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者,
急, 寡人日自請太后. 今義渠之事已, 寡人乃得以身受命.
范雎曰:“唯唯.” 有間, 秦王復請, 范雎曰:“唯唯.”
臣聞始時
也, 身爲漁父而釣於
之濱耳. 若是者, 交疏也.
卽使文王疏呂望而弗與深言, 是周無天子之德, 而文‧武無與成其王也.
願以陳臣之陋忠, 而未知王心也, 所以
問而不對者, 是也. 臣非有所畏而不敢言也.
知今日言之於前, 而明日伏誅於後, 然臣弗敢畏也.
大王信行臣之言, 死不足以爲臣患, 亡不足以爲臣憂, 漆身而爲厲, 被髮而爲狂, 不足以爲臣恥.
五帝之聖而死, 三王之仁而死, 五伯之賢而死,
之力而死,
‧
之勇焉而死.
處必然之勢, 可以少有補於秦, 此臣之所大願也, 臣何患乎?
使臣得進謀如伍子胥, 加之以幽囚, 終身不復見, 是臣說之行也, 臣何憂乎?
使臣得同行於箕子‧接輿, 漆身可以補所賢之主, 是臣之大榮也, 臣又何恥乎?
臣之所恐者, 獨恐臣死之後, 天下見臣盡忠而身蹶也, 是以杜口裹足, 莫肯卽秦耳.
足下上畏太后之嚴, 下惑姦臣之態; 居深宮之中, 不離保傅之手;
夫秦國僻遠, 寡人愚不肖, 先生乃幸至此, 此天以寡人慁先生, 而存先王之廟也.
事無大小, 上及太后, 下至大臣, 願先生悉以敎寡人, 無疑寡人也.”
“大王之國, 北有
‧
, 南帶
, 右
, 左
, 戰車千乘, 奮擊百萬.
以秦卒之勇, 車騎之多, 以當諸侯, 譬若馳
而逐蹇兎也, 霸王之業可致.
今反閉而不敢窺兵於山東者, 是穰侯爲國謀不忠, 而大王之計有所失也.”
少出師, 則不足以傷齊; 多之則害於秦. 臣意王之計欲少出師,
齊人伐楚, 戰勝, 破軍殺將, 再辟千里,
無得者, 豈齊不欲地哉?
王不如遠交而近攻, 得寸則王之寸, 得尺亦王之尺也.
秦之有韓, 若木之有蠹, 人之病心腹. 天下有變, 爲秦害者莫大於韓.
“擧兵而攻
, 則成睪之路不通; 北斬太行之道, 則上黨之兵不下;
범저范雎가 진秦나라에 이르자 왕王(昭王)이 궁정에서 그를 맞이하여 범저에게 말하였다.
“과인은 일찍이 그대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자 한 지 오래입니다.
요즈음 의거義渠의 일이 급하여 과인은 매일 태후에게 의논을 드려야 하였는데, 이제 그 의거의 일이 끝나 과인이 비로소 그대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건대 어두워 민첩하지 못하오나 우선 빈주賓主의 예로 대하겠습니다.”
이날 왕을 접견하는 범저를 보고 누구 하나 놀라 얼굴색을 바꾸지 않는 자가 없었다.
진왕秦王이 좌우를 다 물러가게 하고, 방안이 비어 아무도 없자 진왕秦王은 무릎을 꿇고 청하였다.
“선생께서는 과인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렵니까?”
그러나 범저는 그저 ‘글쎄요, 글쎄요’할 뿐이었고, 잠시 후 진왕이 다시 청하였으나 범저는 역시 ‘글쎄요, 글쎄요’할 뿐이었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왕은 다시 공손히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불행히도 과인을 가르쳐 주실 수 없다는 뜻입니까?”
제가 듣건대 처음에 여상呂尙(太公望)이 문왕文王을 만났을 때 그는 어부로서 위수渭水 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아직 서로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이윽고 문왕은 한두 마디 말을 나누어 보고 곧바로 태사太師로 삼아 수레를 태워 모시고 함께 궁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상의 말이 깊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왕은 여상의 힘으로 공을 거두어 마침내 천하를 차지하여 몸이 제왕帝王이 된 것입니다.
