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은 자기 아들의 살로 삶은 국을 먹으면서 중산군에게 자기의 의지가 굳음을 표시하였고, 〈신명申鳴은〉 아버지를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의 법을 지키는 것을 밝혔다.”
역주
역주1 :
이 이야기는 魏策 290장과 같다. 周 威烈王 18年(B.C.408년)에 魏나라 文侯가 樂羊을 시켜 中山을 쳐부수게 한 일이다. 그러나 文侯는 그가 그렇게 殘酷함을 보고 의심을 하여 끝내 등용하지 않았다. 유명한 樂毅는 그의 후손이다.
역주2其子時在中山 :
樂羊의 아들이 당시 中山의 대부였다. 中山王은 그를 구실로 침공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듣지 않자 죽여서 肉湯을 만들어 보냈다.
역주3明害父以求法 :
이에 대하여는 우선 문자 그대로 “악양이 아버지로써의 의를 해치면서 나라의 법을 구하였다.”이다. 다음으로 ‘明’ 자 앞에 ‘信’ 자가 더 있어야 하며, 이 ‘信明’을 ‘申鳴’의 가차자로 보아 그의 고사를 두고 평했다는 견해이다. 신명은 춘추시대 인물로 임금의 부름에 가지 않았다가 ‘白公之亂’에 휩쓸려 백공이 아버지를 인질로 항복을 요구하자, 아버지는 자결하였고, 신명 자신도 자살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