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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經集傳(上)

서경집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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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導岍샤 及岐야 至于荊山시며 逾于河샤 壺口, 雷首 至于太岳시며 底柱, 析城으로 至于王屋시며 太行, 恒山으로 至于碣石샤 入于海시다
此下 隨山也 岍岐荊三山 皆雍州山이라 岍山 地志 扶風岍縣西吳山이요 古文 以爲汧山이라하니 今隴州吳山縣吳嶽山也 周禮 雍州山鎭曰嶽山이라하니라 又按 寰宇記 隴州汧源 有岍山하니 岍水所出이니 禹貢所謂岍山也 鼂氏以爲今之隴山, 天井, 金門, 秦嶺山者 皆古之岍也라하니라 岐荊 見雍州하니라 壺口, 雷首, 太岳, 底柱, 析城, 王屋, 太行, 恒山 皆冀州山이니 壺口, 太岳, 碣石 見冀州하니라 雷首 地志 在河東郡蒲坂縣南이라하니 今河中府河東縣也 底柱 石在大河中流하니 其形如柱하니 今陝州陝縣三門山 是也 析城 地志 在河東郡濩澤縣西라하니 今澤州陽城縣也 鼂氏曰 山峰 四面如城이라하니라 王屋 地志 在河東郡垣縣東北이라하니 今絳州垣曲縣也 鼂氏曰 山狀如屋이라하니라 太行山 地志 在河內郡山陽縣西北이라하니 今懷州河內也 恒山 地志 在常山郡上曲陽縣西北이라하니 今定州曲陽也 逾者 禹自荊山而過于河也 孔氏以爲荊山之脈 逾河而爲壺口雷首者 非是 蓋禹之治水 隨山刊木하시니 其所表諸山之名 必其高大하여 可以辨疆域하고 廣博하여 可以奠民居 謹而書之하여 以見其施功之次第 初非有意推其脈絡之所自來하여 若今之葬法所言也 若必實以山脈言之 則尤見其說之謬妄이라 蓋河北諸山 根本脊脈 皆自代北寰武嵐憲諸州 乘高而來하여 其脊以西之水 則西流以入龍門西河之上流하고 其脊以東之水 則東流而爲桑乾幽冀하여 以入于海하며 其西一支 爲壺口太岳하고 次一支 包汾晉之源而南出하여 以爲析城王屋하고 而又西折하여 以爲雷首하며 又次一支 乃爲太行하고 又次一支 乃爲恒山이라 其間 各隔沁潞諸川하여 不相連屬하니 豈自岍岐 跨河而爲是諸山哉 山之經理者已附于逐州之下하고 於此 又條列而詳記之하니 而山之經緯 皆可見矣 王鄭 有三條四列之名이나 皆爲未當이라 今據導字컨대 分之以爲南北二條하여 而江河以爲之紀 於二之中 又分爲二焉하니 此北條大河北境之山也
역주
역주1 : 지
尙書注疏(2)(상서정의(2)) 尙書注疏 제6권 夏書> 禹貢 第一> 導岍及岐하여 至于荊山하며
導岍及岐하여 至于荊山하며
岍山 및 岐山으로부터 시작하여 荊山에 이르며,
[傳]更理說所治山川首尾所在 治山通水 以山名之 三山皆在雍州
다스린 山川이 시작되는 곳과 끝나는 곳의 소재지를 다시 정리해서 말하였다. 산을 다스려 물을 통하게 했기 때문에 산을 가지고 명칭을 하였다. 岍山‧岐山‧荊山은 모두 雍州에 있다.
○導 從首起也 字又作汧이니 山名이라 一名吳岳이라 馬本 作開
○導는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岍은 글자가 또 ‘汧’으로 되어 있으니, 산 이름이다. 일명 ‘吳岳’이라 한다. 馬本에는 ‘開’로 되어 있다.
[疏]‘導岍及岐’
經의 [導岍及岐]
○正義曰:上文每州說其治水登山, 從下而上, 州境隔絶, 未得徑通.
○正義曰:上文에서는 매 州마다 홍수를 다스리기 위해 산에 오르는 일을 설명하였으나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하였기 때문에 州의 지경이 隔絶해서 곧장 통할 수 없었다.
今更從上而下, 條說所治之山, 本以通水, 擧其山相連屬, 言此山之傍, 所有水害, 皆治訖也.
지금은 다시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다스린 산들을 조목별로 설명하였으니, 근본적으로 물을 소통시키자 그 산들이 서로 이어져 있었음을 거론하여 이들 산 주변에 있던 水害가 모두 다스려져 끝났음을 말한 것이다.
因冀州在北, 故自北爲始. 從此‘導岍’至‘敷淺原’, 舊說以爲三條.
冀州가 북쪽에 있기 때문에 북쪽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이 ‘導岍’으로부터 ‘敷淺原’에 이르기까지를 舊說에서는 3條로 삼았다.
地理志云 “禹貢北條荊山, 在馮翊懷德縣南, 南條荊山, 在南郡臨沮縣東北.
