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國語(2)

국어(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국어(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10. 楚聲子論楚材晉用
[大義]인재 관리의 잘못으로 국가가 겪는 뼈아픈 재난의 실례들.
擧娶於러니
子牟有辠而亡
湫擧奔鄭하야 將遂奔晉이러니
將如晉이라가 遇之於鄭郊하야
饗之以璧侑하고 曰子尙良食하라
其皆相子리니 尙能事晉君하야 以爲諸侯主하라 辭曰 非所願也니라
若得歸骨於楚 死且不朽리라 聲子曰 子尙良食하라 吾歸子하리라 湫擧降三拜하고 納其乘馬한대 聲子하다
子木 與之語라가 曰子雖이나 然蔡
二國孰賢 對曰 晉卿 不若楚
其大夫則賢하야 其大夫皆卿才也니이다
若杞梓‧皮革焉어늘 楚實遺之
雖楚有材 不能用也니라 子木曰 彼有公族甥‧舅어니
若之何其遺之材也 對曰 昔令尹 或譖於成王이어늘 王孫啓奔晉이러니
晉人 用之하야하야 晉將遁矣어늘 王孫啓於軍事라가曰 是師也 唯欲之 與王心違
故唯 諸侯之從者 畔者半矣
若敖氏離矣니이다
楚師必敗어늘 何故去之 先軫 從之하야 大敗楚師하니
則王孫啓之爲也니이다
昔莊王 方弱하야爲師하고爲傅러니
使으로 帥師以伐하고 燮及儀父而分其室이라가
師還至하야 則以王러니 廬戢黎殺二子하고 而復王하니이다
或譖析公臣於王이어늘 弗是 析公 奔晉이러니
晉人用之하야 使不規東夏하니 則析公之爲也니이다
譖雝子於恭王이어늘 王弗是 雝子奔晉이러니 晉人 用之하야
하야 晉將遁矣어늘 雝子與於軍事라가曰 楚師可料也니이다
而已
若合而函吾中이어든 吾上下必敗其左右
以攻其王族이면 必大敗之리이다 欒書從之하야 大敗楚師하야하니
則雝子之爲也니이다
於鄭穆公하야이러니
하고 使子南戮於諸侯하니이다
莊王 旣以이라가 則又畀之하고 卒於러니
襄老
於邲이라 二子爭之하야 未有成
恭王使巫臣聘於齊한대하야 遂奔晉이니이다
晉人用之하야 實通吳‧晉하고 使其子狐庸爲行人於吳하야 而敎之射御하야 道之伐楚하야 至於今爲患하니
則申公니이다
今湫擧取於子牟러니 子牟得辠而亡이어늘 執政弗是하고 謂湫擧曰 女實遣之라할새 彼懼而奔鄭이나
緬然引領南望曰 庶幾赦吾辠리라하니이다
又弗圖也하야 乃遂奔晉하야 晉人又用之矣 彼若謀楚 其亦必有豐敗也哉인저
子木愀然 曰 夫子何如
召之 其來乎 對曰
亡人得生이어니 又何不來爲리오
子木曰 不來 則若之何 對曰
夫子不居矣 春秋相事 以還軫於諸侯리니
若資之盜하야 使殺之 其可乎인저
不然이면 不來矣리이다
子木曰 不可하다
我爲楚卿하야 而賂盜以賊一夫於晉 非義也
子爲我召之하라
吾倍其室하리라
乃使湫鳴召其父하야 而復之하다


210. 초성자楚聲子나라의 인재人材나라가 등용해 쓰고 있음을 논하다
추거湫擧신공申公자모子牟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다.
자모子牟가 죄를 짓고 달아나자, 초강왕楚康王은 초거가 그를 빼돌렸다고 생각하였다.
초거가 정나라로 달아났다가 마침내 나라로 도망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채성자蔡聲子나라로 가려다가 정나라의 교외郊外에서 초거와 조우하였다.
음식을 대접하고 옥벽玉璧을 선물하면서 말하기를, “당신은 건강히 밥을 잘 먹도록 하시오!
돌아가신 우리 두 어버이들이 모두 그대를 도와줄 것이니, 능히 진나라의 군주를 잘 섬겨서 제후들의 맹주盟主가 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거절해 말하기를,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만일 이 한 몸의 뼈가 초나라에 돌아가 묻힐 수 있다면 죽는다 하여도 그 임금의 은혜가 썩지 않고 남을 것입니다.” 하니, 성자聲子가 말하기를, “당신께서 밥을 잘 먹고 견디고 있으면 내가 당신을 귀국시킬 것입니다.” 하니, 추거湫擧가 밥을 먹던 자리에서 내려와서 세 번 절하고, 자신의 말 네 마리를 선물하자, 성자가 이를 받았다.
