而嚴仲子乃諸侯之卿相也, 不遠千里, 枉車騎而交臣,
夫賢者以感忿睚眦之意, 而親信窮僻之人, 而政獨安可嘿然而止乎?
多人不能無生得失, 生得失則語泄, 語泄則韓擧國而與仲者爲讎也, 豈不殆哉!”
令死而無名, 父母旣歿矣, 兄弟無有, 此爲我故也.
聶政之所以名施於後世者, 其姊不避菹醢之誅, 以揚其名也.
한괴韓傀가 한韓나라 재상이 되고 엄수嚴遂가 임금에게 총애를 받게 되자 둘은 서로를 해害쳤다.
엄수가 정사를 토론할 때 손가락질을 하면서 한괴의 과실을 거론하자, 한괴는 이 때문에 조정에서 심하게 질책하였다.
엄수가 칼을 뽑아들고 달려들었으나 주위 사람들이 구해주었다.
이에 엄수는 주벌이 두려워 국외로 도망하여, 유랑하면서 한괴에게 복수할 만한 인물을 찾아다녔다.
그가 제齊나라에 이르자 어떤 사람의 일러주었다.
“지軹 땅 심정리深井里 마을에 섭정聶政이라는 자가 있는데 용감한 인물로 원수를 피해서 도살장에 숨어 있다.”
엄수는 드디어 몰래 섭정과 친교를 맺고 후하게 대해 주었다.
“내가 그대를 위해 힘쓴 지도 얼마 되지 않고, 지금 모시는 것도 소홀한데 어찌 감히 청탁드릴 것이 있겠습니까?”
이에 엄수는 주연을 베풀어 먼저 섭정의 노모老母에게 잔을 올렸다.
그리고 중자仲子(엄수)는 황금 백일百鎰을 올리며 섭정의 어머니께 축수祝壽하였다.
섭정은 놀랍기도 하려니와 그 많은 금덩어리가 더욱 괴이怪異하여 끝내 엄수嚴遂에게 사양하였다.
엄수가 그래도 억지로 주려고 하니, 섭정이 사양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노모가 계시고 집도 가난하여 나그네처럼 떠돌며 개나 잡는 백정이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맛있고 부드러운 음식을 차려 어머니를 잘 봉양하고 있소.
어머니 모실 것은 다 구비되어 있으니, 의義로 보아도 중자仲子께서 내려주시는 것을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엄수는 사람들을 피해 섭정에게 이렇게 부탁하였다.
“저에게 원수가 있어, 고국을 떠나 제후들 무리 속에 유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제나라에 이르러서 족하足下의 의義가 매우 높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백금을 이렇게 직접 바치는 것은 노모의 거친 식량 값으로 드리는 것일 뿐이며, 그저 그대와 즐겁게 사귀기를 바라는 것이오.
“제가 이렇게 뜻을 낮추고 몸을 욕되게 하면서 시정市井에 묻혀 사는 이유는 다만 다행히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는 즐거움 때문이오.
어머니가 살아 계신 한 저는 감히 마구 내 몸을 남에게 맡길 수 없소이다.”
그래도 엄중자는 놓고 가려고 하고, 섭정은 이를 받지 않으려 하였다.
그런데도 엄수는 빈주賓主의 예禮를 갖추어 인사를 드린 후 돌아갔다.
오랜 후, 섭정의 어머니는 세상 떠나고, 장례를 치르고 상복까지 벗게 되었다.
나는 그저 시정에 묻혀 살아 개나 잡는 천한 인물이다.
그에 비하면 엄수는 제후의 경상卿相으로서 천 리를 멀다 않고 몸을 굽혀 나와 친교를 맺었다.
그런데 내가 그를 대한 것은 너무 박하였고, 그에 알맞은 일컫을 만한 큰 공로도 없었다.
더구나 엄수는 그런 나에게 백금이나 주면서 어머니의 장수를 빌어주었다.
비록 내가 받지는 않았지만 그가 나를 깊이 알아 준 것만은 틀림없다.
무릇 현자賢者가 자기를 괴롭힌 원수를 분하게 여겨 이 궁벽한 곳의 나를 친신親信하였는데, 내가 어찌 침묵을 지키며 가만히 있으랴?
또 지난날 그가 나에게 요구할 때 내가 거절한 것은 다만 늙은 어머니가 생존해 계셨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께서 지금 천수天壽를 누리시고 돌아가셨으니 나는 장차 나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쓰이리라.”
이에 섭정은 서쪽으로 복양濮陽에 이르러 엄수를 만나 물었다.
“지난날 제가 그대에게 허락을 하지 않은 것은 단지 노모가 살아 계셨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어머니께서 불행히 돌아가셨소.
“저의 원수는 한나라 재상인 한괴韓傀이며, 그는 한나라 임금의 계부季父가 되오.
그는 일족이 번성하고 호위도 철통같아 내가 자객을 보냈지만 끝내 모두 성공하지 못하고 말았소.
지금 그대가 다행히 나를 버리지 않으시니 청컨대 거기車騎와 장사壯士를 더 보태어 그대를 돕도록 하겠소.”
“한나라와 위衛(복양濮陽)는 먼 거리가 아니오.
지금 한 나라의 재상을 죽여야 하는데, 그는 왕의 친족이오.
이런 형세여서 많은 사람을 써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많게 되면 이해 관계가 생기지 않을 수 없고 이해관계가 생기면 비밀이 누설되게 마련이며, 말이 새어 나가면 한나라에서는 온 나라가 그대를 원수로 여길 것이니 어찌 위험하지 않겠소?”
드디어 섭정은 수레와 인원을 모두 사양하고 홀로 칼 하나를 가지고 한나라에 이르렀다.
한나라는 마침 동맹지회東孟之會가 열려, 그 자리에 왕과 재상들이 모두 참석해 있었으며, 병기를 들고 경계하는 호위가 매우 많았다.
섭정은 곧바로 달려들어 계단으로 올라가 한괴를 찔렀다.
한괴는 도망하다가 급한 나머지 임금 애후哀侯를 껴안았다.
섭정이 쫓아가서 그를 찔렀는데, 아울러 애후도 칼에 맞아, 좌우가 큰 혼란에 빠졌다.
섭정이 크게 부르짖으며 죽인 자가 수십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나서 섭정은 스스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알을 후벼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 드디어 죽고 말았다.
한나라에서는 섭정의 시체를 거리에 내어놓고 현상금 1천 금을 걸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다.
누나인 내가 몸을 사려 동생의 그 의기로운 이름이 사라지게 할 수 없다.
그리고는 한나라에 이르러 동생 시체를 보고 울부짖었다.
이는 맹분孟賁‧하육夏育보다 훌륭하고, 성형成荊보다 높다.
죽으면서 그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 한 것은, 지금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형제도 없는 터이니, 분명 나를 보호하려고 그랬을 것이다.
내 몸이 아까워 동생의 이름을 드날리지 못하게 하는 짓은 내 차마 하지 못하겠다.”
“이는 내 동생 지軹 땅 심정리深井里의 섭정聶政입니다.”
진晉‧초楚‧제齊‧위衛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런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홀로 섭정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그 누나야말로 정말 열녀烈女로다.”
섭정의 이름이 후세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그의 누나가 젓담기는 형벌을 피하지 않고 그 이름을 밝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