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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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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三晉已破智氏
371. 삼진三晉이 이미 지씨智氏를 깨뜨리다
, 將分其地.
삼진三晉()이 이미 지씨智氏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가지려 할 때였다.
단규段規한왕韓王에게 일렀다.
“分地必取.”
“땅을 나눌 때 반드시 성고成皐를 갖겠다고 하십시오.”
韓王曰:
한왕이 말하였다.
“成皐, 石溜之地也, 寡人無所用之.”
“성고는 돌만 많은 땅이어서 과인에게 별로 소용이 될 것 같지 않소.”
段規曰:
단규가 말하였다.
“不然,
“그렇지 않습니다.
臣聞一里之厚, 而動千里之權者, 地利也. 萬人之衆, 而破者, 不意也.
제가 들으니 1리밖에 안 되는 좁은 땅으로 1천 리를 저울질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리地利 때문이요, 1만밖에 안 되는 무리로 3군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의표를 찌르는 방법으로 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王用臣言, 則韓必取鄭矣.”
왕께서 제 말대로 하시면 반드시 우리는 땅까지도 차지할 수 있습니다.”
王曰:
왕이 말하였다.
“善.”
“좋소.”
果取成皐. 至也, 果從成皐始.
그리하여 성고를 갖게 되었고, 뒤에 한나라가 정나라를 얻기에 이르렀으니, 이는 이 성고를 기반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역주
역주1 三晉已破智氏 : 〈趙策一〉을 참조할 것.
역주2 段規 : 韓나라 康子의 謀臣. 223장 참조.
역주3 韓王 : 당시는 아직 왕의 칭호가 아니었으나 康子를 일컫는 말. 韓나라가 제후로 인정받은 것은 韓虔(景侯) 때(B.C.403년)이며, 왕호를 세운 것은 宣惠王 10년(B.C.323년)이다.
역주4 成皐 : 虎牢라고도 하며, 春秋時代 鄭나라 땅, 戰國 때 韓地, 대대로 국제적 요충지였다. 지금의 河南省 氾水縣.
역주5 三軍 : 周나라 제도에 천자는 6軍, 제후로서 大國은 3軍, 中國은 2軍, 小國은 1軍, 每軍은 1만 2천5백 명이었다고 한다.
역주6 韓之取鄭 : 韓 康子로부터 哀侯까지는 6대 79년. 周 烈王 원년(B.C.375)에 鄭을 멸하였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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