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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經集傳(上)

서경집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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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집전(상)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5. 予視天下대 愚夫愚婦 一能勝予라하나니 一人 三失이어니 怨豈在明이리오 是圖니라 予臨兆民호되 凜乎若朽之馭六馬노니 爲人上者 奈何不敬
五子自稱也 君失人心이면 則爲獨夫 獨夫則愚夫愚婦一能勝我矣 三失者 言所失衆也 民心怨背 豈待其彰著而後知之리오 當於事幾未形之時而圖之也 腐也 朽索 易絶하고 六馬 易驚이라 朽索 固非可以馭馬也 以喩其危懼可畏之甚이니 爲人上者 奈何而不敬乎 前旣引禹之訓言하고 此則以己之不足恃, 民之可畏者 申結其義也
역주
역주1 : 현
역주2 : 삭
尙書注疏(3)(상서정의(3)) 尙書注疏 제7권 夏書> 五子之歌 第三> 予視天下컨대 愚夫愚婦 一能勝予니라
視天下컨대 愚夫愚婦 一能勝予니라
‘내가 천하의 백성들을 둘러보건대, 아무리 어리석은 남자, 어리석은 여자라 하더라도 한 사람이 나를 이길 수 있느니라.
[傳]言能畏敬小民 所以得衆心이라
능히 백성들을 敬畏함은 민중의 마음을 얻기 위함임을 말한 것이다.
一人 三失이니 이리오 不見 是圖니라
임금 한 사람이 세 번(여러 번) 인심을 잃었으니, 백성들의 원망을 어찌 꼭 밝게 드러나야 알겠는가. 원망이 드러나기 전에 미리 조처를 하여야지.
[傳]三失 過非一也 不見是謀 備其微
“세 번 인심을 잃었다.”는 것은 과실이 한 번뿐이 아니라는 것이고, “드러나기 전에 미리 도모하라.”는 것은 “그 미세할 때에 예방하라.”는 것이다.
予臨兆民호되 懍乎若朽索之馭六馬하노니
내가 만백성을 대함에 마치 썩은 새끼줄로 여섯 필의 말을 몰듯 오싹함을 느끼는데,
[傳]十萬曰億이요 十億曰兆 言多 危貌 腐也 腐索馭六馬 言危懼甚이라
10만을 ‘億’이라고 하고 10억을 ‘兆’라고 하니, 많음을 말한 것이다. 懍은 위태로운 모습이요, 朽는 腐(썩음)의 뜻이다. “썩은 새끼줄로 여섯 필의 말을 몬다.”는 것은 몹시 위태롭고 두려움을 말한 것이다.
爲人上者 奈何不敬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가 어찌 공경하지 않는가.’ 하셨네.”
[傳]能敬則不驕 在上不驕 則高而不危니라
능히 공경하면 교만하지 않는 법이니, 윗자리에 있으면서 교만하지 않으면 높아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疏]‘其一’至‘不敬’
經의 [其一]에서 [不敬]까지
○正義曰:我君祖大禹有訓戒之事, 言民可親近, 不可卑賤輕下, 令其失分, 則人懷怨, 則事上之心不固矣.
○正義曰:우리 君祖인 大禹께서 훈계하는 일을 두어 ‘백성들은 친근하게 대할지언정 비천하게 여기거나 낮잡아보아 그 본분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으니, 사람들이 원망하는 마음을 품으면 윗사람을 섬기는 마음이 견고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民惟邦國之本, 本固則邦寧, 言在上不可使人怨也. 我視天下之民, 愚夫愚婦, 一能過勝我, 安得不敬畏之也.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는 것은 윗자리에 있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원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내가 천하의 백성들을 둘러보건대, 아무리 어리석은 남자, 어리석은 여자라 하더라도 한 사람이 나를 이길 수 있는데, 어찌 백성들을 敬畏하지 않는가.
所以畏其怨者, 一人之身, 三度有失, 凡所過失, 爲人所怨, 豈在明著.
백성들의 원망을 두려워해야 함은 임금 한 사람의 몸이 세 번 인심을 잃었기 때문이고, 그 과실은 백성들의 원망대상이 되는 것인데, 〈백성들의 원망을〉 어찌 꼭 밝게 드러나야 알겠는가.
大過皆由小事而起, 言小事不防, 易致大過, 故於不見細微之時, 當於是豫圖謀之, 使人不怨也.
‘큰 과실은 모두 작은 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것은 작은 일을 예방하지 않으면 큰 과실을 초래하기 쉽기 때문에 세미한 것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에 미리 도모하여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도록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我臨兆民之上, 常畏人怨, 懍懍乎危懼, 若腐索之馭六馬. 索絶則馬逸, 言危懼之甚.
‘나는 만백성 위에 군림하여 항상 사람들의 원망을 두려워하되 위태롭고 두려움에 대한 오싹함을 느끼기를 마치 썩은 새끼줄로 여섯 필의 말을 몰듯이 한다.’는 것은 새끼줄이 끊어지면 말이 달아나니, 위태롭고 두려움이 심한 경우를 말한 것이다.
人之可畏如是, 爲民上者奈何不敬愼乎. 怨太康之不恤下民也.
‘백성들을 두려워해야 함이 이와 같거늘,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는 어찌 경건하고 삼가지 않는가.’라는 것은 太康이 백성들을 구휼하지 않음을 원망한 것이다.
