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剗而類, 破吾家. 苟可慊齊貌辨者, 吾無辭爲之.”
靖郭君之交, 大不善於宣王, 辭而之薛, 與齊貌辨俱留.
靖郭君曰:受薛於先王, 雖惡於後王, 吾獨謂先王何乎!
能自知人, 故人非之不爲沮. 此齊貌辨之所以外生樂患趣難者也.
115. 정곽군靖郭君이 제모변齊貌辨에게 잘 해주다
정곽군靖郭君이 식객 제모변齊貌辨을 잘 대해 주었다.
제모변은 사람됨이 흠이 많아 문인門人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사위士尉가 정곽군에게 간諫하였으나 정곽군이 들어주지 않자 사위는 떠나버리고 말았다.
맹상군孟嘗君(田文)이 가만히 간하니, 정곽군이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너희들을 다 없애고 우리 집이 결단나는 한이 있더라도 참으로 제모변을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일도 사양하지 않겠다.”
그리고는 이에 제모변을 상사上舍에 거처하게 하면서 장자長子로 하여금 시중 들게 하고 아침저녁 식사까지 갖다 바치게 하였다.
몇 년이 흘러 제齊 위왕威王이 죽고 선왕宣王이 즉위하였다.
정곽군은 평소 선왕과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으므로 사직하고 설薛로 돌아가, 제모변과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모변이 선왕을 만나 보러 가겠다며 하직 인사를 하러 왔다.
그대가 가면 틀림없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본디 살기를 바라지 않으니, 청컨대 반드시 가겠습니다.”
제모변이 제 땅에 이르자 선왕이 이 소식을 듣고 노여움을 품은 채 그를 맞이하였다.
“그대는 정곽군이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아끼는 인물이라던데!”
대왕께서 태자가 되셨을 때 제가 정곽군에게 ‘태자의 관상이 어질지 못합니다.
턱이 너무 크고 돼지눈처럼 보이니, 이런 얼굴은 신의를 배반합니다.
태자를 폐위시키고 다시 위희衛姬의 어린 아들 교사郊師를 세우니만 못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만약 제 말을 듣고 그렇게 했다면 오늘날 같은 환난은 틀림없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 설薛 땅에 이르자 초楚나라 소양昭陽이 몇 배의 땅으로 설 땅과 바꾸자는 제의를 해왔습니다.
저는 그때 ‘그 제의를 반드시 받아들이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정곽군께서 ‘설 땅은 선왕先王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비록 후왕後王이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그렇게 하면 장차 선왕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게다가 선왕의 사당이 바로 이곳 설薛에 있는데 내 어찌 선왕의 사당을 초楚나라에 넘겨 줄 수 있겠소!’라고 하면서 또다시 저의 의견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선왕宣王은 크게 탄식하면서 얼굴색이 흔들리며 말하였다.
“정곽군이 과인에 대하여 한결같이 이와 같았구려!
객客께서 과인을 위하여 정곽군을 불러올 수 있겠소?”
정곽군은 위왕威王이 내려 준 옷을 입고 위왕이 준 검을 차고 나섰다.
선왕은 스스로 교외까지 나와서 정곽군을 맞으며 멀리서 보고 눈물을 흘렸다.
정곽군이 이르자 인하여 재상자리를 맡아 줄 것을 청하였다.
정곽군이 사양하였지만 어쩔 수 없어 부득이 수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7일 만에 병을 핑계로 굳게 사양하였다.
정곽군이 사양하였지만 허락을 얻지 못하고 다시 사흘 만에야 겨우 허락을 얻어낼 수 있었다.
당시에 정곽군은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았다고 하겠다.
능히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비방에도 전혀 꺾일 줄 몰랐던 것이며, 그래서 제모변이 생사를 도외시하고 기꺼이 환난에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