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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傳義(上)

주역전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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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 習坎 序卦 物不可以終過 故受之以坎하니 坎者 陷也라하니라 理无過而不已하고 過極則必陷이니 坎所以次大過也 謂重習이니 他卦雖重이나 不加其名이어늘 獨坎加習者 見其重險이니 險中復有險하여 其義大也 卦中一陽이요 上下二陰이니 陽實陰虛하여 上下无據하여 一陽 陷於二陰之中이라 故爲坎陷之義 陽居陰中則爲陷이요 陰居陽中則爲 凡陽在上者 止之象이요 在中 陷之象이요 在下 動之象이며 陰在上 說之象이요 在中 麗之象이요 在下 巽之象이니 陷則爲險이라 重也 如學習溫習 皆重複之義也 陷[一作險]也 卦之所言 處險難之道 水也 一始於中하여 有生之最先者也 故爲水 水之體也
29. 坎 ䷜
習坎 有孚야 維心亨이니면 有尙이리라
[傳] 陽實 在中하니 爲中有孚信이라 維心亨 維其心誠一이라 故能亨通이라 至誠 可以通金石, 蹈水火하니 何險難之不可亨也리오 行有尙 謂以誠一而行이면 則能出險하여 有可嘉尙이니 謂有功也 不行則常在險中矣리라
彖曰 習坎 重險也ㅣ니
流而不盈며 行險而不失其信이니
[傳] 習坎者 謂重險也 上下皆坎 兩險相重也 初六云坎窞이라하니 坎中之坎이니 重險也 水流而不盈 陽動於險中而未出於險하니 乃水性之流行而未盈於坎이니 旣盈則出乎坎矣 行險而不失其信 陽剛中實 居險之中하니 行險而不失其信者也 坎中實 水就下 皆爲信義, 有孚也
維心亨 乃以剛中也ㅣ오
[傳] 維其心可以亨通者 乃以其剛中也일새라 中實 爲有孚之象이니 至誠之道 何所不通[一作亨]이리오 以剛中之道而行이면 則可以濟險難而亨通也
行有尙 往有功也ㅣ라
[傳] 以其剛中之才而往이면 則有功이라 故可嘉尙이니 若止而不行이면 則常在險中矣[一作也]리라 以能行爲功이라
天險 不可升也ㅣ오 地險 山川丘陵也ㅣ니 王公 設險야 以守其國니 險之時用 大矣哉
[傳] 高不可升者 天之險也 山川丘陵 地之險也 王公君人者 觀坎之象하여 知險之不可陵也 故設爲城郭溝池之險하여 以守其國하고 保其民人하니 是有用險之時 其用甚大 故贊其大矣哉 山河城池 設險之大端也 若夫尊卑之辨 貴賤之分으로 明等威, 異物采하여 凡所以杜絶陵僭, 限隔上下者 皆體險之用也
象曰 水 洊至 習坎이니 君子야 常德行며 習敎事니라
[傳] 坎爲水 水流仍洊而至 兩坎相習 水流仍洊之象也 水自涓滴으로 至於尋丈하고 至於江海하여 洊習而不驟[一作讓]者也 其因勢就下 信而有常이라 故君子觀坎水之象하여 取其有常이면 則常久其德行하나니 人之德行 不常則僞也 故當如水之有常이라 取其洊習相受 則以習熟其敎令之事하나니 夫發政行敎 必使民熟於聞聽然後能從이라 故三令五申之하나니 若驟告未喩 遽責其從이면 雖嚴刑以驅之[一无之字]라도 不能也 故當如水之洊習이라
初六 習坎 入于坎窞이니니라
[傳] 初以陰柔[一无柔字] 居坎險之下하여 柔弱无援而處不得當하니 非能出乎險也 唯益陷於深險耳 坎中之陷處 已在習坎中이어늘 更入坎窞이면 其凶可知
象曰 習坎入坎 失道ㅣ라 凶也ㅣ라
[傳] 由習坎而更入坎窞 失道也 是以凶이니 能出於險이라야 乃不失道也
九二 有險나 小得리라
[傳] 二當坎險之時하여 陷上下二陰之中하니 乃至險之地 是有險也 然其剛中之才 雖未能出乎險中이나 亦可小自濟하여 不至如初 益陷入于深險하니 是所求小得也 君子處險難而能自保者 剛中而已 剛則才足自衛 中則動不失宜니라
象曰 求小得 未出中也라
[傳] 方爲二陰所陷하여 在險之地로되 以剛中之才 不至陷於深險하니 是所求小得이나 然未能出坎中之險也
六三 來之 坎坎며 且枕야 入于坎窞이니 勿用이니라
[傳] 六三 在坎陷[一作險]之時하여 以陰柔而居不中正하니 其處不善하여 進退與居 皆不可者也 來下則入于險之中하고 之上則重險也 退來與進之皆險이라 故云來之坎坎이라하니 旣進退皆險而居亦險이라 謂支倚 居險而支倚以處 不安之甚也 所處如此하니 唯益入於深險耳 故云入于坎窞이요 如三所處之道[一无之道字] 不可用也 故戒勿用하니라
象曰 來之坎坎 終无功也이라
[傳] 進退皆險하고 處又不安하니 若用此道 當益入于險이니 終豈能有功乎 以陰柔 處不中正하니 雖平易之地라도 尙致悔咎어든 況處險乎 險者 人之所欲出也로되 必得其道라야 乃能去之 求去而失其道 益困窮耳 故聖人 戒如三所處 不可用也시니라
六四 樽酒 簋貳 用缶고 納約自牖ㅣ면 終无咎리라
[傳] 六四陰柔而下无助하니 非能濟天下之險者로되 以其在高位 故言爲臣處險之道하니라 大臣 當險難之時하여 唯至誠見信於君하여 其交固而不可間이요 又能開明君心이면 則可保无咎矣[一作也] 夫欲上之篤信인댄 唯當盡其質實而已 多儀而尙飾 莫如燕享之禮 故以燕享喩之하니 言當不尙浮飾이요 唯以質實이라 所用一樽之酒 二簋之食 復以瓦缶爲器 質之至也 其質實如此 又須納約自牖 納約 謂進結於君之道 [一有有字]開通之義 室之暗也 故設牖하니 所以通明이라 自牖 言自通明之處 以況君心所明處 하니 亦開通之謂[一作義] 人臣以忠信善道 結於君心인댄 必自其所明處라야 乃能入也 人心 有所蔽하고 有所通하니 所蔽者 暗處也 所通者 明處也 當就其明處而告之하여 求信則易也 故云納約自牖 能如是 則雖艱險之時라도 終得无咎也 且如君心 蔽於荒樂 唯其蔽也故爾 雖力詆其荒樂之非라도 如其不省 必於所不蔽之事 推而及之 則能悟其心矣 自古 能諫其君者 未有不因其所明者也 故訐直强勁者 率多取忤하고 而溫厚明辯者 其說多行이라 且如漢祖愛戚姬하여 將易太子하니 是其所蔽也 群臣爭之者衆矣 嫡庶之義 長幼[一作少長]之序 非不明也로되 如其蔽而不察 四老者 高祖素知其賢而重之하니 此其不蔽之明心也 故因其所明而及其事 則悟之如反手이리오 然而不從彼而從此者 由攻其蔽與就其明之異耳 又如 故其聽也如響이라 非惟告於君者如此 爲敎者亦然이라 夫敎 必就人之所長이니 所長者 心之所明也 從其心之所明而入然後 推及其餘 是也
