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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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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侯爵이며 희성姬姓으로, 문왕文王의 아들 필공畢公 의 후손이다. 대대로 나라 벼슬을 지냈으며, 열왕烈王와 함께 나라를 과분瓜分한 후(B.C.453) 문후文侯 위열왕威烈王으로부터 정식 제후로 승인 받아(B.C.403) 삼진三晉의 하나로 제후의 반열에 올라 전국칠웅戰國七雄이 되었으며 처음 도읍은 안읍安邑(지금의 산서성山西省 하현夏縣)이었다. 초기 문후文侯는 영명한 군주로서 전자방田子方서문표西門豹 등 능력 있는 신하를 등용하여 정치의 안정과 생산의 증대를 꾀하였고, 이회李悝의 변법을 실행하여 전국 초기에는 가장 세력이 강한 나라 중에 하나로 국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라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동쪽 여섯 나라 중에 가장 먼저 그들 동진정책東進政策예봉銳鋒을 피할 수 없어 혜왕惠王대량大梁(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개봉시開封市)으로 수도를 옮겼다. 이 때문에 사서史書에는 나라를 나라로 부르기도 한다. 그 뒤 다시 합종 연횡의 정세를 잘 활용하여 중흥을 꾀하였고 특히 전국 사공자의 하나인 신릉군信陵君 때에는 나라의 지위가 상승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릉전투馬陵戰鬪(B.C.341)에서 나라에게 크게 패한 후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여 결국 179년 만에 나라 천하통일 전투에 휩쓸려 망하고 말았다.(B.C.225) 이 나라의 역사에 대하여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위세가魏世家〉에 그 내용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한편 이 위나라의 영역에 대해 포표鮑彪에는 “나라는 고릉高陵으로부터 동쪽으로 하동河東하내河內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으며, 남쪽으로는 진류陳留여남汝南소릉召陵은강隱彊신급新汲서화西華장평長平까지, 그리고 영천潁川무양舞陽언릉傿陵, 다시 하남河南개봉開封중모中牟양무陽武산조酸棗의 모든 지역이 그 영토였다.”라 하여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북부 전체와 산서성山西省의 서남부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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