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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1)

국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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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祭公諫穆王征犬戎
穆王將征犬戎할새 公謀諫曰
不可하니이다
先王 耀德하고 不觀兵하니이다
夫兵戢而時動이니 動則威 觀則玩이요 玩則無震이라
是故 曰 載戢干戈하며 載櫜弓矢하고 我求懿德하야 肆于時夏하니 允王保之라하니이다
先王之於民也 正其德而厚其性하며 阜其財求而利其器用하며 明利害之鄕하고 以文修之하야
使務利而避害하고 懷德而畏威
故能保世以滋大하니이다
昔我先 世后稷하야 以服事虞‧夏러니
及夏之衰也 棄稷弗務하야 我先王不窋 用失其官하고
而自竄於戎翟之間하야 不敢怠業하야
時序其德하고 纂修其緖하며 修其訓典하야
朝夕恪勤하야 守以惇篤하고 奉以忠信하야 奕世載德하야 不忝前人하니이다
至於武王하야 昭前之光明하고 而加之以慈和하야 事神保民하니 莫不欣喜하니이다
商王帝辛 大惡於民하니 庶民 弗忍하야 欣戴武王하야 以致戎於商牧하시니
是先王 非務武也 勤恤民隱하야 而除其害也니이다
이요 邦外이요 侯‧衛이요 蠻‧夷이요 戎‧翟이라
甸服者 하고 侯服者 하며 賓服者 하고 要服者 하며 荒服者 하나니
日祭‧月祀‧時享‧歲貢‧終王 先王之訓也니이다
有不祭則修意하고 有不祀則修言하며 有不享則修文하고 有不貢則修名하며 有不王則修德하야
序成而有不至하면 則修刑하니이다
於是乎 有刑不祭하며 伐不祀하며 征不享하며 讓不貢하며 告不王이니이다
於是乎 有刑罰之辟하며 有攻伐之兵하며 有征討之備하며 有威讓之令하며 有文告之辭하니이다
布令陳辭호대 而又不至 則又增修於德하고 無勤民於遠이라
是以近無不聽하고 遠無不服하니이다
今自之終也 犬戎氏以其職來王이어늘
天子曰 予必以라하시고 且觀之兵하시니
其無乃廢先王之訓하야 而王幾頓乎잇까
吾聞夫犬戎樹惇하야 能帥舊德하야 而守終純固하니 其有以禦我矣니이다
不聽하고 遂征之하야 得四白狼 四白鹿以歸하니
自是 荒服者不至하니라


국어國語 제1권
주어周語
나라는 황제黃帝의 후예로 희성姬姓이니, 시조始祖후직后稷의 이름은 이다. 의 어머니 유태씨有邰氏의 딸 강원姜源이 어느 날 들에 나갔다가 대인大人의 발자국을 밟았는데 몸에 감동感動이 오는 걸 느꼈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를 상서祥瑞롭지 못하다 하여 내다 버렸는데 짐승들이 보호하므로 다시 거두어 길러 뒤에 후직后稷이 되었다 한다. 제순帝舜시대에 (지금의 섬서성陝西省무공현武功縣 남서쪽에 있던 옛 나라 이름)에 봉해졌고, 후직后稷이 죽은 뒤 아들 불굴不窋이 계승하였으나 불굴不窋 말년에 하후씨夏侯氏의 정치가 쇠락衰落하여 후직后稷의 벼슬을 없애고 농업을 힘쓰지 않으므로 불굴不窋직위職位을 잃고 서융西戎으로 달아나 살았다.
