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吳欲晉戰得爲盟主
[大義]吳王 夫差가 王孫 雒의 계책을 따라 군대의 강력한 威容을 과시하여 晉나라를 굴복시키고 盟主가 된 일을 기술함. 대의>
夜中
에 乃令
하고 係馬舌
하며하고 陳士卒百人
하야 以爲徹
하다
行頭
는 皆
鐸拱稽
하고 建
하며 奉
하고 十行
은 一
建旌提鼓
하며 挾經秉枹
하고하고 挾經秉枹
하다
左軍亦如之
하야 皆赤常赤
丹甲朱羽之矰
하니 望之如火
하고
右軍亦如之하야 皆玄常玄旗黑甲烏羽之矰하니 望之如墨이러라
爲帶甲三萬하야 以勢攻하야 雞鳴乃定하니 旣陳에 去晉軍一里러라
昧明
에 王乃秉枹
하고 親就鳴鐘鼓
하고 振鐸
하니 勇怯盡應
하야 三軍皆譁
以振旅
하니 其聲動天地
러라
曰 兩君偃兵接好를 日中爲期어늘 今大國越錄하야 而造於弊邑之軍壘하니 敢請亂故하노이다
曰 天子有命
하사대 周室卑約
하야 貢獻莫入
하니 上帝鬼神
을 而
어늘 無姬姓之振也
라하사來告
하시니라
孤日夜相繼
하야 匍匐就君
호대今非王室不
是憂
하고하야하고
하야 以力征一二
하니 孤欲守吾
이나 進則不敢
이오 退則不可
라
今會日薄矣어늘 恐事之不集하야 以爲諸侯笑일까하노라
董褐將還
에 王稱
하야 曰 攝
와 與王士五人
하야 坐於王前
하라하니
小則嬖妾嫡子死요 不則國有大難이며 大則越入吳니이다
曰 曩君之言
에 周室旣卑
하야失禮於天子
하니 請
하야 收文武之諸侯
라하야늘
讓日至
하야 曰 昔
不失
하고 春秋必率諸侯
하야 以顧在余一人
이러니 今伯父有蠻荊之虞
하야 禮世不續
이라하고 用命孤禮佐
하야 以見我一二兄弟之國
하야 以休君憂
라하니이다
今君掩王東海
하야 以淫名聞於天
하니 君有
而自踰之
어든 况蠻荊則何有於周室
이리오
夫諸侯無二君
이오 而周無二王
이니 君若無卑天子
하야 以干其不祥
하고 而曰吳公
이면 孤敢不順從君命長弟
리오
吳王許諾하고 乃退就幕而會하야 吳公先歃하고 晉侯亞之하다
吳王旣會
에 越聞愈章
하니 恐齊宋之爲己害也
라 乃命王孫雄
하야 先與
하고 以爲過賓於宋
하야 以焚其北郛焉而過之
하다
231. 오吳나라가 진晉나라와 싸우려고 하여 맹주盟主가 되다
오왕吳王부차夫差가 황혼 무렵에 지시를 내려 말에게 곡식을 먹이며 군사들을 배불리 먹게 하였다.
밤중이 되자 명령을 내려 병기兵器를 잡고 갑옷을 입으며 말의 혓바닥을 붙들어 매고 화덕의 불을 밖으로 꺼내어 진중陣中을 환하게 비추게 하고, 군사 1백 명을 똑같이 한 항行으로 편성하여 1백 항行을 만들었다.
한 항行마다 우두머리는 모두 관사官師로서 방울을 품에 안고 군사의 명부를 손에 잡으며, 비호肥胡를 세우고 무늬 있는 코뿔소의 가죽으로 만든 방패를 받쳐 들며, 열 항行은 한 사람의 폐대부嬖大夫가 통솔하여 새의 깃을 쪼개어 장식한 정旌을 세우고 북을 손에 들며, 병서兵書를 끼고 북채를 잡으며, 또 십정十旌은 한 사람의 장군將軍이 통솔하여 해와 달을 그린 상기常旗를 꽂고 전고戰鼓를 북틀에 매달아 세우며, 병서兵書를 끼고 북채를 잡게 하였다.
