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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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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무령왕武靈王이 낮에 한가하게 있을 때
무령왕武靈王이 한가히 있을 때 비의肥義가 모시고 있다가 말하였다.
“王慮世事之變, 權甲兵之用, 念之迹, 計之利乎?”
“왕께서는 세상 일의 변화를 염려하시고 군대의 효용效用을 저울질하시며, 간자簡子양자襄子가 남기신 업적을 염두에 두시고, 의 이로움을 따지고 계십니까?”
王曰:
왕이 말하였다.
“嗣立不忘先德, 君之道也; 錯質務明主之長, 臣之論也.
“왕위를 이어받아 선덕先德을 잊지 않는 것은 임금의 도리이며, 신하로서 임금의 장점을 밝혀 주는 것은 신하의 도리이다.
是以賢君靜而有道民便事之敎, 有明古先世之功.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조용히 있으면서도 백성에게 편리할 일을 가르쳐야 하며, 움직이면 옛날 선세先世의 공적을 밝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爲人臣者, 窮有弟長辭讓之節, 通有補民益主之業. 此兩者, 君臣之分也.
신하된 자는 궁곤窮困할 때에는 장유長幼에 따른 사양의 예절이 있어야 하며, 현달해서는 백성의 이익을 위해 군주의 사업을 도와야 하니, 이 두 가지가 곧 임금과 신하의 본분이다.
今吾欲繼襄主之業, 啓胡‧翟之鄕, 而卒世不見也.
지금 나는 양주襄主의 사업을 계속하여 호적胡翟 땅을 개척하려 하지만 세상을 다 돌아보아도 〈나를 도울 만한 인물을〉 찾지 못하고 있다.
敵弱者, 用力少而功多, 可以無盡百姓之勞, 而享往古之勳.
이 약하므로 적은 힘으로 큰 공을 이룰 수 있으며,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도 지난날과 같은 훈업勳業을 누릴 수 있다.
夫有高世之功者, 必負遺俗之累; 有獨知之慮者, 必被庶人之.
무릇 세상에 뛰어난 공훈을 이룩한 자는 틀림없이 과거의 누습累習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고, 독특한 지혜를 염려하는 자는 반드시 서인庶人의 원망을 듣게 되는 것이다.
今吾將胡服騎射以敎百姓, 而世必議寡人矣.”
지금 내가 백성들에게 호복胡服을 입히고, 그들의 기사법騎射法을 가르치려고 한다면 틀림없이 세상 사람들은 나를 의논거리로 삼을 것이다.”
肥義曰:
비의가 말하였다.
“臣聞之: 『疑事無功, 疑行無名.』
“제가 듣건대 ‘의심하면서 일을 하면 이 없고, 의심하면서 행동하면 이름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今王卽定負遺俗之慮, 殆毋顧天下之議矣.
지금 만약 왕께서 유속遺俗의 염려를 감당하겠다고 하신다면 천하의 의논을 돌아보지 마십시오.
夫論至德者, 不和於俗; 成大功者, 不謀於衆.
무릇 지덕至德을 논하는 자는 세속과 화합하지 않으며, 큰 을 이루려는 자는 군중의 의견에 개의치 않는 법입니다.
, 而禹袒入,
옛날 유묘有苗 땅에서 그들 풍습대로 〈간무干舞를 추었고〉, 임금은 나국裸國에 옷을 벗고 들어갔습니다.
非以養欲而樂志也, 欲以論德而要功也.
이는 하고 싶은 대로 하여 즐겁게 놀기 위해서가 아니고, 덕을 논하되 그 공적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愚者闇於成事, 智者見於未萌,
어리석은 자는 일을 성취시키는 데 어둡고, 지혜로운 자는 싹이 나기도 전에 아는 것입니다.
王其遂行之.”
왕께서는 실행에 옮기십시오.”
王曰:
왕이 말하였다.
“寡人非疑胡服也, 吾恐天下笑之.
“과인이 호복胡服의 〈장점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비웃음이 두려워 망설이는 것이다.
狂夫之樂, 知者哀焉; 愚者之笑, 賢者戚焉.
