 진나라 군주를 들여보낸 것은 있는 이를 세우지 않고 복종하는 이를 세운 것이다.
그러나 공자 중이가 사실상 달가워하지 않는데 내가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느냐?
국내에서 그의 옹립을 주도한 자들을 죽이고 국외로는 뇌물 약속을 저버렸다.
저들이 우리의 베풂을 외면하는 것이 마치 하늘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이다.
만약 하늘이 있다면 내가 반드시 이길 것이다.”
나라 군주가 대부大夫에게 하여 수레에 오르게 하고서는 직접 북을 쳐 군사를 진격시켰다.
나라 군사가 무너져 〈혜공惠公의〉 병거를 끄는 말이 깊은 수렁에 빠졌다.
혜공惠公경정慶鄭을 소리쳐 불러서 말하기를 “나를 태우도록 하라.” 하니, 경정慶鄭이 대답하였다.
“베풀어준 선행도 잊고 은덕도 저버리고 또 길한 점괘마저 무시하셨습니다.
왜 저더러 태우라고 하십니까?
경정의 수레는 임금님께서 욕되게 타시고서 피란할 만하지 못합니다.”
양유미梁由靡한간韓簡의 병거를 몰다 진공秦公을 맞아 싸워서 곧 포획하려는데, 경정慶鄭이 말하기를 “〈진목공秦穆公〉은 놓아두고 이리로 와서 우리 임금을 구하라.” 하였다.
그러나 구하지 못해 마침내 나라에 붙잡혔다.
목공穆公이 귀국하여 왕성王城 땅에 이르러 대부大夫들을 모아놓고 계책을 의논하였다.
나라 군주를 죽이는 것, 〈진나라에서〉 축출하는 것, 귀국시키는 것, 다시 왕위王位를 회복시켜 주는 것들 중 어느 것이 이롭겠느냐?”
공자公子이 말하였다.
“죽이는 것이 이롭습니다.
축출시키면 제후와 결탁할까 염려되고, 귀국시킨다면 우리 국가에 간특한 일이 많을 것이고, 왕위를 회복시켜 주면 군신君臣이 합작하여 임금님의 걱정거리를 만들어낼까 염려되니 죽이는 것만 못합니다.”
공손公孫가 말하였다.
“옳지 않습니다.
대국大國의 군사를 들녘의 한가운데에서 부끄럽게 하고 또 그 임금을 죽여서 치욕을 가중시킨다면, 아들은 아버지의 원수 갚기를 생각하고 신하는 임금의 원수 갚기를 생각할 것입니다.
설사 나라가 아니더라도 천하의 제후諸侯 중에 뉘라서 그런 나라를 걱정거리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공자公子이 말하였다.
“제가 어찌 부질없이 죽이려는 것이겠습니까?
저는 장차 공자公子중이重耳로 대신하려는 생각에서입니다.
나라 군주의 무도無道함에 대해서는 듣지 않은 사람이 없고, 공자公子중이重耳인덕仁德은 알지 못하는 이가 없습니다.
대국大國을 싸워 이긴 것은 무력武力을 과시함이고, 무도無道한 사람을 죽이고 가 있는 사람을 세우는 일은 인덕仁德을 밝힘이고, 이기고서 뒤탈이 없게 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공손公孫가 말하였다.
“한 나라의 군사들에게 치욕을 안기고서 또 내가 도덕道德을 갖춘 공자公子를 들여보내 너희를 다스리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 일이 불가하게 된다면 반드시 제후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승전하고서 제후들의 비웃음을 산다면 무력武力을 드러낸 일이라 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아우를 죽이고 그 형을 세워서 그 형이 우리를 덕스러워하고 그 아우의 죽음을 잊는다면 인덕仁德이 있다 말할 수 없을 것이고,
만약 그 아우의 죽음을 잊지 않는다면 이는 거듭 은혜를 베풀고서도 결과를 얻지 못하는 일이 될 것이니 지혜롭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라 군주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하니, 공손公孫가 말하였다.
“돌려보내서 그것을 인연으로 나라와 화평을 맺어 두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그의 군주 자리를 회복시켜 주고 그의 맏아들을 볼모로 잡아서 아들과 아버지가 번갈아 나라에 머물러 있게 한다면 나라에 해가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혜공惠公을 돌려보내고 아들 자어子圉를 볼모로 잡았으며, 나라가 하동河東 지역의 정무를 처음으로 관장하기 시작하였다.


역주
역주1 六年 : 晉惠公 6년이니 魯僖公 15년(기원전 645년)이다.
