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周易傳義(上)

주역전의(상)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주역전의(상)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傳] 臨 序卦 有事而後可大 故受之以臨이라하니라 臨者 大也 蠱者 事也 有事則可大矣 故受之以臨也 韓康伯云 可大之業 由事而生이라하니라 二陽方長而盛大 故爲臨也 爲卦 澤上有地하니 澤上之地 岸也 與水相際하여 臨近乎水 故爲臨이라 天下之物 密近[一作邇]相臨者 莫若地與水 故地上有水則爲比 澤上有地則爲臨也 臨者 臨民臨事 凡所臨皆是로되 在卦 取自上臨下하니 臨民之義
19. 臨 ䷒
元亨 利貞니
[傳] 以卦才言也 臨之道如卦之才 則大亨而正也
至于八月얀 有凶리라
[傳] 二陽方長於下하여 陽道嚮盛之時어늘 聖人豫爲之戒曰 陽雖方盛이나 至於八月則其道消矣 是有凶也 大率聖人爲戒 必於方盛之時하나니 方盛而慮衰 則可以防其滿極而圖其永久 若旣衰而後戒 亦无及矣 自古天下安治 未有久而不亂者하니 蓋不能戒於盛也일새라 方其盛而不知戒 故狃安富則驕侈生하고 樂舒肆則綱紀壞하고 忘禍亂則釁孽萌하나니 是以浸淫하여 不知亂之至也
彖曰 臨 剛浸而長며
說而順고 剛中而應야
大亨以正니 天之道也ㅣ라
[傳] 浸 漸也 二陽 長於下而漸進也 下兌上坤하니 和說而順也 剛得中道而有應助 是以能大亨而得正하니 合天之道 剛正而和順 天之道也 化育之功 所以不息者 剛正和順而已 以此臨人臨事臨天下 莫不大亨而得正也 兌爲說이니 說乃和也 夬彖云 決而和라하니라
至于八月有凶 消不久也ㅣ라
[傳] 臨 二陽生하니 陽方漸盛之時 故聖人爲之戒云 陽雖方長이나 然至于八月則消而凶矣 八月 謂陽生之八月이니 陽始生於復하여 自復至遯 凡八月이니 自建子 至建未也 二陰長而陽消矣 故云消不久也 在陰陽之氣言之 則消長如循環하여 不可易也어니와 以人事言之 則陽爲君子 陰爲小人하니 方君子道長之時하여 聖人爲之誡하여 使知極則有凶之理而虞備之하여 常不至於滿極이면 則无凶也
象曰 澤上有地이니 君子야 敎思 无窮며 容保民 无疆니라
[傳] 澤之上有地하니 岸也 水之際也 物之相臨與含容 无若水之在地 故澤上有地爲臨也 君子觀親臨之象하면 則敎思无窮하니 親臨於民 則有[一无有字]敎導之意思也 无窮 至誠无斁也 觀含容之象하면 則有容保民之心하니 无疆 廣大无疆限也 含容 有廣大之意 故爲无窮无疆之義
初九 咸臨이니야니라
[傳] 咸 感也 陽長之時 感動於陰이라 四應於初하니 感之者也 比他卦 相應尤重이라 近君之位어늘 初得正位하고 與四感應하니 以正道爲當位所信任하여 得行其志하니 獲乎上而得行其正道 是以吉也 他卦 初上爻 不言得位失位하니 蓋初終之義爲重也 臨則以初得位居正爲重이라 凡言貞吉 有旣正且吉者하고 有得正則吉者하고 有貞固守之則吉者하니 各隨其事[一作時]也
象曰 咸臨貞吉 志行正也ㅣ라
[傳] 所謂貞吉 九之志在於行正也 以九居陽하고 又應四之正하니 其志正也
九二 咸臨이니야 无不利리라
[傳] 二方陽長而漸盛하여 感[一作咸]動於六五中順之君하여 其交之親이라 故見信任하여 得行其志하니 所臨 吉而无不利也 吉者 已然이니 如是故吉也 无不利者 將然이니 於所施爲 无所不利也
象曰 咸臨吉无不利 未順命也ㅣ라
