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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經集傳(上)

서경집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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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九河旣道며
九河 爾雅 一曰徒駭 二曰太史 三曰馬頰이요 四曰覆鬴 五曰胡蘇 六曰簡潔이요 七曰鉤盤이요 八曰鬲津이요 其一則河之經流也어늘 先儒 不知河之經流하고 遂分簡潔爲二하니라 旣道者 旣順其道也 ○ 按 徒駭河 地志云 滹沱河라하고 寰宇記云 在滄州淸池南이라하고 許商云 在平城이라하니라 馬頰河 元和志 在德州安德平原南東이라하고 寰宇記云 在棣州滴河北이라하고 輿地記云 卽篤馬河也라하니라 覆鬴河 通典云 在德州安德이라 胡蘇河 寰宇記云 在滄之饒安, 無棣, 臨津三縣이라하고 許商云 在東光이라하니라 簡潔河 輿地記云 在臨津이라 鉤盤河 寰宇記云 在樂陵東南하니 從德州平昌來라하고 輿地記云 在樂陵이라하니라 鬲津河 寰宇記云 在樂陵東하니 西北流入饒安이라하고 許商云 在鬲縣이라하고 輿地記云 在無棣라하니라 太史河 不知所在 自漢以來 講求九河者甚詳이나 漢世近古로되 止得其三이러니 唐人 集累世積傳之語하여 遂得其六하고 歐陽忞輿地記 又得其一이라 或新河而載以舊名하고 或一地而互爲兩說하니 要之컨대 皆似是而非하여 無所依據 至其顯然謬誤者하여는 則班固以滹沱爲徒駭하니 而不知滹沱不與古河相涉이요 樂史 馬頰 乃以漢篤馬河當之 鄭氏 求之不得일새 又以爲九河 齊桓 塞其八流以自廣이라하니 夫曲防 齊之所禁이니 塞河 宜非桓公之所爲也 河水可塞이어니와 而河道 果能盡平乎 皆無稽考之言也 惟程氏以爲九河之地 已淪於海라하고 引碣石爲九河之證하여 以謂今滄州之地 北與平州接境하여 相去五百餘里하니 禹之九河 當在其地 後爲海水淪沒故 其迹不存이라 方九河未沒於海之時 從今海岸하여 東北更五百里平地 河播爲九 在此五百里中이라 又上文言夾右碣石이라하니 則九河入海之處 有碣石在其西北岸이라 九河 水道變遷하여 難於推考로되 而碣石 通趾頂皆石이니 不應仆沒이어늘 今兗冀之地 旣無此石이요 而平州正南 有山而名碣石者 尙在海中하니 去岸五百餘里 卓立可見이니 則是古河自今以爲海處 向北斜行하여 始分爲九 其河道已淪入於海 明矣 漢王橫 言昔天常連雨하고 東北風하여 海水溢西南하여 出浸數百里라하니 九河之地 已爲海水所漸이라 酈道元 亦謂九河碣石 苞淪於海라하니라 後世儒者 知求九河於平地하고 而不知求碣石有無以爲之證이라 前後異說 竟無歸宿이라 蓋非九河之地而强鑿求之하니 宜其支離而不能得也니라
尙書注疏(2)(상서정의(2)) 尙書注疏 제6권 夏書> 禹貢 第一> 九河旣道하며
九河旣道하며
아홉 갈래의 黃河가 이미 예전의 물길을 회복하였으며,
[傳]河水分爲九道 在此州界하니 平原以北
황하의 물이 아홉 길로 나뉜 곳이 이 州(兗州)의 地界에 있으니, 平原 북쪽이 이곳이다.
○九河 徒駭一이요 太史二 馬頰三이요 覆釜四 胡蘇五 簡六이요 絜七이요 鉤盤八이요 鬲津九 出爾雅
○아홉 갈래의 황하는 徒駭가 하나요, 太史가 둘이요, 馬頰이 셋이요, 覆釜가 넷이요, 胡蘇가 다섯이요, 簡이 여섯이요, 絜이 일곱이요, 鉤盤이 여덟이요, 鬲津이 아홉이니, ≪爾雅≫에 나온다.
