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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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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01.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나라에 이르러 구정九鼎을 요구하다
秦興師臨周而求,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나라에 이르러 구정九鼎을 요구하였다.
患之, 以告. 顔率曰:
주군周君은 걱정되어 안률顔率에게 고하니 안율이 말하였다.
“大王勿憂,
“대왕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臣請東借救於齊.”
제가 동쪽으로 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청하겠습니다.”
顔率至齊, 謂曰:
안률顔率이 제나라에 이르러 제왕齊王에게 말하였다.
“夫秦之爲無道也, 欲興兵臨周而求九鼎,
나라가 무도無道하여 군대를 일으켜 우리 주나라에 와서 구정九鼎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周之君臣, 內自盡計, 與秦, 不若歸之.
우리 주나라 조정의 군신君臣들이 온갖 계책을 궁리한 끝에 나라에 주느니 차라리 대국大國에게 주느니만 못하다고 결정하였습니다.
夫存危國, 美名也; 得九鼎, 也. 願大王圖之.”
위태로운 나라를 보존시켜 주는 것은 아름다운 명분名分이요, 구정九鼎을 얻는 것은 실리實利가 되는 것이니, 왕께서는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齊王大悅, 發師五萬人, 使將以救周, 而秦兵罷.
제왕齊王은 크게 기뻐하며 군사 5만 명을 내어 진신사陳臣思로 하여금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구하도록 하니, 나라 군사는 철수하고 말았다.
齊將求九鼎,
이번에는 나라가 구정九鼎을 요구하였다.
周君又患之. 顔率曰:
주군周君이 또 걱정하자 안률顔率이 말하였다.
“大王勿憂,
“대왕께서는 걱정 마십시오.
臣請東解之.”
제가 동쪽으로 나라에 가서 해결하겠습니다.”
顔率至齊, 謂齊王曰:
안률顔率나라에 이르러 제왕齊王에게 말하였다.
“周賴大國之義, 得君臣父子相保也,
“우리 나라는 대국大國를 힘입어 군신君臣부자父子들이 보전保全하게 되었습니다.
願獻九鼎, 不識大國何塗之從而致之齊?”
구정九鼎을 헌납하고자 하는데 모르겠습니다만, 대국에서는 어느 길을 통해 나라로 옮겨 오려 하는지요?”
齊王曰:
제왕齊王이 말하였다.
“寡人將寄徑於.”
“나는 장차 (魏)나라의 길을 빌려 옮기려 하오.”
顔率曰:
안율이 말하였다.
“不可.
“안 됩니다.
夫梁之君臣欲得九鼎, 謀之之下, 之上, 其日久矣.
나라의 군신君臣들도 구정九鼎을 얻으면 휘대궁暉臺宮 아래에다 둘까, 소해少海 옆에다 둘까 하고 생각한 지 오래입니다.
鼎入梁, 必不出.”
구정이 양나라에 들어가면 빼내어 올 수 없을 것입니다.”
齊王曰:
제왕이 말하였다.
“寡人將寄徑於.”
“그러면 과인은 장차 나라의 길을 빌리겠소.”
對曰:
안율이 대답하였다.
“不可.
“안 됩니다.
楚之君臣欲得九鼎, 謀之於之中, 其日久矣.
초나라 군신君臣들도 구정을 얻으면 섭정궁葉庭宮 안에 두겠다고 벼른 지 오래입니다.
若入楚, 鼎必不出.”
만약 초나라 손에 구정이 들어가면 틀림없이 다시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王曰:
왕이 말하였다.
“寡人終何塗之從而致之齊?”
“그렇다면 과인은 끝내 어느 길로 옮겨야 나라로 가져올 수 있을까?”
顔率曰:
안율이 말하였다.
“弊邑固竊爲大王患之.
“저희 나라도 대왕을 위해 그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夫鼎者, 非效醯壺醬甀耳, 可懷挾提挈以至齊者,
무릇 이라고 하는 것은 술병이나 간장병 따위처럼 쉽게 품거나 끼거나 들고 제나라로 훌쩍 옮겨 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非效鳥集烏飛, 兎興馬逝, 灕然止於齊者.
또한 새가 모이듯, 까마귀가 날듯, 토끼가 뛰듯, 말이 달리듯 그렇게 훌쩍 스스로 나라로 올 수 있는 물건도 아닙니다.
, 得九鼎, 凡一鼎而九萬人輓之,
옛날 나라가 정벌征伐하고 구정九鼎을 얻어 옮겨 올 때 무릇 하나마다 9만 명이 끌었습니다.
九九八十一萬人,
그래서 구정을 다 끄는데, 구구는 팔십일, 81만 명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 器械被具, 所以備者稱此.
그뿐 아니라 사졸士卒사도師徒, 그리고 기구器具와 옷과 보급품 등도 여기에 맞게 갖추어야 합니다.
