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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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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 소진蘇秦나라를 위하여 한왕韓王에게 합종合從을 유세하다
소진蘇秦나라를 위하여 한왕韓王에게 합종을 유세하였다.
“韓北有之固, 西有之塞, 東有, 南有,
나라는 북쪽으로 성고成皐험고險固함이 있고, 서쪽으로는 의양宜陽상판常阪의 요새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유수洧水가 있고, 남쪽으로는 형산陘山의 험로가 있습니다.
地方千里, 帶甲數十萬. 天下之强弓勁弩, 皆自韓出.
국토는 방 1천 리에 대갑帶甲이 수십만, 천하의 강궁경노强弓勁弩가 모두 한나라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 皆射六百步之外. 韓卒, 百發不暇止, 遠者達胸, 近者掩心.
계자谿子소부少府시력時力거래距來와 같은 활은 모두 6백 보 이상 날아가며, 한나라 군졸이 이를 밟고 당겨 쏘면, 백발이 연속으로 숼 사이 없이 쏘아져서 멀리는 적의 가슴에 이르고 가까이는 갑옷을 뚫고 심장을 찌를 수 있습니다.
韓卒之劍戟, 皆出於, 皆陸斷馬牛, 水擊鵠鴈,
한나라 병사가 쓰는 칼과 창은 모두 명산冥山당계棠谿묵양墨陽합박合膊에서 산출되며, 등사鄧師완풍宛馮용연龍淵태아太阿 등의 명검은 땅에서는 우마牛馬를 벨 수 있을 정도이고, 물 속에서는 곡안鵠鴈을 칠 정도이며,
적과 맞닥뜨리면 견갑堅甲鞮䥐철막鐵幕혁결革抉㕭芮로 베는 등 완비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以韓卒之勇, 被堅甲, 蹠勁弩, 帶利劍, 一人當百, 不足言也.
한나라 병사는 이처럼 날랜 데다가 견갑堅甲으로 몸을 싸고 강노强弩를 밟고 예리한 칼을 들었으니 일당백一當百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夫以韓之勁, 與大王之賢, 乃欲西面事秦, 稱東藩, 築帝宮, 受冠帶, 祠春秋, 交臂用服焉. 夫羞社稷而爲天下笑, 無過此者矣.
무릇 한나라처럼 강한 군대에 대왕처럼 현명한 임금이, 서쪽으로 나라를 섬겨 스스로 동번東蕃이라 칭하며 그를 위해 궁실을 짓고 관대冠帶 제도制度를 받으며, 춘추春秋 제축祭祝공물貢物을 바치며 공수拱手하며 굴복하려 하시니 사직社稷에 부끄럽고 천하에 웃음거리가 되는 일로 이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是故願大王之熟計之也.
그러니, 대왕께서는 깊이 고려해 보시기를 원합니다.
大王事秦, 秦必求宜陽‧成皐. 今玆效之, 明年又益求割地.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겠다고 하면, 진나라는 틀림없이 의양宜陽성고成皐를 할양해 달라고 할 것이요, 지금 그 요구를 들어주었다가는 명년에는 다시 더 많은 땅을 달라고 할 것입니다.
與之, 卽無地以給之; 不與, 則棄前功而後更受其禍.
계속 들어주다 보면 나중에는 더 이상 줄 땅이 없어질 것이요, 거절하였다가는 이미 들어준 공은 무효가 되고, 오히려 그 화만 뒤집어쓰게 될 것입니다.
且夫大王之地有盡, 而秦之求無已.
또 무릇 대왕의 땅은 한정이 있지만 진나라의 요구는 한이 없습니다.
夫以有盡之地, 而逆無已之求, 此所謂‘市怨而買禍’者也, 不戰而地已削矣.
유한한 땅으로 무한한 요구를 맞이하다니 이것이 소위 ‘을 사들이고 를 사들인다.[시원이매화市怨而買禍]’라는 것으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땅만 깎이는 꼴이 됩니다.