[疏]○傳‘皇君’至‘失分’
傳의 [皇君]에서 [失分]까지
○正義曰:‘皇 君’, 釋詁文. 述禹之戒, 知君祖是禹, 禹有訓也.
○正義曰:[皇 君] ≪爾雅≫ 〈釋詁〉의 글이다. “禹의 훈계를 추술했다.”고 하였기 때문에 君祖는 바로 禹요, 禹가 훈계를 남겼음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民可近’者, 據君爲文. 近謂親近之也. 下謂卑下輕忽之, 失本分也.
[民可近] 임금에 의거해서 글을 지은 것이다. 近은 친근히 함을 이른다. 下는 卑下하고 輕忽히 하여 본분을 잃게 함을 이른다.
奪其農時, 勞以橫役, 是失分也, 故下云 “予視天下, 愚夫愚婦, 一能勝予.” 是畏敬下民也.
농사지을 시기를 빼앗고 부당한 노역을 시키는 것이 바로 본분을 잃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래에서 “내가 천하의 백성들을 둘러보건대, 아무리 어리석은 남자, 어리석은 여자라 하더라도 한 사람이 나를 이길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백성들을 경외하는 것이다.
[疏]○傳‘言能’至‘衆心’
傳의 [言能]에서 [衆心]까지
○正義曰:我視愚夫愚婦, 當能勝我身, 是畏敬小民也. 由能敬小民, 故以小民從命, 是‘得衆心’也.
○正義曰:‘내가 둘러보건대, 아무리 어리석은 남자, 어리석은 여자라 하더라도 응당 내 한 몸을 이길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백성들을 경외한다’는 것이다. 능히 백성들을 경외하기 때문에 백성들의 동태를 가지고 천명을 따르니, 이것이 ‘민중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다.
[疏]○傳‘三失’至‘其微’
傳의 [三失]에서 [其微]까지
○正義曰:顧氏云:“怨豈在明. 未必皆在明著之時, 必於未形之日, 思善道以自防衛之.” 是備愼其微也.
○正義曰:顧氏(顧彪)는 “〈백성들의〉 원망을 어찌 꼭 밝게 드러나야 알겠는가. 꼭 모두가 밝게 나타날 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반드시 아직 드러나기 전에 좋은 방법으로 스스로 방위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 미세할 때에 예방하여 삼가는 것이다.
[疏]○傳‘十萬’至‘懼甚’
傳의 [十萬]에서 [懼甚]까지
○正義曰:古數十萬曰億, 十億曰兆, 言多也. 懍懍, 心懼之意, 故爲危貌.
○正義曰:예전의 셈에서 10만을 ‘億’, 10억을 ‘兆’라고 하였으니, 많은 숫자를 말한 것이다. 懍懍은 마음이 두렵다는 뜻이기 때문에 “위태로운 모습이다.”라고 한 것이다.
‘朽 腐’, 常訓也. 腐索馭六馬, 索絶馬驚, 馬驚則逸, 言危懼甚也.
[朽 腐] 일상적인 풀이이다. 썩은 새끼줄로 여섯 필의 말을 몰다가 새끼줄이 끊어지면 말이 놀라게 되고 말이 놀라면 달아나게 되니, 위태롭고 두려움이 심함을 말한 것이다.
經傳之文, 惟此言‘六馬’, 漢世此經不傳, 餘書多言駕四者. 春秋公羊說 天子駕六, 毛詩說天子至大夫皆駕四,
經傳의 글은 오직 여기서만 ‘여섯 필의 말’이라고 말하였는데, 漢나라 때의 이 經은 전하지 않고 나머지 책에서는 대부분 “네 필의 말을 탄다.”라고 말하였다. ≪春秋公羊傳≫에서는 “天子는 여섯 필의 말을 탄다.”라고 말하였고, ≪毛詩≫에서는 “天子에서 大夫에 이르기까지 모두 네 필의 말을 탄다.”라고 하였으며,
許愼案王度記云 “天子駕六.” 鄭玄以周禮校人養馬, “乘馬一師四圉.” 四馬曰乘, 康王之誥云 “皆布乘黃朱.” 以爲天子駕四.
許愼은 ≪王度記≫를 상고하여 “天子는 여섯 필의 말을 탄다.”라고 하였고, 鄭玄은 ≪周禮≫ 〈校人養馬〉 조에 “乘馬에는 한 명의 師가 있고 네 개의 마구간이 있다.”라는 것을 가지고 네 필의 말을 ‘乘’이라고 하였으며, 〈康王之誥〉에서는 “모두 갈기가 붉은 네 필의 누런 말을 진열하였다.”라고 하여 천자는 네 필의 말을 탄 것으로 여겼다.
漢世天子駕六, 非常法也. 然則此言馬多懼深, 故擧六以言之.
漢나라 세대에 천자가 여섯 필의 말을 탄 것은 정상적인 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말이 많아서 두려움이 깊다는 것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여섯이란 숫자를 들어서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 蔡傳에서는 五子로 보았다.
역주2 怨豈在明 : “백성들의 원망이 어찌 밝음에 있으리오.”라는 말은 곧 ‘백성들의 원망을 어찌 꼭 밝게 드러나야 알겠는가.’라는 뜻이다.
역주3 (長)[畏] : 저본에는 ‘長’으로 되어 있으나, 上文과 문맥을 살펴 ‘畏’로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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