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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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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惠王死,
欲窮張儀, 謂公孫衍曰:
“不如召於魏, 召於韓, 起於國.
三人者, 皆張儀之讎也,


혜왕惠王이 죽다
혜왕惠王이 죽었다.
공손연公孫衍장의張儀를 궁지에 몰아넣으려 하자, 이수李讎가 공손연에게 말하였다.
감무甘茂나라에서 불러들이고, 공손현公孫顯나라로부터 불러들이며, 저리질樗里疾을 불러 국정國政에 기용하느니만 못합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장의와 원한이 있습니다.
공께서 이들을 등용하면 제후들이 장의가 진나라에서 아무런 실권實權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역주
역주1 061. 秦惠王死 : 秦 惠王(惠文王)이 죽은 것은 B.C.311년이다.
역주2 公孫衍 : 犀首를 가리킨다. 魏나라 陰晉人. 일찍이 서수 땅의 관리를 지냈기 때문에 흔히 犀首라고 칭한다. 처음 秦에서 벼슬하였으나 장의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張儀가 죽은 후 秦나라 재상이 되고 각국을 유세하여 五國 相印을 찼다. 《史記》 〈張儀列傳〉 참조.
역주3 李讎 : 秦나라 사람.
역주4 甘茂 : 下蔡사람. 秦 惠王을 섬겼으며 武王 때 진나라 左丞相이 되었다. 이때 감무는 魏나라에 있지 않고 진나라에 있었다.
역주5 公孫顯 : 秦나라 사람.
역주6 樗里子 : 樗里疾. 秦 惠王의 異母弟. 〈西周策〉 031장 ‘秦令樗里疾以車百乘入周’ 註 16) 참조.
역주7 諸侯必見張儀之無秦矣 : 惠王이 죽고 武王이 즉위하여 甘茂와 樗里疾을 左右丞相으로 삼자 張儀는 魏나라에 가서 재상을 지내다가 1년 만에 죽었다. 《史記》 〈張儀列傳〉 참조.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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