象曰 樽酒簋貳 剛柔際也라
[傳] 象 只擧首句하니 如此比多矣 樽酒簋貳 質實之至 剛柔相際接之道能如此 則可終保无咎 君臣之交 能固而常者 在誠實而已 剛柔 指四與五 謂君臣之交際也
九五 坎不盈이니 면 无咎ㅣ리라
[傳] 九五在坎之中하니 是不盈也 盈則平而出矣 宜音柢 抵也 復卦云 无祗悔라하니라 必抵於已平則无咎어니와 旣曰不盈이면 則是未平而[一无而字]尙在險中이니 未得无咎也 以九五剛中之才 居尊位 宜可以濟於險이나 然下无助也 二陷於險中하여 未能出하고 餘皆陰柔하여 无[一作非]濟險之才하니 人君雖才 安能獨濟天下之險이리오 居君位而不能致天下出於險이면 則爲有咎 必祗旣平이라야 乃得无咎
象曰 坎不盈 未大也ㅣ라
[傳] 九五 剛中之才而得尊位하니 當濟天下之險難이나 而坎尙不盈하니 乃未能平乎險難이니 是其剛中之道 未光大也 險難之時 非君臣協力이면 其能濟乎 五之道未大 以无臣也 人君之道 不能濟天下之險難이면 則爲未大 不稱其位也
上六 야 寘于叢棘야 三歲라도 不得이니니라
[傳] 上六 以陰柔而居險之極하니 其陷之深者也 以其陷之深으로 取牢獄爲喩 如係縛之以徽纆하여 囚寘於叢棘之中하니 陰柔而陷之深하여 其不能出矣 故云 至于三歲之久라도 不得免也라하니 其凶可知니라
象曰 上六失道 凶三歲也리라
[傳] 以陰柔而自處極險之地하니 是其失道也 故其凶 至于三歲也 三歲之久而不得免焉하니 終凶之辭也 言久 有曰十, 有曰三하니 隨其事也 陷于獄하여 至于三歲 久之極也 他卦 以年數言者 亦各以其事也 如三歲不興, 十年乃字 是也
역주
역주1 : 리
역주2 : 착
역주3 시운천지유민(詩云天之牖民)……모공훈유위도(毛公訓牖爲道) : 모공(毛公)은 《시경(詩經)》을 주해(註解)한 모장(毛萇)을 가리키는 바, 위의 내용은 《시경(詩經)》 〈대아(大雅) 판(板)〉에 보인다.
역주4 사노인지력(四老人之力)……숙여주창숙손통(孰與周昌叔孫通) : 네 노인(老人)은 상산사호(商山四皓)로 진(秦)나라 말기 상산(商山)에 은둔하여 살던 네 노인(老人)인 바, 곧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동원공(東園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을 이른다. 한(漢)나라 고조(高祖)인 유방(劉邦)은 적처(嫡妻)인 여후(呂后)의 아들 혜제(惠帝)를 처음에 태자(太子)로 세웠으나 척부인(戚夫人)을 사랑하여 그녀의 소생인 조왕(趙王) 여의(如意)를 후계자로 삼으려 하였다. 이에 주창(周昌)과 숙손통(叔孫通) 등은 강력히 반대하였으나 고조(高祖)는 듣지 않았다. 고조(高祖)는 일찍이 상산사호(商山四皓)의 뛰어난 인품을 사모하여 여러 차례 이들을 초청하였으나 이들은 모두 숨고 나오지 않았었다. 이때 장량(張良)은 태자(太子)인 혜제(惠帝)로 하여금 상산사호(商山四皓)를 초빙하여 태자궁(太子宮)에 두고 태자(太子)를 모시게 하였다. 그 결과, 고조(高祖)는 이들이 태자(太子)를 따라 보필하는 것을 보고 태자(太子)를 교체하려던 계획을 포기하여 혜제(惠帝)가 즉위할 수 있었다.
역주5 조왕태후(趙王太后)……인기명이도지이장구지계(因其明而導之以長久之計) : 조왕(趙王)의 태후(太后)는 혜문왕(惠文王)의 후비(后妃)인 위후(威后)를 가리킨다. 혜문왕(惠文王)이 죽고 효성왕(孝成王)이 즉위하자, 모후(母后)인 태후(太后)가 권력을 행사하였다. 이때 조(趙)나라는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위급하였으므로 제(齊)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제(齊)나라에서는 효성왕(孝成王)의 동모제(同母弟)이며 태후(太后)의 막내아들인 장안군(長安君)을 인질로 보내야만 원병(援兵)을 보내겠다고 하였다. 이에 왕(王)과 대신(大臣)들은 장안군(長安君)을 제(齊)나라에 보낼 것을 청하였으나 태후(太后)는 나이어린 막내아들을 사랑하여 이를 듣지 않았다. 이에 좌사(左師)인 촉룡(觸龍)은 태후(太后)를 찾아 뵙고 자신의 막내아들을 태후(太后)에게 부탁하여 태후(太后)의 마음을 회유하는 한편 장안군(長安君)이 장구(長久)하게 부귀(富貴)를 누리려면 이러한 기회에 인질로 나가 국가에 크게 공헌해야 함을 넌지시 말하였다. 이에 태후(太后)는 장안군(長安君)을 제(齊)나라에 인질로 보냈으며, 그 결과 제(齊)나라의 원병(援兵)이 출동하여 진군(秦軍)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 내용은 《사기(史記)》 〈조세가(趙世家)〉와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에 모두 보이는데 《전국책(戰國策)》에는 촉섭(觸讋)으로 되어 있다.
