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居山東, 聞齊之內有
, 不聞其王; 聞秦之有太后‧穰侯‧
, 不聞其有王.
夫擅國之謂王, 能專利害之謂王, 制殺生之威之謂王.
今太后擅行不顧, 穰侯出使不報, 涇陽‧華陽擊斷無諱,
爲此四者, 下乃所謂無王已. 然則權焉得不傾, 而令焉得從王出乎?
穰侯使者操王之重, 決裂諸侯, 剖符於天下, 征敵伐國, 莫敢不聽.
今秦, 太后‧穰侯用事,
‧
佐之, 卒無秦王, 此亦淖齒‧李兌之類已.
臣今見王獨立於廟朝矣, 且臣將恐後世之有秦國者, 非王之子孫也.”
秦王懼, 於是乃廢太后, 逐穰侯, 出高陵,
於關外.
“제가 산동山東에 있을 때 제齊나라에는 전단田單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뿐 그 왕王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으며, 마찬가지로 진秦나라에도 태후太后와 양후穰侯‧경양군涇陽君‧화양군華陽君 등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뿐 왕에 대하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무릇 국가를 통치하는 자를 일러 왕王이라 하며, 이해利害를 마음대로 장악하는 자를 왕王이라 하며, 살생殺生의 권한을 쥔 자를 왕王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태후太后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고, 양후가 마음대로 사신을 파견하고도 왕에게 보고하는 일도 없으며, 경양군과 화양군은 마음대로 범인을 처벌하고도 꺼려하는 바가 없습니다.
이런 네 귀인들이 있는데도 나라가 위험하지 않은 경우란 없습니다.
이 네 귀인이 있어 아래로 소위 왕王이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니 어찌 권위가 기울지 않을 수 있겠으며, 명령이 어찌 임금으로부터 나올 수 있겠습니까?
저는 듣건대 ‘나라를 잘 다스리는 왕은 안으로는 위엄을 견고하게 하고 밖으로는 권세를 중히 한다’라고 합니다.
지금 양후의 사자는 대왕의 권위를 믿고 의지하여 제후들의 땅을 분할分割하고 마음대로 부절符節을 쪼개어 천하의 군대를 징발하여 적국을 정벌하고 있어 그의 말을 듣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렇게 싸움에 이기고 공격하여 취하면 그 이익을 〈자신의 봉지封地인〉 도陶 땅에 귀속시키며, 나라가 피폐해지도록 제후를 제압하기에 바쁩니다.
싸움에 지면 그 원망을 백성들과 맺고, 그 화를 사직에 덮어씌우고 있습니다.
《시詩》에 ‘나무에 열매가 지나치게 많으면 가지가 늘어지고, 가지가 늘어지면 목심木心이 상한다.
봉토封土를 받은 자가 너무 커지면 나라가 위험해지고, 신하를 너무 높이면 그 임금이 낮아진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치淖齒가 제齊나라의 권력을 장악하였을 때 민왕閔王의 근골筋骨을 뽑아 종묘의 대들보에 매달아 숙석宿昔에 죽게 만들었습니다.
또 이태李兌가 조趙나라 권력을 쥐었을 때 주보主父의 음식을 줄이고 끊어 1백 일 만에 굶어죽게 하였습니다.
지금 진秦나라는 태후와 양후가 용사用事하고 있고, 고릉군高陵君‧경양군涇陽君이 이를 돕고 있어, 끝내 진왕秦王이 없으니 이야말로 역시 요치淖齒‧이태李兌의 류와 같습니다.
제가 지금 대왕께서 고독하게 이렇게 궁정 안에 있는 것을 보니, 신은 장차 후세에 이 진나라를 소유할 자가 대왕의 자손이 아닐까 걱정됩니다.”
진왕은 두려워서 이에 태후를 폐廢하고 양후를 축출하고 고릉군을 내쫓고 경양군을 관외關外로 추방해 버렸다.
“옛날 제齊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을 얻었을 때 그를 중부仲父로 삼았습니다.
지금 내가 그대를 얻었으니 그대를 보父로 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