[傳] 未者 非遽之辭 孟子 或問勸齊伐燕이라하니 有諸잇가 曰未也라하고 又云 仲子所食之粟 伯夷之所樹歟 抑亦盜跖之所樹歟 是未可知也라하며 史記 侯嬴曰 人固未易知라하니 古人用字之意 皆如此 今人 大率用對已字 故意似異 然實不殊也 九二與五感應以臨下하니 蓋以剛德之長而又得中하여 至誠相感이요 非由順上之命也 是以吉而无不利 五順體而二說體 又陰陽相應이라 故象特明其非由說順也
六三 甘臨이라 无攸利니 旣憂之 无咎ㅣ리라
[傳] 三居下之上하니 臨人者也 陰柔而說體 又處不中正하니 以甘說 臨人者也 在上而[一无而字]以甘說臨下 失德之甚이니 无所利也 兌性旣說하고 又乘二陽之上하니 陽方長而上進이라 故不安而益甘이나 旣知危懼而憂之하니 若能持謙守正하고 至誠以自處則无咎也 邪說由己어늘 能憂而改之 復何咎乎리오
象曰 甘臨 位不當也ㅣ오 旣憂之니 咎不長也ㅣ리라
[傳] 陰柔之人 處不中正而居下之上하고 復乘二陽하니 是處不當位也 旣能知懼而憂之 則必强勉自改 故其過咎不長也
六四 至臨이니 无咎니라
[傳] 四居上之下하여 與下體相比하니 是切臨於下 臨之至也 臨道尙近이라 故以比爲至 四居正位而下應於剛陽之初하고 處近君之位하여 守正而任賢하여 以親臨於下 是以无咎하니 所處當也
象曰 至臨无咎 位當也라
[傳] 居近君之位 爲得其任이요 以陰處四 爲得其正이요 與初相應 爲下賢이니 所以无咎 蓋由位之當也
六五 이니 大君之宜니라
[傳] 五以柔中順體 居尊位而下應於二剛中之臣하니 是能倚任於二하여 不勞而治하여 以知臨下者也 夫以一人之身으로 臨乎天下之廣하니 若區區自任이면 豈能周於萬事리오 故自任其知者 適足爲不知 唯能取天下之善하여 任天下之聰明이면 則无所不周 是不自任其知 則其知大矣 五順應於九二剛中之賢하여 任之以臨下하니 乃己以明知 臨天下 大君之所宜也 其吉可知니라
象曰 大君之宜 行中之謂也ㅣ라
[傳] 君臣道合 蓋以氣類相求 五有中德이라 故能倚任剛中之賢하여 得大君之宜하여 成知臨之功하니 蓋由行其中德也 人君之於賢才 非道同德合이면 豈能用也리오
上六 敦臨이니야 无咎니라
[傳] 上六 坤之極이니 順之至也어늘 而居臨之終하니 敦厚於臨也 與初二 雖非正應이나 然大率陰求於陽하고 又其至順이라 故志在從乎二陽하니 尊而應卑하고 高而從下하며 尊賢取善 敦厚之至也 故曰敦臨이니 所以吉而无咎 陰柔在上하여 非能臨者 宜有咎也로되 以其敦厚於順剛이라 是以吉而无咎 六居臨之終이어늘 而不取極義 臨无過極이라 故止爲厚義 无位之地 止以在上言이라
象曰 敦臨之吉 志在內也ㅣ라
[傳] 志在內 應乎初與二也 志順剛陽而敦篤이면 其吉可知也
역주
역주1 위자복괘일양지월(謂自復卦一陽之月) 지우돈괘이음지월(至于遯卦二陰之月) : 십이벽괘(十二辟卦)에 의하면 11월의 동지(冬至)에 일양(一陽)이 처음 생겨 복괘(復卦)가 되고 4월에 이르러 돈양(沌陽)의 건괘(乾卦)가 되며, 5월의 하지(夏至)에 일양(一陽)이 처음 생겨 구괘(姤卦)가 되고 6월에 이르면 이양(二陽)인 돈괘(遯卦)가 되는바 모두 8개월이 걸리므로 말한 것이다.
역주2 이자(二者) : 사계(沙溪)는 “두 가지란 교사(敎思)와 보민(保民)을 가리킨다.” 하였다. 《경서변의(經書辨疑)》
역주3 : 智
周易正義(2)(주역정의(2)) 周易兼義 上經 隨傳 卷第三> 19. 臨䷒ 兌下坤上
元亨하고 利貞하니 至于八月하면 有凶하리라
臨은 크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로우니, 8개월에 이르면 흉함이 있으리라.
