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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1)

국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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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語補音叙錄
按 班固 種別하니 有國語二十一篇하고 라하다
至漢司馬子長하야 撰史記할새 遂據國語‧世本‧戰國策하야 以成其書하니라
當漢世하야 左傳祕而未行하고 又不立於이라 故此書亦弗顯이요
唯上賢達識之士 好而尊之하고 俗儒弗識也러니
逮東漢하야 左傳漸布하니 名儒始悟向來公‧穀膚近之說하고 而多歸左氏하니라
及杜元凱硏精訓詁하야 天下하니 古今眞謬之學 一旦冰釋이요 雖國語라도 亦從而大行하니 蓋其書並出丘明이라
自魏晉以後 書錄所題 皆曰春秋外傳國語라하니 是則左傳爲內 國語爲外
二書相하야 以成大業하니
凡事詳於內者 略於外하고 備於外者 簡於內하니라
先儒孔晁亦以爲然하고 自鄭衆‧賈逵‧王肅‧虞翻‧唐固‧韋昭之徒 並治其章句하고 申之注釋하야 爲六經流亞하니 非復諸子之倫이요
自餘名儒碩士 好是學者 不可勝紀로다
歷世離亂하야 經籍亡逸하니 今此書唯韋氏所解傳於世하고 諸家章句 遂無存者
然觀韋氏所叙컨댄 以鄭衆‧賈逵‧虞翻‧唐固爲主하야 而增損之
故其注備而有體하니 可謂一家之名이로다
唯唐文人柳子厚作二篇하야 攟摭左氏意外微細하야 以爲詆訾
然未足掩其鴻美 左篇今完然하야 與經籍並行 無損也
庸何傷於道리오
因略記前世名儒 姓氏別之하노라
後漢大司農鄭衆 仲師 作國語章句호대 亡其篇數
漢侍中賈逵 景伯이라
作左氏春秋及國語解詁五十一篇하니 左傳三十篇이요 國語 二十一篇이라
隋志云 二十卷이라하나 唐已亡이라
魏中領軍王肅 子雍이니 作春秋外傳國語章句一卷이라
隋志云 梁有二十二卷이라하고 唐志亦云 二十二卷이라하니라
吳侍御史虞翻 仲翔이니 注春秋外傳國語二十一卷이라
吳尙書僕射唐固 子正이니 注春秋外傳國語二十一卷이라
吳中書僕射侍中 高陵亭侯 韋昭 弘嗣 注春秋外傳國語二十一卷이라
隋志云 二十二卷이라하고 唐志 二十一卷이라하니 與今見行篇次同이라
晉五經博士孔晁 注春秋外傳國語二十卷하니 唐志 二十一卷이라
右按古今卷第 亦多不同하야 或云二十一篇하고 或二十二하고 或二十卷이라
然據班志하면 最先出賈逵次之 皆云二十一篇이라하니
此實舊書之定數어늘 其後或互有損益하니라
蓋諸儒章句煩簡不同하고 簡倂篇하야 自名其學하니 蓋不足疑也 要之컨대 蓺文志爲審矣
又按先儒未有爲國語音者 蓋外內傳文多相涉하고 字音亦通故
然近世 傳舊音一篇하야 不著撰人名氏 尋其說하면 乃唐人也
何以證之
據解하면爲說하니 夫改國爲州 自唐始耳
然其音簡陋하야 不足名書
但其閒 時出異聞하야 義均이로다
因暇輒記其所闕하야 不覺盈篇이어늘 今因舊本而廣之하야 凡成三卷하니
其字音反切 除存本說外 悉以陸德明經傳釋文爲主하니 亦將稽舊學하야 除臆說也
唯陸音不載者 則以說文字書集韻等附益之하고 號曰 國語補音이라하니라 其閒闕疑 請俟鴻博하니
非敢傳之達識이오 姑以示兒曹云이라


국어보음서록國語補音叙錄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육경六經을 종류별로 구별하여 실었는데 춘추가春秋家에 《국어國語》 21이 있고, 그 좌구명左丘明이 지었다고 되어 있다.
