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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2)

국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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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夫差伐齊不聽申胥之諫
[大義]伍子胥가 당시 吳‧越과 吳‧齊‧魯 사이의 정세를 상세히 분석하여 吳王 夫差의 齊나라 정벌을 적극적으로 만류함.
吳王夫差旣許越成하고 乃大戒師徒하야 將以伐齊한대 申胥進諫曰
어늘 而王弗受하시니 夫天命有反이니이다
今越王句踐 恐懼而改其謀하야 舍其愆令하고 輕其征賦하며 施民所善하고 去民所惡하며 身自約也하야 裕其衆庶하니
其民殷衆하야 以多甲兵이라
컨댄 猶人之有腹心之疾也로소이다
夫越王之不忘敗吳하야 於其心也하야吾閒이어늘 今王非越是圖하고 而齊魯以爲憂하시니 夫齊魯 譬諸疾하면 疥癬也니이다
豈能涉江淮하야 而與我爭此地哉리잇가
將必越實有吳土리이다
昔楚靈王不君하야 其臣箴諫不入하고 乃築臺於之上하야 闕爲石郭하고하니이다
罷弊楚國하야 以閒陳蔡하며 不修하고하며 三歲於하야 以服吳越하니이다
其民不忍飢勞之殃하고 三軍叛王於하니
王親獨行하야 屛營偟於山林之中이라가 三日 乃見其
하고 王呼之曰 余不食三日矣로라 疇趨而進하니 王枕其股以寢於地
王寐어늘 疇枕王以墣而去之하니이다
王覺而無見也어늘 乃匍匐將入러니 棘闈不納이어늘 乃入
尹申亥氏焉하니이다
王縊이어늘 申亥負王以歸하야 而土하니
此志也 豈遽忘於諸侯之耳乎잇가
今王旣變하야 而高高下下하야 以罷民於하고 天奪吾食하야 都鄙荐饑어늘 今王將狠天而伐齊로소이다
夫吳民離矣
體有所傾이면 譬如羣獸然하야 一个負矢 將百羣皆奔하나니 王其無方收也
越人必來襲我하리니 王雖悔之인들 其猶有及乎잇가
弗聽하다
十二年 遂伐齊하니 齊人與戰於하야 齊師敗績하고 吳人有功하다


227. 부차夫差나라를 정벌하여 신서申胥간언諫言을 듣지 아니하다
오왕吳王부차夫差가 이미 나라에서 요구한 강화講和를 허락하고 마침내 대규모로 군대를 준비 정돈하여 나라를 치려고 하자 신서申胥간언諫言을 올려 말하였다.
“종전에 하늘이 나라를 나라에 주었는데 군왕君王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았으니, 천명天命은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지금 월왕越王구천句踐이 우리를 두려워하여 자신의 계책을 고쳐서 그동안의 잘못된 정령政令을 버리고 세금 징수를 경감하며, 백성이 좋아하는 정령政令을 시행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법령法令은 버리며, 자신이 몸소 검소하고 절약하여 백성의 생활을 부유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의 백성의 수가 많이 증가하여 군대의 수도 따라서 많아졌습니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를 비유하면, 마치 사람의 뱃속과 심장에 깊숙이 들어 있는 병과 같습니다.
월왕越王구천句踐나라에 패배한 치욕을 잊지 않고 마음속에 경계하며 두려워함을 지녀 군사를 훈련시키면서 우리에게 보복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지금 군왕君王께서는 나라를 대비할 계책은 고려하지 않으시고, 나라와 나라를 공격 대상으로 삼아 염려하고 계시니, 나라와 나라는 질병에 비교하면 피부에 나는 옴 따위의 작은 병에 불과합니다.
저들이 어떻게 멀리 장강長江회수淮水를 건너 우리와 이 영토를 쟁탈할 수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반드시 나라가 정녕 나라 영토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군왕君王께서는 어찌 사람의 일을 거울로 삼아 성패成敗를 비춰 봐야지, 물을 거울로 삼아 형체만을 비춰서는 안 된다고 여기지 않으십니까.