역주6 맹자소위성덕달재(孟子所謂成德達才) : 성덕(成德)은 덕을 이루는 것이고 달재(達才)는 재능을 발달시키는 것인 바, 《맹자(孟子)》 〈진심상(盡心上)〉에 “군자지소이교자오(君子之所以敎者五) 유여시우화지자(有如時雨化之者) 유성덕자(有成德者) 유달재자(有達財者)”라고 보인다. 재(財)는 재(材)‧재(才)와 통하는 바, 달재(達才)는 상대방의 장점을 따라 가르침을 이른다.
역주7 주례대제삼이(周禮大祭三貳) : 《주례(周禮)》 〈천관(天官) 주정(酒正)〉에 “대제삼이(大祭三貳) 중제재이(中祭再貳) 소제일이(小祭壹貳)”라고 보인다.
역주8 육씨석문본(陸氏釋文本) : 육씨(陸氏)는 당(唐)나라 고조(高祖) 때의 국자박사(國子博士)였던 육덕명(陸德明)을 가리키며, 석문본(釋文本)은 그가 지은, 경전(經典)의 음독(音讀)을 풀이한 《경전석문(經典釋文)》을 가리킨다.
역주9 지기평(祗旣平) : 앞의 복괘(復卦) 초구(初九) 효사(爻辭)의 《정전(程傳)》역주(譯註)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10 계용휘묵(係用徽纆) : 사계(沙溪)는 “휘(徽)는 삼규승(三糾繩)[세 겹으로 꼰 노]이고 묵(纆)은 양고삭(兩股索)[두 가닥으로 꼰 새끼줄]이다.” 하였다.
周易正義(2)(주역정의(2)) 周易兼義 上經 隨傳 卷第三> 29. 坎䷜ 坎下坎上
習坎이니
坎을 익힘이니,
[注]坎 險陷之名也 謂便習之
坎은 험하고 빠짐의 이름이고, 習은 익숙히 익힘[便習]을 이른다.
[疏]正義曰:坎, 是險陷之名. 習者, 便習之義. 險難之事, 非經便習, 不可以行, 故須便習於坎, 事乃得用, 故云“習坎”也.
正義曰:‘坎’은 바로 험하고 빠짐의 이름이다. ‘習’은 익숙히 익힘[便習]의 뜻이다. 험난한 일은 便習을 거치지 않으면 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坎을 便習하여야 일이 비로소 쓰일 수 있으므로 “坎을 익힌다.”라고 한 것이다.
案諸卦之名, 皆於卦上不加其字, 此坎卦之名, 特加習者, 以坎爲險難, 故特加習名.
살펴보건대, 여러 卦의 이름이 모두 卦 위에 글자를 더하지 않았는데, 이 坎卦의 이름에 특별히 ‘習’字를 가한 것은, 坎이 험난함이 되기 때문에 특별히 ‘習’의 이름을 가한 것이다.
習은 두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거듭한다’는 뜻이니, 위아래가 모두 坎임을 이른다. 이는 重疊으로 험함이 있는 것이니, 험함이 중첩되면 바로 험함의 쓰임을 이루는 것이다.
者, 人之行險, 先須使習其事, 乃可得通, 故云“習”也.
두 번째는 사람이 험한 곳을 행할 때에는 먼저 모름지기 그 일을 便習하여야 비로소 통할 수 있으므로 “習”이라 한 것이다.
有孚하여 維心亨하니
성실함이 있어서 마음이 형통하니,
[注]剛正在內 有孚者也 陽不外發而在乎內 心亨者也
剛과 正이 안에 있음은 성실함이 있는 것이요, 陽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안에 있음은 마음이 형통한 것이다.
[疏]‘有孚維心亨’
經의 [有孚維心亨]
○正義曰:‘有孚’者, 亨, 信也, 由剛正在內, 故有信也.
○正義曰:[有孚] 형통함은 성실하기 때문이니, 剛과 正이 안에 있으므로 성실함이 있는 것이다.
‘維心亨’者, 陽不發外而在於內, 是維心亨, 言心得通也.
[維心亨] 陽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안에 있으니, 이는 마음이 형통한 것인바, 마음이 형통함을 얻음을 말한 것이다.
[疏]○注‘剛正在內’至‘心亨者也’
○注의 [剛正在內]에서 [心亨者也]까지
○正義曰:‘剛正在內’者, 謂陽在中也, 心剛正, 則能有誠信, 故云“剛正在內, 有孚者也.”
○正義曰:[剛正在內] 陽이 中에 있음을 이르니, 안에 마음이 剛하고 바르면 능히 誠信을 소유하므로 “剛과 正이 안에 있음은 성실함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陽不外發而在乎內 心亨者也’, 若外陽內陰, 則內心柔弱, 故不得亨通, 今以陽在於內, 陽能開通, 故維其在心之亨也.
[陽不外發而在乎內 心亨者也] 만약 밖이 陽이고 안이 陰이면 안의 마음이 유약하기 때문에 형통함을 얻지 못하는데, 지금 陽이 안에 있어서 陽이 통함을 열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있는 형통함인 것이다.
行有尙이라
행함에 높일 만한 것이 있다.
[注]內亨外闇하고 內剛外順하니 以此行險이면 行有尙也
안은 형통하고 밖은 어두우며 안은 剛하고 밖은 順하니, 이로써 험함을 행하면 행함에 높임이 있는 것이다.
[疏]‘行有尙’
經의 [行有尙]
○正義曰:內亨外闇, 內剛外柔, 以此行險, 事可尊尙, 故云“行有尙”也.
○正義曰:안은 형통하고 밖은 어두우며 안은 剛하고 밖은 柔順하니, 이로써 험함을 행하면 일이 높일 만하기 때문에 “행함에 높일 만한 것이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疏]○注‘內亨外闇’至‘行有尙也’
○注의 [內亨外闇]에서 [行有尙也]까지
○正義曰:內亨外闇者, 內陽故內亨, 外陰故外闇, 以亨通之性而往陰闇之所, 能通於險, 故行可貴尙也.