1만 명으로 방진方陣을 만들어 모두 흰색 하의下衣를 입고 교룡交龍을 그린 흰 기旗를 세우며 흰 갑옷을 입고 흰 새 깃으로 살깃을 단 화살을 등에 메니, 멀리서 바라보았을 적에 마치 흰 띠풀 꽃이 핀 것과 같았다.
오왕吳王이 직접 도끼를 잡고 곰과 호랑이를 그린 흰 기旗를 꽂고 방진方陣의 중앙에 우뚝 서 있었다.
좌군左軍도 중군中軍과 똑같이 하여 모두 붉은 하의下衣를 입고 새매를 그린 붉은 기旗를 세우며 붉은 갑옷을 입고 붉은 새 깃으로 살깃을 단 화살을 등에 메니, 멀리서 바라보았을 적에 마치 맹렬히 타오르는 불과 같았다.
우군右軍도 중군中軍과 똑같이 하여 모두 검은 하의下衣를 입고 검은 기旗를 세우며 검은 갑옷을 입고 검은 새 깃으로 살깃을 단 화살을 등에 메니, 멀리서 바라보았을 적에 마치 넘실대는 먹물과 같았다.
갑옷을 입은 무장한 군사 3만 명을 결성해 강력한 공격 태세를 갖추게 하여 첫닭이 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진세陣勢를 확정하니, 군진軍陣의 배치를 끝내고 나자 진晉나라 군대와의 거리는 단지 1리里 정도였다.
어스름 날이 샐 무렵 오왕吳王이 북채를 잡고 직접 나와 종鐘과 전고戰鼓를 치고 정녕丁寧을 두드리고 순우錞于를 울리며 방울을 흔드니, 용감한 자와 겁쟁이를 막론하고 전군全軍이 일제히 호응하여 삼군三軍이 모두 환호하자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진晉나라 군대가 크게 놀라 나오지 못하고 군영軍營을 두루 다니며 성루城壘를 손질하여 방어를 강화하고 동갈董褐에게 이렇게 된 사유를 물었다.
“두 군주君主께서 전쟁을 중지하고 우호友好를 다짐하는 행사를 정오正午에 행하기로 시간을 정하였었는데, 지금 귀국貴國이 회맹會盟 순서를 뛰어넘어 우리나라의 군영軍營 앞에까지 왔으니, 감히 회맹會盟의 순서를 어지럽히는 까닭을 묻고자 합니다.”
“천자天子께서 명하시되, ‘주周나라 왕실王室의 권위가 낮아지고 쇠약해져서 제후諸侯들이 공물貢物을 바치지 않아 상제上帝와 선조先祖의 신神에게 제사를 드려 고축告祝하는 일을 못하게 되었는데, 동성同姓인 희성姬姓제후諸侯도 구원해 주는 이가 없다.’라고 하시어 도보徒步와 전거傳車로 우리나라에 전달해 왔다.
내가 밤낮을 달려서 힘을 다해 기듯이 진晉나라 국군國君에게 나왔으나 지금 진晉나라 국군國君은 주왕실周王室의 평안하지 못한 것은 걱정하지 않고 편안히 진晉나라의 많은 민중民衆을 믿어 주왕실周王室을 깔보는 융戎‧적翟‧초楚‧진秦 등을 정벌하여 본때를 보이지 않는다.
또 장유長幼의 예절을 행하지 아니하여 무력으로 우리의 한두 형제국兄弟國을 정벌하고 있으니, 내가 우리 선군先君의 반열과 작위를 지키고자 하나 감히 선군先君을 초월할 수는 없고 선군先君보다 뒤처지는 것은 불가하다.
지금 회맹會盟하는 날이 임박하였는데 이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제후諸侯의 웃음거리가 될까 걱정스럽다.
내가 굴복하여 진晉나라 군주君主를 섬기는 일이 오늘의 전투에 달려 있고 내가 맹주盟主가 되어 진晉나라 군주君主를 섬길 수 없는 것도 오늘의 전투에 달려 있다.
귀국貴國의 사자使者가 멀리 오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직접 귀국貴國의 군영軍營 밖에 와서 그대들의 명령을 들으려는 것이다.”
동갈董褐이 돌아가려고 할 때, 오왕吳王이 좌부左部의 군리軍吏를 불러서 “소사마少司馬자玆와 왕사王士 다섯 사람을 잡아다가 왕王의 앞에 앉혀라.”라고 하였다.