[疏]‘臨元亨’至‘有凶’
經의 [臨元亨]에서 [有凶]까지
○正義曰:案序卦云“臨, 大也.” 以陽之浸長, 其德壯大, 可以監臨於下, 故曰“臨”也.
○正義曰:살펴보건대, 〈序卦傳〉에 “臨은 큼이다.” 하였으니, 陽이 점점 자라서 그 德이 壯大하여 아랫사람을 監臨할 수 있다. 그러므로 卦 이름을 ‘臨’이라 한 것이다.
剛旣浸長, 說而且順, 又 大得亨通而利正也, 故曰“元亨利貞”也.
剛이 이미 점점 자라서 기뻐하고 순하며, 또 剛으로서 中에 거하고 밖에 應이 있어서 크게 형통함을 얻고 바름이 이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크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至于八月 有凶] 물건이 盛하면 반드시 衰하고 陰이 자라면 陽이 물러간다. 臨卦는 建丑의 달이 되니, 建丑月로부터 시작하여 7월의 建申의 때에 이르면
三陰旣盛, 三陽方退, 小人道長, 君子道消, 故八月有凶也. 以盛不可終保, 聖人作易以戒之也.
세 陰이 이미 성하고 세 陽이 막 물러가서 小人의 道가 자라고 君子의 道가 사라진다. 그러므로 8개월이면 흉함이 있는 것이다. 성함을 끝까지 보존할 수 없기 때문에 聖人이 ≪周易≫을 지어 경계하신 것이다.
彖曰 臨 剛浸而長하며 說而順하고 剛中而應하여 大亨以正하니 天之道也
〈彖傳〉에 말하였다. “臨은 剛이 점점 자라며 기뻐하고 순하며 剛이 中에 있고 응하여 크게 형통하고 바르니, 하늘의 道이다.
[注]陽轉進長하고 陰道日消하여 君子日長하고 小人日憂하니 大亨以正之義
陽의 움직임이 나아가 자라고 陰의 道가 날로 사라져서 君子가 날로 자라고 小人이 날로 근심하니, 크게 형통하고 바른 뜻이다.
[疏]‘彖曰’至‘天之道也’
經의 [彖曰]에서 [天之道也]까지
○正義曰:‘臨剛浸而長 說而順’者, 此釋卦義也. 凡諸卦之例, 說而順之, 下應以臨字結之, 此無臨字者,
○正義曰:[臨剛浸而長 說而順] 이는 卦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무릇 여러 卦의 例에 기뻐하고 순하면 아래에 응당 ‘臨’자로 끝맺어야 하는데 여기에 ‘臨’자가 없는 것은,
以其剛中而應亦是臨義, 故不得於剛中之上而加臨也.
‘剛이 中에 있고 응함’ 역시 臨의 뜻이기 때문에 ‘剛中’의 위에 ‘臨’자를 가할 수 없는 것이다.
‘剛中而應 大亨以正 天之道’者, 天道以剛居中, 而下與地相應, 使物大得亨通而利正,
[剛中而應 大亨以正 天之道] 天道가 剛으로서 中에 있으면서 아래로 땅과 서로 응하여 물건으로 하여금 크게 형통함을 얻어 바름이 이롭게 한다.
故乾卦元亨利貞, 今此臨卦, 其義亦然, 故云“天之道”也.
그러므로 乾卦에 “元亨利貞”이라 하였으니, 지금 이 臨卦도 그 뜻이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하늘의 道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至于八月有凶 消不久也일새라
8개월에 이르면 흉함이 있음은 사라질 때가 오래지 않기 때문이다.”
[注]八月 陽衰而陰長하니 小人道長하고 君子道消也 故曰 有凶이라
8월은 陽이 쇠하고 陰이 자라니, 小人의 道가 자라고 君子의 道가 사라진다. 그러므로 “흉함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疏]‘至于八月’‘久也’
經의 [至于八月]에서 [久也]까지
○正義曰:證‘有凶’之義, 以其陽道旣消, 不可常久, 故有凶也.
