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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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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진왕秦王이 사람을 보내어 안릉군安陵君에게 말하다
秦王使人謂安陵君曰:
진왕秦王(시황始皇)이 사람을 보내어 〈나라〉 안릉군安陵君에게 말하였다.
“寡人欲以五百里之地易安陵, 安陵君其許寡人.”
“과인의 5백 리의 땅과 그대의 봉지封地 안릉 땅을 바꾸고 싶으니, 안릉군은 과인의 요구를 들어주오.”
安陵君曰:
안릉군이 말하였다.
“大王加惠, 以大易小, 甚善.
“대왕께서 은혜를 가하여 큰 땅을 작은 것과 바꾸려 하시니, 정말 훌륭합니다.
雖然, 受地於, 願終守之,
비록 그렇기는 하나 이 땅은 선왕先王에게 받은 땅이어서 종신토록 지키고 싶습니다.
弗敢易.”
감히 바꿀 수 없습니다.”
秦王不說.
진왕은 불쾌히 여겼다.
安陵君因使唐且使於秦.
한편 안릉군은 당저唐且를 사신으로 진나라에 보냈다.
秦王謂唐且曰:
진왕은 당저에게 물었다.
“寡人以五百里之地易安陵, 安陵君不聽寡人, 何也?
“과인이 5백 리나 되는 땅으로 안릉과 바꾸자 하였더니, 안릉군이 과인의 말을 듣지 않으니, 웬일이오?
且秦滅韓亡魏, 而君以五十里之地存者, 以君爲長者, 故不錯意也.
이미 우리 진나라는 한나라와 위나라를 멸망시켜 놓고 있으면서, 50리의 안릉군이 지키는 안릉을 그냥 두고 있는 것은 안릉군을 어른으로 대접해서 마음을 쓰지 않은 것이오.
今吾以十倍之地, 請廣於君, 而君逆寡人者, 輕寡人與?”
그런데 지금 그 열 배의 땅을 주어 안릉군의 땅을 넓혀 준다 해도 과인의 뜻을 거역하고 있으니 과인을 깔보아 그런 것 아니겠소?”
唐且對曰:
당저가 대답하였다.
“否,
“아닙니다.
非若是也.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安陵君受地於先生(王)而守之, 雖千里不敢易也, 豈直五百里哉?”
안릉군은 선왕先王으로부터 받은 땅을 지키겠다고 하는 뜻이어서 비록 1천 리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을 것인데 어찌 5백 리이겠습니까?”
秦王怫然怒, 謂唐且曰:
진왕은 불연怫然히 화를 내며 장저에게 물었다.
“公亦嘗聞天子之怒乎?”
“그대 역시 천자가 화를 내면 어떻게 되는지 들었겠지요?”
唐且對曰:
당저가 대답하였다.
“臣未嘗聞也.”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秦王曰:
진왕이 말하였다.
“天子之怒, 伏屍百萬, 流血千里.”
“천자가 화를 내면 시체屍體가 1백만이나 엎어지고, 유혈流血이 1천 리에 뻗치게 되오.”
唐且曰:
당저가 말하였다.
“大王嘗聞布衣之怒乎?”
“그렇다면 대왕께서는 포의布衣가 노하면 어떻게 되는지 들어 보셨습니까?”
秦王曰:
진왕이 말하였다.
“布衣之怒, 亦免冠徒跣, 以頭搶地爾.”
“포의가 노해봤자, 모자를 벗고 맨발로 쫓아 나가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용서를 빌면 되겠지요.”
唐且曰:
당저가 말하였다.
“此庸夫之怒也, 非士之怒也.
“그것은 용렬한 사나이가 노했을 때이지 선비가 노했을 때가 아닙니다.
也, 彗星襲月; 也, 白虹貫日; 也, 倉鷹擊於殿上.
무릇 전제專諸오왕吳王 를 찔러 죽일 때 혜성이 달을 침식하였고, 섭정聶政한괴韓傀를 찔렀을 때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었으며, 요리要離경기慶忌를 찌를 때 독수리가 전상殿上을 맴돌았소.
此三子者, 皆布衣之士也, 懷怒未發, ,
이 세 사람은 모두 포의의 선비, 품은 분노를 미처 나타내지도 않았을 때 하늘에 이미 그 징조를 내려쳤습니다.
與臣而將四矣.
이제 저까지 합하면 네 명이 됩니다.
若士必怒, 伏屍二人, 流血五步, 天下縞素, 今日是也.”
만약 선비들이 노하면 엎어져 죽은 시체는 둘이요 유혈은 다섯 걸음 안이지만 천하가 상복喪服을 입어야 하니, 오늘이 바로 그 날인가 합니다.”
挺劍而起.
그리고 칼을 뽑아들고 일어섰다.
秦王色撓, 長跪而謝之曰:
진왕은 얼굴 색을 떨며 한참을 무릎을 꿇고 사과하였다.
“先生坐,
“선생은 앉으시오.
何至於此!
어찌 이렇게까지 하시오!
寡人諭矣.
과인은 잘 알았습니다.
夫韓‧魏滅亡, 而安陵以五十里之地存者, 徒以有先生也.”
무릇 나라‧나라가 멸망하였는데도 안릉이 50리 땅으로 견뎌내고 있는 것은, 그건 바로 선생 같은 분이 계시기 때문이었소.”
역주
역주1 : 이 장의 이야기는 《說苑》 〈奉使篇〉에도 실려 있다. 이 사건은 魏가 망한 직후, 혹은 망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로 보인다. 시기는 대략 B.C.225년 혹은 B.C.224년쯤이다.
역주2 先生(王) : 원문 ‘生’은 ‘王’의 誤字. 魏 襄王, 襄王은 그 동생을 成侯로 삼고 安陵을 封地로 주었다. 그래서 成侯를 安陵君이라 칭한 것. 340‧367장 참조.
역주3 專諸之刺王僚 : 吳의 公子 光(뒤에 闔閭)이 吳王 僚를 죽이고 자립하려고 이에 專諸를 시켜 匕首를 구운 생선에 숨겨 찔러 죽이게 하였다. 그 자리에서 專諸는 일을 이루고 僚의 부하들에게 죽었다. 《史記》 〈吳太伯世家〉 및 《左傳》 昭公 27년 참조.
역주4 聶政之刺韓傀 : 섭정은 韓의 軹 땅 사람으로 자객. 韓의 哀侯(B.C.376~371년)의 寵臣 嚴仲子가 당시 재상 俠累(즉, 여기서의 韓傀)에게 미움을 받아 도망갔다가 그 복수를 위해 聶政을 사귀었다. 뒤에 결국 聶政은 약속대로 韓宮으로 숨어들어 韓傀(俠累)를 찔러죽이고 자신도 자결하였다. 《史記》 〈刺客列傳〉 및 韓策 417 참조.
역주5 要離之刺慶忌 : 吳나라 公子 光이 이미 僚를 죽이고 자립한 후에 다시 要離를 시켜 僚의 아들 慶忌를 죽인 일, 要離가 거짓으로 吳에 죄를 지어 그 妻子를 죽이게 하고 慶忌가 있는 衛로 피신, 詭言을 써서 慶忌에게 다시 吳나라로 가서 나라를 빼앗자고 유혹한 후 吳나라에 이르자 찔러 죽이고 자신도 죽었다. 《吳越春秋》 卷3 참조
역주6 休祲降於天 : 休는 吉兆, 祲은 凶兆를 뜻함.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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