○正義曰:[內亨外闇] 陽이 안에 있기 때문에 안이 형통하고, 陰이 밖에 있기 때문에 밖이 어두운 것이니, 형통한 성질로 陰闇의 장소에 가서 능히 험함을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행함이 귀할 만하고 높일 만한 것이다.
彖曰 習坎 重險也
〈彖傳〉에 말하였다. “習坎은 거듭된 험함이니,
[注]坎 以險爲用이라 特名曰 重險이라 言習坎者險也
坎은 험함을 쓰임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특별히 이름하기를 “重險”이라 한 것이다. 習坎이라고 말한 것은 ‘거듭된 험함[重險]’을 익히는 것이다.
[疏]‘彖曰習坎重險也’
經의 [彖曰習坎重險也]
○正義曰:釋習坎之義. 言習坎者, 習行重險, 險, 難也. 若險難不重, 不爲至險, 不須便習, 亦可濟也,
○正義曰:‘習坎’의 뜻을 해석하였다. ‘習坎’이라고 말한 것은 ‘거듭된 험함[重險]’을 익혀 행하는 것이니, 險은 어려움이다. 만일 험난함이 거듭되지 않으면 지극히 험함이 되지 않으니, 굳이 便習하지 않더라도 구제할 수 있지만,
今險難旣重, 是險之甚者, 若不便習, 不可濟也, 故注云“習坎者, 習重險也.”
지금 험난함이 이미 거듭되니 이는 험난함이 심한 것이므로 만약 便習하지 않으면 건널 수 없다. 그러므로 注에 “習坎은 거듭된 험함을 익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坎以險爲用’至‘習乎重險也’
注의 [坎以險爲用]에서 [習乎重險也]까지
○正義曰:‘言習坎者 習乎重險也’者, 言人便習於坎, 止是便習重險, 便習之語, 以釋習名.
○正義曰:[言習坎者 習乎重險也] 사람이 坎을 便習한다고 말한 것은 다만 거듭된 험함을 便習하는 것이니, 便習이란 말로 習의 이름을 해석한 것이다.
兩坎相重, 謂之重險, 又當習義, 是一習之名, 有此兩義.
두 坎이 서로 거듭함을 ‘重險’이라 이르고, 또 익힘의 뜻에 해당하니, 이는 한 ‘習’의 이름에 이 두 가지 뜻이 있는 것이다.
水流而不盈하며 行險而不失其信하나니라
물이 흘러가도 차지 않으며 험함을 행하면서도 그 성실함을 잃지 않는다.
[注]險陗之이라 水流而不能盈也 處至險而不失剛中하고 行險而不失其信者 習坎之謂也
험하고 높음이 지극하기 때문에 물이 흘러도 능히 채우지 못한다. 지극히 험함에 처하여 剛中을 잃지 않고 험함을 행하면서도 그 성실함을 잃지 않는 것은 習坎임을 이른 것이다.
[疏]‘水流而不盈’至‘不失其信’
經의 [水流而不盈]에서 [不失其信]까지
○正義曰:此釋重險‧習坎之義. 水流而不盈, 謂險陷旣極, 坑穽特深, 水雖流注, 不能盈滿, 言險之甚也, 釋重險之義也.
○正義曰:이는 重險과 習坎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水流而不盈’은 험함과 빠짐이 이미 지극함에 구덩이와 함정이 특별히 깊어서 물이 비록 흘러가고 주입하나 능히 가득 차지 못함을 이르니, 이는 험함이 심함을 말한 것인바, 重險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行險而不失其信, 謂行此至險, 能守其剛中, 不失其信也, 此釋習坎及有孚之義也. 以能便習於險, 故守剛中, 不失其信也.
‘行險而不失其信’은 이 지극히 험함을 행함에 능히 剛中을 지켜서 그 성실함을 잃지 않음을 이르니, 이는 習坎과 有孚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능히 험함을 便習하기 때문에 剛中을 지켜서 그 성실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疏]○注‘險陗之極’至‘習坎之謂也’
○注의 [險陗之極]에서 [習坎之謂也]까지
○正義曰:‘險陗之極 故水流而不能盈’者, 若淺岸平谷, 則水流有可盈滿,
○正義曰:[險陗之極 故水流而不能盈] 만약 얕은 언덕과 평평한 골짜기이면 물이 흘러가 가득 채울 수 있지만,
若其崖岸險峻, 澗谷泄漏, 是水流不可盈滿, 是險難之極也.
만약 그 언덕이 험하고 높으며 시내와 골짜기로 물이 새면 이는 물이 흘러도 가득 채울 수가 없으니, 이는 험난함이 지극한 것이다.
維心亨 乃以剛中也 行有尙 往有功也
마음이 형통함은 바로 剛中하기 때문이요, 행함에 높일 만함이 있는 것은 가면 功이 있는 것이다.
[注]便習於坎하여 而之坎地 盡坎之宜 往必有功也
坎을 便習하여 坎의 땅으로 감에 坎의 마땅함을 다하였다. 그러므로 가면 반드시 功이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維心亨 乃以剛中也’者, 釋維心亨義也, 以剛在於中, 故維得心亨也.
正義曰:[維心亨 乃以剛中也] ‘마음이 형통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剛이 中에 있기 때문에 마음이 형통함을 얻는 것이다.
‘行有尙 往有功’者, 此釋行有尙也, 旣便習於坎, 而往之險地, 必有其功, 故云“行有尙, 往有功也.”
[行有尙 往有功] 이는 ‘행함에 높일 만함’을 해석한 것이니, 이미 坎을 便習하여 험한 땅으로 가면 반드시 功이 있다. 그러므로 “행함에 높일 만함이 있음은 가면 功이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天險 不可升也
하늘의 험함은 올라갈 수 없고,
[注]不可得升이라 得保其威尊이라
올라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위엄과 높음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此已下, 廣明險之用也. 言天之爲險, 懸邈高遠, 不可升上, 此天之險也.
正義曰:이 이하는 險의 쓰임을 넓혀 밝힌 것이다. 하늘의 험함은 높고 멀리 매달려 있어서 올라갈 수가 없으니, 이것이 하늘의 험함임을 말한 것이다.
若其可升, 不得保其威尊, 故以不可升爲險也.
만약 올라갈 수가 있으면 그 위엄과 높음을 보장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올라갈 수 없는 것을 험함으로 삼는 것이다.