나라 사마자장司馬子長(자장子長사마천司馬遷)에 이르러 《사기史記》를 지으면서 마침내 《국어國語》와 《세본世本》과 《전국책戰國策》을 근거로 하여 그 책을 완성하였다.
나라 시대가 되어 《좌전左傳》이 깊이 감추어져서 세상에 유행되지 못하였고, 또 학관學官을 두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 책 또한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단지 뛰어난 현인賢人식견識見 있는 선비만 좋아하여 존숭尊崇하였고, 속유俗儒는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동한東漢(後漢)시대에 와서 《좌전左傳》이 차츰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자 명유名儒가 비로소 그 전의 《공양전公羊傳》과 《곡량전穀梁傳》이 얕고 천박한 임을 깨닫고, 많은 선비들이 《좌전左傳》으로 돌아왔다.
두원개杜元凱(원개元凱두예杜預)가 〈《좌전左傳》의〉 훈고를 정밀하게 연구하여 천하에 목탁木鐸을 울리니, 고금의 옳고 그른 주석이 하루아침에 얼음 풀리듯이 풀렸고, 《국어國語》라 할지라도 《좌전左傳》을 따라 크게 유행하니, 그 책은 모두 좌구명左丘明에게서 나왔다.
나라와 나라 이후로부터 도서목록에서 제목을 붙인 것에 모두 《춘추외전국어春秋外傳國語》라고 썼으니, 이것은 《좌전左傳》이 춘추春秋내전內傳이 되고 《국어國語》가 외전外傳이 되는 것이다.
이 두 책이 서로 도와서 큰 학업을 이루게 된다.
모든 사실을 내전內傳에서 자세히 말한 것은 외전外傳에서 간략하게 다루었고, 외전外傳에서 상세하게 말한 것은 내전內傳에서 간단하게 언급하였다.
선유先儒공조孔晁도 그렇게 여겼고, 정중鄭衆가규賈逵왕숙王肅우번虞翻당고唐固위소韋昭의 무리들이 모두 그 장구章句를 연구하고, 주석을 펼쳐서 육경六經아류亞流가 되니, 다시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아니다.
그 나머지 명유名儒석학碩學으로서 이 주석을 좋아한 사람들을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세상의 난리를 거치면서 경적經籍이 흩어져 없어지니, 현재 이 책은 오직 위소韋昭가 해석한 것만 세상에 전하고, 여러 학자들이 낸 장구章句는 마침내 남아 있는 것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위소韋昭가 서술한 주석을 보면, 정중鄭衆가규賈逵우번虞翻당고唐固의 해석을 위주로 하여 보태고 줄여서 주석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가 완비되고 체계가 있으니, 일가一家를 이룬 이름난 주석이라 이를 만하다.
그런데 나라 문인文人유자후柳子厚(자후子厚유종원柳宗元)는 〈비국어非國語〉라는 두 편의 글을 지어 좌씨左氏가 마음에 두지 않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주워 모아서 헐뜯고 나무랐다.
그러나 《국어國語》의 위대하고 아름다운 점은 덮어 가릴 수 없고, 좌편左篇이 지금 완전하여 경적經籍과 함께 세상에 유행하는 데에 손상될 것이 없다.
에 무슨 손상이 되겠는가!
이어서 앞 시대의 《국어國語》를 해석한 명유名儒의 주석과 성씨를 별도로 대략 기록한다.
후한後漢에서 대사농大司農을 지낸 정중鄭衆의 자는 중사仲師인데, 《국어國語》의 장구章句를 지었으나 그 편수는 잃었다.
나라에서 시중侍中을 지낸 가규賈逵의 자는 경백景伯이다.