臣聞鄙語曰: ‘寧爲鷄口, 無爲牛後.’
저는 듣건대 속담에 ‘차라리 닭 주둥이가 될지언정 소 궁둥이는 되지 말라[영위계구寧爲鷄口 무위우후無爲牛後]’ 하였습니다.
今大王西面交臂而臣事秦, 何以異於牛後乎?
지금 대왕께서 서쪽을 향하여 공수拱手하고 서쪽 진나라를 섬기고 있으니 어찌 소 궁둥이가 되는 꼴과 다르겠습니까?
夫以大王之賢, 挾强韓之兵, 而有牛後之名, 臣竊爲大王羞之.”
무릇 대왕의 현명함과 한나라의 강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 궁둥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저는 대왕께 수치스러운 일로 여깁니다.”
韓王忿然作色, 攘臂按劍, 仰天太息曰:
한왕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팔을 저어 칼을 만지며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었다.
“寡人雖死, 必不能事秦.
“과인이 비록 죽는 한이 있어도 진나라는 섬기지 않겠소.
今主君以楚(趙)王之敎詔之, 敬奉社稷以從.”
지금 주군主君(선생)께서 조왕趙王의 가르침으로써 조칙詔勅해 주시니 공경히 사직을 받들어 따르겠습니다.”
역주
역주1 : B.C.334년 蘇秦은 燕王의 자금을 얻어 趙王을 설득하였고, 이듬해에는 趙 肅侯의 도움으로 韓‧魏‧齊‧楚를 설득하여 끝내 六國 合縱을 성취시킨다. 그리고 자신은 6국의 相印을 차고 여섯 나라의 동시 재상이 된다.
역주2 蘇秦爲楚(趙)合從 : 《史記》에는 ‘爲趙合從’으로 되어 있다. 당시 아직 蘇秦이 楚에 가지 않았을 때이므로 趙가 맞다. 당시 韓王은 宣惠王, 즉 宣王이었다.
역주3 鞏ㆍ洛ㆍ成皐 : 鞏洛은 河南省 鞏縣과 洛陽縣.
역주4 宜陽‧常阪 : 宜陽은 河南省 宜陽縣, 常阪은 陝西省 商縣. 商阪으로도 쓴다.
역주5 宛‧穰‧洧水 : 宛은 河南省 南陽縣, 穰은 河南省 鄧縣, 그러나 이 두 읍은 韓의 남쪽에 있지, 동쪽에 있지 않다. 洧水는 河南省 密縣에서 발원해서 潁水로 들어간다.
역주6 陘山 : 河南省 新鄭縣. 楚와 韓 사이의 요새.
역주7 谿子‧少府‧時力‧距來 : 모두 큰 활[弩] 이름.
역주8 超足而射 : 《史記》 〈蘇秦列傳〉 正義에 쇠뇌를 쏠 때 발을 들어 활을 밟고 두 손으로 활을 잡고 쏘는 것이라 하였다.
역주9 冥山‧棠谿‧墨陽‧合伯膊. 鄧師‧宛馮‧龍淵‧大阿 : 冥山은 혹 石城山, 혹은 固城山, 지금의 河南省 信陽縣, 棠谿는 堂谿와 같으며, 河南省 遂平縣. 墨陽‧合伯膊‧鄧師‧宛馮‧龍淵‧太阿은 모두 名劍의 이름이다. 合伯膊은 《史記》에 合膊, 龍淵은 龍泉으로 되어 있다.
역주10 堅甲‧盾‧鞮䥐‧鐵幕‧革抉‧㕭芮 : 堅甲은 皮革, 銅鐵로 만든 갑옷, 盾은 방패, 鞮는 皮靴, 䥐는 兜貞, 즉 戰盔, 鐵幕은 쇠로 만든 팔이나 장딴지 보호 장치. 革抉은 箭筒, 즉 射鞲, 㕭芮는 방패를 맨 끈.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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