地險 山川丘陵也
땅의 험함은 山川과 구릉이요,
[注]有山川丘陵이라 物得以保全也
산천과 구릉이 있기 때문에 물건이 保全될 수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言地以山川丘陵而爲險也, 故使地之所載之物, 保守其全.
正義曰:땅이 산천과 구릉을 험함으로 삼기 때문에 땅에 실려 있는 물건들로 하여금 그 온전함을 보존하여 지키게 함을 말한 것이다.
若无山川丘陵, 則地之所載之物, 失其性也, 故地以山川丘陵而爲險也.
만약 산천과 구릉이 없으면 땅에 실려 있는 물건들이 그 본성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땅은 산천과 구릉을 험함으로 삼는 것이다.
王公 設險以守其國하나니
王公이 험함을 만들어서 그 나라를 지키니,
[注]國之爲衛 恃於險也 言自天地以下 莫不須險也
나라를 보위함은 험한 지형을 믿는 것이니, 하늘과 땅 이하로 험함을 필요로 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疏]正義曰:言王公法象天地, 固其城池, 嚴其法令, 以保其國也.
正義曰:王公이 하늘과 땅을 본받고 형상하여 城과 해자를 견고히 하고 법령을 엄격히 시행해서 그 나라를 보존함을 말한 것이다.
險之時用 大矣哉
險을 때로 씀이 盛大하다.”
[注]非用之常이니 用有時也
늘 쓰는 것이 아니니, 씀에 때가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言天地已下, 莫不須險, 險有時而用, 故其功盛大矣哉.
正義曰:하늘과 땅 이하로 험함을 필요로 하지 않음이 없어서 험난함을 쓸 때가 있다. 그러므로 그 功이 성대한 것이다.
[疏]○注‘非之常用有時也’
○注의 [非用之常用有時也]
○正義曰:若天險地險, 不可暫无, 此謂人之設險, 用有時也.
○正義曰:하늘의 험함과 땅의 험함으로 말하면 잠시도 없어서는 안 되고, 이것은 사람이 험함을 만드는 것이 씀에 때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若化洽平治, 內外輯睦, 非用險也, 若家國有虞, 須設險防難, 是用有時也.
만약 교화가 흡족하여 나라가 편안하게 다스려져서 안과 밖이 화목하면 험함을 쓸 때가 아니요. 만약 나라와 집안에 근심할 만한 일이 있으면 모름지기 험함을 만들어 難을 방지하여야 하니, 이것이 ‘씀에 때가 있는 것’이다.
象曰 水洊至 習坎이니
〈象傳〉에 말하였다. “물이 거듭 이르는 것이 習坎卦이니,
[注]重險懸絶이라 水洊至也 不以坎爲隔絶이요 相仍而至 習乎坎也
거듭된 험함이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물이 거듭 이르는 것이다. 坎을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 것이 아니요 서로 이어서 오니, 이것이 坎을 거듭[習]한 것이다.
[疏]正義曰:重險懸絶, 其水不以險之懸絶, 水亦相仿而至, 故謂爲習坎也.
正義曰:거듭된 험함이 멀리 떨어져 있으나 물은 험함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기지 않고 물이 또한 서로 계속하여 이르므로 習坎이라 한 것이다.
以人之便習于坎, 猶若水之洊至, 水不以險爲難也.
사람이 坎을 便習함은 물이 거듭 이르는 것과 같으니, 물은 험함을 어려움으로 삼지 않는다.
君子以常德行하고 習敎事하니라
君子가 보고서 德行을 항상하고 가르치는 일을 익힌다.”
[注]至險未夷하니 敎不可廢 以常德行而習敎事也
지극히 험하여 아직 평탄하지 못하니 가르침을 폐할 수 없다. 그러므로 德行을 항상하고 가르치는 일을 익히는 것이다.
習於坎然後 乃能不以險難爲困하여 而德行不失常也 則夫習坎하여 以常德行하고 而習敎事也
坎을 익힌 연후에 비로소 능히 험난함을 곤궁함으로 삼지 않아서 德行이 떳떳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習坎을 본받아서 德行을 항상하고 가르치는 일을 익히는 것이다.
[疏]正義曰:言君子當法此, 便習於坎, 不以險難爲困, 當守德行, 而習其政敎之事, 若能習其敎事, 則可便習於險也.
正義曰:君子가 마땅히 이것을 본받아서 坎을 便習하여 험난함을 곤궁으로 여기지 않고, 마땅히 德行을 지키며 그 政事와 가르치는 일을 익힘을 말한 것이니, 만약 가르치는 일을 익히면 험함을 便習할 수 있다.
初六 習坎하되 入于坎窞하니하니라
初六은 坎을 익히되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니, 흉하다.
[注]習坎者 習爲險難之事也 最處坎底하여 入坎窞者也 處重險而復入坎底하니 其道凶也
習坎은 험난한 일을 익히는 것이다. 初六은 坎의 가장 밑바닥에 처하여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거듭된 險에 처하여 다시 坎의 밑바닥으로 들어가니, 그 道가 흉하다.
行險而不能自濟하고 習坎而入坎窞하여 失道而窮在坎底어늘 上无應援可以自濟하니 是以凶也
험함을 행하면서 스스로 구제하지 못하고, 坎을 익히되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서 道를 잃고 곤궁하게 구덩이 밑바닥에 있는데, 위에 자신을 구제해줄 응원이 없다. 이 때문에 흉한 것이다.
[疏]正義曰:旣處坎底, 上无應援, 是習爲險難之事. 无人應援, 故入於坎窞, 而至凶也. 以其失道, 不能自濟, 故象云“失道凶也.”
正義曰:이미 坎의 밑바닥에 처하여 위에 응원이 없으니, 이는 험난한 일을 익히는 것이다. 응원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서 흉함에 이른 것이다. 그 道를 잃어서 스스로 구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象傳〉에 “道를 잃어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習坎入坎 失道하여 凶也
〈象傳〉에 말하였다. “‘坎을 익히되 구덩이 속으로 들어감’은 道를 잃어 흉한 것이다.”
九二 坎有險이나 求小得하리라
九二는 坎이면서 험함이 있으나 구하는 것을 조금 얻으리라.
[注]履失其位 曰坎이요 上无應援이라 曰有險하니 坎而有險하여 未能出險之中也
밟은 자리가 正位를 잃었기 때문에 “坎”이라 하였고, 위에 응원이 없기 때문에 “험함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坎이면서 험함이 있어 험한 가운데를 탈출하지 못하였다.