○正義曰:‘흉함이 있음’을 증명하였으니, 陽의 道가 이미 사라져서 항상하고 오래할 수 없기 때문에 흉함이 있는 것이다.
但復卦一陽始復, 剛性尙微, 又不得其中, 故未有元亨利貞,
다만 復卦는 한 陽이 처음 회복되어서 剛의 성질이 아직 미약하고 또 中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元亨利貞이 있지 못한 것이요,
泰卦三陽之時, 三陽在下而成乾體, 乾下坤上, 象天降下, 地升上, 上下通泰, 物通則失正, 故不具四德.
泰卦의 세 陽의 때에는 세 陽이 아래에 있으면서 乾體를 이루어 乾이 아래에 있고 坤이 위에 있으니 이는 하늘이 아래로 내려가고 땅이 위로 올라가서 상하가 通泰함을 형상한 것인바, 물건이 通泰하면 바름을 잃기 때문에 四德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唯此卦二陽浸長, 陽浸壯大, 特得稱臨, 所以四德具也. 然陽長之卦, 每卦皆應八月有凶.
오직 이 卦는 두 陽이 점점 자라나서 陽이 점점 壯大해져 특별히 ‘臨’의 칭호를 얻었으니, 이 때문에 四德을 갖춘 것이다. 그러나 陽이 자라는 卦에는 매 卦마다 모두 ‘八月有凶’이라고 하여야 한다.
但此卦名臨, 是盛大之義, 故於此卦特戒之耳. 若以類言之, 則陽長之卦, 至其終末, 皆有凶也.
다만 이 卦는 이름이 ‘臨’이니, 이는 성대한 뜻이므로 이 卦에 특별히 경계한 것일 뿐이다. 만약 이런 종류를 가지고 말한다면 陽이 자라는 卦는 그 종말에 이르면 다 흉함이 있는 것이다.
[疏]○注‘八月’至‘有凶’
○注의 [八月]에서 [有凶]까지
○正義曰:[八月] 何氏(何妥)는 “陽이 생기는 建子月(11월)로부터 建未月(6월)에 이르면 8개월이 된다.”라고 하였고, 褚氏(褚仲都)는 “建寅月(1월)로부터 建酉月(8월)에 이르면 8개월이 된다.”라고 하였다.
今案此注云“小人道長, 君子道消”, 宜據否卦之時, 故以臨卦建丑而至否卦建申, 爲八月也.
이제 살펴보건대, 이 注에 “小人의 道가 자라고 君子의 道가 사라진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마땅히 否卦의 때를 근거해야 한다. 그러므로 臨卦의 建丑月(12월)로부터 否卦의 建申月(7월)에 이르면 8개월이 되는 것이다.
象曰 澤上有地 臨이니 君子以敎思无窮하며 容保民 无疆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못 위에 땅이 있는 것이 臨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가르치려는 생각이 다함이 없으며 백성을 용납하여 보존함이 끝이 없다.”
[注]相臨之道 莫若說順也 不恃威制하고 得物之誠이라 物无違也 是以君子敎思无窮하며 容保民 无疆也
서로 임하는 道는 기뻐하고 和順함만 한 것이 없으니, 위엄으로 제재함을 믿지 않고 물건의 성실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물건이 어김이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君子의 가르치려는 생각이 다함이 없으며 백성을 용납하여 보존함이 끝이 없는 것이다.
[疏]‘象曰’至‘无疆’
經의 [象曰]에서 [无疆]까지
○正義曰:‘澤上有地’者, 欲見地臨於澤, 在上臨下之義, 故云“澤上有地”也.
○正義曰:[澤上有地] 땅이 못에 임하여 위에 있으면서 아래에 임한 뜻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못 위에 땅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君子以敎思无窮’者, 君子於此臨卦之時, 其下莫不喜說和順, 在上但須敎化, 思念无窮已也, 欲使敎恒不絶也.
[君子以敎思无窮] 君子는, 이 臨卦의 때에 아랫사람들이 기뻐하고 和順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위에 있는 자는 다만 敎化하여 그 생각이 다함이 없어야 할 뿐이니, 가르침이 항상 끊이지 않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容保民无疆’者, 容謂容受也, 保安其民, 无有疆境, 象地之闊遠, 故云“无疆”也.