성자가 다시 초나라로 가 영윤令尹자목子木을 만났다.
자목이 말을 나누다가, “그대가 비록 진나라와는 형제 사이이나, 나라는 우리의 외손자 나라이기도 하오.
두 나라 중에 어느 나라가 낫던가요?” 하니, 대답하기를, “진나라의 은 초나라만 못합니다.
그러나 그 대부들은 현명하니, 그 대부들은 감에 해당하는 인재들입니다.
마치 나무나 가래나무, 무소나 코뿔소의 가죽들을 초나라가 실상 그 나라에 보내 주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초나라는 그 같은 인재를 갖추고서도 능히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니, 자목이 말하기를, “진나라에도 공족公族이 있고, 인척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찌해서 우리가 보내 준 인재들이라고 하십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옛날 영윤令尹자원子元의 난리에 어떤 사람이 성왕成王에게 왕손王孫가 연루되어 있다고 참소하였으나, 성왕이 이를 밝혀 다스리지 않아, 왕손 계가 나라로 달아났습니다.
진나라가 그를 등용했는데 성복城濮의 전쟁 때 진나라가 장차 도망하려 하자, 왕손 계가 군사 일에 참여해 있다가 중군中軍 장수인 선진先軫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번 초나라 군사는 오직 자옥子玉의 욕심에서 벌어진 것으로, 왕의 마음과는 맞지 않은 전쟁입니다.
그래서 동궁군東宮軍서광군西廣軍이 집단으로 따라왔고, 제후로서 참여해 따라온 자들은 마음이 떠난 자가 반수입니다.
자옥子玉과는 한 집안인 약오씨若敖氏조차도 전쟁에서 마음이 떠나 있습니다.
초나라 군대를 반드시 깨뜨릴 수 있는데 무슨 일로 도망가려 하십니까?’ 하자, 선진先軫이 그 말을 따라 초나라 군대를 크게 깨뜨렸습니다.
이는 〈잘못해서 초나라로 가게 한〉 왕손王孫에 의해 일어난 것입니다.
옛날 초장왕楚莊王이 아직 20살이 안 되었을 때에 신공자申公子의보儀父로 삼고, 왕자王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서 사숭師崇자공子孔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서족舒族을 정벌하게 하였는데 섭과 의보가 두 장수에게 죄를 씌우고서는 그들의 집안 살림을 양분해 가졌습니다.
전쟁에 나갔던 군대가 바로 발길을 돌려 돌아와서는 왕을 모시고서 땅으로 갔는데 땅의 대부 집려戢黎가 섭과 의보 두 사람을 죽이고 왕을 서울로 복귀시켰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왕에게 석공析公을 참소했는데, 왕이 이를 밝혀 다스리지 않아 석공析公나라로 달아났습니다.
진나라가 그를 등용하였더니 참소로 초나라를 패하게 만들어, 중국의 동쪽을 영향력 아래 두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석공에 의해 저질러진 일입니다.
옛날 옹자雝子의 집안 부형들이 초공왕楚恭王에게 옹자를 참소하였는데, 왕이 이를 밝혀 다스리지 않아 옹자가 나라로 도망가자, 진나라가 그를 등용하였습니다.
언릉鄢陵 땅의 전투에 미쳐서 진나라가 도망가려 하자, 옹자가 군대의 일에 참여하여 있다가 난서欒書에게 일러 말하기를, ‘초나라의 군대 배치는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중군中軍만이 왕족王族의 정예군사들입니다.
만일 우리의 중군中軍과 중군의 양 날개를 이루는 부대를 바꿔 배치하면 초나라 군대는 반드시 우리의 중군을 공격하고자 들 것입니다.
전쟁이 붙어 우리의 중군 속으로 그들이 들어온다면 우리의 상‧하군은 반드시 초나라의 좌군左軍우군右軍을 이길 것입니다.
그런 뒤에 신군新軍상군上軍하군下軍을 집합시켜 초나라의 왕족으로 편성된 군대를 공격하면 반드시 대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자, 난서欒書가 이 말을 따라 초나라 군사를 대패시켰고 공왕恭王은 눈을 잃는 상처까지 입었습니다.
이는 옹자雝子에 의해서 행하여진 일입니다.