미친 자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슬기로운 자는 슬픔을 느끼고, 어리석은 자가 웃는 것을 보고 어진 자는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世有順我者, 則胡服之功, 未可知也.
세상에 내 뜻을 따르는 자라고 해서 모두 호복이 편리하다고 여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다.
雖敺世以笑我, 胡地中山, 吾必有之.”
그러나 비록 세상을 다 몰아 나를 비웃는다 해도 나는 호지胡地중산中山을 반드시 차지하리라.”
王遂胡服.
왕은 마침내 호복을 입었다.
그리고 왕손설王孫緤을 시켜 〈왕의 숙부〉 공자公子 에게 이렇게 고하도록 하였다.
“寡人胡服, 且將以朝, 亦欲叔之服之也.
“과인은 호복을 입고 장차 조회朝會를 하려고 하니, 숙부께서도 호복을 입어 주십시오.
家聽於親, 國聽於君, 古今之公行也; 子不反親, 臣不逆主, 先王之通誼也.
집에서는 어버이 말을 듣고, 나라에서는 임금 말을 듣는다는 것이 고금의 공행公行이며, 자식은 어버이를 배반할 수 없고, 신하는 임금을 거역할 수 없음은 선왕의 통의通誼입니다.
今寡人作敎易服, 而叔不服, 吾恐天下議之也.
지금 과인이 호복으로 바꾸어 입도록 하였는데, 숙부께서 만약 입지 않으신다면 천하가 나를 의론거리로 삼을까 두렵습니다.
夫制國有常, 而利民爲本; 從政有經, 而令行爲上.
무릇 나라에는 상법常法이 있으니 이는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해야 하며 정치를 하는 데 벼리가 있으니 이는 실행함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덕을 밝히는 일은 천한 백성부터 하여야 하고, 정치를 행하는 데는 귀한 사람에게 믿음을 얻는 데 두어야 합니다.
今胡服之意, 非以養欲而樂志也.
지금 호복을 입는 뜻은, 하고 싶은 대로 하여 즐기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事有所出, 功有所止. 事成功立, 然後德且見也.
일이란 시작해야 할 바가 있고, 공이란 그 결과가 드러나는 곳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일이 이루어지고 공이 이룩된 후에야 덕행이 장차 나타나 보일 것입니다.
今寡人恐叔逆從政之經, 以輔公叔之議.
지금 과인은 숙부께서 시정施政의 법칙을 위배하여 다른 공숙公叔들의 의견에 부화附和하여 호복을 입지 않으실까 걱정됩니다.
且寡人聞之: 『事利國者行無邪, 因貴戚者名不累.』
또 과인이 듣건대 ‘나라를 위하여 이로운 일을 하는 자는 행함에 사악함이 없어야 하고, 귀한 친척에 의지해 일을 벌인 자는 명성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故寡人公叔之義, 以成胡服之功.
그래서 과인은 다른 공숙의 옳은 생각을 모아 호복 착용을 성취하고 싶습니다.
使緤謁之叔, 請服焉.”
이에 지금 을 보내어 숙부를 뵙게 하오니 청컨대 입으시기 바랍니다.”
公子成再拜曰:
공자公子 이 재배하며 말하였다.
“臣固聞王之胡服也,
“저는 이미 대왕께서 호복을 입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不佞寢疾, 不能趨走, 是以不先進.
다만 저는 병이 있어서 빨리 뛰지 못해서 이 때문에 가서 뵙지 못한 것입니다.
王今命之, 臣固敢竭其愚忠.
왕께서 지금 명하시니 신이 감히 우충愚忠을 진언하겠습니다.
臣聞之, 中國者, 聰明叡知之所居也, 萬物財用之所聚也, 賢聖之所敎也, 仁義之所施也, 詩書禮樂之所用也, 異敏技藝之所試也, 遠方之所觀赴也, 蠻夷之所義行也.
제가 듣건대 중국中國이라는 곳은 총명과 예지가 하는 곳이요, 만물과 재용財用이 모이는 곳이며, 현자와 성인의 가르침이 있는 곳이요, 인의仁義가 베풀어지는 곳이며, 《》‧《》‧《》‧《》이 쓰이는 곳이요, 기이하고 영민한 것, 그리고 기예가 시험되는 곳이며, 원방遠方이 우러러보고 찾아오는 곳이며, 만이蠻夷를 따라 배우는 곳입니다.