[容保民无疆] ‘容’은 용납하여 받음을 이르니, 그 백성을 보존하여 편안하게 함이 疆界(한계)가 없어서 땅의 넓고 먼 것을 형상하였기 때문에 “끝이 없다.”라고 말한 것이다.
初九 咸臨이니하여하니라
初九는 감응하여 임함이니, 貞하여 길하다.
[注]咸 感也 應也 有應於四하여 感以臨者也 四履正位而己應焉하니 志行正者也
‘咸’은 感動이요, 感은 應함이니, 六四에 應이 있어서 감응하여 임하는 자이다. 六四가 正位를 밟고 있는데 자기가 거기에 응하니, 뜻이 행해져 바른 자이다.
以剛感順하고 志行其正하니 以斯臨物이면 正而獲吉也
剛함으로써 順함에 감응하고 뜻이 행해져 바르니, 이런 방식으로 물건에 임하면 바루어서 길함을 얻는다.
正義曰:咸은 감동이다. 六四에 應이 있어서 감응하여 임해서 뜻이 행해져 바름을 얻기 때문에 貞하여 길한 것이다.
象曰 咸臨貞吉 志行正也
〈象傳〉에 말하였다. “‘감응하여 임함이니 貞하여 길함’은 뜻이 행해져 바른 것이다.”
[疏]正義曰:‘咸臨貞吉 志行正’者, 釋咸臨貞吉之義. 四旣履得正位, 己往與之相應, 是己之志意行而歸正也.
正義曰:[咸臨貞吉 志行正] ‘감응하여 임함이니 貞하여 길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六四가 이미 正位를 밟고 있는데 자기가 가서 더불어 相應하니, 이는 자기의 뜻이 행해져 바름으로 돌아간 것이다.
九二 咸臨이니하여 无不利하니라
九二는 감응하여 임함이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注]有應在五하니 感以臨者也 剛勝則柔危어늘 而五體柔하니 非能同斯志者也
六五에 應이 있으니, 감응하여 임하는 자이다. 剛이 우세하면 柔가 위태로운데 六五의 體가 柔하니 이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자가 아니요,
若順於五하면 則剛德不長하니 何由得吉无不利乎
만약 六五에 순종하면 剛의 德이 자라지 못하니, 어떻게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음’을 얻겠는가.
全與相違하면 則失於感應하니 其得臨吉无不利 必未順命也
완전히 서로 위배하면 감응함을 잃으니, ‘감응하여 임하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음’을 얻는 것은 반드시 명령에 순종하지는 않는 것이다.
正義曰:[咸臨 吉] ‘咸’은 감동이니, 六五에 應이 있음은 감응하여 임해서 그 길함을 얻는 것이다.
‘无不利’者, 二雖與五相應, 二體是剛, 五體是柔, 兩雖相感, 其志不同.
[无不利] 九二가 비록 六五와 서로 응하나 九二의 體는 剛이고 六五의 體는 柔여서 둘이 비록 서로 감응하나 그 뜻이 똑같지 않다.
若純用剛往, 則五所不從, 若純用柔往, 又損己剛性, 必須商量事宜, 有從有否, 乃得无不利也.
만약 순전히 剛을 써서 가면 六五가 따르지 않을 것이요, 만약 순전히 柔를 써서 가면 또 자기의 강한 성질을 덜게 되니, 모름지기 일의 마땅함을 헤아려서 따르는 것이 있고 따르지 않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이롭지 않음이 없음’을 얻게 될 것이다.
象曰 咸臨吉无不利 未順命也
〈象傳〉에 말하였다. “‘감응하여 임함이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음’은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正義曰:[未順命] ‘이롭지 않음이 없음’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六五의 명령에 모두 순종할 수가 없고, 모름지기 일의 마땅함을 參酌해서 따르는 것이 있고 따르지 않는 것이 있다.
故得无不利也, 則君臣上下之義也.
그러므로 ‘이롭지 않음이 없음’을 얻는 것이니, 이는 君臣과 上下가 可함을 올려 可하지 않은 것을 바꾸는 의리이다.
