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吾以君爲天下之賢公子也, 吾乃今然后知君非天下之賢公子也.
今吾視先生之玉貌, 非有求於平原君者, 曷爲久居此圍城之中而不去也?”
彼秦者, 弃禮義而
之國也. 權使其士, 虜使其民.
彼則肆然而爲帝, 過而遂正於天下, 則連有赴東海而死矣.
“燕則吾請以從矣. 若乃梁, 則吾乃梁人也, 先生惡能使梁助之耶?”
周怒, 赴於齊曰: ‘天崩地坼,
下席. 東藩之臣
後至, 則斮之.’
故生則朝周, 死則叱之, 誠不忍其求也. 彼天子固然,
.”
文王聞之, 喟然而歎, 故拘之於
之
, 百日而欲
之死.
‘子將何以待吾君?’ 魯人曰: ‘吾將以十
待子之君’,
天子巡狩, 諸侯辟舍, 納于筦鍵, 攝衽抱几, 視膳於堂下,
‘天子弔, 主人必將倍殯柩, 設北面於南方, 然後天子南面弔也.’ 鄒之羣臣曰: ‘必若此, 吾將伏劍而死.’
俱據萬乘之國, 交有稱王之名,
其一戰而勝, 欲從而帝之, 是使三晉之大臣不如鄒‧魯之僕妾也.
且秦無已而帝, 則且變易諸侯之大臣. 彼將奪其所謂不肖, 而予其所謂賢; 奪其所憎, 而與其所愛.
彼又將使其子女讒妾爲諸侯妃姬, 處梁之宮, 梁王安得晏然而已乎?
“始以先生爲庸人, 吾乃今日而知先生爲天下之士也.
“所貴於天下之士者, 爲人排患‧釋難‧解紛亂而無所取也.
258. 진秦나라가 조趙나라의 한단邯鄲을 포위하다
진秦나라가 조趙나라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위魏나라 안희왕安釐王이 장군 진비晉鄙를 보내어 조나라를 구원하였다.
그러나 진비는 진나라를 겁내어 탕음蕩陰에 머무른 채 더 진격해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위왕魏王은 객장군客將軍 신원연辛垣衍을 사잇길로 한단에 보내 평원군平原君을 통해 조왕趙王(효성왕孝成王)에게 전하게 하였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급히 포위한 것은 옛날 제齊 민왕湣王과 서제西帝, 동제東帝를 억지로 다투다가 제나라가 얼마 후 이를 그만두자 진나라도 제호帝號가 그만두었는데, 이것이 제나라 때문이라고 여겨서입니다.
지금 제 민왕은 이미 더욱 약해졌고, 바야흐로 오직 진나라만이 천하의 영웅이 되어 있습니다.
이번 일은 꼭 한단을 삼키겠다는 탐욕이 아니고 그 의도는 바로 제帝라는 칭호를 듣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니 조나라도 얼른 사람을 보내 진秦 소왕昭王을 제帝로 칭해 주겠다고 하십시오.
진왕은 틀림없이 기꺼워하며 군대를 철수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평원군은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이때 마침 노중련魯仲連이 조나라에 와 진나라가 조나라를 포위한 상황을 맞게 되었다.
그는 위나라가 조나라로 하여금 진나라를 높여 제왕帝王으로 일컫게 했다는 소식을 듣고 평원군을 만났다.
“내(승勝)가 어찌 감히 국사를 논하겠습니까?
우리의 1백만 대군이 밖에서 꺾여 버렸고, 지금 안으로는 한단이 포위당한 채 이를 퇴각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왕魏王은 장군 신원연을 보내어 우리 조나라에게 진나라를 칭제稱帝해 주라고 합니다.
지금 그 자가 여기 있는데, 내가 어찌 감히 국사를 발설하겠습니까?”
“내가 처음에는 당신을 천하의 어진 공자公子로 알았더니 지금 보니 전혀 천하의 훌륭한 공자답지 못합니다.
양梁(위魏)나라 사신 신원연이 지금 어디 있소?
내가 그대를 위해 그 자의 책임을 물은 다음 돌려보내겠소.”
“제가 그를 불러 선생께 대면시켜 드리겠습니다.”
“동쪽 제나라에 노중련魯仲連 선생이란 분이 계시오.