역주2 歲定 : 定은 안정됨이다. 한 해 곡식이 풍년이 들어 백성들이 안정된 것이다.
역주3 : 晉나라 땅 韓原이다.
역주4 : 석
역주5 : 諸侯가 다른 姓의 大夫를 호칭하는 말이다.
역주6 卜右 : 兵車의 오른쪽에 타고서 병거에 탄 군주나 장수를 보호할 책임을 지는 武士를 점쳐 정하는 일이다. 그렇게 결정된 사람을 車右라고 한다. 兵車는 장수가 병거의 왼쪽에 자리하고, 모는 사람이 중앙에 위치하고, 무력을 갖춘 사람이 오른쪽에서 비상사태를 대비한다. 《穀梁傳成公5年 輦者不辟范寗注》
역주7 : 四部備要本에는 ‘遜’으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역주8 梁由靡御韓簡 : 梁由靡는 晉나라 대부이고 韓簡은 晉나라 卿이다.
역주9 承公 : 承은 차례, 또는 다음의 뜻이다.
역주10 處己 : 己는 秦나라다. 處己는 惠公이 처음 망명 나가 梁나라에 머물면서 秦나라에 의지한 것을 이른다.
역주11 : 만만히 알고서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싸우지 않고 돌아간다면 秦나라가 반드시 업신여겨 손쉽게 여길 것이란 말이다.
역주12 〈而〉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3 : 四部備要本에는 ‘惠’자 다음에 ‘也’자가 더 있다.
역주14 弗能離也 : 군사들이 싸우고자 하여 해산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역주15 : 선
역주16 : 선
역주17 列未成 : 列은 자리이다. 곧 군주 자리가 안정되지 않음을 이른다.
역주18 將身見 : 직접 뵙겠다는 것은 직접 맞붙어 싸우겠다는 뜻이다.
역주19 : 四部備要本에는 ‘親’으로 되어 있다.
역주20 盍待之乎 : 난리가 일어나 스스로 죽는 것을 기다리지 않느냐는 말이다.
역주21 〈吾〉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2 內主 : 국내에서 擁立을 주도한 사람들, 곧 里克과 丕鄭을 말한다.
역주23 若無天乎云 : 云은 韋昭는 말하다의 뜻이라면서 晉나라의 소행이 마치 하늘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淸나라의 王引之는 그의 저서 《經義述聞》에서 “韋昭가 云자를 위로 붙여 구두를 뗀 것은 文理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云자는 당연히 아래 글의 若자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 ‘若無天乎若云有天’이라고 써야 文理가 순하다. 《三國志》 〈公孫淵傳〉에 바로 이 문장이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하였다.
역주24 : 四部備要本에는 ‘云’자가 없다.
역주25 君輯大夫就車 : 輯은 揖의 뜻이다. 韋昭는 穆公이 대부들에게 揖의 禮를 취하여 각기 병거에 오르도록 한 것이라고 하였으나, 輯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대부를 소집하여 병거에 오르게 하였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역주26 輯[揖]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고쳤다.
역주27 濘而止 : 濘은 깊은 수렁이다. 止는 병거를 끄는 말이 빠진 것이다.
역주28 又廢吉卜 : 앞에서 車右를 점쳤을 때, 경정이 길한 것으로 나온 점괘를 따르지 않고 다른 사람을 車右로 쓴 것을 이른다.
역주29 : 迎의 뜻이다. 遭遇하다라는 말이다.
역주30 : 아
역주31 : 四部備要本에는 ‘救’자 다음에 ‘君’자가 더 있는데 옳지 않다.
역주32 王城 : 秦나라의 땅 이름이다.
역주33 〈之〉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4 國家多慝 : 慝은 나쁜 일이다. 惠公이 秦나라에 머무르는 동안 秦나라 틈새의 좋지 않은 것들을 알아 나중에 이러한 것들이 秦나라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역주35 〈取〉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6 勿[弗]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고쳤다.
역주37 子圉 : 惠公의 맏아들이다. 뒤에 懷公이 되었다.
역주38 知河東之政 : 秦나라가 하동 지역에 관청을 둔 까닭에 하동의 정무를 관장하였다고 한 것이다. 하동은 앞서 惠公이 입국하며 秦나라에 뇌물로 주기로 한 河西, 또는 河外로 불리던 다섯 城이다. 땅 이름이 이렇게 바뀐 것은 晉나라에서 보면 河西이고 秦나라에서 보면 河東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魯僖公 15년에 있었다.

국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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