六三 甘臨이라 无攸利하니 旣憂之 无咎리라
六三은 甘(아첨함)으로 임하여 이로운 바가 없으니, 이것을 다 근심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注]甘者 佞邪說媚不正之名也 履非其位 居剛長之世하여 而以邪說臨物이면 宜其无攸利也
‘甘’은 간사하고 아첨하여 바르지 못한 이름이다. 밟은 자리가 正位가 아니고 剛이 자라는 세상에 거하여 간사하게 아첨함으로써 물건에 임하면 당연히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이다.
若能盡憂其危하여 改脩其道하면 剛不害正이라 故咎不長이라
만약 그 위태로움을 다 근심하여 그 道를 고쳐 닦으면 剛이 바름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허물이 길지 않은 것이다.
[疏]正義曰:‘甘臨’者, 謂甘美諂佞也. 履非其位, 居剛長之世, 而以邪說臨物, 故无攸利也.
正義曰:[甘臨] 감미롭게 아첨함을 이른다. 밟은 자리가 正位가 아니고 剛이 자라는 세상에 거하여 간사하게 아첨함으로써 물건에 임한다. 그러므로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이다.
‘旣憂之 无咎’者, 旣, 盡也, 若能盡憂其危, 則剛不害正, 故无咎也.
[旣憂之 无咎] ‘旣’는 다함이니, 만약 그 위태로움을 다 근심하면 剛이 바름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象曰 甘臨 位不當也 旣憂之하니 咎不長也
〈象傳〉에 말하였다. “甘으로 임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것이요, 이것을 다 근심하니 허물이 길지 않은 것이다.”
[疏]正義曰:‘旣憂之 咎不長’者, 能盡憂其事, 改過自脩, 其咎則止, 不復長久, 故无咎也.
正義曰:[旣憂之 咎不長] 능히 그 일을 다 근심하여 허물을 고쳐 스스로 닦으면 그 허물이 중지되어서 다시는 장구하지 않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六四 至臨이니 无咎하니라
六四는 지극히 임함이니, 허물이 없다.
[注]處順應陽하여 不忌剛長하여 而乃應之하고 履得其位하여 盡其至者也 剛勝則柔危어늘 柔不失正하니 乃得无咎也
順에 처하고 陽에 응하여 剛이 자람을 시기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응하고, 밟은 자리가 正位를 얻어서 지극함을 다한 자이다. 剛이 우세하면 柔가 위태로운데 柔가 바름을 잃지 않으니, 바로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履順應陽, 不畏剛長而己應之, 履得其位, 能盡其至極之善而爲臨, 故云“至臨.” 以柔不失正, 故无咎也.
正義曰:順을 밟고 陽에 응하여 剛이 자람을 두려워하지 않고서 자기가 陽에 응하고 밟은 자리가 正位를 얻어서 능히 지극한 善을 다하여 임하였다. 그러므로 “지극히 임함”이라고 말한 것이다. 柔로서 바름을 잃지 않았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象曰 至臨无咎 位當也
〈象傳〉에 말하였다. “‘지극히 임함이니 허물이 없음’은 자리가 마땅한 것이다.”
[疏]正義曰:釋无咎之義. 以六四以陰所居得正, 柔不爲邪, 位當其處, 故无咎也.
正義曰:‘허물이 없음’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六四가 陰으로서 거한 바가 正位를 얻어서 柔가 간사함이 되지 않고 자리가 제 위치에 마땅하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六五 知臨이니 大君之宜하니라
六五는 임함을 앎이니, 大君의 마땅함이니 길하다.
[注]處於尊位하고 履得其中하여 能納剛以禮하고 用建其正하여 不忌剛長而能任之하고 하면
尊位에 처하고 밟은 자리가 中을 얻어 능히 剛을 받아들이기를 禮로써 하고 씀이 바름을 세워서, 剛이 자람을 시기하지 않고 능히 맡기며 남에게 능함으로써 맡기고 범하지 않는다.
則聰明者 竭其視聽하고 知力者 盡其謀能하여 不爲而成하고 不行而至矣
이렇게 하면 총명한 자가 자기의 보고 들음을 다하고 지혜 있고 힘 있는 자가 자기의 智謀와 재능을 다한다. 그리하여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고 행하지 않아도 이르는 것이다.
