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力田疾作, 不得煖衣餘食; 今建國立君, 澤可以遺世. 願往事之.”
今子無母於中, 外託於不可知之國, 一日倍約, 身爲糞土.
君之府藏珍珠寶玉, 君之駿馬盈外廐, 美女充後庭.
王之春秋高, 一日山陵崩, 太子用事, 君危於累卵, 而不壽於
.
說有可以一切, 而使君富貴千萬歲, 其寧於太山四維, 必無危亡之患矣.”
“王年高矣, 王后無子, 子傒有承國之業,
又輔之.
王一日山陵崩, 子傒立, 士倉用事, 王后之門, 必生蓬蒿.
王后誠請而立之, 是子異人無國而有國, 王后無子而有子也.”
若使子異人歸而得立, 趙厚送遣之, 是不敢倍德畔施, 是自爲德講.
今大王反國, 皆西面而望. 大王無一介之使以存之,
子楚立, 以不韋爲相, 號曰文信侯, 食藍田十二縣.
복양濮陽 사람 여불위呂不韋가 한단邯鄲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진秦나라에서 인질로 와 있던 이인異人을 보고는 집으로 돌아와 그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나라의 임금을 세워 주면 이익이 몇 배나 됩니까?”
“지금 힘써 농사를 짓거나 급히 서둘러 일을 해서 얻는 이익이란 그저 추위에 떨지 않고 배곯지 않는 정도도 어렵지만, 지금 나라를 일으킬 왕을 세워 주면 그 혜택이 대대로 남을 테니 저는 가서 그런 일을 하겠습니다.”
당시 진秦나라의 이인異人은 조趙나라에 인질人質로 와 요성{戶/夘}城에 살고 있었다.
“그대의 이복형異腹兄 자혜子傒는 나라의 업業을 이어갈 것이며, 또 궁宮 안에는 그의 어머니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대는 어머니도 없으며 게다가 앞일을 알 수 없는 이 외국에 인질로 의탁하고 있으니, 하루아침에 맹약이 깨어지게 되면 분토糞土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내 계책대로만 하여 돌아가기를 요구하면 진나라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대를 위해 진나라에 심부름을 가서 진秦나라로 하여금 반드시 그대를 데려가게 하겠습니다.”
여불위는 진秦나라에 가서 왕후王后의 동생 양천군陽泉君을 만나 말하였다.
“그대의 죄는 사형에 해당하는데, 그대는 알고 있소?
그대 문하門下 사람들은 고관존위高官尊位에 오르지 않은 자가 없지만 태자(子傒)의 문하 사람들은 귀하게 된 자가 하나도 없소.
게다가 그대의 창고에는 진주珍珠와 보옥寶玉이 가득하고, 그대의 마구馬廐에는 준마駿馬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그대의 후정後庭에는 미녀들이 우글거리고 있소.
지금 임금의 연세가 많아 하루아침에 죽고 나면 태자가 권력을 쥐게 될 것이니, 그대는 알을 쌓아 놓은 듯 위태롭고 목숨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만도 못하오.
그대를 천만 년 동안 부귀하게 해 주고 태산太山 사유四維보다 편안하여 반드시 영원히 후환이 없게 해 줄 계책이 있습니다.”
양천군이 자리를 옮겨 앉으며 그 말을 듣기를 청하니, 여불위가 말하였다.
“왕王(孝文王)께서는 이미 늙었는데 왕후에게는 아들이 없어 자혜子傒가 나라의 대업을 잇게 되어 있고 사창士倉이 보좌하게 될 것이오.
왕王이 하루아침에 죽고 자혜子傒가 즉위하여 사창士倉이 국사를 맡게 되면, 왕후의 문전門前은 틀림없이 쑥밭이 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인異人(子楚)은 어진 인물로 몸이 조趙나라에 버려져 있습니다.
궁중에 어머니가 없어, 목을 빼고 서쪽을 바라보며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왕후가 임금에게 청해서 그를 세워 주면 이인異人은 없던 나라를 얻게 되고, 왕후는 없던 아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곧 왕후에게 들어가 알리니, 왕후는 이에 조趙나라에 청하여 그를 귀국시키도록 하였다.
조나라가 아직 자초子楚를 보내 주지 않고 있자 여불위가 조왕趙王에게 말하였다.
궁중에 어머니가 없기 때문에 왕후가 그를 아들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도륙하고자 한다면 왕자 하나가 인질로 있다고 해서 계책을 유보하지는 않을 것이니, 이렇게 되면 헛되이 인질을 껴안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인異人이 돌아가 왕이 되도록, 조나라가 많은 예물을 주어 보내 준다면 이는 조나라의 은덕과 시혜施惠를 배반하지 않게 하는 것이며 저절로 덕德으로 화호和好를 맺는 셈입니다.
어느 날 죽게 되면 이인異人이 있다 하더라도 진나라와의 결맹結盟이 이어지기에는 부족합니다.”
이인異人이 진秦나라에 이르자 여불위는 그에게 초楚나라 옷을 입히고 왕후를 뵙게 하였다.
왕후가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그 지혜를 높이 보며 말하였다.
그리고는 스스로 아들로 삼고, 이름도 초楚(子楚)라고 바꾸었다.
왕이 그에게 책을 읽어 보라고 하니, 자초가 말하였다.
“어려서부터 외국에 버려져, 일찍이 스승에게 학문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는 데 익숙하지 못합니다.”
“폐하께서도 일찍이 조나라에 수레를 머물렀던 적이 계셨습니다.
그때 조나라의 호걸들로서 폐하와 사귀어 이름을 알고 지낸 자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 돌아와 왕이 되고 난 후에는 그들이 서쪽을 바라보며 폐하를 생각하고 있는데 대왕께서는 한 번도 사자使者 한 사람이라도 보내어 그들을 위로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아마 지금 그들이 모두 오히려 원한을 갖고 있지 않나 두려우니, 국경의 관문을 저녁 일찍 닫고 아침 늦게 열도록 하셔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왕이 그렇게 여기고 그 계책을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왕후가 그를 태자로 세우기를 권하자 왕은 이에 재상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자초는 왕이 되자 여불위呂不韋를 승상으로 삼아 호號를 문신후文信侯라 하였으며, 남전藍田 땅 12현縣을 식읍食邑으로 주었다.
왕후는 화양태후華陽太后로 승격되고 제후들이 모두 진秦나라에 토지를 헌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