지금 여기 와 있으니, 제가 청하여 장군을 소개시켜 만나 뵐 수 있도록 해드리겠소.”
“제가 알기로 노중련 선생은 제나라의 고사高士라 합니다.
저(연衍)는 남의 신하로서 사신의 임무가 따로 있습니다.
노중련은 신원연을 보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와 보니 포위된 이 성중 사람들이 모두 평원군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 선생의 옥모玉貌를 보니 평원군에게 의지할 분이 아닌데 어찌 이 포위된 성중에 이토록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떠나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옛날 포초鮑焦라는 자가 조용히 살지 않고 죽은 것이라 여기지만 이늘 잘못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그가 자살한 의의를 모르고 그저 자신만을 위해 죽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저 진나라는 예의를 버리고 남의 목을 잘라 오는 것을 숭상하는 나라이며, 그의 선비들에게 권모사술權謀詐術을 쓰도록 하고 있으며, 백성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소.
그러한 진왕秦王이 제멋대로 하여 제왕帝王이 되고, 더 나아가 정령政令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면 노중련은 동해 바다에 가서 죽어 버릴 것입니다.
나는 정말 차마 그런 임금의 백성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군을 만나 뵙기를 청한 것은 조나라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선생께서는 조나라를 어떻게 도울 작정이오?”
“나는 양梁나라와 연燕나라를 끌어들여 조나라를 구원하게 할 작정입니다.
제나라와 초나라는 이미 조나라를 돕고 있는 중입니다.”
“연나라는 이미 진秦나라를 제帝로 일컬으라는 우리 위魏나라의 청을 따랐으며, 양梁은 제가 바로 양나라 사람인데 선생께서 어떻게 양나라의 도움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까?”
“양나라는 아직 진나라가 칭제稱帝함으로 해서 입을 손해를 모르고 있소.
양나라로 하여금 그 해를 알게 한다면 틀림없이 조나라를 도와줄 것입니다.”
“옛날 제齊 위왕威王이 인의仁義를 행하여 천하의 제후를 거느리고 주실周室에 조회朝會하였소.
〈천자국〉 주周나라는 가난하고 쇠약하여 어느 제후도 가겠다고 하지 않았지만 오직 제나라만 찾아가 조현朝見하였소.
그런데 이듬해 주周 열왕烈王이 죽자 모든 제후들이 조문하였는데 도리어 제왕齊王이 가장 늦게 도착했습니다.
주나라는 노하여 제나라에 가서 꾸짖기를 ‘천자天子께서 붕崩하여 천자도 자리에서 내려와 애통해 하는데, 동쪽의 속국屬國 신하 전영제田嬰齊가 가장 늦게 오다니 치겠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齊 위왕威王은 벌컥 화를 내며 소리치기를, ‘나를 감히 꾸짖다니.
네 어미를 노비로 만들어 버리겠다.’ 하여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살았을 때는 체면을 보아 주나라를 조현朝見하고, 죽고 나서는 이를 꾸짖는 일이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주나라는 천자이니 그럴 만하며 조금도 괴이할 게 없지요.”
그 노비들은 10명이 한 주인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힘이 그만 못하다거나 지혜가 그만 못해 복종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양梁나라는 진나라에 대해 마치 노비처럼 된다는 말입니까?”
“정말 그렇다면 제가 진왕에게 말하여 당신의 양왕梁王을 솥에 삶아 육장肉醬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선생이 어찌 진왕을 시켜 우리 양왕을 삶아 육장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오?”
옛날 귀후鬼侯와 악후鄂侯, 그리고 문왕文王은 함께 주왕紂王의 삼공三公이었습니다.
귀후에게 딸이 있어 예쁘다고 여겨 이를 주왕紂王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나 주왕은 그가 못생긴 딸을 바쳤다고 여겨 귀후를 삶아 젓을 담갔소.
악후가 이를 보고 급히 간언을 하고 변론을 급하게 하자 악후도 포脯를 떠버렸습니다.
문왕이 이를 듣고 탄식하자 이번에는 그도 유리牖里(유리羑里)의 창고에 1백 일 동안 가두어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한 폭군을 왜 사람들은 그래도 제왕이라 칭하며 마침내 스스로는 포脯로 뜨이고 젓을 담기는 지경에 이르게 되겠습니까?