이들이 모두 앞으로 나와 동갈董褐의 앞에서 목을 찔러 죽음으로써 돌아가 보고하게 하였다.
동갈董褐이 군영軍營으로 돌아가 복명復命하기를 마치고 나서 이내 조앙趙鞅에게 말하였다.
“제가 오왕吳王부차夫差의 안색을 살펴보았는데 큰 걱정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걱정이면 사랑하는 첩妾이나 적자嫡子가 죽은 것일 테고 그게 아니면 나라에 큰 반란이 일어난 일이 있을 것이며, 큰 것으로 말하면 월越나라가 침공侵攻한 일일 것입니다.
그는 장차 더욱 포악해지게 되어 있어서 그들과 싸울 수 없으니 당신께서는 오왕吳王이 먼저 삽혈歃血하여 맹주盟主가 되도록 허락하여 위험을 기다리는 일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 조건 없이 허락할 수는 없습니다.”
진晉나라가 동갈董褐을 시켜 오吳나라에 가 복명復命하게 하였다.
“우리나라 국군國君께서 감히 무력武力을 시위하거나 직접 찾아 뵐 수가 없어서 저 동갈董褐을 시켜 다음과 같이 복명復命하게 하였습니다.
‘저번 군주君主의 말에 「주왕실周王室의 권위가 이미 낮아져서 제후諸侯가 천자天子에 대한 예禮를 잃었으니, 거북 등딱지로 점을 쳐 바로잡아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시대에 제후諸侯들이 천자天子를 받들던 예禮를 회복하라」고 하였습니다.
저와 이하 사람들은 천자天子와 아주 가깝게 있어서 받아야 할 죄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꾸짖는 말이 날마다 이르러 말하기를, 「옛날 오백부吳伯父는 1년 사철에 행하는 제후諸侯의 예禮를 잃지 않고 반드시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와서 나에게 조회朝會를 했었는데, 지금 오백부吳伯父는 만蠻과 형荊이 뒤를 엿보는 우려가 있어서 조회朝會하는 예禮를 대대로 계속하여 행하지 못한다고 하고는 나에게 명하시기를, 예의禮儀로 주공周公을 도와 우리 한두 희성姬姓형제국兄弟國을 조회朝會 오도록 하여 오왕吳王의 주周나라에 대한 걱정을 그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군주君主께서는 동해東海 지역 일대를 차지해 왕王 노릇하여 왕王이라는 참람한 호칭이 천하에 알려졌으니, 군주君主께서는 넘어서는 안 되는 예禮의 한계를 스스로 넘었는데, 더구나 만蠻이나 형荊은 주왕실周王室에 무슨 예의禮儀가 있겠습니까?
천자天子가 책봉策封할 때 주는 명규命圭에 명령하는 말이 있으니, 본디 오吳나라의 군주君主는 오백吳伯이라 하였고 오왕吳王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후諸侯들이 이 때문에 오吳나라를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제후諸侯에게는 맹주盟主로 섬기는 두 임금이 없고, 주周나라에는 두 사람의 왕王이 없으니, 귀국貴國군주君主께서 만일 천자天子의 권위를 얕잡아 보아 상서롭지 못한 일을 범하지 말고 오공吳公이라고 한다면 내가 감히 귀국貴國군주君主께서 장유長幼의 차서를 따라 선후先後로 삽혈歃血하라는 명령을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오왕吳王이 허락하고 군대를 퇴각시킨 뒤 장막 안에 나아가 회맹會盟하여 오공吳公이 먼저 삽혈歃血하고 진후晉侯가 두 번째로 삽혈歃血하였다.
오왕吳王이 회맹會盟을 마쳤을 적에 월越나라가 강성하다는 소문이 더욱 퍼지니 오왕吳王은 제齊나라와 송宋나라가 자기를 위해危害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서 왕손王孫락雒에게 명하여 용획勇獲과 함께 먼저 보병을 거느리고 길을 지나가는 손님이라는 핑계를 대고 송宋나라를 지나가면서 송宋나라 국도國都의 북쪽 외성外城을 불태워 수비하는 병력을 없게 한 뒤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