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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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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같은 자성子姓이며 공작公爵이다. 성왕成王전조前朝 의 말왕 서형庶兄 미자微子 를 봉하면서 망한 은나라 제사를 잇도록 하였던 나라이다. 도읍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상구현商丘縣이며, 춘추시대에는 꽤 이름을 날려 양공襄公의 경우 춘추春秋 오패五覇에 이름이 오르는 등 세력을 키웠으나 그 뒤 강대국의 틈에 끼어 점차 약화되고 말았다.
전국 시대 언왕偃王 때 다시 국력을 회복하는 듯하였으나 끝내 강왕康王 같은 폭정으로 민심을 잃어, 의 연합군에게 망하고 말았다.(B.C.286년) 이 송나라의 역사에 대하여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 자세히 다루고 있다. 전국칠웅戰國七雄에는 들지 못한 채 명맥만 유지하였으며, 영역領域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상구현商丘縣 동쪽으로부터 강소성江蘇省 동산현銅山縣 서쪽의 땅이었다.
포표鮑彪의 주에는 “나라는 산양山陽제음濟陰동평東平동군東郡수창須昌수장壽張 등의 지역을 관할하였다.”라 하였다.
나라와 같은 희성姬姓이며 후작侯爵이었다. 무왕武王동모이제同母異弟강숙康叔을 봉하였던 나라이다. 즉 서주 초기 주공周公 무경武庚을 평정한 후 ()나라 유민의 일부를 강숙에게 분봉하였던 제후국이었다. 처음 조가朝歌(하남성河南省 기현淇縣)를 도읍으로 하였으나 문공文公초구楚丘(하남성河南省 활현滑縣)로 천도하였고, 성공成公 때 다시 제구帝丘(하남성河南省 복양현濮陽縣전욱성顓頊城)로 옮기는 등 많은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세력이 점차 약해져서 전국 초기에는 폄호貶號되었다가 전국 말기에는 다시 으로 강등되고 말았으며 이세二世 호해胡亥 때 이르러서는 을 다시 서인庶人으로 만들어 명맥이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B.C.209년) 물론 전국칠웅戰國七雄에 들지 못하였으며, 이 나라 역사에 대하여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 영역에 대하여 포표鮑彪 주에는 “나라는 동군東郡위군魏郡여양黎陽, 하북河北야왕野王조가朝歌의 지역이었다.”라 하였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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