今王釋此, 而襲遠方之服, 變古之敎, 易古之道, 逆人之心, 畔學者, 離中國,
지금 왕께서 이를 버리고 오히려 원방의 옷을 입고, 옛날의 가르침을 변혁시키고 옛날의 를 바꾸며, 사람의 마음을 거역하고, 학자의 가르침을 배반하여 중국의 본분을 떠나려고 하십니다.
臣願大王圖之.”
원컨대 대왕께서는 잘 생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使者報王. 王曰:
사자使者 이 이 말을 왕에게 보고하자 왕이 말하였다.
“吾固聞叔之病也.”
“내가 실로 숙부께서 병이 깊이 드셨다는 말을 들었다.”
卽之公叔成家, 自請之曰:
그리고는 즉시 직접 숙부 공숙성公叔成의 집을 찾아가서 스스로 청하였다.
“夫服者, 所以便用也; 禮者, 所以便事也.
“무릇 옷이란 쓰임을 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예란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是以聖人觀其鄕而順宜, 因其事而制禮, 所以利其民而厚其國也.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그 고을을 살펴본 후 그 땅에 마땅한 것을 따르며, 그 일에 따라 를 정하였으니 백성을 이롭게 하고 나라를 돈후하게 함이었습니다.
피발문신被髮文身착비좌임錯臂左衽구월甌越 백성들의 풍속이며, 흑치조제黑齒雕題제관출봉鯷冠秫縫대오大吳(태오) 나라의 풍속입니다.
禮服不同, 其便一也.
이처럼 예복은 똑같지 않지만 그 편함을 따르는 데는 한결같습니다.
是以鄕異而用變, 事異而禮易.
그러므로 고을이 다르면 쓰임이 달라지고, 일이 다르면 예가 바뀌게 마련입니다.
是故聖人苟可以利其民, 不一其用; 果可以便其事, 不同其禮.
이런 까닭으로 성인이 진실로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의 쓰임을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그 일의 편함을 위해서 그 예를 달리하였던 것입니다.
儒者一師而禮異, 中國同俗而敎離, 又況山谷之便乎?
유가儒家에서 스승은 〈공자孔子〉 하나로되 예는 다르며, 중국도 같은 풍속이로되 가르침이 다른데, 하물며 산곡山谷에서 편하게 입어야 할 사람들에게 있어서야 어떻겠습니까?
故去就之變, 知者不能一; 遠近之服, 賢聖不能同.
그러므로 거취의 변화에 대하여 지자智者는 하나로 통일하려고 들지 않으며, 원근遠近복장服裝은 현자‧성인도 같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窮鄕多異, 曲學多辨,
궁향窮鄕의 풍속은 기이한 것이 많으며, 고루하고 과문寡聞한 자는 말이 많은 법입니다.
不知而不疑, 異於己而不非者, 公於求善也.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심을 하지 말며,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하여 그릇되다고 하지 말고 다만 좋은 것을 구하는 데 공평하면 됩니다.
今卿之所言者, 俗也. 吾之所言者, 所以制俗也.
지금 숙부께서 하시는 말씀은 속습에 얽매인 것이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풍속을 제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今吾國東有河‧, 與齊‧中山同之, 而無舟檝之用.
지금 우리나라는 동쪽으로 하수河水박락薄洛의 물을 중산中山 등 세 나라가 함께 쓰고 있으면서도 배를 부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自常山以至代‧上黨, 東有燕‧之境, 西有‧秦‧韓之邊, 而無騎射之備.
상산常山으로부터 , 상당上黨의 동쪽은 나라와 동호東胡와 국경이 닿고 있고, 서쪽으로는 누번樓煩나라‧나라와 국경이 닿아 있으면서도 전혀 기사騎射의 방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故寡人且聚舟檝之用, 求水居之民, 以守河‧薄洛之水; 變服騎射, 以備其參胡‧樓煩‧秦‧韓之邊.
