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臨二周之郊, 誅周主之罪, 侵楚‧魏之地. 周自知不救, 九鼎寶器必出.
據九鼎, 桉圖籍, 挾天子以令天下, 天下莫敢不聽, 此王業也.
臣聞之:欲富國者, 務廣其地; 欲强兵者, 務富其民; 欲王者, 務博其德.
取其地, 足以廣國也; 得其財, 足以富民; 繕兵不傷衆, 而彼已服矣.
故拔一國, 而天下不以爲暴; 利盡西海, 諸侯不以爲貪.
臣請謁其故:周, 天下之宗室也; 齊, 韓‧周之與國也.
周自知失九鼎, 韓自知亡三川, 則必將二國幷力合謀, 以因于齊‧趙, 而求解乎楚‧魏.
사마조司馬錯과 장의張儀가 진秦 혜왕惠王 앞에서 논쟁을 벌이다
사마조司馬錯과 장의張儀가 진秦 혜왕惠王 앞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사마착이 촉蜀을 치자고 주장하자, 장의가 말하였다.
“위魏나라와 친하고 초楚나라를 잘 대하여 〈한韓나라의〉 삼천三川(伊‧낙洛‧하河)에 군사를 내려보내 환원산轘轅山‧구지산緱氏山의 입구를 막아 버립니다.
그리고 둔류屯留의 길을 막고 위魏나라가 남양南陽을 끊고, 초楚나라가 〈한韓나라 도읍〉 남정南鄭에 임하면, 진秦나라는 신성新城과 의양宜陽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주二周의 교외까지 가서 주군周君의 죄를 묻고는, 초楚나라‧위魏나라가 점령하였던 한韓나라의 땅을 치면 주周나라도 구제할 길이 없음을 알고 구정九鼎과 보물을 틀림없이 내놓고 말 것입니다.
구정九鼎을 손에 넣은 다음에는 지도地圖와 호적戶籍을 근거로 천자天子의 명命을 끼고 천하를 호령하면 천하가 감히 명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왕업王業입니다.
그런데 지금 촉蜀은 서방에 치우친 나라로 융적戎狄의 장長노릇을 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한 나라를 치느라 군대를 피폐시키고 백성을 수고롭게 해 보았자 이름을 얻을 수도 없고, 땅을 얻어 봤자 진秦나라에 이로울 게 없습니다.
제가 듣건대 ‘명성을 다투는 자는 조정으로, 이익을 다투는 자는 시장으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삼천三川과 주실周室은 〈바로 천하가 이익과 명성을 다투는〉 시장이며 조정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다투지 않고 융적과 다툴 생각을 하시니 이는 곧 왕업과 너무 먼 일입니다.”
제가 듣건대 ‘나라를 부유하게 하려면 그 땅을 넓히는 데 힘써야 하고, 군대를 강하게 하려면 그 백성이 넉넉해지도록 힘써야 하며, 왕업王業을 이루려면 그 덕을 넓히는 데 힘써야 한다.
이 세 가지만 갖추어지면 왕도는 저절로 따른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왕의 땅은 좁고 백성은 가난합니다.
그 때문에 저는 먼저 쉬운 일부터 하기를 원합니다.
무릇 촉蜀은 서쪽에 치우친 약소국이며 융적의 우두머리에 불과한 데다가 걸桀‧주紂 같은 포악한 난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 진秦나라가 이를 공격하면 마치 이리나 승냥이를 시켜 양羊의 무리를 쫓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땅을 얻으면 국토가 넓어지는 것이요, 그 재물로는 백성을 넉넉하게 해 줄 수 있으며, 병사들도 그저 훈련시키는 정도로만 부려도 많이 다치지 않고 촉蜀은 쉽게 복종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그마한 나라 하나 집어삼켰다고 해서 천하가 우리를 포악하다고 아니할 것이며, 서해西海의 이익을 우리가 취하였다고 해서 제후들이 우리를 탐욕한 나라라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한 번의 행동에 명실名實을 얻는 것이며, 또한 포악을 금하고 난亂을 바르게 고쳐 주었다는 명분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한韓나라를 쳐서 천자天子를 위협한다고 하니, 천자를 위협하는 것은 오명惡名을 들을 뿐 꼭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오히려 불의不義하다는 이름만 얻게 되며, 이렇게 천하가 치기를 꺼려 하는 곳을 우리가 공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신이 다시 한 번 그 이유를 설명하면, 주周나라는 천하의 종실宗室이요, 제齊나라‧한韓나라 두 나라는 주실周室의 동맹국입니다.
주周나라가 구정九鼎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알게 되고, 한韓나라가 삼천三川을 빼앗길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면, 두 나라가 장차 반드시 힘을 합하고 꾀를 모아 제齊나라와 조趙나라에게 의탁하여 위魏나라와 초楚나라에게 풀어달라고 청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정九鼎은 초楚나라에게 주고, 그 땅은 위魏나라에게 주어버릴 것인데, 그렇게 되면 대왕께서는 막을 수 없습니다.
제가 위험하다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이니 촉蜀을 쳐서 만전을 기하느니만 못합니다.”
그 해 열 달 만에 촉을 안정시키고 그 촉주蜀主의 작위를 후侯로 격하시켰으며, 진장陳莊을 촉蜀의 재상으로 삼아 다스리도록 하였다.
촉蜀이 진秦나라에 귀속되자 진秦나라는 더욱 부강해져서 제후를 경시해도 될 만큼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