만약 문왕文王이 여상을 소홀히 여겼거나, 여상도 깊은 말을 나누지 않았더라면 주周나라는 천자의 덕德을 세우지 못하였을 것이며, 아무리 문왕文王‧무왕武王이라 할지라도 왕업王業을 성공시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저는 기려지신羇旅之臣이요, 게다가 왕과 친한 사이도 아닙니다.
제가 진술陳述하고자 하는 말은 모두 대왕의 정사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기는 하나 대왕의 골육骨肉과 관계된 일입니다.
저의 변변찮은 충정을 진술하고 싶지만 왕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왕께서 세 번이나 물으시도록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지, 신이 두려워서 감히 말씀드리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대왕 앞에서 말씀드리면 내일 돌아서서 주살誅殺당하리라는 사실을 알지만, 저는 감히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제 말을 실행해 주시기만 한다면 죽음도 근심거리가 되기에 부족하며, 도망하는 것도 신의 근심이 되기에 부족하고, 또 몸에 옻칠을 해 문둥병자가 되고 머리를 풀어헤쳐 미치광이가 되어도 저의 치욕恥辱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오제五帝 같은 성인聖人도 죽었고, 삼왕三王 같은 인자仁者도 죽었으며, 오패五霸 같은 현자賢者도 죽었고, 오획烏獲 같은 힘센 자도 죽었으며, 분賁‧육育 같은 용사도 죽었습니다.
죽음이란 사람 누구나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필연 속에 살면서 조금이나마 진秦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큰 소원인데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
오자서伍子胥는 보따리 하나를 들고 초楚나라를 도망쳐 소관昭關을 빠져 나와 밤에는 걷고, 낮이면 숨었습니다.
그러다가 능수蔆水 땅까지 와서는 먹을 게 없어 겨우 앉은뱅이 걸음으로 걷고 기어 오시吳市에서 걸식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오吳나라를 부흥시켜 합려闔廬를 패자霸者가 되게 했습니다.
가령 제가 오자서처럼 모책을 말씀드렸는데 오히려 저를 가두어 다시는 세상 빛을 보지 못하게 한다 해도 제 의견이 실행만 된다면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또 기자箕子나 접여接輿가 칠신漆身하여 문둥병자처럼 되고, 피발披髮하여 미치광이가 되었지만 은殷나라나 초楚나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였습니다.
저로 하여금 기자나 접여처럼 몸에 옻칠을 하더라도 어진 임금에게 보탬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저의 큰 영광이 될 텐데 제가 무엇을 부끄러워하겠습니까?
다만 걱정하는 것은 제가 죽은 뒤에 천하 사람들이 충성을 다한 사람이 억울하게 죽은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입을 다물고 발을 묶은 채 더 이상 진秦나라로 오지 않으려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족하足下께서는 위로 태후太后의 위엄을 두려워하고, 아래로는 간신姦臣들의 태도에 미혹되어 깊은 궁중에 처한 채 보부保傅의 손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종신토록 암혹闇惑에 파묻혀, 어느 것이 간사한 것인지 알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크게는 종묘가 엎어질 것이요, 작게는 대왕의 몸이 위험하게 됩니다.
궁욕窮辱을 당하는 일이나, 죽음에 대한 걱정 따위는 제가 겁내지 않습니다.
제가 죽고 진秦나라가 잘 다스려진다면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여깁니다.”
우리 진秦나라는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벽지에 있고 게다가 과인이 우매 불초한데도 다행히 선생 같은 분이 와 주셨으니, 이는 하늘이 과인으로 하여금 선생을 번거롭게 하여 선왕先王의 사당祠堂을 보존하게 하려 함입니다.
그리고 과인이 선생의 명을 듣도록 함은, 하늘이 선왕을 좋게 여겨 저를 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일의 크고 작은 것에 관계없이 위로는 태후에게 미치고 아래는 대신에 이르는 일까지, 원컨대 선생께서 모든 것을 과인에게 가르쳐 주시어 과인을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대왕의 나라는 북쪽으로 감천甘泉과 곡구谷口가 있고, 남쪽은 경수涇水‧위수渭水에 접해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농隴과 촉蜀, 왼쪽으로는 관關과 판阪이 있으며 전거戰車 1천 승乘에 분격奮擊하는 군사가 1백만 명이나 됩니다.