그 때문에 과인이 배를 모으고 물가에 사는 사람을 소집하여, 훈련시켜 하수와 박락을 지키고자 하며, 호복으로 갈아 입히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훈련시켜 누번樓煩의 변경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且昔者簡主不塞晉陽, 以及上黨, 而襄王兼戎取代, 以攘諸胡, 此愚知之所明也.
하물며 종전에 간주簡主께서는 진양晉陽상당上黨의 요새를 막지 않았었으나 양주襄主께서는 오히려 겸탄兼呑해서 땅을 취득하여 여러 호인을 몰아냈으니, 이는 어리석은 사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밝히 아는 일입니다.
先時中山負齊之强兵, 侵掠吾地, 係累吾民, 引水圍鄗, 非社稷之神靈, 卽鄗幾不守.
지난날 중산국中山國나라의 강한 군대를 믿고 우리를 쳐들어와서 우리 백성을 포로로 잡아가고, 하수를 끌어들여 호성鄗城을 포위하였었는데, 사직의 신령들이 보좌하지 않았더라면 호성은 거의 지켜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先王忿之, 其怨未能報也.
선왕들께서 분노를 금치 못하셨는데 아직 그 원한을 갚지 못하고 있습니다.
今騎射之服, 近可以備上黨之形, 遠可以報中山之怨. 而叔也順中國之俗以逆簡‧襄之意,
지금 기사騎射에 편리한 호복으로 갈아입으면 가까이는 상당上黨의 형세를 수비할 수 있고, 멀리는 중산국中山國에 대한 원한을 갚을 수 있는데, 숙부께서는 중국의 풍속만 따르고자 하여 간주簡主양주襄主의 뜻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惡變服之名, 而忘國事之恥, 非寡人所望於子!”
호복을 입는다는 데 대한 혐오嫌惡의 명분 때문에 국가의 치욕을 잊고 있으니, 이는 과인이 숙부에게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公子成再拜稽首曰:
공자 성이 재배계수再拜稽首하며 말하였다.
“臣愚不達於王之議, 敢道世俗之.
“저는 어리석어 왕의 계책을 잘 알지 못하고 감히 세속의 소문을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今欲繼簡‧襄之意, 以順先王之志, 臣敢不!”
이제 간주簡主양주襄主의 뜻을 이어 선왕先王의 뜻을 따르고자 하시는데, 제가 감히 명령을 듣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再拜. 乃賜胡服.
그리고 다시 재배하니, 왕은 이에 호복을 하사하였다.
進諫曰:
이번에는 조문趙文이 와서 이렇게 하였다.
“農夫勞而君子養焉, 政之經也. 愚者陳意而知者論焉, 敎之道也;
“농부가 수고하여 군자君子를 먹여 살리는 것은 정치의 정도正道이며, 어리석은 자가 의견을 진술하여 지자知者의 토론거리가 되는 것이 교화의 도입니다.
臣無隱忠, 君無蔽言, 國之祿也.
그런가 하면 신하로서는 충성된 말을 숨기지 않고 임금으로서는 간언을 막지 않는 것은 나라의 복록福祿입니다.
臣雖愚, 願竭其忠.”
제가 비록 어리석으나 그 충성을 다하고 싶습니다.”
王曰
왕이 말하였다.
: “慮無惡擾, 忠無過罪,
“생각에 이 없으면 거리낄 것이 없고, 충성에 허물이 없으면 죄가 될 수 없소.
子其言乎!”
그대는 말해 보시오.”
趙文曰:
조문이 말하였다.
“當世輔俗, 古之道也; 衣服有常, 禮之制也. 修法無愆, 民之職也. 三者, 先聖之所以敎.
세태世態에 따라 풍속을 보도輔導하는 것이 옛날의 이며 의복에 상규가 있음은 의 제도이며, 법을 잘 지켜 허물이 없어야 하는 것이 백성의 직분이니, 이 세 가지는 바로 선성先聖들의 가르침입니다.
今君釋此, 而襲遠方之服, 變古之敎, 易古之道,
지금 왕께서는 이를 버리고 원방遠方의 복장을 따르려 하시며, 옛날의 가르침을 변혁시키고 옛날의 도를 바꾸려 하십니다.
