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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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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주최周最석례石禮에게 말하다
주최周最석례石禮에게 말하였다.
“子何不以秦攻齊?
“그대는 어찌하여 나라로써 나라를 치지 않습니까?
臣請令齊相子,
저는 즉시 그대를 제나라의 재상이 되도록 청하겠습니다.
子以齊事秦, 必矣.
그대는 나라의 재상이 되어 나라를 섬기기만 하면 틀림없이 아무 염려 없게 될 것입니다.
子因令周最居魏以共之,
그리고 그대는 나 주최로 하여금 이 나라에 머물게 하면서 함께 일을 도모하도록 하십시오.
是天下制於子也. 子東重於齊, 西貴於秦, 秦‧齊合, 則子常重矣.”
그렇게 되면 천하가 모두 그대에게 통제를 받게 되는 것이어서 그대는 동쪽으로는 제나라에게 중함을 받고, 서쪽으로는 진나라에 귀함을 받게 되며 진나라와 제나라가 합치면 그대는 언제나 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역주
역주1 周最謂石禮 : 이 사건은 B.C.286년의 일이다. (013‧014‧021장 참조) 《史記》 〈周本紀〉 赧王 8년에 秦나라가 宜陽을 공격한 사건이 실려 있다.
역주2 周最 : 周㝡, 周聚로도 표기한다. 016‧017장에 의하면 周最는 원래 周나라의 公子인데, 齊나라에서 쫓겨나 魏나라로 도망간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역주3 石禮 : 원래 秦나라 장수였으나 이때 魏나라로 도망가 있었으니, 秦 昭王 13년의 일이다. 鮑彪本에는 呂禮로 되어 있다. 鮑彪의 註에 “그후 19년에 다시 秦나라로 돌아갔으며, 그가 齊나라의 재상이 된 것은 薛公이 薛로 돌아간 후이니, 대개 赧王 21년 후이다.[十九年復歸秦 其相齊在薛公歸薛後 蓋赧王二十一年後也]”라고 하였다.
역주4 無處(慮) : 대본에는 無處(더 이상 좋은 자리가 없다)라고 되어 있으나 鮑彪本에 無慮로 되어 있으므로 이에 의하여 고쳐 번역하였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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