[疏]傳‘河水’至‘北是’
傳의 [河水]에서 [北是]까지
○正義曰:河自大陸之北, 敷爲九河, 謂大陸在冀州, 嫌九河亦在冀州, 故云‘在此州界’也.
○正義曰:황하가 大陸의 북쪽으로부터 나뉘어 九河가 되었지만, 大陸이 冀州에 있다고 한다면 九河 또한 冀州에 있다는 의심을 살까 싶었기 때문에 “이 州(兗州)의 경계에 있다.”라고 한 것이다.
河從大陸東畔北行, 而東北入海. 冀州之東境, 至河之西畔, 水分大河, 東爲九道, 故知在兗州界, 平原以北是也.
황하는 大陸의 동쪽 변두리로부터 북쪽으로 흘러가서 동북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冀州의 동쪽 지경에서 황하의 서쪽 변두리에 이르러 물이 大河에서 갈라져 동쪽으로 아홉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兗州의 地界에 있으니, 平原 이북이 이것이란 점을 알았던 모양이다.
釋水載九河之名云 “徒駭‧太史‧馬頰‧覆釜‧胡蘇‧簡‧絜‧鉤盤‧鬲津.”
≪爾雅≫ 〈釋水〉에 아홉 갈래의 황하 이름이 실려 있는데, “徒駭‧太史‧馬頰‧覆釜‧胡蘇‧簡‧絜‧鉤盤‧鬲津”이다.
李巡曰 “徒駭, 禹疏九河, 以徒衆起, 故云 ‘徒駭’. 太史, 禹大使徒衆通其水道, 故曰 ‘太史’.
李巡이 말하기를 “徒駭는 禹가 아홉 갈래의 황하를 소통시킬 때 여러 사람의 힘을 이용해서 일으켰기 때문에 ‘徒駭’라고 한 것이다. 太史는 禹가 대대적으로 여러 사람을 시켜서 그 물길을 소통시켰기 때문에 ‘太史’라고 한 것이다.
馬頰, 河勢上廣下狹, 狀如馬頰也. 覆釜, 水中多渚, 往往而處, 形如覆釜.
馬頰은 河水의 형세가 위는 넓고 아래는 좁아서 형상이 마치 말[馬]의 볼과 같은 것이다. 覆釜는 물 가운데 작은 섬이 많아 이따금 놓인 형상이 마치 엎어놓은 가마솥과 같은 것이다.
胡蘇, 其水下流, 故曰 ‘胡蘇’. 胡, 下也. 蘇, 流也. 簡, 大也, 河水深而大也.
胡蘇는 그 물이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胡蘇’라고 한 것이다. 胡는 下의 뜻이요, 蘇는 流의 뜻이다. 簡은 大의 뜻이니, 河水가 깊고 큰 것이다.
絜, 言河水多山石, 治之苦絜. 絜, 苦也. 鉤盤, 言河水曲如鉤, 屈折如盤也. 鬲津, 河水狹小, 可鬲以爲津也.”
絜은 河水에 山石이 많아서 다스리기 힘듦을 말한 것이다. 絜은 苦의 뜻이다. 鉤盤은 河水가 마치 갈고리처럼 굽고 소반처럼 굴절된 점을 말한 것이다. 鬲津은 河水가 협소하여 막아서 나루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孫炎曰 “徒駭, 禹疏九河, 用功雖廣, 衆懼不成, 故曰 ‘徒駭’. 胡蘇, 水流多散胡蘇然.” 其餘同李巡.
孫炎은 “徒駭는 禹가 아홉 갈래의 황하를 소통시킬 때 힘은 많이 들였으나 여러 사람이 두려워해서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徒駭’라고 한 것이다. 胡蘇는 물의 흐름이 이리저리 많이 흩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그 나머지는 李巡과 같다.
郭璞云 “徒駭今在成平, 東光縣今有胡蘇亭.” 覆釜之名 同李巡, 餘名皆云其義未詳.
郭璞은 “徒駭는 지금 成平에 있고, 東光縣에 지금 胡蘇亭이 있다.”라고 하였으며, 覆釜의 이름은 李巡과 같고, 나머지 이름에 대해서는 모두 “그 뜻이 상세하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計禹陳九河云, 復其故道, 則名應先有, 不宜徒駭‧太史因禹立名, 此郭氏所以未詳也.