故臣願王之圖之.”
그래서 신은 다시 한 번 고려하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王曰:
왕이 말하였다.
“子言世俗之間.
“그대는 세속世俗의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常民溺於習俗, 學者沉於所聞.
상민常民은 습속에 빠지고 학자는 소문에 잠긴다고 하였습니다.
此兩者, 所以成官而順政也, 非所以觀遠而論始也.
이 두 가지는 그저 관직이나 지켜 나가고 정치나 순조롭게 해 나갈 뿐, 먼 앞을 내다보고 일을 시작하는 이의 태도는 아닙니다.
且夫三代不同服而王, 五伯不同敎而政.
또 삼대()는 의복이 같지 않았어도 천하를 제패하였고, 오패五伯는 그 교화가 달랐어도 정치가 이루어졌습니다.
知者作敎, 而愚者制焉; 賢者議俗, 不肖者拘焉.
지자知者가 가르침을 베풀면 우자愚者는 거기에 제약을 받게 되고, 현자가 풍속을 의론하면 불초한 자들이 거기에 구속을 받는 것입니다.
夫制於服之民, 不足與論心; 拘於俗之衆, 不足與致意.
무릇 복식服飾 때문에 제약을 받는 백성들과 더불어 그들의 심사를 논할 필요가 없고, 습속에 구속받는 무리들과 뜻을 같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故勢與俗化, 而禮與變俱, 聖人之道也; 承敎而動, 循法無私, 民之職也.
그러므로 시세時勢는 풍속을 따라 변화시켜야 하고 예의는 함께 달라지는 것이 성인의 도리이며, 교화를 이어받아 움직이며 법을 지켜 사심이 없어야 하는 것이 백성의 직분인 것입니다.
知學之人, 能與聞遷; 達於禮之變, 能與時化.
지혜와 학문이 있는 이는 능히 견문을 따라 변천할 수 있고, 에 통달하면 시세를 따라 변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故爲己者不待人, 制今者不法古,
따라서 자신을 위해 일하는 자는 반드시 남의 말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며, 현재를 제약하려는 자는 반드시 고대古代를 법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子其釋之.”
그대는 그만 두십시오.”
諫曰:
조조趙造가 간하였다.
“隱忠不竭, 奸之屬也; 以私誣國, 之類也.
충심忠心을 숨겨 놓은 채 털어놓지 않는 것은 간신의 무리이며, 사사로운 일로 나라를 무함誣陷하는 것은 반역의 무리들입니다.
犯姦者身死, 賤(賊)國者族宗.
간사한 짓을 하는 자는 죽여야 하고, 나라를 해치는 자는 종족을 멸해야 합니다.
此兩者, 先聖之明刑, 臣下之大罪也.
이 두 가지는 선성先聖들이 형법刑法으로 밝혀 두셨으며, 신하로서는 큰 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臣雖愚, 願盡其忠, 無遁其死.”
저는 비록 어리석으나 충성을 다 바칠 것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王曰:
왕이 말하였다.
“竭意不諱, 忠也; 上無蔽言, 明也.
“뜻을 다하여 거리낌이 없는 것이 이며, 임금으로서 간언을 막지 않는 것이 입니다.
忠不辟危, 明不距人.
충은 위험을 피하지 않으며, 명은 남을 거절하지 않는 법입니다.
子其言乎!”
그대는 말해 보시오.”
趙造曰:
조조가 말하였다.
“臣聞之, 聖人不易民而敎, 知者不變俗而動.
“제가 듣기로 성인은 백성을 바꾸지 않으면서 교화하고, 지혜로운 자는 풍속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사람을 움직인다고 하였습니다.
因民而敎者, 不勞而成功; 據俗而動者, 慮徑而易見也.
그러므로 백성을 거기에 따라서 교화하게 되면 수고롭지 않으면서 공을 이루고, 풍속을 거기에 의해 움직이면 지름길로 가게 되어 쉽게 효과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今王易初不循俗, 胡服不顧世, 非所以敎民而成禮也.