處中而與初三相得이라 可以求小得也 初三 未足以爲援이라 曰小得也
中에 처하여 初六ㆍ六三과 서로 맞기 때문에 구함을 다소 얻을 수 있으나, 初六ㆍ六三이 응원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조금 얻는다.”라고 말한 것이다.
正義曰:[坎有險] 밟은 자리가 正位를 잃었기 때문에 “坎”이라 하였고, 위에 응원이 없기 때문에 “험함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旣在坎難, 而又遇險, 未得出險之中, 故象云“未出中也.”
이미 坎의 어려움에 있는데 또다시 험함을 만나서 험한 가운데를 탈출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象傳〉에 “험한 가운데를 탈출하지 못했다.”라고 한 것이다.
[求小得] 陽으로서 中에 처하여 初六과 六三이 와서 붙기 때문에 구함을 조금 얻을 수 있는 것이요, 初六과 六三이 柔弱하여 큰 응원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구함을 조금 얻는다.”라고 말한 것이다.
象曰 求小得 未出中也
〈象傳〉에 말하였다. “‘구함을 조금 얻음’은 험한 가운데를 탈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六三 來之坎坎이며 險且枕하여 入于坎窞하니 勿用이니라
六三은 오고 감이 坎이고 坎이며, 험하고 또 위태로워서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니, 쓰지 말아야 한다.
[注]旣履非其位 而又處兩坎之間하여 出則之坎하고 居則亦坎이라 曰來之坎坎也
이미 밟은 것이 正位가 아니고 또 두 坎의 사이에 처하여, 나가면 坎으로 가고 거하면 또한 坎이므로 “오고 감이 坎이고 坎이다.”라고 한 것이다.
枕者 出則无之하고 處則无安이라 曰險且枕也 來之皆坎이라 无所用之하니 徒勞而已
枕은 위태로워 편안하지 못함을 이르니, 나가면 갈 곳이 없고 머물면 편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험하고 또 위태롭다.”라고 한 것이다. 오고 감이 모두 坎이어서 쓸 바가 없으니, 한갓 수고로울 뿐이다.
[疏]正義曰:來之坎坎者, 履非其位, 而處兩坎之間, 出之與居, 皆在於坎, 故云“來之坎坎”也.
正義曰:[來之坎坎] 밟고 있는 것이 正位가 아니고 두 坎의 사이에 처하여, 나가고 거함(머묾)이 모두 坎에 있다. 그러므로 “오고 감이 坎이고 坎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險且枕’者, 出則无應, 所以險處則不安, 故且枕也.
[險且枕] ‘枕’은 위태로워 편안하지 못함을 이른다. 나가면 응원이 없으니, 이 때문에 험함에 처하면 편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또 위태로운 것이다.
‘入于坎窞’者, 出入皆難, 故入於坎窞也.
[入于坎窞] 나가고 들어옴이 모두 어렵기 때문에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勿用’者, 不出行, 若其出行, 終必无功, 徒勞而已, 故象云“終无功也.”
[勿用] 出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만약 출행하면 끝내 功이 없어서 한갓 수고로울 뿐이다. 그러므로 〈象傳〉에 “끝내 功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來之坎坎 終无功也
〈象傳〉에 말하였다. “‘오고 감이 坎이고 坎임’은 끝내 功이 없는 것이다.”
六四 樽酒簋貳 用缶하여 納約自牖 終无咎리라
六四는 한 동이의 술과 두 그릇의 음식을, 질그릇을 사용하여 약소한 물건을 바치되 창문으로부터 하면 끝내 허물이 없으리라.
[注]處重險而履正하고 以柔居柔하여 履得其位하여 以承於五하고
거듭된 험함에 처하여 正位를 밟고 柔로서 柔의 자리에 거하여 밟은 것이 正位를 얻어 九五를 받들고,
五亦得位하여 剛柔各得其所하여 不相犯位하며 皆无餘應하여 以相承比하여 明信顯著하여 不存外飾하니
九五 또한 正位를 얻어서 剛과 柔가 각각 제자리를 얻어 서로 자리를 침범하지 않으며, 〈六四와 九五가〉 모두 다른 應이 없어서 서로 받들고 친하여 밝은 信이 드러나서 밖에 꾸밈을 두지 않는다.
處坎以斯하면 雖復一樽之酒 二簋之食 瓦缶之器 納此至約호되 自進於牖하면 乃可羞之於王公하고 薦之於宗廟 終无咎也
坎에 대처하기를 이로써 하면 비록 다시 한 동이의 술과 두 그릇의 음식을, 질그릇으로 이 지극히 약소한 것을 바치되 창문으로 올리면 마침내 이것을 王公에게 바칠 수 있고 종묘에 올릴 수 있다. 그러므로 끝내 허물이 없는 것이다.
[疏]‘象曰’至‘自牖終无咎’
經의 [象曰]에서 [自牖終无咎]까지
○正義曰:‘樽酒簋貳’者, 處重險而履得其位, 以承於五, 五亦得位, 剛柔各得其所,
○正義曰:[樽酒簋貳] 거듭된 험함에 처하여 밟은 것이 正位를 얻어서 九五를 받들고 九五 또한 正位를 얻어서 剛과 柔가 각각 제자리를 얻었으며
皆无餘應, 以相承比, 明信顯著, 不假外飾. 處坎以此, 雖復一樽之酒, 二簋之食, 故云“樽酒簋二”也.
모두 다른 應이 없어서 받들고 친하여 밝은 信이 드러나서 밖의 꾸밈을 빌리지 않는다. 坎에 대처하기를 이로써 하면 비록 다시 한 동이의 술과 두 그릇의 음식이라도 괜찮다. 그러므로 “한 동이의 술과 두 그릇의 음식”이라 한 것이다.
‘用缶’者, 旣有樽酒簋二, 又用瓦缶之器, 故云“用缶”也.
[用缶] 이미 한 동이의 술과 두 그릇의 밥이 있고 또 질그릇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질그릇을 사용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納約自牖 終无咎] 이 검소하고 약소한 물건을 바치되 창문을 통하여 올리면 王公에게 바칠 수 있고 종묘에 올릴 수 있다. 그러므로 “끝내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樽酒簋貳 剛柔際也
〈象傳〉에 말하였다. “한 동이의 술과 두 그릇의 음식은 剛과 柔가 교제하기 때문이다.”