예전의 초영왕楚靈王은 임금 노릇을 제대로 못하여 신하들이 충언忠言으로 경계하고 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마침내 장화章華에 높은 누대樓臺를 축조하여 산을 파서 석곽石郭을 만들고 한수漢水를 막은 뒤 물을 끌어들여 임금의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라의 국력國力을 피폐하게 하면서 기회를 타 나라와 나라를 멸망시켰으며, 방성方城 안의 국내 정치는 밝게 닦지 않고 중원中原나라와 나라 지역을 넘어 동쪽의 나라와 나라 등을 정복하려고 하며, 3년 동안 저수沮水분수汾水 사이에서 전투를 벌여 나라와 나라를 정복하려고 하였습니다.
나라 백성들은 굶주림과 힘에 겨운 재난을 참지 못하고 삼군三軍건계乾谿에서 초영왕楚靈王을 배반하였습니다.
영왕靈王이 자기만 단신으로 도망을 나가 두려움에 정신없이 산림 속을 헤매다가 3일 만에 궁중에서 청소를 담당하는 연인涓人를 만나자 영왕靈王이 불러서 말하기를, ‘내가 밥을 먹지 못한 지 3일이나 되었다.’라고 하니, 가 종종걸음으로 영왕靈王 앞으로 나아가자, 영왕靈王이 그의 허벅지를 베고 땅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영왕靈王이 깊이 잠들자 는 자기의 허벅지 대신 흙덩이를 영왕靈王에게 베어 주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영왕靈王이 잠에서 깨어나 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마침내 엉금엉금 기어서 극성棘城의 성문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는데 성문을 지키는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아 우윤芋尹신해씨申亥氏의 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영왕靈王이 목을 매어 자살하자 신해申亥영왕靈王의 시체를 짊어지고 돌아와서 그의 집에 흙을 파고 묻어 주었습니다.
명확하게 기억하는 이런 일들을 어찌 제후諸侯들이 귀로 들은 것을 선뜻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 군왕君王께서 가 백성을 편안히 살게 하려고 애써서 수립한 을 변경하여 높은 곳에는 높은 누대樓臺를 짓고 낮은 곳에는 깊은 연못을 파서 고소대姑蘇臺를 짓는 일에 백성들을 피곤하게 하였고, 지금 하늘이 흉년을 내려 우리의 양식을 빼앗아 가 도성都城과 변방 고을을 따질 것 없이 거듭 기근이 들고 있는데, 지금 군왕君王께서는 하늘의 뜻을 어기고 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
나라의 민심民心은 떠나 흩어졌습니다.
국체國體가 기울어지는 일이 발생하는 경우를 비유하면 떼를 지은 짐승의 무리 중에 한 마리가 화살을 맞으면 그 나머지 모든 무리가 다 달아나는 이치와 같으니, 이런 국면이 오면 군왕君王께서는 수습할 방도가 없을 것입니다.
이 기회를 노리는 월왕越王구천句踐은 반드시 쳐들어와 우리를 습격할 것이니, 군왕君王께서 그제서야 뉘우친들 도리어 미칠 수 있겠습니까?”
오왕吳王이 그의 하는 말을 따르지 않았다.
오왕吳王부차夫差재위在位 12년에 마침내 나라를 치니, 나라 군대가 애릉艾陵에서 맞아 싸웠으나 나라 군대는 크게 패배하였고, 나라는 승리하여 성공을 얻었다.


역주
역주1 天以越賜吳 : 魯哀公 2년(기원전 493년)에 吳나라가 越나라를 쳐 夫椒에서 크게 패한 월나라가 거의 멸망 지경에 이르자 越王 句踐이 5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會稽山에서 지키며 吳王 夫差에게 굴욕을 무릅쓰고 講和를 요청했던 일. 앞의 ‘越王句踐命諸稽郢行成於吳’章 참고.
역주2 譬越之在吳也 : 四部備要本에는 ‘譬’와 ‘也’가 없다. 그러나 《太平御覽》 七四二卷에 ‘譬’는 없고 ‘也’는 있다.
역주3 戚[侙] : 汪遠孫의 《國語明道本攷異》에 “‘戚’자는 응당 ‘侙’으로 써야 한다. 《說文》에 ‘侙은 惕이다.’ 하고는 《國語》를 인용하여 ‘於其心侙然’이라고 하였다.”라 하여 고쳤다.