지금 왕께서 변혁을 시작함에 세속을 따르지 아니하시고, 호복 착용에 세상 의견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니 이는 백성을 가르치고 를 이루는 방법이 아닙니다.
且服奇者志淫, 俗辟者亂民.
또 이상한 의복을 입히면 뜻이 음일淫佚하게 되고, 풍속을 사벽邪僻하게 하면 백성을 어지럽히게 됩니다.
是以莅國者不襲奇辟之服, 中國不近蠻夷之行, 非所以敎民而成禮者也.
그 때문에 위정자는 괴상한 의복을 입지 않으며, 중국은 만이蠻夷의 행동을 가까이하지 않으니, 그렇게 해서는 백성을 가르치고 예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且循法無過, 脩禮無邪,
게다가 법을 따르면 과실이 없고 예를 따르면 사악함이 없게 됩니다.
臣願王之圖之.”
신은 원컨대 왕께서는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王曰:
왕이 말하였다.
“古今不同俗, 何古之法? 帝王不相襲, 何禮之循?
“고금의 풍속이 같지 않은데, 어떤 고법古法을 따라야 하며, 제왕의 예제禮制가 서로 같게 이어지지 않았는데 어떤 예제를 따르라 합니까?
敎而不誅, 黃帝‧堯‧舜誅而不怒.
복희宓戲신농神農씨는 백성을 가르치되 주벌誅罰한 적이 없었으며, 황제黃帝은 사람을 죽였으나 이를 두고 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及至三王, 觀時而制法, 因事而制禮,
이어 삼대三代에 이르러서는 때를 보아 법을 정하고, 일에 맞춰 예를 정하였습니다.
法度制令, 各順其宜; 衣服器械, 各便其用.
그리하여 법도法度제령制令이 각각 그 마땅함을 따랐고, 의복衣服기계器械가 각각 쓰기에 편리하였던 것입니다.
不必一其道, 便國不必法古.
그러므로 치세治世에는 반드시 한 가지만 고집할 것이 아니요, 나라를 편리하게 하면 꼭 고인을 법받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聖人之興也, 不相襲而王; 夏‧殷之衰也, 不易禮而滅.
성인이 일어남에 서로 답습하지 않았어도 왕천하王天下하였고, 이 쇠퇴함에 예를 바꾸지 않았어도 망하였던 것입니다.
然則反古未可非, 而循禮未足多也.
그러니 고인古人과 반대된다고 하여 꼭 그르다고 할 수 없으며, 고법古法만 준수하였다고 해서 꼭 칭찬할 것도 못 됩니다.
且服奇而志淫, 是鄒‧魯無奇行也;
또 옷이 기이하면 지기志氣음사淫邪해진다고 하시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이상한 옷을 한 번도 입는 자가 없었겠습니다.
俗辟而民易, 是吳‧越無俊民也.
그리고 풍속이 사벽하면 백성의 성품이 바뀐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같은 땅에서는 준수한 인물이 전혀 나올 수 없는 곳이겠습니다.
是以聖人利身之謂服, 便事之謂敎, 進退之謂節,
그래서 성인은 몸을 이롭게 하는 것을 일컬어 이라 하였고, 일을 편히 하기 위한 것을 일컬어 라 하였으며, 진퇴進退의 예의를 일컬어 이라 한 것입니다.
衣服之制, 所以齊常民, 非所以論賢者也.
의복을 제정하는 것은 백성을 평등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 어짊의 여부를 논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故聖與俗流, 賢與變俱.
그 때문에 성인은 세속에 따라 변천하고 현인은 변화에 따라 진퇴進退하는 것입니다.
諺曰: ‘以書爲御者, 不盡於馬之情; 以古制今者, 不達於事之變.’ 故循法之功, 不足以高世;
속담에 ‘책에 쓰인 대로만 수레를 몰면 말의 능력을 완전히 알 수 없고, 옛법의 규정만 따르면 시사時事의 변천을 알 수 없다.’라 하였으니 옛 방법만 지켜 이룩한 공적은 당대에 높게 드러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法古之學, 不足以制今.
결국 옛날만 법받는 학설은 현재를 제압하기에 부족합니다.
子其勿反也.”