불굴不窋이 죽은 뒤 을 거쳐 공류公劉에 이르러 서융西戎에 살면서 다시 후직后稷유업遺業을 닦아 농사에 힘쓰니 여기서부터 주도周道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공류公劉의 아들 경절慶節이 계승하여 도읍을 (지금의 섬서성陝西省빈현彬縣의 북동쪽)으로 옮겼다. 후직后稷의 12대 태왕太王후직后稷공류公劉훈업勳業을 닦고 을 쌓으며 도의道義를 행하자 국민들이 모두 추앙하였다. 뒤에 훈육獯鬻융적戎狄의 핍박을 받아 (현재의 섬서성陝西省기산현岐山縣에 있는 기산岐山 아래)로 옮겼는데, 셋째 아들 계력季歷문왕文王을 낳았는데 성인聖人의 자질이 있었다. 계력季歷이 뒤를 계승하였고, 문왕文王천명天命을 받아 천하의 3분의 2를 소유하였으며, 무왕武王나라를 멸망시킨 뒤 천하를 차지하였다. 목왕穆王 이후로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여왕厲王무도無道하니 국민의 습격을 받아 (지금의 산서성山西省곽현霍縣)로 달아나서 그곳에서 죽자 선왕宣王중흥中興을 꾀하였다. 유왕幽王포사褒姒에게 빠져 폭정暴政을 하다가 견융犬戎에게 살해되자, 평왕平王이 동쪽 낙양洛陽으로 천도遷都하여 왕성王城(하남성河南省낙양현성洛陽縣城의 서쪽. 곧 낙읍洛邑)에 거주하였다. 이 이후를 동주東周라고 부르며, 평왕平王으로부터 25째인 난왕赧王에 이르러 나라에 멸망되었다.
1. 채공祭公견융犬戎을 정벌하려는 목왕穆王에게 하다
【大義】先代의 聖德을 지닌 天子들은 德을 밝히고 武力示威를 하지 않는 것으로써 주장을 삼았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文德으로 백성들을 臣服시켜야지 武力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다.
주목왕周穆王이 장차 견융犬戎을 정벌하려고 하자, 채공祭公모보謀父가 간하였다.
“옳지 않습니다.
선왕先王들은 천하에 을 밝게 제시提示하였고, 열병閱兵을 하지 않았습니다.
병기兵器를 거두어 저장하였다가 때가 이르렀을 적에 썼으니, 쓰게 되면 두려워했고, 열병閱兵을 자주 하게 되면 깔보며, 깔보면 두려워함이 없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나라 문공文公에 ‘방패와 창을 수장收藏하며, 궁시弓矢를 활집에 넣고 우리(武王)가 아름다운 덕을 구하여, 이 큰 악장樂章에 큰 공덕功德을 다 늘어놓았으니, 진실로 천명天命을 잘 보존했다.’라고 했습니다.
선왕先王이 백성에 대해 그 을 바르게 하여 그 성정性情하게 하기를 힘쓰며, 재물 구하는 것을 풍부豐富하게 하여 그 기용器用을 이롭게 하며, 이롭고 해로운 방향을 밝히고 문덕文德으로 닦았습니다.
백성들에게 를 힘써 해로움을 피하고, 감복感服하여 형벌刑罰위엄威嚴을 두려워하게 하였습니다.
때문에 〈국운國運을〉 대대로 지켜서 더욱 성대하게 발전發展했던 것입니다.
옛날 우리 선조先祖께서 대대로 후직后稷(농정農政을 주관하는 벼슬)이 되어 나라와 나라를 직분職分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나라의 정치가 쇠퇴衰退해졌을 때, 후직后稷직임職任을 버리고 힘쓰지 않아 우리 선왕先王불굴不窋이 그 때문에 관직官職을 잃고,
스스로 지방의 사이로 도망쳐서 감히 직업職業을 게을리 하지 않아
선대先代서술敍述하고, 선대先代의 일을 계승繼承하였으며, 선대先代훈전訓典(교훈敎訓법도法度)을 닦아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고 부지런히 힘써서, 돈독敦篤함으로써 지키고, 충신忠信으로 받들어 대대로 을 이루어 선인先人들의 을 욕되게 하지 않았습니다.