옛날 나라 공자公子가 아들 어숙御叔을 위해서 정목공鄭穆公의 딸에게 장가들게 하여 자남子南이란 아들을 낳았습니다.
자남의 어머니가 나라를 어지럽혀서 망하게 하자, 자남까지도 제후들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초장왕楚莊王이 얼마 후에 하씨夏氏의 부인을 데려다가, 신공申公무신巫臣에게 주려다가 다시 자반子反에게 주려 하였고, 끝내는 양로襄老에게 주었습니다.
양로가 땅의 전쟁에서 죽자, 무신巫臣자반子反 두 사람이 하희夏姬(하씨夏氏 부인)를 두고 다투어 결말이 나지 않았습니다.
초공왕楚恭王이 무신을 시켜 나라를 빙문聘問하게 하자 〈무신이〉 하희를 데리고 떠나 나라로 도망쳤습니다.
진나라가 무신을 등용하여 오나라와의 국교를 트게 했고, 그의 아들 호용狐庸나라의 행인行人이 되게 하였으며 오나라 사람들에게 활 쏘기와 말 타기를 가르쳐서 초나라를 치도록 인도하니, 지금까지 환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신공申公무신巫臣에 의하여 행하여진 일들입니다.
지금 추거湫擧왕자모王子牟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는데, 자모가 초나라에 죄를 짓고 도망가자, 집정대신이 이를 조사하여 밝히려 들지 아니하고 추거湫擧에게 일러 말하기를, ‘네가 실상 빼내어 보낸 것이다.’라고 하여, 초거가 두려워서 나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멀리 목을 길게 빼고서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아마도 나의 죄를 사면하여 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나라가〉 생각을 잘못하여 마침내 진나라로 달아나게 되고, 진나라가 또다시 그를 등용하여 저 사람이 만약 초나라를 도모하게 된다면, 그 역시 반드시 〈초나라를〉 대패하게 할 것입니다.”
자목子木이 근심스런 얼굴로 말하기를, “부자夫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부르면 오겠습니까?” 하니, 〈채성자蔡聲子가〉 대답하였다.
“도망간 사람이 살길을 얻었는데 또한 어찌 오지 않겠습니까?.”
자목이 말하기를,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소?” 하니, 대답하였다.
“부자께서 편히 앉아 있지 못하시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서로서로 사신 다니는 일로 제후국가에 수레를 바삐 몰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동양東陽의 도적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를 죽이게 하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자목이 말하기를, “안 될 일입니다.
내가 초나라의 정경正卿으로서 도적들에게 뇌물을 주어 한 사람을 해치우도록 하는 것은 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당신은 나를 위해서 불러오도록 하십시오.
내가 그 가산家産을 배로 늘려 줄 것입니다.”
이에 추명湫鳴을 시켜서 그 아버지를 불러오게 하여 벼슬과 재산을 회복시켜 주었다.


역주
역주1 湫擧 : 초나라 대부이니, 이름은 伍擧. 伍參의 아들이고, 伍奢의 아버지이다. 《左傳》에는 椒擧로 표기하고 있다.
역주2 : 四部備要本에는 ‘椒’로 되어 있다. 아래도 같다.
역주3 申公子牟 : 申 땅에 봉하여진 子牟이니, 王子牟로 호칭되기도 한다. 초나라가 천자국을 자칭한 까닭에 지방 수령을 公이라 칭하는 것이다.
역주4 康王 : 恭王의 아들이니 이름은 昭이다.
역주5 以湫擧爲遣之 : 四部備要本에는 ‘以爲椒擧遣之’로 되어 있다.
역주6 蔡聲子 : 蔡나라의 公孫 歸生이니 字는 子家이며 聲은 시호이다. 唐固가, “초나라가 채나라를 멸망시켜 蔡聲子가 초나라 대부가 되었다.”라고 한 것을 韋昭가 반박하여 이르기를, “蔡나라는 당시 상존하고 있었다. 다만 채성자가 채나라의 외교관으로 진나라와 초나라를 두루 오가는 사신이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聲子가 진나라에 사신으로 간 일은 魯襄公 26년(기원전 547년)의 일이다.
역주7 二先子 : 湫擧의 아버지 伍參과 聲子의 아버지 子朝를 이른다. 《左傳》에, “초나라의 伍參은 채나라 太師 벼슬에 있던 子朝와 친했는데, 그 아들들인 伍擧와 聲子도 서로 잘 지냈다.”고 했다.