大君之宜 如此而已 曰 知臨이니 大君之宜 吉也라하니라
大君의 마땅함은 이와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임함을 아는 것이니, 大君의 마땅함이니 길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疏]正義曰:處於尊位, 履得其中, 能納剛以禮, 用建其正, 不忌剛長而能任之,
正義曰:尊位에 처하고 밟은 자리가 中을 얻어 능히 剛을 받아들이기를 禮로써 하고 씀이 바름을 세워서 剛이 자람을 시기하지 않고 능히 맡긴다.
故聰明者竭其視聽, 知力者盡其謀能. 是知爲臨之道, 大君之所宜以吉也.
그러므로 총명한 자가 자기의 보고 들음을 다하고 지혜 있고 힘 있는 자가 자기의 智謀와 재능을 다하는 것이다. 이는 임하는 방도를 아는 것이니, 大君이 마땅히 길한 이유이다.
象曰 大君之宜 行中之謂也
〈象傳〉에 말하였다. “大君의 마땅함은 中을 행함을 이른다.”
[疏]正義曰:釋大君之宜, 所以得宜者, 止由六五處中, 行此中和之行, 致得大君之宜, 故言“行中之謂也.”
正義曰:‘大君의 마땅함’을 해석한 것이니, 마땅함을 얻는 까닭은 다만 六五가 中에 처하여 이 中和의 행실을 행해서 大君의 마땅함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中을 행함을 이른다.”라고 말한 것이다.
上六 敦臨이니하여 无咎하니라
上六은 敦厚하게 임함이니, 길하여 허물이 없다.
[注]處坤之極하니 以敦而臨者也 志在助賢하여 以敦爲德하니 雖在剛長이나 剛不害厚 故无咎也
坤의 極에 처하였으니 敦厚함으로 임하는 자이다. 뜻이 賢者를 도와줌에 있어서 돈후함을 德으로 삼으니, 비록 剛이 자라는 때에 있으나 剛이 돈후함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疏]正義曰:敦, 厚也. 上六處坤之上, 敦厚而爲臨, 志在助賢, 以敦爲德, 故云“敦臨吉.”
正義曰:敦은 厚함이다. 上六이 坤의 위에 처하여 돈후하게 임하고, 뜻이 현자를 도와줌에 있어서 돈후함을 德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돈후하게 임함이니 길하다.”라고 한 것이다.
雖在剛長, 而志行敦厚, 剛所以不害, 故无咎也.
비록 剛이 자라는 때에 있으나 뜻이 돈후함을 행하니 이 때문에 剛이 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象曰 敦臨之吉 志在內也
〈象傳〉에 말하였다. “敦厚하게 임함의 길함은 뜻이 안에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釋敦臨吉之義. 雖在上卦之極, 志意恒在於內之二陽, 意在助賢, 故得吉也.
正義曰:‘敦厚하게 임함이니 길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비록 上卦의 極에 있으나 뜻이 항상 內卦의 두 陽에 있어서 뜻이 賢者를 도와줌에 있기 때문에 길함을 얻는 것이다.
역주
역주1 以剛居中 有應於外 : ‘剛으로서 中에 거함’은 九二를 가리킨 것이며, ‘밖에 應이 있음’은 九二가 外卦의 六五에 應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2 至于八月……故八月有凶也 : 建丑月은 초저녁에 北斗星의 자루가 丑方을 가리키는 달을 말한 것으로 음력 12월에 해당하고 卦로는 臨卦䷒에 해당하며, 建申月은 北斗星의 자루가 申方을 가리키는 달을 말한 것으로 음력 7월에 해당하고 卦로는 否卦䷋에 해당한다. 음력 11월(復卦䷗)에 처음 陽이 자라기 시작하여 4월(乾卦䷀)에 極盛해지면, 다시 陰이 자라고 陽이 물러가기 시작하여 陰爻가 더 많아지니, 建申月(7월, 否卦䷋)은 陰이 陽보다 성해지게 되는 기점에 해당한다. 臨卦의 때에는 陽이 점점 자라나는 시기이지만 이러한 성장이 계속될 수 없기 때문에 陰盛의 분기가 되는 否卦를 들어 미리 경계한 것이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至于八月’을 陽이 처음 생기는 11월의 復卦䷗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계산하여 8개월 뒤인 6월의 遯卦䷠에 이르는 것으로 보았고, 朱子는 ‘至于八月’을 8월(觀卦䷓)에 이르는 것으로 보는 說 또한 함께 소개하였다.
