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주周 문군文君이 공사자工師藉를 면직시키다
주周 문군文君이 공사자工師藉를 면직시키고, 여창呂倉을 상국으로 삼자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임금이 불안해 하는 마음을 갖자 어떤 사람이 주 문군에게 말하였다.
“나라 일에는 반드시 비방과 칭송이 있게 마련인데, 충신은 비방은 자기에게 있게 하고, 명예는 윗사람에게 돌리는 법입니다.
송군宋君이 농사철[民時]을 빼앗아 누대樓臺를 짓자, 백성들이 비난하였지만 그 어떤 충신도 이를 엄호해 덮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한子罕이 상국相國자리를 버리고 사공司空이 되자 백성들이 이번에는 자한을 비난하고 임금을 칭찬하였습니다.
또 제齊 환공桓公이 궁중에다 일곱 개의 시장市場을 개설하고, 7백 군데의 여려女閭를 차리자 백성들이 비난하였습니다.
이에 관중管仲이 일부러 〈그보다 더 사치스러운〉 삼귀지가三歸之家를 지어 환공을 엄호해 주고, 스스로 백성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춘추春秋》에 신하가 임금을 시해弑害한 기록이 수백 군데 있는데, 이는 모두 대신大臣이 명예를 얻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신大臣이 명예를 얻는 것은 국가에 이로운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무리가 많아지면 강함을 이루게 되고, 불어나고 쌓이면 산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주군周君은 드디어 여창을 파면하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