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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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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성씨는 미씨羋氏이며, 자작子爵으로 전욱顓頊의 후손 중려重黎제곡帝嚳화정관火正官이 되어 축융祝融이라 불렀다. 중려가 죽은 후, 그의 동생 오회吳回가 계속하여 축융을 지냈으며, 그 후손 육종陸終계련季蓮을 거쳐 육웅鬻熊나라 문왕文王무왕武王왕사王師가 되었다. 그 뒤에는 으로 삼고 성왕成王 때에 이르러 드디어 육웅의 증손인 웅역熊繹형만荊蠻에 봉토를 얻고 단양丹陽(湖北 자귀현秭歸縣)에 도읍하여 , 혹은 으로 불렸다. 춘추春秋 때에는 중원中原과 멀어 야만野蠻 취급을 당하였으나 장왕莊王 때에 패자가 되어 세력을 떨쳤으며, 그 후 춘추 말기는 같은 남방 세력인 과도 다투어 끝내 그를 병합한다.
천도遷都 과정은 무왕武王(湖北 강릉현江陵縣), 소왕昭王(鄀으로도 불림. 호북성湖北省 자충현自忠縣)으로 옮겼으나 다시 으로 돌아왔다. 전국戰國 때는 가장 넓은 영토로 칠웅七雄의 반열에 올라 등의 넓은 토지를 영토로 하여 발전하다가 시황始皇의 천하통일 때 망하고 만다.(B.C.223)
나라는 춘추 말기 각 제후국 경대부卿大夫들의 ‘제후諸侯(公)簒奪의 풍조風潮’를 이겨내고 전국시대에 진입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즉 서쪽의 나라, 북쪽의 나라가 같은 경우인데 이 세나라는 우선 지역적으로 중원中原에서 멀어 찬탈의 풍조가 자신의 나라에 밀려오기 전에 서둘러 왕권을 강화하고 넓은 토지와 경제력을 기반으로 내부 갈등을 겪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남쪽의 나라는 북쪽 여섯 나라가 모두 황하黃河를 중심으로 각축전을 벌일 때 홀로 장강長江 유역을 독차지하여 풍요를 누리면서 발전을 거듭하였다.
나라는 춘추시대春秋時代에 들어서자 제후국의 칭호인 을 버리고 바로 을 칭하였으며(武王:B.C.740~B.C.690) 춘추오패春秋五霸의 하나인 장왕莊王(B.C.613~B.C.591)은 직접 주실周室에 이르러 구정九鼎경중輕重을 묻는 오만을 부릴 정도였다. 또한 대문학가 굴원屈原 출생으로 중국 남방시南方詩비조鼻祖가 되었으며, 온화한 기후로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사상을 지녀 북방과 색다른 문학과 철학을 발전시킨 곳이기도 하다.
포표鮑彪는 그 영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라는 지금의 남군南郡강하江夏영릉零陵계양桂陽무릉武陵장사長沙한중漢中여남汝南이 모두 그들의 땅이었다. 강릉江陵 영도郢都이며 西쪽으로 와 통하고, 동쪽으로 운몽雲夢의 풍요한 땅과 연결된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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