[注]剛柔相比而相親焉 際之謂也
剛과 柔가 서로 가까이 있어 서로 친함은 교제함을 이른다.
[疏]正義曰:釋樽酒簋二義. 所以一樽之酒, 二簋之食, 得進獻者,
正義曰:‘한 동이의 술과 두 그릇의 음식’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한 동이의 술과 두 그릇의 음식을 올려 바칠 수 있는 까닭은
以六四之柔, 與九五之剛, 兩相交際而相親, 故得以此儉約而爲禮也.
六四의 柔와 九五의 剛이 둘이 서로 교제하여 서로 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검소하고 약소한 것을 禮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九五 坎不盈하니 祗旣平이라야 无咎니라
九五는 구덩이가 차지 않았으니, 이미 평평해져야 허물이 없다.
[注]爲坎之主하여 而无應輔可以自佐하여 未能盈坎者也 坎之不盈이면 則險不盡矣 辭也
〈九五는〉 坎의 주체가 되어서 자신을 도와줄 만한 응원과 보좌가 없어서 능히 구덩이를 채우지 못하는 자이다. 구덩이가 차지 않으면 험함이 다하지 않는다. ‘祗’는 어조사이다.
爲坎之主하여 盡平이라야 乃无咎 曰 祗旣平이라야 无咎也 說旣平이라야 乃无咎 明九五未免於咎也
坎의 주체가 되어서 평평함을 다하여야 비로소 허물이 없다. 그러므로 “이미 평평해져야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이미 평평해져야 비로소 허물이 없다고 말한 것은 九五가 허물을 면치 못함을 밝힌 것이다.
[疏]正義曰:‘坎不盈’者, 爲坎之主, 而无應輔可以自佐, 險難未能盈坎, 猶險難未盡也, 故云“坎不盈”也.
正義曰:[坎不盈] 坎의 주체가 되어서 자신을 도와줄 만한 응원과 보좌가 없어서 험난함이 구덩이를 가득 채우지 못하니, 아직도 험난함이 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구덩이가 차지 않았다.”라고 말한 것이다.
‘祗旣平 无咎’者, 謂險難旣得盈滿而平, 乃得无咎, 若坎未盈平, 仍有咎也.
[祗旣平 无咎] ‘祗’는 어조사이다. 험난함이 이미 가득 차서 평평함을 얻어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으니, 만약 구덩이가 가득 차서 평평하지 못하면 그대로 허물이 있는 것이다.
象曰 坎不盈 中未大也
〈象傳〉에 말하였다. “‘구덩이가 차지 않았음’은 中이 크지 못하기 때문이다.”
[疏]正義曰:釋坎不盈之義, 雖復居中, 而无其應, 未得光大, 所以坎不盈滿也.
正義曰:‘구덩이가 차지 않았음’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비록 다시 中에 거하였으나 그 응원이 없어서 光大하지 못하다. 이 때문에 구덩이가 가득 차지 않은 것이다.
上六 係用徽纆하여 寘于叢棘하여 三歲不得하니하니라
上六은 포승줄을 사용하여 묶어서 가시덤불 속에 두어 3년 동안 얻지 못하여 흉하다.
[注]險陗之極하여 不可升也 嚴法峻整하여 難可犯也하니 宜其囚執寘于思過之地
험하고 높음이 지극하여 올라갈 수가 없고, 엄한 법으로 준엄하게 정돈하여 범하기가 어려우니, 마땅히 그 죄수를 잡아 허물을 생각하는 자리에 둬야 하는 것이다.
三歲 險道之夷也 險終乃反이라 三歲不得自脩라가 三歲 乃可以求復이라 曰 三歲不得하여 凶也라하니라
3년은 험한 道가 평탄해지는 것이니, 험함이 끝나면 비로소 평탄함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3년 동안 스스로 닦지 못하다가 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돌아오기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3년 동안 얻지 못하여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正義曰:‘係用徽纆 寘于叢棘’者, 險陗之極, 不可升上, 嚴法峻整, 難可犯觸,
正義曰:[係用徽纆 寘于叢棘] 험하고 높음이 지극하여 올라갈 수가 없고, 엄한 법으로 준엄하게 정돈해서 범하기가 어려우니,
上六居此險陗之處, 犯其峻整之威, 所以被繫, 用其徽纆之繩. 置於叢棘, 謂囚執之處, 以棘叢而禁之也.
上六이 이 험하고 높은 곳에 처하여 그 준엄하고 정돈된 위엄을 범하였다. 이 때문에 구속을 당하여 포승줄을 사용한 것이다. ‘가시덤불에 둔다’는 것은 죄수를 잡아두는 곳을 가시덤불로써 금함을 이른다.
‘三歲不得 凶’者, 謂險道未終, 三歲已來, 不得其吉而有凶也.
[三歲不得 凶] 험한 道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3년 이래로 길함을 얻지 못하여 흉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險終乃反, 若能自脩, 三歲後, 可以求復自新, 故象云“上六失道凶, 三歲也”, 言失道之凶, 唯三歲之後, 可以免也.
험함이 끝나야 비로소 평탄함으로 돌아오니, 만약 스스로 닦는다면 3년이 지난 뒤에는 돌아옴을 구하여 스스로 새로워진다. 그러므로 〈象傳〉에 “上六이 道를 잃어 흉함은 3년 동안이다.”라고 하였으니, 道를 잃어 흉함을 오직 3년이 지난 뒤에야 면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象曰 上六失道凶 三歲也
〈象傳〉에 말하였다. “上六이 道를 잃어 흉함은 3년 동안인 것이다.”
역주
역주1 一者……乃成險之用也 : 程伊川과 朱子는 모두 이 뜻을 따라 ‘習坎’을 ‘거듭된 坎’으로 해석하였다.