좌씨춘추左氏春秋》와 《국어해고國語解詁》 51을 지었는데, 《좌전해고左傳解詁》는 30편이고, 《국어해고國語解詁》는 21편이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는 20이라 하였으나 나라 때에 벌써 없어졌다.
나라에서 중령군中領軍을 지낸 왕숙王肅의 자는 자옹子雍이니, 《춘추외전국어장구春秋外傳國語章句》 1권을 지었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는 남조양南朝梁 때 22권이 있었다라 하였고, 《당서唐書》 〈예문지藝文志〉에도 22권이라고 하였다.
나라에서 시어사侍御史를 지낸 우번虞翻의 자는 중상仲翔이니, 《춘추외전국어春秋外傳國語》 21권을 주석하였다.
나라에서 상서복야尙書僕射를 지낸 당고唐固의 자는 자정子正이니, 《춘추외전국어春秋外傳國語》 21권을 주석하였다.
나라에서 중서복야中書僕射시중侍中을 역임하였고 고릉정후高陵亭侯에 봉해진 위소韋昭의 자는 홍사弘嗣인데 《춘추외전국어春秋外傳國語》 21권을 주석하였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는 22권이라 되어 있고, 《당서唐書》 〈예문지藝文志〉에는 21권이라 하였으니, 현행 본의 편차와 같다.
나라에서 오경박사五經博士를 지낸 공조孔晁는 《춘추외전국어春秋外傳國語》 20권을 주석하였는데, 《당서》 〈예문지〉에는 21권이라고 되어 있다.
이상을 상고하면 고금의 권수 차례도 대부분 같지 아니하여 혹은 21편이라 하고, 혹은 22권이라 하고, 혹은 20권이라 하였다.
그러나 반고班固의 〈예문지藝文志〉에 근거하면 가장 먼저 나온 가규賈逵가 편찬한 것을 모두 21편이라 하였다.
이것이 실로 옛 《국어國語》의 확정된 숫자인데, 그 후에 간혹 서로 줄이거나 보탠 것이 있다.
제유諸儒들이 만든 장구章句가 번다하고 간략한 점이 같지 않고, 단락을 나누거나 을 합쳐서 자기의 주석서를 명명命名하니 의심할 것도 없고, 요컨대 〈예문지藝文志〉의 (21편이) 확실하다.
또 상고하건대 선유先儒가 《국어國語》의 을 주석한 사람이 있지 않은 것은, 아마도 외전外傳(國語)과 내전內傳(左傳)의 문장이 대부분 서로 관계되고, 또 글자의 음도 서로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근세에 예전의 음을 주석한[舊音]일편一篇이 전해지는데, 지은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나 그 주석한 말을 찾아보면 곧 나라 사람이 지은 것이다.
무엇으로 이를 증명하는가?
견융수돈犬戎樹惇’에 대하여 해설한 것을 근거로 하면 이를 선주鄯州 지방에 사는 강족羌族을 인용하여 설명했는데,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 간략하고 천박해서 책이라고 이름할 수가 없다.
다만 그 안에 때때로 특이한 말이 나와 그 뜻이 마치 계륵雞肋과 같다.
이 여가를 이용하여 그때마다 〈구음舊音〉에 빠진 것을 기록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이 차게 되었기에, 이제 그 구음본舊音本을 따라 확대하여 모두 3권으로 완성하였다.
자음字音반절反切구음본舊音本의 내용을 보존해 둔 이외의 것은 모두 나라 육덕명陸德明의 《경전석문經傳釋文》을 위주로 하였는데, 이는 역시 옛날의 주석을 가져다 참고하여 나의 억측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다만 육덕명陸德明에 실려 있지 않은 것은, 《설문說文》과 자서字書집운集韻》 등의 것을 더 붙여서 이름을 《국어보음國語補音》이라 하였는데, 이 책에 빠졌거나 의심나는 것은 학문이 크고 넓은 이를 기다리겠다.