≪漢書≫ 〈地理志〉에 “〈禹貢〉에서 北條荊山은 馮翊郡 懷德縣 남쪽에 있고 南條荊山은 南郡 臨沮縣 동북쪽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예전부터 3條說이 있다.
故馬融‧王肅, 皆爲三條, ‘導岍’北條, ‘西傾’中條, ‘嶓冢’南條.
그러므로 馬融과 王肅이 모두 3條라고 하였으니, ‘導岍’은 北條, ‘西傾’은 中條, ‘嶓冢’은 南條이다.
鄭玄以爲四列, ‘導岍’爲陰列, ‘西傾’爲次陰列, ‘嶓冢’爲次陽列, ‘岷山’爲正陽列.
鄭玄은 4列이라고 하였으니, ‘導岍’은 陰列, ‘西傾’은 次陰列, ‘嶓冢’은 次陽列, ‘岷山’은 正陽列이 된다.
鄭玄創爲此說, 孔亦當爲三條也. ‘岍’與‘嶓冢’言‘導’, ‘西傾’不言‘導’者, 史文有詳略, 以可知故省文也.
鄭玄이 이 말을 창시하였으니, 孔安國도 응당 3條라고 하였을 것이다. ‘岍’과 ‘嶓冢’에서는 ‘導’를 말하고, ‘西傾’에서는 ‘導’를 말하지 않은 것은 사관의 글에는 상세함과 소략함이 있으니, 고의로 글을 생략한 것임을 알 수 있다.
[疏]○傳‘更理’至‘雍州’
○傳의 [更理]에서 [雍州]까지
○正義曰:荊‧岐上已具矣, 而此復言之, 以山勢相連, 而州境隔絶.
○正義曰:荊山과 岐山에 대한 기록이 위에 이미 자세하게 다루어졌는데 여기에서 다시 말한 것은 山勢가 서로 이어져서 州의 지경이 隔絶하였기 때문이다.
更從上理說所治山川首尾所在, 總解此下導山水之意也. 其實通水而文稱導山者, 導山本爲治水, 故以導山名之.
다시 위에서부터 이미 다스린 산천의 首尾所在를 정리해서 설명하였는데, 이 아래의 導山과 導水의 뜻을 총괄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사실은 물을 통하게 한 일인데 글에서 ‘導山’을 칭한 것은 산에서 시작한 일이 본래 물을 다스리기 위한 일이기 때문에 ‘導山’을 가지고 명칭을 한 것이다.
地理志云 “吳岳在扶風岍縣西, 古文以爲岍山, 岐山在美陽縣西北, 荊山在懷德縣.” 三山皆在雍州.
≪漢書≫ 〈地理志〉에 “吳岳은 扶風 岍縣 서쪽에 있으니 古文에서는 ‘岍山’이라 하였다. 岐山은 美陽縣 서북쪽에 있고, 荊山은 懷德縣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세 산은 모두 雍州에 있다.
逾于河하여
黃河를 넘어서
[傳]此謂梁山龍門西河
이곳은 梁山과 龍門山 〈사이의〉 西河를 이른다.
[疏]傳‘此謂’至‘西河’
傳의 [此謂]에서 [西河]까지
○正義曰:‘逾于河’, 謂山逾之也. 此處山勢相望, 越河而東, 故云‘此謂龍門西河’. 言此處山不絶, 從此而渡河也.
○正義曰:[逾于河] 산맥이 황하를 넘는 것을 이른다. 이곳은 산세가 서로 이어져 황하를 넘어 동쪽으로 갔기 때문에 “이곳은 龍門山 사이의 西河를 이른다.”라고 한 것이다. 이곳은 산맥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황하를 건넜다고 말한 것이다.
壺口 雷首 至于太岳하며
壺口山과 雷首山으로부터 太岳山에 이르며,
[傳]三山 在冀州 太岳 上黨西
세 산은 冀州에 있다. 太岳山은 上黨郡의 서쪽에 있다.
[疏]傳‘三山’至‘黨西’
傳의 [三山]에서 [黨西]까지
○正義曰:地理志云 “壺口在河東北屈縣東南, 雷首在河東蒲坂縣南, 太岳在河東彘縣東.”
○正義曰:≪漢書≫ 〈地理志〉에 “壺口山은 河東郡 北屈縣 동남쪽에 있고, 雷首山은 河東郡 蒲坂縣 남쪽에 있고, 太岳山은 河東郡 彘縣 동쪽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是‘三山在冀州’. 以太岳東近上黨, 故云‘在上黨西’也.
‘세 산은 冀州에 있는 것’이다. 太岳山이 동쪽으로 上黨郡에 가깝기 때문에 “上黨郡의 서쪽에 있다.”라고 한 것이다.
厎柱 析城으로 至于王屋하며
厎柱山과 析城山으로부터 王屋山에 이르며,
[傳]此三山 在冀州南河之北하고 東行이라
이들 세 산은 冀州 南河의 북쪽에 있고 동쪽으로 뻗어나간다.