이런 진秦나라 군사의 용맹과 많은 거기車騎를 가지고 제후를 대적하는 것은, 비유컨대 마치 명견名犬 한로韓盧가 절름발이 토끼를 쫓는 것과 같아 패왕霸王의 과업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도리어 관문을 닫고 감히 동쪽 여러 나라들에게 군사의 위력을 뽐내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지금 재상인 양후穰侯(魏冉)가 대왕을 위해 충성을 다하지 않아 대왕의 계책이 잘못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잘못된 계책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대왕께서 가까운 한韓나라‧위魏나라를 넘어 멀리 강한 제齊나라를 치고자 하는 것이 실책입니다.
왜냐하면 적은 군사로는 제齊나라에 손상을 주기에 부족하고, 많은 군사를 보내면 진秦나라에 해가 막심하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대왕의 계책은 적은 군사를 내어 한나라와 위나라의 군사까지 연합하려 한 모양이나 이는 옳은 계책이 못 됩니다.
지금 보면 동맹국이라고는 하지만 서로 친하지 않은데 남의 나라를 건너뛰어 공격하고자 하면 옳겠습니까?
옛날 제齊나라가 초楚나라를 쳐서 군사를 격파하고 장수를 죽여 강토를 1천 리나 넓혔지만, 그러나 한 치의 땅도 얻지 못하였는데 어찌 제나라가 땅을 갖기 싫어해서 그랬겠습니까?
형세로 보아 소유할 수 없는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제후들이 제나라가 피로해 지치고 군신간에 내분內紛이 일어난 것을 알고는 군대를 일으켜 공격해 왔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욕을 당하고 군대는 깨져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나라가 그렇게 된 것은 멀리 있는 초나라를 치면서 가까운 한나라와 위나라를 비대하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를 일러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강도에게 식량을 준다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쓰느니만 못하니, 그렇게 하면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왕의 한 치 땅이 될 것이요, 한 자의 땅을 얻으면 한 자의 땅이 왕의 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계책을 버리고 원공遠攻을 고집하시니 이 역시 잘못이 아닙니까?
또 지난번 중산中山의 땅만 보더라도 방方 5백 리나 되는 땅을 조趙나라가 혼자 독차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공功도 이루고 이름도 세웠으며 이익까지 얻었지만 누구 하나 조나라를 비방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는 중국中國에 위치해 있어 천하의 중추中樞가 되는 곳입니다.
대왕이 만약 천하를 제패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중국에 있는 나라와 친하게 해서 이를 천하의 중추로 삼고 초楚나라와 조趙나라를 위압하셔야 합니다.
조나라가 강해지면 초나라가 친부親附해 오고 초나라가 강해지면 조나라가 친부해 오게 됩니다.
이렇게 초楚나라와 조趙나라가 진秦나라에 친부해 오면 제齊나라는 틀림없이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며, 두려워하면 반드시 겸손한 말과 많은 보물로 진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이렇게 제나라까지 진秦나라에 친부하면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는 빈 땅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과인은 위魏나라와 친하고 싶지만 위나라는 변덕이 심한 나라여서 과인은 능히 그들과 친할 수가 없습니다.
청하여 묻건대 위나라와 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겸손한 말과 많은 재물로 그들을 섬기십시오.
그것도 안 되면 땅을 떼어서 뇌물로 주십시오.
그것도 안 되겠거든 군대를 일으켜 쳐버리십시오.”
이에 진秦나라는 군대를 일으켜 위魏나라의 형구邢丘 땅을 공격하였다.
형구가 점령당하자 위나라는 진나라에 귀부歸附하기를 청하였다.
“진나라와 한韓나라와의 지리 형세는 서로 얽힌 것이 마치 비단실들이 얽혀 옷감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진나라에게 있어서 한나라는 나무에 좀이 있는 것과 같고, 사람의 심복心腹에 병이 있는 것과 같아 천하에 변고가 생기면 진秦나라에게 있어서 한韓나라보다 더 해害가 될 나라는 없습니다.
“과인이 한韓나라를 거두어들이려 하나 한나라가 들어주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되겠소?”
“군대를 일으켜 형양滎陽 땅을 치면 성고成睪의 길이 막히고, 북쪽 태항太行의 길을 끊어 버리면 상당上黨의 군대들이 내려오지 못합니다.
이렇게 일거에 형양 땅을 공격하면 한韓나라는 셋으로 끊어져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위나라와 한나라는 자기 나라가 곧 망하게 될 것을 보고 어찌 대왕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한韓나라가 진나라의 말을 듣게 되면 패업霸業을 이룰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