역주4 服士 : 병사를 훈련하여 전투하는 일을 익히게 함. 服은 習의 뜻이다.
역주5 : 四部備要本에는 ‘伺’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역주6 〈其〉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7 鑑於人無鑑於水 : 사람을 거울로 삼아야 成敗를 비추어 알 수 있고, 물을 거울로 삼으면 자기의 형체만을 살펴볼 뿐임을 이르는 말. 《書經》 〈酒誥〉에 “사람은 물을 거울로 삼지 말고, 의당 사람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人無於水監 當於民監]”라 하였다.
역주8 {以} : 汪遠孫의 《國語明道本攷異》에 “攷正에 ‘以는 衍文이다.’라 하였고, 《左傳》 昭公 13년의 孔穎達 疏와 《爾雅》 〈釋言 二〉의 邢昺 疏에 《國語》를 인용하면서 모두 ‘以’자가 없다.” 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9 章華 : 臺 이름. 湖北省 潛江市 남서쪽 龍彎區에 있었다. 기원전 535년에 楚靈王이 축조하였다.
역주10 陂漢以象帝舜 : 漢水를 막아서 舜임금의 무덤 형태처럼 만듦. 舜임금의 무덤이 九薿山에 있고, 묘역 사방에 물이 에워싸고 흐르는데, 楚靈王이 이것을 본떠 漢水를 막고 물을 이끌어 자기의 무덤을 감돌아 흐르도록 한 것을 이른다.
역주11 方城之內 : 方城은 현재 河南省 葉縣 남쪽에 있는 山. 당시 楚나라의 북쪽 경계에 있었기 때문에 ‘方城의 안’은 楚나라의 內政을 이른다.
역주12 踰諸夏而圖東國 : 諸夏는 中原 지역에 있는 陳나라와 蔡나라. 東國은 中原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吳나라‧越나라 등. 곧 陳나라‧蔡나라를 넘어서 吳나라‧越나라를 넘보는 것을 이른다.
역주13 沮汾 : 沮水와 汾水. 둘 다 楚나라의 동쪽 변경의 乾谿 일대 지역을 흐르는 하천.
역주14 乾谿 : 楚나라의 땅 이름. 지금의 安徽省 亳縣 동남쪽에 있었다.
역주15 : 四部備要本에는 ‘仿’으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역주16 涓人 : 《史記》 〈楚世家〉에는 ‘鋗人’으로 되어 있다.
역주17 涓人 : 궁중에서 청소를 담당하는 하급 관리. 일설에는 가까이서 모시는 內侍라고 한다.
역주18 〈於〉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9 棘闈 : 棘城에 들어가는 성문. 棘城은 지금의 河南省 永城縣 남쪽에 있던 楚나라의 땅 이름. 闈는 門.
역주20 芋尹申亥氏 : 芋尹은 楚나라의 벼슬 이름. 申亥는 芋尹 無宇의 아들. 무우가 두 차례나 영왕의 명을 거역했는데도 영왕이 처벌하지 않았었는데 이때 그의 아들 申亥가 그 은공을 생각하여 영왕을 찾아 棘闈에서 만나 집으로 맞아들였다 한다. 《左傳 昭公 13년》
역주21 芊[芋] : 四部備要本에 ‘芋’로 되어 있고, 《左傳》 昭公 7년에도 ‘芋’로 되어 있어 고쳤다.
역주22 埋之其室 : 申亥는 靈王의 시체를 자기의 집에 묻어 장사를 치르면서 자기의 두 딸을 殉葬시켰는데, 後年에 靈王의 죽음을 알리고 改葬하였다고 한다. 《左傳 昭公 13년》
역주23 鮌禹之功 : 鮌과 禹가 홍수를 다스려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준 功業을 이른 말. 禹는 鮌의 아들이고 아버지의 사업을 계승하여 홍수를 다스려 성공을 거두었다.
역주24 姑蘇 : 臺 이름. 지금의 江蘇省 吳縣 남서쪽의 姑蘇山 위에 있었다.
역주25 艾陵 : 齊나라의 땅 이름. 지금의 山東省 萊蕪縣의 북동쪽에 있었다. 일설에는, 산동성 泰安市 남동쪽에 있었다고 한다.

국어(2) 책은 2022.07.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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