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大王者, 必謂齊西有强趙, 南有韓‧魏, 負海之國也, 地廣人衆, 兵强士勇, 雖有百秦, 將無奈我何!
臣聞之, 齊與魯三戰而魯三勝, 國以危, 亡隨其後,
大王不事秦, 秦驅韓‧魏攻齊之南地, 悉趙涉河關, 指
, 臨淄‧卽墨非王之有也.
“齊僻陋隱居, 託於東海之上, 未嘗聞社稷之長利.
장의張儀가 진秦나라를 위하여 연횡책連橫策을 쓰고자 제왕齊王(湣王)에게 말하였다.
“천하 강국 중에 제齊나라보다 더 강한 나라는 없으며 대신大臣과 부형父兄의 많음과 부유함도 제齊나라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왕을 위해 계책을 바치는 자들은 모두 한때만을 위한 유세일 뿐, 만세의 이익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합종책을 말하는 자들은 대왕에게 반드시 말하기를 ‘제齊나라는 서쪽으로 강한 조趙나라가 있고, 남으로는 한韓나라‧위魏나라가 있으며, 동으로는 바다를 업고 있는 안전한 나라인 데다가 토지는 넓고 백성도 많으며 군대는 강하고 병사는 용감하니 비록 진나라가 1백 개 있다 하더라도 장차 우리를 어쩌겠습니까?’라고 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그 유세의 말만 듣고, 그 실제 효과에 대해서는 살피지 못하고 계십니다.
무릇 합종을 주장하는 자들이 서로 붕당朋黨을 맺어 합종을 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제가 듣건대 제齊나라와 노魯나라가 세 번 싸워 세 번 모두 노나라가 승리하였으나 나라가 위태로워지다가 뒤따라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비록 명분상으로는 이겼지만 실제로는 망하고 만 것입니다.
지금 조趙나라와 진秦나라의 싸움은 마치 제나라와 노나라의 경우와 같습니다.
진나라와 조나라가 하장河漳에서 싸울 때 조나라는 두 번 싸워 두 번 다 진나라를 이겼습니다.
또 파오番吾에서의 싸움도 두 번 모두 조나라가 이겼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네 번 싸운 후에 조나라는 마침내 수십 만의 병졸을 잃었고, 한단邯鄲만 겨우 남게 되었습니다.
비록 진나라를 이겼다는 이름은 있게 되었지만 나라가 깨지고 말았으니 이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지금 진秦나라와 초楚나라는 서로 인척姻戚 관계를 맺어 곤제지국昆弟之國이 되었습니다.
또 한韓나라는 의양宜陽 땅을 바쳤고, 위魏나라는 하외河外를 바쳤으며, 조趙나라는 민지黽池에 가서 입조入朝한 후 하간河間을 떼어 바치며 진나라를 섬기기로 하였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진나라는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를 몰아 제齊나라의 남쪽 땅을 공격할 것이며, 조나라 군사를 다 몰아 하관河關을 건너 단관摶關(博關)을 향할 것인데, 이렇게 되면 임치臨淄와 즉묵卽墨은 왕의 소유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나라가 하루아침에 공격을 받게 되어 그때서야 진나라를 섬기겠다고 하더라도 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제나라는 한쪽에 치우쳐 숨겨져 있고, 몸을 동해東海 가에 의탁하고 있어서 이제껏 나라를 길이 보전할 좋은 계책計策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대객大客(張儀)께서 다행히 이렇게 가르쳐 주시니, 청컨대 사직社稷을 받들어 진나라를 섬기겠습니다.”
그리고는 어염魚鹽의 산지産地인 3백 리를 진秦나라에게 헌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