무왕武王에 이르러 전대前代의 빛난 업적을 밝게 드날리고, 더욱 인자仁慈하고 온화溫和을 더하여 신명神明을 섬기고 백성을 보호하니, 신명神明과 백성이 기뻐하며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나라 임금 제신帝辛(주왕紂王의 이름)이 백성들에게 아주 포악한 정치를 하자, 서민庶民들이 참지 못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무왕武王추대推戴하고 저 나라 목야牧野에서 전쟁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선왕先王들이 무력武力을 힘쓰지 않은 것으로써 부지런히 백성의 고통을 염려하여 그 제거除去한 것입니다.
선왕先王제도制度방내邦內전복甸服이고, 방기邦畿 밖은 후복侯服이며, 후복侯服 사이는 빈복賓服이며, 만이족蠻夷族이 사는 곳은 요복要服이며, 서융西戎북적北翟이 사는 곳은 황복荒服이라 하였습니다.
전복甸服에 사는 사람들은 를 공급하고, 후복侯服에 사는 사람들은 를 바치며, 빈복賓服에 사는 사람들은 을 드리고, 요복要服에 사는 사람들은 을 바치며, 황복荒服에 사는 사람들은 을 합니다.
일제日祭월사月祀시향時享세공歲貢종왕終王선왕先王입니다.
전복甸服에 사는 사람이 를 공급하지 않으면 천자天子는 마음을 수양修養하여 자책自責하고, 후복侯服를 바치지 않으면 호령號令을 내려 바로잡으며, 빈복賓服을 드리지 않으면 법령法令을 정비하고, 요복要服을 바치지 않으면 명분名分(존비尊卑직공職貢에 관한 명호名號)을 수정修正하며, 황복荒服을 하지 않으면 문덕文德을 닦아서 오게 하였습니다.
이 〈다섯 가지〉의 차서次序가 이루어졌는데도 오지 않는 자가 있으면 형벌로 다스렸습니다.
이리하여 를 공급하지 않는 자는 형벌刑罰을 시행하며, 를 바치지 않는 자는 공벌攻伐하며, 을 드리지 않는 자는 정토征討하며, 을 바치지 않는 자는 견책譴責하며, 을 하지 않는 자는 문사文辭로 타일렀습니다.
이리하여, 형벌刑罰하는 이 있게 되고, 공벌攻伐하는 무력武力이 있게 되고, 정토征討하는 무비武備가 있게 되고, 〈세공歲貢을 바치지 않는 자에게〉 위엄威嚴을 세워 꾸짖는 호령號令이 있게 되고, 〈종왕終王하지 않는 자에게〉 문사文辭로 타이르는 글이 있게 되었습니다.
명령命令선포宣布하고 말로 타이르는데도 오지 않으면 또 자기의 문덕文德을 더욱 닦아서, 백성들이 먼 곳에 가서 정토征討하는 수고로움이 없게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가까이 사는 백성들은 왕명을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고, 먼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신복臣服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저 대필大畢백사伯仕가 죽으면서부터 〈그 뒤를 이은〉 견융犬戎군주君主가 자신이 행해야 할 직분職分을 가지고 와서 종왕終王하였습니다.
그런데 천자天子는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시향時享하지 않은 죄로 정토征討하겠다.’라 하시고, 또 열병閱兵을 하려고 하십니다.
혹여 선왕先王의 가르침과 법도法度를 폐기하여 〈황복荒服이 행하는 인〉 종왕終王의 일이 파괴되지나 않겠습니까!
제가 듣기에 견융犬戎돈후敦厚성정性情을 수립하여, 옛 선왕先王을 능히 따라 끝까지 전일하게 종왕終王직분職分을 지킨다니, 〈열병閱兵하여 견융犬戎을 정벌하면〉 그들이 우리에게 대응對應명분名分이 있게 될 것입니다.”
왕은 듣지 않고 끝내 정벌征伐하여 그 지방의 흰 이리 네 마리와 흰 사슴 네 마리를 잡아 돌아왔다.
이때부터 황복荒服에 사는 사람들이 나라에 종왕終王하지 않았다.


