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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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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86. 나라 태후太后가 새로이 정치를 하다
新用事, .
나라 태후太后가 처음 국정을 섭정攝政하자 나라가 급히 침공해 왔다.
趙氏求救於齊. 齊曰:
조나라는 할 수 없이 나라에게 구원을 청하니, 제나라에서 말하였다.
“必以爲質, 兵乃出.”
“반드시 장안군長安君을 인질로 보내 주면 군대를 보내 주겠소.”
太后不肯, 大臣强諫.
태후가 들어주지 않으려 하니, 대신들이 강하게 간언하였다.
太后明謂左右:
태후가 분명하게 좌우에게 일렀다.
“有復言令長安君爲質者, 老婦必唾其面.”
“누구든지 다시 장안군을 인질로 제나라로 보내자는 말을 꺼내면 내가 그 얼굴에 침을 뱉겠다.”
그때 좌사左師 촉섭觸讋(촉접)이 태후를 뵙고자 하니, 태후는 상기된 얼굴로 기다리다가 맞아들였다.
入而徐趨, 至而自謝, 曰:
촉접은 들어가 천천히 걸어 앞에 이르러 스스로 사죄하며 말하였다.
“老臣病足, 曾不能疾走, 不得見久矣.
“제가 일찍이 다리에 병이 나서 빨리 걸을 수가 없어 오랫동안 뵙지 못하였습니다.
竊自恕, 而恐太后玉體之有所郄也,
저는 그러려니와 태후의 옥체도 어딘가 쇠약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故願望見太后.”
그래서 뵙기를 청한 것입니다.”
太后曰:
태후가 말하였다.
“老婦恃輦而行.”
“나도 에 의지해 다니는 형편이오.”
曰: “日食飮得無衰乎?”
“날마다 식사의 양은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曰: “恃鬻耳.”
“죽에 의지하고 삽니다.”
曰: “老臣今者殊不欲食, 乃自强步, 日三四里,
“늙은 저는 지금 식욕이 사라져서 스스로 억지로 하루에 3, 4리쯤 걷지요.
少益耆食, 和於身也.”
그랬더니, 조금 식욕이 돌아오고 몸도 좀 나은 듯합니다.”
太后曰: “老婦不能.”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소.”
太后之色少解.
태후의 안색이 좀 풀어졌다.
左師公曰:
좌사공左師公이 말하였다.
“老臣賤息, 最少, 不肖.
“저의 천한 아들 놈 중에 서기舒祺라는 녀석이 있는데, 아주 어리고 불초합니다.
而臣衰, 竊愛憐之.
게다가 제가 자꾸 늙어가니 갈수록 더욱 가련해지는군요.
願令得補黑衣之數, 以衛,
원컨대 검은 옷을 입혀 궁중의 위사衛士의 숫자나 채워 왕궁의 호위를 시켜 주시면 합니다.
沒死以聞.”
죽음을 무릅쓰고 말씀드립니다.”
太后曰:
태후가 말하였다.
“敬諾.
“공경히 허락합니다.
年幾何矣?”
지금 몇 살이나 되었소?”
對曰: “十五歲矣.
“15세입니다.
雖少, 願及未塡溝壑而託之.”
비록 어리긴 하나 제가 죽어 구학溝壑에 묻히기 전에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太后曰:
태후가 말하였다.
“丈夫亦愛憐其少子乎?”
“장부로서도 역시 어린 자식을 그리도 사랑하고 가련히 여깁니까?”
對曰:
촉접이 말하였다.
“甚於婦人.”
“부녀자보다 더합니다.”
太后笑曰:
태후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婦人異甚.”
“아무려면 모성애가 더 심하겠지요.”
對曰: “老臣竊以爲媼之愛賢於長安君.”
“제가 보기에 태후께서는 장안군長安君보다 연후燕后를 더욱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曰:
태후가 말하였다.
“君過矣,
“그대가 잘못 아셨소.
不若長安君之甚.”
장안군을 아끼는 것만 못하지요.”
左師公曰:
좌사공이 말하였다.
“父母之愛子, 則爲之計深遠.
“부모가 그 자식을 사랑하는 계책은 심원深遠한 것입니다.
媼之送燕后也, 持其踵爲之泣, 念悲其遠也, 亦哀之矣.
태후께서 연후를 보낼 때 그 뒤꿈치를 잡고 울면서 멀리 시집가는 것을 슬퍼하셨으니, 역시 애처롭게 여긴 때문이겠지요.
已行, 非弗思也, 祭祀必祝之, 祝曰: ‘必.’ 豈非計久長, 有子孫相繼爲王也哉?”
그리고 이미 떠난 후에는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제사 지낼 때는 반드시 기도하기를 ‘혹시 잘못되어 돌아오는 일이 없거라.’라고 하셨으니, 이것이야말로 장구한 계획, 즉 그의 자손이 왕으로 계속 이어지라는 게 아닙니까?”
太后曰: “然.”