禹가 아홉 갈래의 황하에 대해 진술할 때 “그 예전의 물길을 회복했다.”라고 한 것을 감안하면, 물 이름이 응당 먼저 있었을 것이고, 의당 徒駭와 太史가 禹로 인해서 命名되지는 않았을 것이니, 이것이 郭氏가 “상세하지 않다.”고 한 이유이다.
[疏]或九河雖舊有名, 至禹治水, 更別立名, 卽爾雅所云是也.
혹 아홉 갈래의 황하가 비록 예전에 이름이 있었으나 禹가 홍수를 다스릴 때에 와서 다시 별도로 命名하였다면 곧 ≪爾雅≫에서 이른 것이 이것일 수 있다.
漢書溝洫志成帝時, 河隄都尉許商, 上書曰 “古記九河之名, 有徒駭‧胡蘇‧鬲津, 今見在成平‧東光‧鬲縣界中,
≪漢書≫ 〈溝洫志〉에 의하면 成帝 때에 河隄都尉 許商이 上書하기를 “옛날 아홉 갈래 황하의 이름을 기재한 데에 徒駭‧胡蘇‧鬲津이 있으니, 지금 보면 成平‧東光‧鬲縣의 경계 가운데 있습니다.
自鬲津以北至徒駭, 其間相去二百餘里.” 是知九河所在, 徒駭最北, 鬲津最南. 蓋徒駭是河之本道, 東出分爲八枝也.
鬲津 이북으로부터 徒駭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의 상거가 200여리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하여 아홉 갈래 황하의 소재를 알 수 있으니, 徒駭가 가장 북쪽에 위치해있고 鬲津이 가장 남쪽에 위치해있었다. 아마 徒駭는 바로 황하의 본길이고 동쪽으로 나가 나뉘어 여덟 갈래가 된 것 같다.
許商上言三河, 下言三縣, 則徒駭在成平, 胡蘇在東光, 鬲津在鬲縣, 其餘不復知也. 爾雅九河之次, 從北而南.
許商이 위에서 세 황하를 말하고 아래에서 세 고을을 말하였으니, 徒駭는 成平에 있고, 胡蘇는 東光에 있고, 鬲津은 鬲縣에 있으며, 그 나머지는 더 이상 알 수 없다. ≪爾雅≫에 있는 ‘아홉 갈래 황하’의 차례가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배열되어 있다.
旣知三河之處, 則其餘六者, 太史‧馬頰‧覆釜在東光之北, 成平之南, 簡‧絜‧鉤盤在東光之南, 鬲縣之北也.
세 황하의 소재지를 이미 알았으면 그 나머지 여섯 중에 太史‧馬頰‧覆釜는 東光의 북쪽, 成平의 남쪽에 있고, 簡‧絜‧鉤盤은 東光의 남쪽, 鬲縣의 북쪽에 있을 것이다.
其河填塞, 時有故道. 鄭玄云 “周時齊桓公塞之, 同爲一河. 今河間弓高以東, 至平原鬲津, 往往有其遺處.”
황하가 막혔지만 당시 예전의 물길은 있었을 것이다. 鄭玄은 “周나라 시대에 齊 桓公이 막아서 모두 한 황하로 만들었다. 지금 河間 弓高縣 이동에서 平原 鬲津에 이르기까지 이따금 남아 있는 곳이 있다.”라고 하였는데,
春秋緯寶乾圖云 “移河爲界在齊呂, 填閼八流以自廣.” 鄭玄蓋據此文, 爲齊桓公塞之也.
≪春秋緯≫ 〈寶乾圖〉에 “황하를 옮겨 경계를 만든 일이 齊呂에 있었으니, 八流를 막아 저절로 넓어지게 했다.”라고 하였으니, 鄭玄이 아마 이 글에 의거하여 “齊 桓公이 막았다.”라고 한 것 같다.
言閼八流拓境, 則塞其東流八枝, 竝使歸於徒駭也.
“八流를 막아 지경을 개척했다.”라고 말하였으니, 동쪽으로 흐르는 여덟 갈래를 막아 아울러 徒駭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爲] : 문의에 의해 보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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