역주
역주1 : 채
역주2 : 보
역주3 周文公之頌 : 文公은 周文王의 아들 周公姬旦. 頌은 《詩經》 六義의 하나. 〈周頌〉‧〈魯頌〉‧〈商頌〉이 있는데, 모두 宗廟 제사에 쓰는 舞曲의 歌辭이다. 여기서는 〈周頌〉의 時邁篇으로, 周公이 武王의 德을 稱頌하여 지은 것이다.
역주4 : 四部備要本에는 ‘懋’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아래도 같다.
역주5 〈王〉 : 天聖本과 《史記》 〈周本紀〉에 ‘王’자가 있고, 黃丕烈 〈國語札記〉에도 이를 따랐으므로 ‘王’자를 보충하였다.
역주6 先王之制 : 중앙에서 邊鄙까지의 국토를 거리로 나누어 劃定한 구역과 貢賦 등에 관하여 制定한 規定.
역주7 邦內 : 天子國의 國都 사방 1천 리 區域을 이르는 말. 천자가 직접 統治하는 곳으로, 夏代에는 邦內, 商代에는 邦畿, 周代에는 王畿라 하였다.
역주8 甸服 : 天子國의 王城을 중심으로 郊外의 1천 리 안 지역을 이르는 말. 甸은 畿內, 服은 王을 위하여 힘껏 농사지어 받든다는 뜻이라고 한다. 《書經禹貢孔安國傳》‧《周禮夏官職方氏》. 일설에는, 甸은 농사를 짓는다는 뜻이고, 服은 고대에 王畿 밖의 지역을 이르는 말로, 區域 안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역주9 侯服 : 甸服의 밖 5백 리 지역으로, 諸侯들에게 封地로 주는 區域.
역주10 賓服 : 侯服의 밖 5백 리 區域. 諸侯와 中國의 邊境에 끼어 있어서 諸侯國의 外衛가 된다는 뜻이며, 이들이 정기적으로 天子에게 朝貢하면 賓禮로 대접한다 하여 賓服이라 하였다.
역주11 要服 : 賓服의 밖 5백 리 區域. 要는 束縛하다의 뜻. 蠻夷는 國都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中國과 같은 統治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友好 관계를 맺어 天子를 섬기도록 하여 ‘羈縻術’로 다스린다 하여 이른 말이다.
역주12 荒服 : 要服의 밖 5백 리 區域. 이곳은 要服보다 훨씬 더 먼 荒野地域으로 그들의 風俗에 順應하여 天子를 섬기도록 한다 하여 이르는 말이다.
역주13 : 天子가 日祭라 하여 날마다 아버지와 祖父에게 祭祀를 지내는 일. 日祭에 드는 祭物과 費用은 甸服 안의 사람들이 공급한다.
역주14 : 天子가 月祀라 하여 한 달에 한 번씩 高祖와 曾祖에게 祭祀를 지내는 일. 月祀의 祭物과 費用은 侯服의 諸侯가 공급한다.
역주15 : 天子가 時享이라 하여 매 계절마다 네 번 始祖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 時享의 祭物과 費用은 賓服의 君主가 공급한다.
역주16 : 歲貢으로, 1년에 한 번 그 지역에서 나는 珍寶 따위의 특산품을 바치는 일. 要服의 君主는 6년마다 한 번씩 天子에게 朝覲하며 특산품을 禮物로 바친다.
역주17 : 終王이라 하여 天子를 王으로 받들어 臣服함을 이르는 말. 한 王의 시대가 끝나고 新王이 繼承하면 本國에서 나는 귀한 보물을 禮物로 가지고 와서 한 世代에 한 번 天子에게 朝會한다.
역주18 〈而〉 : 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9 大畢‧伯仕 : 둘 다 犬戎의 君主 이름이다.
역주20 不享征之 : 時享은 賓服의 제후가 행하는 禮인데, 이 禮로 犬戎을 꾸짖으며 무력을 보인 것은 잘못이다.
역주21 法度 : 原文의 ‘訓’을 ‘訓則’으로 해석하여 法度로 번역하였다.

국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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