今大王縱有其人, 何塗之從而出?
대왕께 비록 그만한 숫자의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어느 길로 이를 옮겨 올 수 있겠습니까?
臣竊爲大王私憂之.”
그래서 제가 대왕을 위해 사사로이 근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齊王曰:
제왕이 말하였다.
“子之數來者, 猶無與耳.”
“그대가 자주 내게 오는 것은 결국 구정九鼎을 줄 수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구려.”
顔率曰:
안율이 말하였다.
“不敢欺大國,
“감히 대국大國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疾定所從出,
어떻게 옮겨 갈 것인지 빨리 결정하십시오.
弊邑遷鼎以待命.”
저희 나라에서는 구정을 옮길 명령만을 기다리겠습니다.”
齊王乃止.
제왕齊王은 이에 포기하고 말았다.
역주
역주1 秦興師臨周而求九鼎 : 이 일은 B.C.314년(혹은 B.C.255년이라고도 함)에 일어난 사건이라고도 본다. 대체로 周 赧王(B.C.314~B.C.256) 때에 일어난 일로 보는 것이 通說인데 高誘의 註에는 아마도 周 顯王(B.C.368~B.C.321) 때의 일이 아닌가 여기고 있다. 아울러 뒤의 齊王을 宣王이라 註하였는데(姚宏의 續註와 孔衍의 《春秋後語》), 周 顯王과 齊 宣王은 연대가 서로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齊王은 桓公‧威王‧宣王‧湣王(閔王)일 수도 있다. 한편, 이 이야기가 《戰國策》 제일 첫머리에 놓인 것은 奇謀 때문이며, 실제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 여기고 있다.(鮑彪)
역주2 九鼎 : 夏禹 때 九州로부터 銅을 바치게 하여 鑄造한 솥으로 天子의 권위를 상징한다. 아홉 개였다고 하며, 모양은 三足兩耳로 九州를 본뜬 것이다. 傳國之寶로 三代(夏‧殷‧周)를 거쳐 전해 내려왔으며, 周室이 전국시대에 쇠약해지자 제후국들이 서로 차지하려 들었다. 《左傳》 宣公三年에, 夏나라가 九牧으로 하여금 金을 貢物로 바치게 해서 鼎을 주조한 기록이 보인다.
역주3 周君 : 原註에 周 顯王이라 하였으나 연대가 맞지 않는다. 周 赧王 7년(B.C.308)의 사건으로 보고 있다.(何建章 《戰國策注釋》)
역주4 顔率 : 周나라 大夫이다. 原註에 率의 음을 ‘솔’과 ‘률’ 둘로 표기하였는데 본 역주에서는 현대 여러 번역서에 따라 ‘률’로 읽었다.
역주5 齊王 : 원주에 齊 宣王이라 하였는데, 姓은 田, 이름은 辟彊이다. 田齊의 제5대 임금으로 재위 기간은 B.C.309~B.C.301년이다.
역주6 大國 : 齊나라를 가리킴. 齊는 지금의 山東省을 중심으로 발전한 춘추전국시대의 大國. 수도는 臨淄(지금의 山東省 淄博市 臨淄鎭)이다.
역주7 厚寶(實) : 臺本(四部刊要本)에는 厚寶로 되어 있으나 앞의 美名에 대응하여 厚實로 보아야 한다는 黃丕烈의 說에 따라 번역하였다.
역주8 陳臣思 : 田臣思, 田期思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齊나라 田忌將軍을 말한다고 함. 齊나라 田氏의 선조가 陳公子完(田完)이었기에 흔히 田과 陳을 혼용하여 표기하고 있음.
역주9 : 魏나라의 별칭. 서쪽 秦나라에게 밀려 도읍을 大梁(지금의 河南省 開封市)으로 옮겨 梁이라고도 부름.
역주10 暉臺 : 魏나라 수도 大梁에 있는 궁궐 이름.
역주11 少海 : 沙海라고도 하며, 大梁 근처의 水名.
역주12 : 戰國時代 長江 근처의 강대국. 수도는 郢. 춘추오패(楚 莊王)와 戰國七雄의 반열에 들었음.
역주13 葉庭 : 楚나라의 葉邑에 있던 궁궐 이름. 章華宮이라고도 한다.
역주14 周之伐殷 : 周나라 武王이 呂尙(姜太公望)‧周公과 더불어 殷(商)의 폭군 紂를 쳐 멸망시킨 사건을 말함. 商은 湯이 세운 처음의 국호이며, 盤庚이 亳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를 殷이라 한다.
역주15 士卒師徒 : 士卒은 兵士를 뜻하며, 士는 甲士이고 卒은 步卒. 師徒 역시 軍隊를 일컫는다. 周나라 군사 제도 士와 卒에 대해서 鮑彪는 “士는 一人이며 2천 5백인을 師라 하고, 1백인을 卒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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