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有其實而無其名者, 有無其實而有其名者, 有無其名又無其實者.
“
戰國有六, 威不掩於山東, 而掩於母, 臣竊爲大王不取也.”
秦帝, 卽以天下恭養; 楚王, 卽王雖有萬金, 弗得私也.”
乃資萬金, 使東遊韓‧魏, 入其將相; 北遊於燕‧趙, 而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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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왕秦王이 돈약頓弱을 만나 보려고 하자 돈약이 말하였다.
“저의 의리義理로는 왕王에게 절을 하지 못합니다.
왕께서 저에게 절을 하지 말도록 하시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만날 수 없습니다.”
“천하에는 그 실질은 있으나 그 이름이 없는 것이 있고, 그 실질은 없으면서 그 이름은 있는 것이 있으며, 또 그 이름도 그 실질도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 실질은 있으되 이름이 없는 것은 상인商人입니다.
그들은 쟁기를 잡거나 김을 매는 일이 없으면서도 창고에 식량이 가득합니다.
이는 실질은 있으나 그 이름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실질은 없으면서 그 이름만 있는 것이란 바로 농부農夫입니다.
그들은 해동解凍되면 곧 밭을 갈고 여름에는 폭염을 등에 진 채 김을 매지만 실제 쌓아 놓은 곡식은 없습니다.
이는 그 실질은 없으나 그 이름은 있는 것입니다.
그 실질도 그 이름도 없는 것이란 바로 왕王이십니다.
이미 만승萬乘의 높은 자리에 있지만 효도孝道한다는 이름도 없고, 천 리의 땅으로 어머니를 봉양하지만 효양孝養하는 실實은 없습니다.”
진왕이 발끈 화를 내니, 돈약頓弱이 말하였다.
“지금 산동山東에 여섯 나라가 싸우고 있지만 대왕의 위엄은 그 산동을 덮지 못하면서 먼저 어머니에게만 위엄을 부리고 있는데, 제 생각으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 여깁니다.”
“산동에 세워진 나라들을 우리가 모두 겸병할 수 있겠소?”
“한韓나라는 천하의 목구멍에 해당하고, 위魏나라는 천하의 가슴과 배에 해당합니다.
이에 대왕께서는 저에게 1만 금을 주어 한나라‧위나라의 인물들에게 유세를 펼치게 해 보십시오.
그들이 듣게 되면 한나라‧위나라의 사직지신社稷之臣이 모두 진나라로 몰려올 것이어서 진나라는 한나라‧위나라와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라‧위나라만 합하면 천하를 도모해 볼 만합니다.”
“과인의 나라는 가난하여 그 돈을 줄 수가 없을 것 같소.”
“천하가 무사한 때가 없어 합종合從이냐 연횡連橫이냐 하는 판입니다.
연횡이 성립되면 진나라가 제업帝業을 이루는 것이요, 합종이 성립되면 초나라가 왕업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진나라가 제업帝業을 이루면 천하가 모두 대왕을 받들어 모실 것이요, 초나라가 왕업王業을 이루면 그때는 비록 1만 금이 있다 할지라도 대왕 사사로이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1만 금을 밑천으로 마련해 주어 동으로 한나라와 위나라에 유세하여 그 나라의 장군과 승상들을 끌어들이고, 북으로는 연燕나라와 조趙나라에 유세하여 이목李牧을 죽여 버렸다.
제왕齊王이 직접 〈진나라에〉 입조入朝하였고, 나머지 네 나라도 모두 진秦나라에 복종하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돈자가 유세한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