또 제齊 민왕閔王이 장차 노魯나라에 갈 때 마침 이유자夷維子가 채찍을 잡고 따랐습니다.
‘너희들은 우리 임금이 가면 어떻게 대접하려고 준비하느냐?’ 노나라 사람들이 ‘우리는 열 가지 태뢰太牢의 잔치로 귀국의 임금을 모실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유자는 ‘그럼 어떤 예를 갖추어 우리 임금을 대할 것인가?
천자가 순수巡狩할 때 제후들은 모두 정전正殿을 피하고 국고의 열쇠를 꺼내 바치고, 옷깃을 여미고, 궤안几案을 설치하고, 당하堂下에서 음식 드시는 것을 살핀다.
천자는 밥을 다 먹은 후에 물러나 제후의 조회朝會를 본다.’라고 하였습니다.
노魯나라 사람은 이 말을 듣자 성문 열쇠를 집어 던져 버리고는 문을 열어 주지 않아 노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설읍薛邑을 가기 위해 추鄒나라 땅을 빌려 거쳐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마침 추鄒나라 임금이 죽어 민왕이 들어가 조문弔問을 하려 하였습니다.
이때 이유자가 죽은 추나라 임금의 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천자가 조문할 때 주인은 반드시 영구靈柩를 등지고 북면北面할 수 있는 신하의 자리를 남쪽으로 만든 다음에, 천자가 북쪽에 앉아 남면하여 조문하는 것이다.’ 추나라 신하들이 이 말을 듣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면 내 장차 칼을 품고 엎어져 죽어 버리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추나라에도 감히 들어갈 수 없었지요.
노나라와 추나라의 신하들은 살아서는 봉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서는 반함飯含할 물건조차 제대로 없었습니다.
그런 작은 노나라, 추나라 신하들에게 천자의 예를 행하고자 하였다가 받아들여지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진나라는 만승萬乘의 나라라고 하지만 양나라 역시 만승의 나라입니다.
이처럼 둘 모두 만승지국으로서 서로 왕을 칭하며 교유交遊하고 있는데, 진나라가 한 번 이기는 것을 보고 그에게 복종해 제왕의 칭호를 붙여 준다고 하니, 이는 삼진三晉의 대신들을 저 작은 노魯나라나 추鄒나라의 노비나 비첩만도 못하다고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진나라는 〈욕심이〉 끝없어서 제왕이 되면 제후를 대신大臣으로 강등降等시킬 것이요, 불초하다고 일컫는 자의 땅을 깎아 재능 있다고 일컫는 자에게 줄 것이며, 미워하는 자의 것을 빼앗아 사랑하는 자에게 줄 것입니다.
또 자신의 딸 중에서 참훼讒毁에 뛰어난 계집을 제후의 후비后妃로 삼아 양나라의 궁으로 보낼 것인데 양왕이 그래도 편안히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장군께서도 옛 총애를 누리고 계실 수 있겠습니까?”
이에 신원연은 벌떡 일어나 재배再拜하며 사과하였다.
“제가 처음에는 선생을 용렬한 인물로 보았는데, 오늘 비로소 선생이 천하의 선비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청컨대, 저는 이제 물러가 다시는 진왕을 제왕으로 삼는 문제는 꺼내지 않겠습니다.”
진나라 장군은 이 말을 듣고 군대를 50리 후퇴시켰다.
이때 마침 위魏나라 공자公子 무기無忌가 진비晉鄙의 군대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하러 나서서 진나라를 공격하자 진나라는 군대를 이끌고 퇴각해 버렸다.
이에 평원군은 노중련에게 봉지封地를 주려 하였다.
노중련은 세 차례나 사양하며 끝내 받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평원군은 주연을 베풀고 한창 술이 올랐을 때, 일어서서 노중련에게 1천 금을 주어 축수하였다.
“천하의 현사가 귀한 바는 남을 위하여 근심을 없애 주고, 어려움을 풀어주며 분란紛亂을 해결해 주면서도 그 대가代價를 받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만약 대가를 받는다면 이는 곧 장사꾼이 되는 것이니, 저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드디어 평원군을 고별하고 떠난 후 종신토록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