○厎柱 山名이니 在河水中이라
○厎柱는 산 이름이니, 河水 가운데 있다.
[疏]傳‘此三’至‘東行’
傳의 [此三]에서 [東行]까지
○正義曰:地理志云 “析城在河東濩澤縣, 王屋在河東垣縣東北.”
○正義曰:≪漢書≫ 〈地理志〉에 “析城山은 河東郡 濩澤縣 서쪽에 있고, 王屋山은 河東郡 垣縣 동북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地理志不載厎柱. 厎柱在太陽關東析城之西. 從厎柱至王屋, 在冀州南河之北, 東行也.
〈地理志〉에 厎柱山은 기재되지 않았으니, 厎柱山은 太陽縣 關東, 析城山의 서쪽에 있다. 厎柱山으로부터 王屋山에 이르기까지는 冀州 南河의 북쪽에 있고 동쪽으로 뻗어나간다.
恒山으로 至于碣石하여 入于海하다
太行山과 恒山으로부터 碣石山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傳]此二山 連延東北하여 接碣石而入滄海 百川 經此衆山이니 禹皆治之 不可勝名이라 以山言之
이들 두 산은 끊이지 않고 동북쪽으로 뻗어나가 碣石山에 접하여 滄海로 들어간다. 모든 하천이 이 여러 산들을 거치는데, 禹가 〈그 하천들을〉 다 다스렸으나, 이루 다 이름을 붙일 수 없기 때문에 산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疏]傳‘此二’至‘言之’
傳의 [此二]에서 [言之]까지
○正義曰:地理志云 “(大)[太]行山在河內山陽縣西北, 恒山在常山上曲陽縣西北.”
○正義曰:≪漢書≫ 〈地理志〉에 “太行山은 河內郡 山陽縣 서북쪽에 있고, 恒山은 常山郡 上曲陽縣 서북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大行去恒山太遠, 恒山去碣石又遠, 故云 “此二山連延東北, 接碣石而入滄海.” 言山傍之水皆入海, 山不入海也.
太行山은 恒山과의 거리가 매우 멀고, 恒山은 碣石山과의 거리가 또 멀기 때문에 “이들 두 산은 끊이지 않고 동북쪽으로 뻗어나가 碣石山에 접하여 滄海로 들어간다.”라고 하였으니, 산 주변의 물이 모두 바다로 들어감을 말한 것이지, 산맥이 바다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又解治水言山之意, ‘百川經此衆山, 禹皆治之, 川多不可勝名, 故以山言之’也.
또 홍수를 다스릴 때 산을 말한 뜻을 풀이하기를 ‘모든 하천이 이 여러 산들을 거치는데, 禹가 〈그 하천들을〉 다 다스렸으나, 이루 다 이름을 붙일 수 없기 때문에 산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謂漳‧潞‧汾‧涑, 在壺口‧雷首‧(大)[太]行, 經厎柱‧析城, 濟出王屋, 淇近(大)[太]行, 恒‧衛‧滹沲‧滱‧易, 近恒山‧碣石之等也.
漳水‧潞水‧汾水‧涑水는 壺口山‧雷首山‧太行山에 있는데 厎柱山과 析城山을 거쳐 흐르고, 濟水는 王屋山에서 나오고, 淇水는 太行山에 가깝고, 恒水‧衛水‧滹沲水‧滱水‧易水는 恒山과 碣石山에 가깝다는 것 등을 이른다.
역주
역주1 是舊有三條之說也……鄭玄以爲四列 : 林之奇는 ≪尙書全解≫에서 “〈禹貢〉에서 아마 산을 따르는 일을 먼저 하고 하천을 준설하는 일을 뒤에 한 모양인데, 이것은 禹의 治水하는 순서이다. 先儒가 이에 대해 논한 것이 많다. 馬融과 王肅 같은 이는 모두 3條를 만들어서 導岍을 北條로, 西傾을 中條로, 嶓冢을 南條로 삼았고, 鄭玄은 4列을 만들어서 導岍을 正陰列로, 西傾을 次陰列로, 嶓冢을 次陽列로, 岍山을 正陽列로 삼아 그 首尾가 서로 연해지게 하였으니, 孔氏의 생각 또한 반드시 馬氏‧鄭氏와 같은 案이었을 것이다.……經文에서 말한 ‘導’‧‘至’‧‘逾’‧‘入’은 모두 ‘懷山襄陵’의 물을 가리켜 말한 것인데, 先儒는 산을 가리켜 말하였으니, 무릇 산이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물건인데, 어떻게 河를 넘고 바다로 들어가고 九江을 지날 수 있겠는가. 이 한 문단은 文義가 매우 명백하건만, 先儒에게 ‘三條四列說’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여러 산들의 首尾를 서로 연속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말들이 대부분 牽强하여 통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역주2 西 : ≪漢書≫ 〈地理志〉에는 ‘西南’으로 되어 있다.
역주3 (大)[太] : 저본에는 ‘大’로 되어 있으나, ≪經典釋文≫에 의거하여 ‘太’로 바로잡았다. 아래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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