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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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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同姓희성姬姓이며 후작侯爵으로 한씨韓氏이다. 진후晉侯지족支族으로 대를 이어 나라에서 벼슬을 역임하다가 위열왕威烈王와 더불어 나라를 삼분三分(B.C.435)하여 B.C.403년에 드디어 경후景侯 열후烈侯, 문후文侯와 함께 동시에 주왕周王으로부터 정식 책명冊命을 받아 제후가 되었다.
전국 초기 무자武子의양宜陽(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의양현宜陽縣)으로 도읍을 정하였으나 다시 평양平陽(산서성山西省 임분현臨汾縣)으로 옮겼다가 경후景侯 때에 양적陽翟(하남성河南省 우현禹縣)으로 옮겼다. 그러나 애후哀侯나라를 멸하고 다시 신정新鄭(하남성河南省 신정현新鄭縣)으로 근거지를 옮기는 등 여러 차례 도읍을 이동하였다. 신정新鄭낙양洛陽은 가장 중원이었다. 즉 서쪽 , 동쪽 , 남쪽 , 북쪽 나라 등에 둘러싸여 각 나라 사이의 모든 전투에 저절로 전장戰場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소위 ‘사전지지四戰之地’의 위치였다.
한나라는 소후昭侯신불해申不害를 재상으로 삼아(B.C.355) 일련의 개혁정책을 단행, 국세를 떨치기도 했으나 그 뒤 곧바로 쇠락과 고통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리하여 특히 나라의 동진東進 정책에 직접 고통을 당하여 B.C.335년부터는 국토의 많은 부분을 진나라에게 빼앗겼으며, 다시 B.C.249년 나라가 동주東周를 멸하고 한나라를 공격, 결국 한나라는 13개 성을 잃고 말았다. 이에 나라는 B.C.233년 한비韓非(한비자韓非子)를 진나라에 파견하여 친진외교親秦外交로 존속을 꾀하였으나 그 한비마저 진나라에서 피살되고 즉시 진나라의 천하통일 전쟁의 제일 첫 희생 대상이 되어 내사內史 의 총공세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때 한왕韓王 은 포로가 되었으며 한나라 영토는 나라의 영천군潁川郡이라는 일개 군으로 전락하여 174년 만에 그 명맥이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B.C.230년) 《사기史記》 〈한세가韓世家〉는 이 전국시대 한나라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한편 포표鮑彪의 주에는 그 영역에 대해 “나라는 분진分晉하여 남양南陽영천潁川부성父城정양定襄양성襄城영음潁陰장사長社양적陽翟을 차지하였다. 그리하여 동쪽으로는 여남汝南, 서쪽으로는 홍농弘農과 접하게 되었으며, 신안新安의양宜陽을 차지하게 되었고 뒤에 정나라를 멸하고 그 땅의 신정新鄭성고成皐형양滎陽, 영천潁川숭고崇高성양城陽을 영역으로 얻게 되었다.”라 하였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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