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君治秦, 法令
行), 公平無私, 罰不諱强大, 賞不私親近.
期年之後, 道不拾遺, 民不妄取, 兵革大强, 諸侯畏懼.
今秦婦人嬰兒皆言商君之法, 莫言大王之法, 是商君反爲主, 大王更爲臣也.
위앙衛鞅이 위魏를 도망하여 진秦나라로 들어오다
위앙衛鞅이 위魏나라를 도망하여 진秦나라로 들어오자, 효공孝公이 재상으로 삼고, 오於‧상商 땅에 봉封해 상군商君이라 호號하였다.
상군商君이 진秦나라를 다스리자 법령이 크게 행해지고 공평무사하였으며, 벌罰은 강대强大한 자라 하여 피하지 않았고, 상賞은 친근하다고 하여 사사로이 하는 경우가 없었다.
법이 태자太子에게 미치자 그 사부師傅를 경형黥刑과 의형劓刑에 처하였다.
1년 후에는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가는 사람이 없었으며, 백성들은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는 일도 없어졌으며 군사력이 강해져 제후들이 겁을 먹고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법만 가혹하고, 은덕恩德은 적어 특별히 강권으로 이를 복종시킨 것일 뿐이었다.
효공孝公이 이렇게 다스린 지 8년 만에 병이 들어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군에게 태자의 사부師傅가 되어 주기를 원했지만 상군은 사양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혜왕이 즉위한 지 얼마 뒤, 상군이 위나라로 되돌아갈 뜻을 밝히니, 어떤 사람이 혜왕에게 말하였다.
“대신의 권한이 너무 커지면 나라가 위험해지고, 좌우를 너무 친압親狎하면 자신이 위험해지는 법입니다.
지금 우리 진秦나라는 부인이나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상군商君의 법은 말하면서 대왕의 법은 말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상군이 도리어 왕이고 왕은 그 신하가 된 셈입니다.
상군이 위魏나라에서 돌아오자 혜왕은 그를 거열형車裂刑에 처해 버렸다.
그래도 진나라 백성들은 누구 하나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