감히 이 책을 식견이 통달한 이에게 전하지 못하고 우선 아이들에게 보인다.
송상宋庠은 서문을 쓴다.


역주
역주1 蓺文志 : 당세에 유통하는 典籍을 類別로 정리하여 기재한 史書의 한 체재. 經籍志라고 한 史書도 있다.
역주2 六經 : 여섯 종의 經書. 곧 《易》‧《書》‧《詩》‧《周禮》‧《樂記》‧《春秋》를 이른다.
역주3 春秋家 : 春秋를 전공하는 類派나 春秋에 관한 典籍을 이르는 말.
역주4 左丘明 : 춘추시대 魯나라 사람. 孔子와 같은 시대이거나 그보다 약간 앞선 시대의 賢人이라고 전한다. 《國語》와 《左傳》을 지은이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史記太史公自序》‧《漢書藝文志》
역주5 學官 : 교육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관원과 官學의 선생을 이르는 말. 漢代에 처음으로 둔 五經博士‧博士祭酒 등과 晉代에 둔 國子祭酒‧博士‧助敎 등과 같은 직위를 이른다.
역주6 木鐸 : 나무 추[舌]를 단 큰 구리 방울. 국가의 정책이나 법령을 선포할 때 흔들어 울려서 사람들의 注意를 집중하게 하는 데 쓴다. 여기서는 세상을 교화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썼다. 《周禮天官小宰》‧《論語八佾》
역주7 : 四庫全書의 《國語補音》에는 ‘左’자가 없다.
역주8 : 四庫全書의 《國語補音》에는 ‘輔’로 되어 있는데, 뜻은 같다.
역주9 : 본문의 뜻을 주석하여 그 의미를 밝히는 일. 注를 달리 이르는 말로, 傳‧箋‧釋 등으로도 말한다.
역주10 非國語 :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唐나라 柳宗元이 《國語》의 잘못된 부분을 비평한 글의 篇名. 聖人의 道에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57條를 뽑아 비평을 가하였다. 《柳宗元集非國語上‧下》
역주11 傳‧學 : 모두 주석을 이르는 말. 注를 이르는 말로 注‧傳‧箋‧學‧解‧釋 등이 있다.
역주12 : 四庫全書의 《國語補音》에는 ‘卷’자가 없다.
역주13 : 四庫全書의 《國語補音》에는 ‘也’자가 없다.
역주14 : 四庫全書의 《國語補音》에는 ‘析’으로 되어 있다.
역주15 邪[也] : 四庫全書의 《國語補音》에 ‘也’로 되어 있어 이를 따랐다.
역주16 犬戎樹惇 : 犬戎이 돈후하고 질박한 성품을 확립했음을 이른 말. 犬戎은 戎族의 한 지파로, 殷周시대에 중국의 서북부 지역에 살던 민족이다. 畎戎‧畎夷‧犬夷‧昆夷‧緄夷라고도 한다. 이 말은 〈周語上〉의 ‘祭公諫穆王征犬戎’條에 보인다.
역주17 鄯州羌 : 선주에 살던 羌族. 선주의 관할 구역은 지금의 靑海省西寧市‧湟中‧樂都 등지에 해당한다.
역주18 鄯善 : 四庫全書의 《國語補音》에는 ‘善鄯’으로 되어 있으나 ‘鄯善’이 옳다.
역주19 雞肋 : 닭의 갈비. 먹을 만한 것은 없고 버리기엔 아까운 음식물로, 큰 의미는 없으나 차마 버리지는 못하는 사물을 비유하는 말. 《三國志魏志武帝紀裴松之注》
역주20 鄯善國……시작된 것 : 鄯善國을 州로 둔 것은 北魏시대로, 여기서 唐나라 때부터라고 말한 것은 잘못된 고증이다.
역주21 〈宋庠序〉 : 四庫全書의 《國語補音》에는 ‘宋庠序’ 세 글자가 더 있다.

국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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