역주8 受之 : 거절하지 않고 받은 것은 귀국을 추진할 것을 그 마음에 정하였음을 이른다.
역주9 還見令尹子木 : 還見은 聲子가 晉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다시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 영윤 자목을 만난 것이다. 子木은 屈建의 字이다.
역주10 兄弟於晉 : 蔡나라와 晉나라는 同姓인 姬姓의 나라이므로 이른 말이다.
역주11 吾甥也 : 나를 외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나는 甥姪이라고 호칭하는 것이다. 곧 채나라는 초나라의 外孫에 해당하는 나라라는 말이다.
역주12 子元之難 : 子元은 楚武王의 아들이고, 文王의 동생인 王子 善이다. 成王이 어려서 등극하여 숙부인 자원을 令尹으로 삼았다. 그런데 자원이 성왕의 母后인 文王의 왕비를 꾀어 보고자 하여 왕궁에 거처를 마련하고 있다가 鬪班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으니, 魯莊公 28년 및 30년의 일이다.
역주13 王孫啓 : 子元의 아들이다. 啓가 아버지 子元과 똑같은 죄가 있다고 참소하였다.
역주14 弗是 : 是는 일을 조사하여 처리하는 것을 이른다. 곧 억울한 사연을 조사하여 밝혀 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역주15 城濮之役 : 魯僖公 28년(기원전 632년)에 晉나라와 楚나라가 城濮에서 전투를 벌여 초나라가 패전한 것을 이른다.
역주16 : 四部備要本에는 ‘豫’로 되어 있다.
역주17 先軫 : 晉나라의 中軍을 이끈 진나라 최고 지휘관이다.
역주18 子玉 : 초나라의 令尹. 이름은 得臣이다.
역주19 東宮與西廣 : 東宮과 西廣은 초나라 군대 이름이다.
역주20 : 四部備要本에는 ‘寔’로 되어 있다. 아래도 같다.
역주21 申公子儀父 : 申公 鬪班의 아들인 大司馬 鬪克이다.
역주22 王子燮 : 초나라의 公子이다.
역주23 師崇子孔 : 師崇은 초나라 大師 潘崇이고, 子孔은 초나라 令尹 成嘉이다.
역주24 : 舒庸 舒鳩 舒龍 등 여러 나라들을 이른다.
역주25 : 죄를 판결하여 내린다는 뜻이다.
역주26 : 四部備要本에는 ‘師’로 되어 있다.
역주27 如廬 : 四部備要本에는 ‘如廬戢黎’로 되어 있다.
역주28 實讒敗楚 : 이는 魯成公 6년(기원전 585년)에 晉과 楚가 벌인 繞角의 전투를 이르는 말이다. 초나라가 鄭나라를 치자 진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하여 요각에서 서로 만났다. 이때 晉나라가 전쟁을 포기하고 도망치려 하고 있었는데 析公 臣이 초나라 군사의 약점인 가벼운 점을 이용, 夜襲할 것을 건의하여 초나라가 크게 패하였다. 그 뒤 진나라가 다음 해에 다시 초나라를 공격하여 깨뜨렸고, 이어 蔡나라를 공격하고 沈나라를 쳐 멸망시킴으로써 초나라는 중국의 우호 세력을 모두 잃게 되었다.
역주29 雝子之父兄 : 雝子는 초나라 대부이고, 父兄은 同族의 부형들이다.
역주30 鄢之役 : 魯成公 16년(기원전 575년)에 晉나라와 楚나라가 鄢陵에서 싸워 초나라가 패한 전쟁을 이른다.
역주31 欒書 : 晉나라의 正卿이다.
역주32 中軍王族 : 唐固가, “族은 동성의 친족이다.” 한 것을 韋昭가 반박하여, “族은 휘하에 딸린 사람들이다. 《左傳》에 보면 欒氏와 范氏가 자신의 집안 사람들로 공의 행차를 양쪽에서 보호하고 갔다 라고 하였는데, 당시 두 사람이 중군의 장수들이었으나 중군이 두 사람의 친족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곧 왕의 친족으로 편성된 군대가 아니고 왕 소속의 군대일 따름이라는 말이다.
역주33 若易中下 楚必歆之 : 中下는 中軍의 하급 부대이다. 歆은 욕심을 낸다는 말이다. 欒書와 士燮의 군대를 각기 바꾸어 적에게 약하게 보이도록 하여서 초나라 군대를 유인하는 것이다. 《左傳》에, 欒書와 士燮이 군대의 行伍를 바꾸어서 유인했다고 하였고, 鄭司農은, 중군과 상하군의 卒伍를 바꾼 것이니, 중군의 군대가 정예였으므로 대오를 바꾼 것이라고 하였다.