역주2 (一)[二] : 저본에는 ‘一’로 되어 있으나, 錢本ㆍ宋本에 의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3 (因)[內] : 저본에는 ‘因’으로 되어 있으나, 錢本ㆍ宋本에 의거하여 ‘內’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4 (謂)[詣] : 저본에는 ‘謂’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詣’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5 (重乎)[乎重] : 저본에는 ‘重乎’로 되어 있으나, 아래의 疏와 岳本ㆍ宋本ㆍ古本ㆍ足利本에 의거하여 ‘乎重’으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6 (釋)[極] : 저본에는 ‘釋’으로 되어 있으나, 岳本ㆍ閩本ㆍ監本ㆍ毛本에 의거하여 ‘極’으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7 (雖)[難] : 저본에는 ‘雖’로 되어 있으나, 宋本에 의거하여 ‘難’으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8 (國)[用] : 저본에는 ‘國’으로 되어 있으나, 注에 의거하여 ‘用’으로 바로잡았다.
역주9 坎有險者……故曰有險 : ‘坎有險’을 王弼과 孔穎達은 ‘坎’과 ‘有險’으로 나누어, ‘坎’은 九二가 陽爻로 陰位에 거한 것을, ‘有險’은 위에 應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은 ‘坎有險’을 둘로 나누지 않고, “九二가 坎險의 때를 당하여 위아래 두 陰의 가운데에 빠져 있으니, 지극히 험한 자리인바, 이것이 험함이 있는 것이다.[二當坎險之時 陷上下二陰之中 乃至險之地 是有險也]”라고 하였다.
역주10 求小得者……故云求小得也 : ‘求小得’을 王弼과 孔穎達은 初六ㆍ六三과 관련시켜 이해하여, 이를 ‘初六ㆍ六三이 九二에게 붙으므로 九二가 구함을 얻지만, 初六과 六二가 陰爻라서 큰 응원이 될 수 없으므로 조금 얻음이 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은 이를 ‘九二가 剛中의 재질이기 때문에 험한 가운데에서 탈출하지는 못하지만 다소 스스로 구제할 수 있으므로 구하는 바를 약간 얻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로 인해 〈象傳〉에 대한 해석도 달라지게 되는데, 孔穎達의 해석에 따르면 〈象傳〉의 “求小得 未出中也”는 ‘九二가 初六ㆍ六三을 얻는데 그것으로는 험한 가운데를 탈출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되고, 程伊川의 해석에 따르면 〈象傳〉은 ‘九二가 剛中하여 약간 얻음이 있지만 험한 가운데에서 탈출하지는 못한다.’는 의미가 된다.
역주11 (枕) : 저본에는 ‘枕’이 있으나, 岳本ㆍ宋本ㆍ古本ㆍ足利本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阮刻本 참조]
역주12 枝而不安之謂也 : 枝에는 ‘위태롭다’는 뜻이 없고, ‘枝梧’라 하여 ‘저촉’의 뜻이 있을 뿐인데, 아래의 ‘不安’에 따라 위태로움으로 해석하였다. 枝에 ‘枝梧’의 뜻이 있어 ‘기대는’ 것으로, ‘枕’과 연관이 되니 아래의 ‘不安’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역주13 枕 枝而不安之謂也 : 王弼과 孔穎達은 ‘枕’을 위태로워 편안하지 못함으로 해석하였고, 程伊川은 ‘枕’을 ‘의지하고 기댐[支倚]’이라 하였는데, 朱子는 “陰柔로 中正하지 못하면서 重險의 사이를 밟고 있어서 오고 감이 모두 험하여 앞에 險이 있고 뒤에 베고 있어서[枕] 그 빠짐이 더욱 깊으니, 쓸 수 없다. 그러므로 그 象과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枕’은 의지하여 붙음이 편안하지 못한 뜻이다.[以陰柔不中正而履重險之間 來往皆險 前險而後枕 其陷益深 不可用也 故其象占如此 枕 倚著未安之意]”라고 하여 두 가지 해석을 모두 취하였다.
역주14 〈可〉 : 저본에는 ‘可’가 없으나, 錢本ㆍ宋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阮刻本 참조]
역주15 樽酒簋貳者……故云終无咎也 : 이 六四 爻辭에 대한 해석은 王弼ㆍ孔穎達과 程伊川의 해석이 대체로 같다. 다만 ‘納約’을 程伊川은 ‘人臣이 군주에게 나아가 맺는 道로서, 忠信과 善한 방도로 군주의 마음을 맺음’의 의미로 보았다.
朱子는 經文의 句讀가 이 세 사람의 해석과 다른바, 經文을 “樽酒簋 貳用缶”로 끊고 ‘貳’를 ‘더하다’의 뜻으로 보았다. 이 부분의 ≪本義≫는 다음과 같다. “鼂氏(晁以道)는 이르기를 ‘先儒가 樽酒簋를 한 句로 읽고 貳用缶를 한 句로 읽었다.’라고 하였으니, 지금 이 말을 따른다. ‘貳’는 더함이다. ≪周禮≫에 ‘큰 제사에 세 번 더한다.’ 하고, 〈弟子職〉에 ‘왼쪽으로는 빈 그릇을 잡고 오른쪽으로는 挾匕(숟가락)를 잡아 周旋하여 더한다.’ 한 것이 이것이다. 九五는 尊位인데 六四가 가까이 있으니, 험한 때에 있어서 剛‧柔가 서로 교제하므로 다만 박한 禮를 쓰고, 더욱 誠心으로 나아가 맺되 牖로부터 하는 象이 있는 것이다.[鼂氏云 先儒讀樽酒簋爲一句 貳用缶爲一句 今從之 貳 益之也 周禮 大祭三貳 弟子職 左執虛豆 右執挾匕 周旋而貳 是也 九五尊位 六四近之 在險之時 剛柔相際 故有但用薄禮 益以誠心進結自牖之象]”
한편 아래 〈象傳〉의 ‘樽酒簋貳’는 “陸德明의 ≪經典釋文≫ 本에 貳字가 없으니, 지금 이를 따른다.”라고 한 鼂氏의 說을 취하였다.
역주16 祗 辭也 : 王弼과 孔穎達은 ‘祗’를 어조사로 보았는데, 앞의 復卦 初九 爻辭에서는 ‘无祗悔’의 ‘祗’를 韓康伯의 말에 따라 ‘큼’의 뜻으로 본 것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반면 程伊川은 復卦 初九 爻辭에서 ‘祗’를 ‘이름[抵]’으로 보았는데,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름’으로 보아, “반드시 이미 평평함에 이르면 허물이 없을 수 있지만 이미 가득 차지 않았다고 말했으면 이는 평평하지 못하여 아직도 험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니, 无咎일 수 없다.[必抵於已平則无咎 旣曰不盈 則是未平而尙在險中 未得无咎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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