그대는 더 이상 반대하지 마십시오.”
역주
역주1 : 이 이야기는 《史記》 〈趙世家〉에도 실려 있으며, 《商君書》 〈更法篇〉의 토론과 주제가 같다. B.C.302년(《사기》에는 307년)의 일이며, 武靈王의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를 잘 나타낸 내용이다.
역주2 武靈王……侍坐 : 肥義는 趙나라 대부. 惠文王 때 재상, 武靈王 19년에 서쪽으로 하수까지 공략하여 黃華山에 올라 樓緩을 불러 부국강병을 위해 말타기‧활쏘기에 편리한 호복을 착용하는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물은 적이 있다. 이때 樓緩은 찬성하였었지만, 群臣들이 반대하였었다. 지금 여기서 肥義가 그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이다.
역주3 簡‧襄 : 趙나라의 시조인 簡子와 그의 아들 襄子. 여기서는 이를 높여 簡主ㆍ襄主라 하였다.
역주4 胡狄 : 북방의 두 소수민족.
역주5 動〈而〉 : 鮑彪本에 의하여 원문 ‘而’를 보충하였다.
역주6 恐(怨) : 鮑彪本에 의하여 ‘怨’으로 고쳤다.
역주7 舜舞有苗 : 舜이 有苗 나라에서 兵舞의 춤을 추었다.
역주8 裸國 : 《淮南子》 注에 “裸國은 서남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역주9 王孫緤 : 趙나라 대부로 보이나 자세한 사적은 알려지지 않는다.
역주10 公子 成 : 武靈王의 숙부.
역주11 明德在於論賤 行政在於信貴 : 《史記》에 “明德先論於賤而行政先信於貴”라 하였다.
역주12 願募(慕) : 원문 ‘募’를 鮑彪本에 의하여 ‘慕’로 고쳤다.
역주13 被髮文身 : 머리를 풀어 헤치고 몸에 무늬를 새기는 남방 민족의 풍속.
역주14 錯臂左衽 : 錯臂도 어깨에 문신을 새기는 것, 左衽은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것.
역주15 甌越 : 地名. 지금의 海南島 등 남쪽 지역.
역주16 黑齒雕題 : 이빨을 물들이고 이마에 검은 먹물을 넣는 일.
역주17 鯷冠秫縫 : 메기[鯷] 껍질로 모자를 만들어 쓰고, 秫(붉은 색의 차조 줄기)를 어설프게 엮어 꿰맨 옷.
역주18 大吳 : 春秋時代의 吳나라를 가리킨다. 周나라 太王의 아들인 太伯이 왕위를 동생에게 넘기기 위해 荊蠻으로 도망하여 文身斷髮하고 吳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大는 太, 즉 太伯(泰伯)을 가리킨다.
역주19 薄洛之水 : 하수의 한 나루.
역주20 東胡 : 匈奴의 동쪽 種族, 삼국 때 曹操가 정벌한 烏桓, 퉁구스족의 전신.
역주21 樓煩 : 北狄의 이름, 지금의 山西城 寧武縣, 保德縣 등지.
역주22 間(聞) : 《史記》 〈趙世家〉에 의하여 ‘聞’으로 고쳤다.
역주23 聽今(令) : 원문 ‘今’을 鮑彪本에 의하여 ‘令’으로 고쳤다.
역주24 趙文 : 趙나라의 公族大夫.
역주25 趙造 : 趙나라의 公族大夫.
역주26 賤(賊) : 劉敞本에 의하여 ‘賊’으로 고쳤다.
역주27 [反] : 劉敞本에 의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28 宓戲 : 三皇 중의 하나, 伏犧氏. 庖犧‧宓戲으로도 표기되며 수렵과 家禽을 기르는 일을 처음 시작하였다. 《周易》의 八卦를 만들었다고 한다.
역주29 神農 : 어렵 채취 시대에서 농업 정착 시대로 옮겨 놓은 고대 지도자.
역주30 禮(治)世 : 姚本에는 ‘理世’로 되어 있으며, 金正煒本과 《商君書》 〈更法〉에는 ‘治世’로 되어 있어 이를 따랐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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