역주3 (不)[至] : 저본에는 ‘不’로 되어 있으나, 阮刻本 〈校勘記〉에 “‘不’은 마땅히 至가 되어야 한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至’로 바로잡았다.
역주4 云八月者……爲八月也 : ‘八月’에 대한 세 가지 해석을 제시한 것이다. 何氏는 建子月(11월, 復卦䷗)에서 建未月(6월, 遯卦䷠)까지의 8개월로 보았고, 褚氏는 建寅月(1월, 泰卦䷊)에서 建酉月(8월, 觀卦䷓)까지로 보았다. 孔穎達은 王弼의 注에서 “小人의 道가 자라고 君子의 道가 사라진다.”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8개월을 建丑月(12월, 臨卦䷒)에서 建申月(7월, 否卦䷋)까지로 보았는데, “小人道長 君子道消”가 否卦를 형용한 말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否卦 〈彖傳〉에 보인다. 한편 程伊川과 朱子는 何氏의 說과 같다.
역주5 咸……故貞吉也 : ‘咸臨’을 王弼과 孔穎達은 初九가 六四를 감동시켜 六四에게 임함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程伊川은 六四가 初九를 감동시키는 것으로 보아, “咸은 감동함이니, 陽이 자라는 때에 陰에게 감동하는 것이다. 六四가 初九에 應하니 감동시키는 자이다.[咸 感也 陽長之時 感動於陰 四應於初 感之者也]”라고 하였다.
한편 朱子는 ‘咸’을 ‘모두’의 뜻으로 보아, “卦에 오직 두 陽이 네 陰에 두루 임하므로 두 爻가 모두 다 임하는 象이 있는 것이다.[卦唯二陽 徧臨四陰 故二爻皆有咸臨之象]”라고 하였다.
역주6 (感)[咸] : 저본에는 ‘感’으로 되어 있으나, 阮刻本 〈校勘記〉에 “‘感’은 마땅히 ‘咸’이 되어야 한다. 이 注는 經文을 正述한 것이니, 글자를 고치는 준례는 없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咸’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咸臨……乃得无不利也 : 孔穎達은 經文을 ‘咸臨吉’과 ‘无不利’ 두 부분으로 나누어 해석하였다. ‘咸臨吉’은 九二가 六五에 감응하므로 길한 것이니, 이 길함은 九二가 六五와 응함으로써 자연히 얻을 수 있는 것이고, ‘无不利’는 九二가 六五에 완전히 순종하거나 완전히 위배하지 않고 事宜에 따라 행해야만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다.
역주8 未順命者……故得无不利也 : ‘未順命’을 王弼과 孔穎達은 九二가 六五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 해석의 근거는 九二가 剛이여서 柔인 六五와 뜻이 맞지 않고, 六五에 완전히 순종하면 九二의 剛性이 감손되므로 九二가 六五의 명령에 완전히 순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初九가 六四와 감응할 때에는 剛‧柔 간의 문제가 없었으므로, 王弼과 孔穎達의 해석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程伊川은 九二가 六五에 응하는 것이 다만 윗사람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함이 아니라 至誠으로 서로 감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象傳〉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라고 해명하였으며, 朱子는 “未詳이다.”라고 하였다.
역주9 獻可替否 : 신하가 임금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건의하고 행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서는 그만두도록 간한다는 말이다. ≪春秋左氏傳≫ 昭公 20년조에 “임금이 옳다고 하더라도 혹 옳지 못한 점이 있으면 신하는 그 옳지 못한 점을 上言하여 옳은 것을 이루도록 해야 하고, 임금이 옳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혹 옳은 점이 있으면 신하는 그 옳은 점을 상언하여 옳지 못한 것을 고치도록 해야 한다.[君所謂可而有否焉 臣獻其否以成其可 君所謂否而有可焉 臣獻其可以去其否]”라고 보인다.
역주10 委物以能而不犯焉 : ‘委物以能’은 어떤 일을 남에게 맡길 적에 그가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고서 능력이 있으면 맡긴다는 의미이고, ‘不犯焉’은 일을 맡긴 뒤에는 그의 처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목록 맨위로 맨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