역주34 三萃 : 三萃는 四萃의 잘못이라는 주장이 있다. 우선 이를 기록한 《左傳》 襄公 26년의 기사가 四萃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韋昭는 당시 晉나라가 四軍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三軍이라고 말한 것은 中軍은 이미 투입되어 있으니까 초나라 군대를 격파한 나머지 삼군인 上軍‧下軍‧新軍이 집결하여 함께 작전을 벌인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주장하였다.
역주35 王親面傷 : 楚恭王이 晉나라 장수 呂錡의 화살에 눈을 잃은 것을 이른다.
역주36 陳公子夏爲御叔取於鄭穆公 : 陳公子 夏는 陳宣公의 아들이요, 御叔의 아버지다. 夏가 아들 어숙을 鄭穆公의 少妃인 姚子의 딸 夏姬에게 장가들게 하였다.
역주37 : 四部備要本에는 ‘娶’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아래도 같다.
역주38 子南 : 夏徵舒의 字.
역주39 子南之母亂陳而亡之 : 御叔이 일찍 죽자 陳靈公과 대부 孔寧과 儀行父가 夏姬와 간통하였다. 이에 徵舒가 靈公을 시해하고 자립하여 군주의 자리에 오르자, 楚莊王이 제후들과 토벌하여 陳나라를 멸망시켰다. 魯宣公 11년(기원전 598년)의 일이다.
역주40 夏氏之室 : 御叔의 부인 夏姬를 이른다. 처음에 楚莊王이 陳나라를 멸망시키고 夏姬를 데리고 초나라로 돌아왔다. 그리고서는 왕비로 맞아들이려 하자, 巫臣이 만류하면서 말하기를, ‘안 됩니다. 임금께서 제후들을 불러 陳나라를 치고서 이제 夏姬를 妃로 삼으신다면 色을 탐하는 것이 됩니다. 색을 탐하는 것은 음란함이요, 음란한 짓을 하면 큰 벌을 받게 됩니다.’ 하여 임금이 포기하고 巫臣에게 내리려다가 子反에게 내리게 되었다. 子反이 장가들려 하는데 巫臣이 또다시 막아서 마침내 襄老에게 내려 주었다.
역주41 申公巫臣 : 楚나라 申公 屈巫이니, 字는 子靈이다. 그가 申 땅의 수령을 지내 申公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역주42 子反 : 司馬 벼슬을 지낸 公子 側이다.
역주43 襄老 : 楚나라 連尹이다.
역주44 獲於邲 : 晉과 楚가 魯宣公 12년(기원전 597년)에 邲 땅에서 싸울 때 진나라의 知莊子가 襄老를 활로 쏘아 맞혀 붙잡아서는 시체를 싣고서 돌아가 버렸다.
역주45 : 四部備要本에는 ‘死’로 되어 있다.
역주46 以夏姬行 : 襄老가 邲 땅에서 죽어 시체마저 진나라에 빼앗겨 버렸다. 巫臣이 夏姬를 鄭나라에 돌려보내려고 하면서 이렇게 해야만 襄老의 시체를 구할 수 있다고 하자, 楚恭王이 하희를 정나라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巫臣은 鄭나라에 夏姬와의 결혼을 청하여 鄭伯으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그 뒤 巫臣이 齊나라에 使行 갈 일이 생기자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鄭나라에 이르러서 마침내 夏姬를 데리고 晉나라로 도망하였다.
역주47 巫臣之爲也 : 巫臣이 夏姬를 데리고 도망하자, 子反이 巫臣의 친족을 모조리 죽였다. 이에 巫臣이, 吳나라와 晉나라가 동맹을 맺어 楚나라를 치게 하려고, 晉나라에 있다가 吳나라에 사신 가기를 청하였다. 巫臣이 吳子 壽夢의 신임을 사, 晉나라와 吳나라의 국교가 맺어졌다. 한편으로는 巫臣의 아들을 吳나라의 외교관으로 삼았다. 이때까지 吳나라엔 戰法이 없었으나 巫臣이 楚나라 子反을 괴롭히기 위해 吳나라에 戰法을 가르쳐 楚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역주48 : 四部備要本에는 ‘王’자가 없다.
역주49 東陽 : 초나라의 북쪽에 있는 고을 이름.

국어(2) 책은 2022.07.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