“그렇소.”
左師公曰:
좌사공이 말하였다.
“今三世以前, 至於趙之爲趙, 趙主之子孫侯者, 其繼有在者乎?”
“지금 삼대三代 이전부터 조나라가 건국될 때까지 조나라 임금의 자손이 로서 지금까지 그 자리를 대대로 이어온 자가 있습니까?”
曰: “無有.”
“없소.”
曰: “微獨趙, 諸侯有在者乎?”
“조나라가 아니더라도 다른 제후의 자손들 중에서라도 지켜 내려오는 자가 있습니까?”
曰: “老婦不聞也.”
“이 늙은이는 들어보지 못하였소.”
“此其近者禍及身, 遠者及其子孫.
“이런 일은 가까운 는 곧 본인에게 미치고 먼 는 자손에게 미치기 때문입니다.
豈人主之子孫則必不善哉?
어찌 임금의 자손이라 하여 반드시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位尊而無功, 奉厚而無勞, 而挾重器多也.
다만 지위만 높고 공훈이 없거나 봉록만 후하게 받고 노력하지 않으며 귀중한 보물만 많이 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今媼尊長安君之位, 而封之以膏腴之地, 多予之重器, 而不及今令有功於國. 一旦山陵崩, 長安君何以自託於趙?
지금 태후께서는 장안군을 높여 기름진 땅을 봉지封地로 주고 많은 보물을 안겨 주면서도 지금까지 그로 하여금 나라에 공을 세울 기회를 주지 않고 있으니, 하루아침에 태후太后께서 돌아가시는 날이면 장안군이라고 어찌 스스로 조나라에 의탁하여 있을 수 있겠습니까?
老臣以媼爲長安君計短也,
노신老臣은 태후께서 장안군을 위한 계책이 짧다고 여깁니다.
故以爲其愛不若燕后.”
그래서 처음 제가 연후燕后보다 장안군을 덜 사랑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太后曰:
태후가 말하였다.
“諾.
“그렇군요.
恣君之所使之.”
그대가 시키는 대로 따르겠소.”
於是爲長安君約車百乘質於齊, .
이리하여 장안군에게 수레 1백 승을 주어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니, 제나라도 그제야 병력을 내어 도와주었다.
聞之曰:
자의子義가 이 소문을 듣고 말하였다.
“人主之子也, 骨肉之親也, 猶不能恃無功之尊, 無勞之奉, 而守金玉之重也, 而況人臣乎?”
“임금의 아들, 골육의 친척이라 할지라도 이 없는 존귀함이나 노력이 없는 봉록, 혹은 금옥의 보배는 능히 지킬 수 없는데, 하물며 신하이겠는가?”
역주
역주1 : 이 내용은 《史記》 〈趙世家〉에도 실려 있으며, 때는 孝成王 元年(B.C.265년)이다. 그 외에 《資治通鑑》 周 赧王 50년조에도 실려 있다. 463장 참조. 趙의 惠文王이 죽고 孝成王이 들어서자 태후가 섭정을 하였고, 이 틈에 秦나라가 쳐들어 온 것이다.
역주2 太后 : 이름은 吳娃, 趙 武靈王의 后이며 惠文王의 母. 惠文王이 죽고 어린 손자 太子 丹(孝成王)이 왕위를 잇자 태후가 섭정하였다. 이때 태후는 太皇太后라 칭하였다.
역주3 秦急攻之 : 秦나라는 이 기회를 틈타 王翦을 장군으로 삼아 趙를 침범하여 3성을 빼앗고 공격을 계속하였다.
역주4 長安君 : 惠文王의 幼弟, 즉 태후의 아들, 이름은 未詳, 長安은 그 봉호.
역주5 左師 : 古代 官名이며 觸讋이 당시 이 관직에 있었다.
역주6 觸讋 : 趙나라 左師.
역주7 盛氣而揖(胥)之 : 《史記》 〈趙世家〉에 ‘盛氣而胥之’라 하였고, 集解에 ‘胥猶須也’라 하였다. 이에 따라 ‘상기된 채 기다렸다.’로 풀이하였다.
역주8 舒祺 : 좌사 觸讋의 아들.
역주9 王官(宮) : 《史記》 〈趙世家〉 등에 의하여 ‘官’을 ‘宮’으로 고쳤다.
역주10 燕后 : 조 태후의 딸로서 燕나라에 시집가서 后가 되었다.
역주11 勿使反 : 옛날 딸을 남의 나라 王后로 보냈다가 나라가 멸망하거나 총애를 잃으면 모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기도한 말.
역주12 齊兵乃出 : 이때 齊나라는 田單을 장수로 삼아 趙를 돕기 위해 韓‧燕을 공격해 쳐부수었다. 韓‧燕은 秦과 동맹국이었다.
역주13 子義 : 《史記》 索隱에 ‘趙의 賢人’이라 하였는데, ‘子’는 姓, ‘義’는 이름이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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